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0화 먹고 먹히는 싸움 (4)
타란 제국의 대공 자리를 달라는 말은.
곧 황제 바로 다음의 세력을 타란 제국에 구축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현재 에일 왕국의 병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왕국을 먹고 있는 연합에다가 타란 제국의 대공 자리까지 내어준다?
이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재중이 형은 내게 말했다.
<불멸> 허락해 줘봐.
<주호> 과한 것 아니에요?
<불멸> 먹이가 크면 그만큼 무리를 하게 되어 있어. 그럼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에 보이겠지.
<주호> 문제 생기지 않을까요?
<불멸> 너야 가깝게 지내서 실감이 안 나는가 본데. 그 정도도 감당 못할 카샤스 대공이 아니지.
<주호> 흐음. 그런가요.
<불멸> 다른 부분은 우리가 도와주면 되고. 일단 에일 왕국은 최대한 써먹고 버려 보자고.
최대한 써 먹고 버리자라…….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어차피 그 녀석들. 카샤스 대공을 이용해서 타란 제국을 해먹으려고 하는 거잖아.
<주호> 그렇긴 하죠.
<불멸> 그럼 큼직한 먹이 좀 내어주고 열심히 굴려보자고. 얼마나 뽑아먹을 수 있나.
입가에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면 재중이 형은 이 상황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딱히 재중이 형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타란 제국에 들어와 있는 유저들 중 좀 규모가 있다 싶은 녀석들은 죄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불멸> 거기다 한 번은 숫자를 줄여놓을 필요는 있었어.
<주호> 유저들의 세력이 너무 커서요?
<불멸> 그렇지. 성마대전의 역사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유리한지 너도 겪어봐서 잘 알잖아.
이건 재중이 형의 말이 맞았다.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을 거쳐 온 우리가 그러했듯.
성마대전에 참가한 유저들은 그 역사를 가지고 온갖 이득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일 왕국.
잘 이용하면 나라 하나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 파급력이 크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만큼 인력과 자금이 들어가긴 했겠지만.
성마대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왕국 하나를 통째로 먹었다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더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문제는 이런 녀석들이 에일 왕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에일 왕국. 르바탄 공국. 바밀 왕국. 로엔 왕국. 헤멘 왕국. 오르가 왕국. 크록스 왕국. 테난 공국…….
열거하자면 끝도 없었다.
먼 미래에 제국이 되는 가르시아 왕국까지도.
그리고 그동안 제국은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었는데.
내전으로 균열이 나 있는 타란 제국은.
그런 유저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다.
당장 카샤스 대공에게 차기 대공 자리를 달라고 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지금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재중이 형의 말은.
그런 유저들의 세력을 여기서 한 번은 꺾어버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녀석들의 숫자를 줄이면서.
뽑아먹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뽑아먹는다라.
그간 생각했던 일들과 일치했기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대공 자리를 달라는 걸 들어주라고.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살짝 인상을 구기면서 답했다.
“대공 자리를 타란 제국에서 가장 우수한 용혈만이 가능한 자리다.”
“알고 있어. 대대로 최강에 가까운 용혈만이. 그것도 황족이 누릴 수 있는 지위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는 녀석이…….”
옆에 있던 아이샤 황녀도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저 역시 대공위는 허락하지 못합니다.”
아이샤 황녀는 타란 제국의 재상이자 제사장이었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만약 아이샤 황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대공 자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아이샤 황녀에게 괜찮다는 듯 말을 꺼냈다.
“어차피 대공 자리를 줄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면요?”
“일종의 먹이죠. 누구나 먹음직스러워하는.”
“지금 대공위를 걸고 그들을 이용하겠다는 건가요?”
“정확합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내게 아이샤 황녀가 말문이 막힌 듯 그 자리에게 굳어버렸다.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을 보자 이 녀석은 이미 이해를 했는지 그렇게 상관없겠다는 표정이었고.
“용신검도 우승 상품으로 걸었잖아요. 거기다 대공 자리 더 올려놓는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그 다음에 한 마디를 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줄 생각도 없었거든요.”
용신검도 그렇고.
대공 자리도 마찬가지.
유저들에게 하나라도 내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겠지만…….
사실 공정할 필요가 있긴 한가 싶기도 하다.
이건 룰이 정해져 있는 스포츠 시합 같은 게 아니니까.
다시 카샤스 대공에게 전했다.
“분명 지금처럼 왕족이니 뭐니 하면서 네게 접근하는 녀석들이 더 나올 거야.”
“흠.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럼 찾아오는 녀석들 전부에게 말해. 대공위를 주겠다고.”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짧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래. 찾아오는 녀석들을 전부 경쟁시키라는 말이겠군.”
“정확해.”
구두로 해야 하는 우리와 달리.
카샤스 대공이 유저들에게 알리면 그건 곧 퀘스트가 된다.
그리고 그런 퀘스트를 무시할 수 있는 녀석들은 유저들 중에 아무도 없다.
“아, 하는 김에 타란 제국 황제의 목을 따오는 것도 추가했으면 좋겠다.”
“흠. 지금 모험자들 수준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텐데.”
“대공위를 얻는 건 가능하고?”
내 대답에 카샤스 대공이 옅은 웃음을 보였다.
거기다 추가로 여러 가지 제약을 넣었다.
카샤스 대공의 명을 어기면 안 된다던지 하는.
패널티 부분도 막 추가하고.
<불멸> 너 은근히 즐기는 거 같다?
<주호> 아. 퀘스트 만드는 재미가 이런 건가 봐요. 생각보다 재밌네요.
내가 여기서 말해주는 것들은 죄다 카샤스 대공을 통해 퀘스트화 될 테니.
그걸 채워넣는 건 또 하나의 재미를 주었다.
이 조항들은 유저들에게 극악의 난이도를 만들어줄 테고.
뭐, 난 대공위를 주라고는 했지, 절대 쉽게 준다고 하진 않았으니까.
혹 빠져나갈 조항이 있으면 옆에서 재중이 형이 친절하게 추가 보정을 해주었다.
<불멸> 이건 우회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저건 이런 식으로 바꾸면 절대 못 빠져 나간다.
<주호> 형도 즐기는 것 같은데요?
<불멸> 흠. 생각보다 재밌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그럴싸한 퀘스트가 만들어져 버렸다.
운영자들이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 싶은데.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시스템 안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라서 손댈 순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퀘스트를 짜두면 이제 카샤스 대공을 찾아오는 왕족 급 유저가 누구인지도 정보가 다 들어올 터.
그동안 숨기고 있더라도.
카샤스 대공에게까지는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퀘스트 자체를 못 받으니까.
“나쁘지 않네.”
“그러게요.”
카샤스 대공을 이용해 먹으려고 들어왔겠지만.
이 퀘스트를 받는 순간.
그들은 완전히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중도 포기하려고 할 때는 아마 꽤 늦었을 터.
한참 병력과 자원을 토해내고 돌아서려면 꽤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얻는 것 없이 말이지.
<불멸> 자. 이쪽은 이만 하면 된 것 같고.
<주호> 네. 다른 쪽 추를 맞추러 가야죠.
타란 제국 수도가 너무 잘 버티고 있어서 그걸 막기 위해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었다.
그 덕분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 수도를 공격할 수 있었고.
꽤 많은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타란 제국 수도가 아예 무너지면 또 안 되기에 고대 마룡을 빼냈었다.
카샤스 대공의 세력만 너무 강하면 이게 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좀 제대로 된 내전이 되려면.
양쪽의 추를 잘 맞춰놔야지.
“그리고 실피드 조금만 더 빌리자.”
“아예 네 것처럼 가져다 쓰는군.”
“서류 결재 다 하면 돌려줄게. 어차피 너 그거 한다고 나가지도 못하잖아.”
“…… 싸울까?”
“아니.”
실피드를 돌려주려 왔는데 막상 와보니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알이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니 그때까지만 빌리는 걸로.
“아. 그런데 혹시 카샤스 대공령에도 비축해둔 베르탈륨 광석이 있어? 수도의 방어 시스템 같은 것 말이야.”
타란 제국 수도만은 못 해도.
수도 다음으로 큰 영지인데.
분명 이곳 역시 방어 시스템이 있을 터.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있긴 하지. 비상시에 쓰기 위해.”
“흐음. 그렇단 말이지…….”
당장 타란 제국 황제가 이곳에 병력을 끌고 쳐들어올 여유가 있을까?
아니.
이건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
당장 고대 마룡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을 터.
그리고 만약 타란 제국에서 카샤스 대공령을 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나왔는데.
고대 마룡이 다시 침략하면?
그땐 진짜 답도 안 나온다.
한 마디로 타란 제국의 영웅들과 용기사단 병력들은 고대 마룡 때문에 타란 제국에 꽁꽁 묶여 있는 셈이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니까 그만큼 오래 병력을 비워둘 여유가 없었다.
그 고대 마룡은 현재 내가 컨트롤 가능하기도 하고.
원하면 언제든지 가서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 수도에 풀어둘 수 있다.
“그거 나한테 전부 넘겨주면 안 되려나?”
“뭐?”
내 제안에 이번에는 카샤스 대공뿐만 아니라 아이샤 황녀까지도 놀란 눈빛을 했다.
레오나 에센시아도 마찬가지.
영지 방어 시스템을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미 에센시아 제국에서 비슷한 일을 해봤던 그녀 역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당장 달라는 건 아니고.”
“그럼 왜?”
“곧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 수도에 유인했는지는 설명해주었다.
이걸 알아야 카샤스 대공이 내 의견에 동참할 테니까.
“흠. 그런 방법이 있었나.”
“그렇지.”
잠시 생각을 하던 카샤스 대공이 말을 이었다.
“그럼 타란 제국군은 이곳을 함부로 치러 오지 못하겠군.”
“아예 못 온다고 봐야지. 고대 마룡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그래서 여유분의 베르탈륨 광석을 달라?”
이건 단순히 내 알에게 먹일 용도로 달라는 건 아니었다.
이미 거긴 충분할 정도로 베르탈륨 광석을 깔아놔서 말이지.
솔직히 알이 먹고 남으면 그 분량으로만 해결해도 충분하긴 할 것이다.
이쪽은 일종의 보험이랄까.
카샤스 대공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지금 타란 제국 수도에 가장 필요한 자원이 뭐라고 생각해?”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의 몸이 움찔했다.
“……베르탈륨 광석이겠군. 그것도 방어 시스템에 쓸 수 있는 저순도의.”
“정확해.”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불멸>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주호> 저? 카샤스 대공?
<불멸> 둘 다.
곧 카샤스 대공이 내게 물었다.
“혹시 베르탈륨 광석을 타란 제국에 팔 생각이냐?”
가장 비쌀 때.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판다.
이건 장사에 핵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지금 타란 제국에서 베르탈륨 광석은 부르는 게 값일 테니까.”
몇 배?
아니.
몇 십 배를 올려도 타란 제국은 반드시 사야 한다.
그런데 당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으면.
절대 사주지 않을 테니.
그래서 카샤스 대공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베르탈륨 광석이 타란 제국으로 들어가는 보급로. 모험자들 시켜서 전부 까 버려.”
슬슬 좀 굴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