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7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3)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또 모를까.
이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봉인에서 풀린 이상.
굳이 우리가 여기서 뭔가를 더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여유로운 미소로 카샤스 대공에게 말하자 카샤스 대공이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움직이지 말라는 건가?”
“그래. 정확하게는…… 네 세력을 아예 전부 빼주면 좋겠는데.”
타란 제국 황제에 비해서 규모가 작다고는 하나.
카샤스 대공이 지닌 세력도 그에 절대 꿀리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병력의 질적인 면에서는 카샤스 대공의 세력 쪽이 더 앞설 테지.
숫자가 적은데 균형을 유지하려면 그게 맞을 테니까.
세력을 철수시키라는 말에 카샤스 대공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허락을 한 건 또 아니었다.
“우리 쪽 병력이 빠지게 되면 그만큼 타란 제국의 피해가 커지게 된다.”
나 역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고.
그때 재중이 형이 옆에 나서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어차피 카샤스 대공의 병력을 저대로 두면 타란 제국 황제가 카브레시아와의 전장에 먼저 밀어 넣을 겁니다. 자신의 병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말이죠.”
재중이 형의 말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병력을 보존하면서.
상대의 세력을 갉아먹으려고 하는 일은.
그리고 그걸 제일 잘하는 건.
바로 타란 제국의 황제겠지.
“휴. 역시 그런가.”
“네. 그러니까 아예 완전히 타란 제국군과 분리시키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리고 확실히 진영을 정해 줘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 내가 여기서 애매하게 굴면 중간에 걸친 자들에게서 문제가 생기겠군.”
“정확한 표현입니다.”
카샤스 대공의 세력은 어떻게 보면 확고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당장 카샤스 대공의 한마디에 바로 명을 따를 이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거지.
문제는 중간의 이도 저도 아닌 세력들이다.
뭐 이놈들까지 챙겨 줄 필요는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추가로 끌어올 수 있는 세력을 굳이 낭비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이기도 했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줄 바에는 차라리 가져오는 편이 낫겠죠.”
“그런가.”
이미 타란 제국 황제와 갈라서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부터는 속도전이었다.
“알겠다. 움직이지.”
아예 방관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타란 제국 내 중립적인 세력까지 모조리 빼올 생각이었다.
뭐 이쪽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지 상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또 아까운 패니까.
그리고 카샤스 대공은 가장 먼저 어디를 손봐야 하는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원로회부터 손에 넣어야겠군.”
“그렇죠. 원로회를 쥐게 되면 자연스럽게 휘하의 병력들도 전부 병합될 겁니다.”
솔직히 카샤스 대공의 세력만으로 온전히 전쟁을 일기는 건 어려웠다.
일단 어찌되었든 지금 타란 제국의 황제는 카베스였고, 대다수의 용기사단과 군사들은 황제를 따를 테니가.
그들에게서 확실히 균열을 내려면.
다수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원로회는 꽤 괜찮은 패였다.
카샤스 대공의 병력에서 부족한 숫자를 채워줄.
그리고 그만큼 타란 제국 황제에게서 병력을 뺏어올 수 있게 된다.
곧 카샤스 대공이 날 바라보면서 말했다.
“카베스가 고대 마룡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정리하자는 말이겠군.”
“정확해. 당장 황제는 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을 거야.”
성마대전 역사로 보면.
거의 타란 제국의 수도가 박살 나는 수준까지 고대 마룡이 밀고 들어온다.
그걸 막아야 하는 타란 제국 황제가 카샤스 대공까지 신경 쓸 여유가 과연 있을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지.”
그리고는 바로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상황은 어때요?
그러자 화련이 꽤나 놀란 듯 내게 답했다.
<화련> 카브레시아. 저거 완전 괴물이잖아?
아.
화련은 에센시아 제국에서 아크 드래곤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지.
그럼 지금 보고 있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재앙급 네임드 중에서는 처음 조우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야말로 전장을 불 지르는 최강의 존재.
단독으로 성마대전의 성패를 뒤집을 정도의 괴물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곧 화련이 어이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화련> 너, 저런 걸 테이밍하겠다고 나선 거였어?
<주호> 아…… 뭐 그렇죠.
<화련> 미쳤네. 저걸 길들여지고 어쩌고 할 만한 급이 아니잖아.
맞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길들일 수가 없는 존재였다.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카샤스 대공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조차 힘들겠지.
당장 저 검은 용암에 스치기만 해도 어지간한 유저들은 그냥 한 방에 녹는다.
거기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능력은 저 검은 용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호> 봉인에서 완전히 풀리기 전에 접근해서 해보려 했는데 망했죠.
<화련> 그래도 한 방에 죽었을 것 같은데?
그런 화련의 말에 웃음 지었다.
우리가 준비한 패는 미처 써보지도 못한 상태라.
이쪽은 할 수 없으려나.
<주호> 아무튼 이미 풀려 버린 건 어쩔 수 없고요. 화련이 해줘야 하는 일이 있어요.
<화련> 아. 왜 맨날 뭐 해달래? 맡겨 놨냐고.
<주호> 음. 지금은 화련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래요. 지금 카샤스 대공의 기사단들하고 같이 있죠?
<화련> 칫. 이번만 넘어가 주는 거야. 옆에 있긴 해. 실피드를 따라가려다가 저 검은 용암 때문에 완전히 갈라졌어.
역시 같은 상황이었네.
<주호> 그럼, 카샤스 대공 휘하의 귀족들과 기사단장들에게 전해요. 세력을 전부 철수시키라고요.
내 말을 듣자마자 잠시 침묵했던 화련이 바로 대답해왔다.
<화련> 완전히 갈라서기로 한 거네?
역시 화련도 눈치 하나는 진짜 빠르다.
단순히 병력을 빼라는 걸 넘어서 이쪽의 의도까지 파악했다.
<주호> 네. 알다시피 선을 완전히 넘어서요. 괜히 거기 남아 있으면 타란 제국 황제가 카브레시아와의 전투에 투입시킬 거예요.
<화련> 흐음. 그래. 황제의 명이면 일단은 따라야 하니까. 알았어. 카샤스 대공의 명령이라고 하면 바로 빠질 거야. 얘들에게 우선 순위는 카샤스 대공이니.
어느 쪽의 명령이 먼저 떨어지느냐의 문제일 뿐.
일단 카샤스 대공이 나섰으니 이쪽은 괜찮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이 문제였다.
<주호> 혹시 원로회 장로들과 접촉할 수 있나요?
<화련> 원로회? 중립 세력들도 빼돌리려고?
<주호>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네요.
한마디만 해도 딱딱 알아들으니 편하긴 하네.
<화련> 하긴 카샤스 대공이 쪽수가 부족하긴 해. 원로회의 세력이면 그 부족한 수를 일부나마 채워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원로회가 카샤스 대공을 따르려고 할까? 이런 시기에?
<주호> 이런 시기니까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원래 원로회 자체가 카샤스 대공을 밀려고 했었어요.
<화련> 호오. 그렇단 말이지?
<주호> 원로회는 성마대전에 맞서기 위해 더 강한 용혈을 원하는데. 카베스 황제는 그 조건에 부합하진 않거든요.
<화련> 흐음. 그렇긴 하겠네. 용혈 중에 제일 강한 건 카샤스 대공일 테니까. 이전 성마대전 역사에 등장한 영웅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강한 용혈도 있다는 걸 알면 화련이 놀라긴 하겠지만.
어차피 아이샤 황녀는 전투형은 아니니.
<화련> 그런데 카브레시아가 날뛰는 와중에 쉽게 빠지려고 할까? 그래도 타란 제국을 수호하는 원로회잖아.
나도 저게 좀 걸리긴 했다.
평화로울 때라면 앉혀놓고 대화할 시간이라도 있지.
지금은 그냥 바로 칼을 거꾸로 쥐라고 하는 셈이니.
<주호> 원로회의 장로 대표인 타누스 후작을 찾으세요. 그리고 아들 목숨 구해준 보답이라고 하면 말은 해볼 수 있을 겁니다.
<화련> 아. 그 기사단장? 해보고 안 되면?
<주호> 그럼 어쩔 수 없죠. 억지로 넘어오라고 하면 역효과만 생길 겁니다.
<화련> 일단 알았어. 나중에 봐.
화련과의 대화를 마치는 동안 실피드는 계속 날아서 화련의 영지 쪽으로 이동했다.
당장 근처에서 내릴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기에.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계속 천둥이 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날아온 방향 쪽.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풀려난 딱 그 방향이었다.
그때 챠밍이 내게 물었다.
“혹시 카브레시아가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리면요?”
“아.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 하겠지만…….”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챠밍에게 대답했다.
“과연 고양이가 근처의 물고기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갈까?”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아이샤 황녀 쪽을 바라보자 그녀가 뭔가를 안다는 듯 어깨를 움찔했다.
“그렇죠, 황녀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샤 황녀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떻게 아셨나요?”
아니.
솔직히 정확하게 뭔지는 나도 전혀 모른다.
그런데 과거의 성마대전에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깨어나자마자 타란 제국 수도를 향해 진격했었다.
그건 충분히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음에도.
굳이 타란 제국으로 향하게 한.
고대 마룡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뭔가가 타란 제국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어떤 건지 전사 형조차도 알 수 없었다.
궁금한지 전사 형을 비롯한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곧 아이샤 황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용신의 흔적.”
그 말을 듣자마자 다들 몸을 움찔했다.
용신의 흔적.
이건 신의 가호가 걸린 신의 흔적이나.
마신의 파편 같은 것과 같은 종류의 무언가였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노리는 건 바로 그 용신의 흔적일 거예요. 용신께서 존재할 무렵에 남겨놓은 유산이죠.”
아마도 고대 마룡은 멀리서도 그 용신의 흔적에 담긴 기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니 바로 타란 제국으로 날아가는 걸 테고.
“흐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만약 그 용신의 흔적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차지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내 물음에 아이샤 황녀의 표정이 그 짧은 순간 동안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아마도…… 용신에 준하는 뭔가가 탄생하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우리들 역시 표정이 굳었다.
재중이 형이 말을 흘리듯 내뱉었다.
“용신에 준하는 무언가라……. 그것도 마룡……. 그럼 답은 하난데?”
“네. 답은 하나죠.”
용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그 대척점에 있는 존재 중 하나.
그건 바로 마족의 신인.
아마도 마신에 가까운 존재일 터.
거기에 용이 들어가면…….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잘못하다가 성마대전이고 뭐고 바로 망해 버리겠는데?”
다른 것도 아닌.
무려 신급이다.
가뜩이나 고대 마룡 자체로도 상대하기 힘든데.
거기다 더 뭔가가 더해진다면.
지금의 전력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대항하기 힘들 것이다.
아니.
재중이 형 말대로 싹 다 망해 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시간이 지나 꽤 진행되어 유저들이 성장한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성마대전 자체가 날아가 버리는.
초유의 상태가 벌어질지도…….
“용마족 녀석이 왜 그렇게 아이샤 황녀를 살리려 했는지 이제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