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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62화 (1,262/1,404)
  • #1262화 먹고 먹히는 싸움 (6)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위용은 레이드를 찍으러 온 BJ들의 방송으로 전 서버의 유저들이 지켜볼 수 있었다.

    수많은 탈 것들과 비공정들이 고대 마룡을 에워싸듯 포위하고는 연이어 주포와 마법, 화살들을 날려댔지만.

    그들의 공격들은 고대 마룡의 기본 방어력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콰앙!!

    콰아앙!!

    요란한 폭발만 이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와중에 고대 마룡이 날개를 펼치곤 하늘로 솟아올랐고.

    그때부터 유저들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검은 용암이 하늘 빽빽이 쏘아져 내리는 광경이란…….

    치이익!!

    콰아아!!

    싸아악!!

    말 그대로 검은 용암의 비가 내리면서 유저들의 비공정들이 싸그리 녹아버렸다.

    그 사이 유저들의 탈 것들 역시 일제히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전에 타란 제국 함대가 그랬듯.

    검은 용암이 지나가는 자리는 그냥 지우개로 지워지듯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나마 거리가 있어 겨우 벗어났던 이들은 곧 거친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고대 마룡의 이빨에 모조리 씹혀 버렸다.

    비공정, 탈 것 할 것 없이 모두.

    가장 큰 문제는.

    비행을 시작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기동력을 그 무엇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비공정의 선회력은 애초에 답도 없었고.

    탈 것들은 압도적인 기동력에 뒤를 잡혀서 그대로 씹혀 사라졌다.

    혹하는 마음에 개떼처럼 모였던 유저들도 이젠 뭐가 잘못됐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 미쳤다.

    - 세상에. 저걸 어떻게 잡아?

    - 유저들을 완전히 찢어놓네.

    - 찢어? 그냥 녹이는 거 아니고?

    - 그게 그거지.

    - 어느 미친놈이 저거 약해졌다고 했어?

    - 만약 약해진 게 저 정도면?

    - 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럼 절대 못 잡음.

    용암의 압도적인 위력에 질려버린 유저들이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을 냈다.

    절대 못 잡는다고.

    물론 상위 연합과 길드들이 나서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도 지금쯤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앞서 다른 유저들을 갈아 넣어서 잘 지켜봤으니.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부푼 꿈을 가지고 고대 마룡을 쳤던 유저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는 건들만 해야 견적이라도 내 볼 텐데.

    접근하는 족족 녹아내리니…….

    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성마대전의 재앙이라고 불리는지.

    이제 제대로 알게 됐을 터.

    그 모습을 쭉 지켜보다가 방송을 꺼버렸다.

    아마 당분간 고대 마룡을 잡겠다는 말을 꺼내는 놈은 없을 것이다.

    “이제 절대 안 싸우겠네요.”

    “고대 마룡 근처에도 안 갈걸?”

    성마대전에서 목숨은 하나 뿐이다.

    이번에 나섰던 놈들은 일단 간만 보고 안 되면 바로 튈 생각이었겠지만.

    그조차도 안 되는 게 고대 마룡이었다.

    유저들 사이에서 확 달아올랐던 레이드 분위기가 단 한 번의 전투로 완전히 식어버렸다.

    고대 마룡도 화풀이를 적당히 했는지 아주 멀리 도망가는 녀석들까지는 쫓진 않았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지금 유저들은 그 정도의 위치일 것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네요. 유저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게.”

    “아아…… 적어도 용기사단 장비 이상은 되어야겠지.”

    사실 재중이 형이 말한 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다.

    그 용기사단들조차도 버티기 힘드니까.

    “역시 영웅급 무구가 아니면 힘들겠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카샤스 대공 수준에서 노는 네임드니까. 영웅 애들이 쓰는 무구나 마왕의 무구 정도는 되어야해.”

    그러자 아까 잠시 방송에서 보였던 거대 연합들이 떠올랐다.

    “왕국을 차지했으면 그곳에 있는 영웅들도 꽤 포섭했을까요?”

    “아마? 같은 편으로 만들었거나. 죽였을 경우에는 장비를 얻었을 수도 있겠네.”

    왕국의 영웅들이 비록 제국의 영웅들보다는 못 하더라도.

    어쨌든 영웅에 이름을 올리고는 있을 테니.

    그런 전력을 얻었다면 충분히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 번 시험을 해보자고. 얼마나 힘을 비축하고 있나.”

    “카샤스 대공의 시험 말이죠.”

    고대 마룡 레이드는 실패했으니 곧 대다수의 유저들은 다시 카샤스 대공령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 중에는 연합 유저들도 있을 테고.

    분명히 카샤스 대공에게 퀘스트를 받을 것이다.

    “일단 기다려 봐요. 과연 얼마나 낚여 올라오는지.”

    * * * * *

    대공령의 별채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카샤스 대공이 직접 별채로 찾아왔다.

    그리고 카샤스 대공을 보자마자 물었다.

    “많이 물었어?”

    “아. 모험가들 말인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샤스 대공이 주변 의자에 앉고는 다소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상당히 많은 녀석들이 찾아오더군.”

    카샤스 대공을 접견할 수 있는 방문을 활짝 열어놨으나.

    결코 아무나 방문을 넘진 못 한다.

    최소 왕국의 왕족이나 공작급.

    그 정도가 아니면 죄다 앞에서 입구 컷이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샤스 대공은 많은 녀석들이라고 했다.

    슬쩍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살짝 표정을 굳혔다.

    <불멸> 왕국을 먹은 녀석들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많은가 보네.

    <주호>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기껏해야 서넛 정도가 찾아올 것이라 여겼는데.

    아마 우리가 너무 유저들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았다.

    “몇 곳이나 찾아왔어?”

    그리고 이어지는 카샤스 대공의 말에 솔직히 조금 놀라버렸다.

    “음. 왕족이라는 녀석들이 다섯. 그리고 공작 녀석들이 열쯤 되었던가.”

    “그 정도나 된다고?”

    이건 현재 대륙에 존재하는 왕국들 중 꽤 다수가 유저들의 영향력 안에 들어갔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무려 열다섯 곳의 왕국이 완전히 잠식당했거나.

    혹은 왕위를 얻기 위해 작업 중이라는 뜻일 테니까.

    70여개의 왕국 중 15개국 정도면 이미 상당히 높은 비율이었다.

    성마대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보면.

    옆에서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이 녀석들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게 달렸구만.”

    우리가 제국을 작업하는 사이.

    그들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듯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가 싶기도 한데…….

    <주호> 이게 돈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않아요?

    왕국에서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돈이긴 한데.

    그것도 혈통 쪽으로 가버리면 답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방법을 썼다는 뜻이다.

    <불멸> 흐음. 왕위 다툼 중 부족한 세력 쪽에 군자금을 밀어주는 방법도 있을 테고. 특수한 혈통 아이템 같은 걸 구해오는 방법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영웅들을 포섭해서 쿠테타를 일으켜도 될 테지. 역사에 숨겨져 있는 힘없는 왕자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하려고만 들면 방법이 아예 없진 않아. 알고 보면 왕국 중에 부실한 곳이 꽤 많거든.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돈으로 완전히 해결이 되진 않더라도.

    어느 수준까지 발판을 마련할 순 있었다.

    거기까지 가는 게 어렵지.

    이후에는 어떻게든 왕족을 없애버리면 되니까.

    혹은 그 왕족을 발아래 두고 이용해 먹어도 된다.

    그런데 카샤스 대공의 이어지는 말은 우리를 조금 더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현재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붙은 왕국도 제법 된다.”

    하지만 완전히 당황하진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이라.

    카샤스 대공이 걸어둔 보상이 크긴 한데.

    일단 이쪽은 타란 제국에서 보면 황위를 뒤집기 위한 역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니까.

    분명히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붙는 녀석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거긴 얼마나 붙었는데?”

    “흠. 정확하게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략 20개 이상의 왕국이 붙었다.”

    카샤스 대공의 설명에 잠시 몸이 움찔했다.

    “생각보다 많네?”

    이건 오히려 카샤스 대공 쪽보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더 많이 붙은 모양새였다.

    옆에서 재중이 형도 의아한 듯 말했다.

    “그쪽은 그다지 보상이 좋지 않을 텐데 말이지.”

    “그러게요. 어지간하면 이쪽에 붙지 않나요?”

    이쪽은 용신검에 각종 직위까지 다 붙은 보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타란 제국 황제가 그 정도의 보상을 내어놓을 리가…….

    그때 카샤스 대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타란 제국 황제가 내 목을 걸었더군. 잡아 오면 대공 자리를 준다고. 거기다 용신검까지.”

    “그래?”

    순간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게 떠올랐다.

    용신검 아스카론.

    이건 현재 겉으로 보기에는 타란 제국 황제가 소유하고 있었다.

    가짜긴 해도.

    유저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타란 제국 황제가 가지고 있는 걸로 알 테니까.

    <불멸> 저쪽에 붙은 녀석들. 분명히 카샤스 대공이 최강의 영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무슨 생각이지?

    <주호> 그러게요. 정말 카샤스 대공과 싸울 생각일까요?

    내가 보기에는 자살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물론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붙은 녀석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등에 업고 있다고는 하나.

    원래의 성마대전 역사를 고려해보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주호> 이건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곧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이거 타란 제국 내전이 아니라 완전 대륙 전쟁이 되어버렸는데?

    무려 35개에 달하는 왕국들이 끼어든 내전이었다.

    대륙에 거의 70개의 왕국이 있다는 걸 고려해보면…….

    그중 절반이 이 내전 하나 잡아보겠다고 덤벼든 셈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카샤스 대공을 죽이려 한 순간부터 내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게 눈덩이 굴리듯 커져서 지금은 거의 대륙 전쟁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마족과 싸우는 성마대전이 아닌…….

    인간들끼리 싸우는 전쟁이.

    카샤스 대공 하나 살려보겠다고 이젠 대륙을 반 토막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주호> 형, 성마대전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우리 손에서 망하는 거 아니에요?

    <불멸> 크큭. 그러게. 마족들이 아주 두 손을 들고 반길 상황이잖아.

    <주호> 판이 너무 커졌어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깊게 웃음 지으면서 답했다.

    <불멸> 어차피 성마대전의 끝은 대륙의 멸망이야. 그게 좀 일찍 일어난다 뿐이지.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성마대전의 끝은 마왕군의 승리로 끝난다.

    잠시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일이야. 그 끝이 어떻든지 간에.”

    그리고 생각해보면 각 왕국의 모든 병력이 지원 온 것도 아니었다.

    왕국마다 영웅들이 성마대전에 참가하고 있었고.

    이제 갓 왕국을 잡은 유저들이 동원할 수 있는 영웅과 세력에도 한계가 있을 터.

    그러니까 여기서 좀 죽어 나간다고 대륙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죽어 나갈 녀석들은.

    아마도 그 왕국의 유저들일 테니까.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꺼냈다.

    “타란 제국에 아직 네 비밀 세력이 있지 않아?”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란 제국 내에서 직접 병력을 일으키는 일이라면 불가능하다.”

    그러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됐고. 소문을 좀 퍼트려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거지?”

    “네가 타란 제국의 베르탈륨 광산들을 치려 한다는 것 말이야.”

    순간 재중이 형이 내 의도를 알았는지 바로 웃어버렸다.

    “큭. 서로 치고 박게 하려는 거냐?”

    “네. 유저들 상대는 유저들로. 그리고 서로 좀 죽어 나가면 고맙죠.”

    그간 봐온 타란 제국 황제는.

    절대로 자신의 세력이 아닌.

    유저들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럼 이 길의 끝은 뻔하다.

    각 진영에 붙은 유저들끼리의 배틀이 되겠지.

    * * * * *

    얼마 지나지 않아.

    BJ들의 방송들은 완전 불이 나 버렸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무려 스무 곳의 베르탈륨 광산들이 약속이나 한 듯 죄다 전쟁터로 변했다.

    광산을 부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전쟁.

    영양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쟁 말이지.

    유저들의 대리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누가 먼저 죽어 나가나 한 번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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