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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38화 (1,238/1,404)

#1238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4)

애초에 용마족이 노리고 있던 건.

그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단순한 봉인을 푸는 수준이 아니야.

그보다는 더 엄청난.

어쩌면 여기서 성마대전 자체가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다.

원 성마대전 역사에서는 어떻게든 고대 마룡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너무 시점이 이르기도 하고.

현 전력상 고대 마룡을 막아낼 만한 저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거기다.

안 그래도 부족한 전력인데.

그 전력마저도 반토막이 난 상황이라…….

“이건 좀 최악이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도 딱히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게. 어떻게 보면 에센시아 제국 때보다도 더 상황이 안 좋아.”

재중이 형이 에센시아 제국을 언급하자 옆에 있던 레오나 에센시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래도 그땐 이쪽의 황녀님이 에센시아 제국의 모든 전력을 우리에게 몰아줬으니까.”

그 말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지금은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에센시아 제국을 구한 것은 물론 제 입지도 확실히 바뀌었으니까요.”

“거의 이 녀석 덕분이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 등을 팡팡 쳤다.

그 모습에 레오나 에센시아도 미소를 보였고.

바로 재중이 형이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를 보면서 한숨 쉬듯 말했다.

“다만, 이번엔 그게 전혀 안 됩니다.”

“흠…….”

카샤스 대공이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고.

아이샤 황녀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

곧 카샤스 대공이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물어보았다.

“에센시아 제국이라……. 그럼 네게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해주면 가능한 거지?”

“고대 마룡을 잡는 것 말이야?”

“그래.”

흐음.

이건 전혀 각이 안 나오는데…….

꼭 재중이 형이 말해주지 않았어도.

될 만한 일이 있고.

아예 안 될 일이 있다.

그리고 이건 절대 안 될 만한 일이었다.

내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이번에 고대 마룡을 잡는 건 불가능이다.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안 돼. 에센시아 제국처럼 내가 타란 제국의 전권을 가진 상태로 있는 자원 없는 자원 다 끌어다 모아 들이붓는다면 또 모를까.”

특히 지금처럼 양쪽으로 전력이 반토막 난 타란 제국으로는 될 것도 안 된다.

만약 이게 되려면.

적어도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에게 숙이고 들어가던가.

혹은 반대로 타란 제국 황제가 카샤스 대공에게 전권을 몰아주어야 하는데…….

이건 절대 불가능하다.

서로 칼부림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거기다 타란 제국 황제가 아이샤 황녀를 제물로 써서 죽이려 한 건 아직도 카샤스 대공의 뇌리에 그대로 박혀 있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도와준다고 쳤을 때.

어떻게 모든 일이 다 잘 풀렸다고 치자.

그다음은?

과연 타란 제국 황제가 그때에도 얌전히 있을까?

고대 마룡이 사라진 다음에도 말이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어떤 식으로 하던지 간에.

이건 안 된다.

곧 카샤스 대공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이걸 네가 도와주는 순간. 일이 끝나고 나면 네가 사냥당할 거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조금은 허탈한 듯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그렇겠지?”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지?”

“확인이 필요했다.”

카샤스 대공이 절대 멍청한 캐릭터는 아니니까.

오히려 굉장히 똑똑한 편에 속하지.

그리고 이런 전장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령관 스타일의 영웅이었다.

그러니까 죽을 자리를 일부러 걸어들어 갈만한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켜보라는 게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분명히 좀 전에 내가 카샤스 대공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었지.

그걸 잘 기억하고 있었고.

“어. 네가 나서 봐야 어차피 답이 안 나와.”

그때 옆에 있던 아이샤 황녀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았다.

“그럼…… 타란 제국이 망하는 건가요?”

그런 아이샤 황녀의 질문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 말.

타란 제국의 멸망.

이 정도면 원 성마대전 역사에서 좀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체 역사가 싹 다 뒤엎어지는 결과가 나오겠지.

원래 역사에서는.

인간계에서 타란 제국을 중심으로 마족의 공세를 마지막까지 버텨내는 시나리오였으니.

그들에게는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은 그 마지막 희망이.

완전히 박살나 버릴지도 모르겠다.

아직 제대로 성마대전이 시작해 보기도 전에 말이지.

사실 어떻게 보면.

이미 에센시아 제국이 먼저 망해버릴 뻔하기는 했는데.

그건 어떻게든 막았다 치더라도…….

솔직히 이건 나도 못 막는다.

뭐 고대 마룡까지는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지금 돌아가는 판은.

그걸로 끝날 것 같지 않거든.

딱히 아이샤 황녀에게 거짓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더니 아이샤 황녀가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아. 그렇다고 아이샤 황녀의 책임은 아니니 자책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황제가 나쁜 겁니다.”

“하지만…….”

“그리고 아직 결과는 안 나왔잖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잠시 아이샤 황녀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자.”

“어떤 일이지?”

타란 제국의 멸망을 입에 담았음에도 카샤스 대공은 아직까지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건 평정심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딱히 타란 제국의 멸망에 아쉬움이 없거나.

어느 쪽이 되었든 패닉 상태보다는 나으니까.

“고대 마룡까지는 타란 제국 황제도 죽을 힘을 다 하면 겨우 막기는 막을 거야. 반토막이 났다고 해도 타란 제국이 그렇게까지 형편 없는 제국은 아니지 않나?”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은 우수하다.”

“그래. 그러니까 아주 망하지만 않기를 바라야겠지.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카샤스 대공을 포함한 모두가 시선을 기울이자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 용신의 흔적이라는 거. 그것까지는 안 될 것 같거든.”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용신의 흔적을 차지하게 되면.

분명 상위 마신급의 괴물이 튀어나올 것이다.

네임드 몬스터 같은 건 아득하게 뛰어넘는 괴물 말이지.

그리고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재앙을 맛보게 될 지도 모른다.

고대 마룡도 벅찬데.

거기까지 허용하는 건 역시 무리다.

“그러니까. 용신의 흔적, 이건 우리가 먼저 빼돌려야겠어.”

내 제안에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의견을 모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나?”

“어. 너도 타란 제국이 아주 망해버리길 바라진 않을 거 아냐.”

혹시 나중에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을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고대 마룡에게 쑥대밭이 되어 기둥 뿌리 하나 남아 있지 않은 타란 제국을 넘겨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쪽의 아이샤 황녀도 꽤나 불편해하는 것 같고.

“일단 어떻게든 용신의 흔적만 빼돌려보자고. 그다음은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내가 이들에게 당장 내어줄 수 있는 최상의 솔루션은 이것뿐이었다.

타란 제국이 망하기는 하되.

좀 덜 망하게 하는.

그편이 우리에게도 이득일 테고.

그리고 마룡까지는 괜찮지만.

마신은 역시 부담스럽다.

그러자 아이샤 황녀가 날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아주 좋은 자세입니다. 안 그래도 부탁드리려고 했거든요.”

카샤스 대공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당장만 봐도 카샤스 대공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이샤 황녀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건 꼭 해야겠어.”

그러자 카샤스 대공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서두르자고. 지금이야 타란 제국 황제의 병력 고대 마룡의 전진을 막고 있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뚫려버릴 거야.”

아크 드래곤만 봐도.

어지간한 거대 비공정 따위는 바로 녹여버리면서 전진하는 게 재앙급 네임드였다.

타란 제국이라고 에센시아 제국과 전력이 크게 차이 날 것이라 여기진 않았고.

그렇다면 결국 저 방어라인이 뚫리면서 고대 마룡이 빠르게 타란 제국의 수도로 진격할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용신의 흔적을 빼돌릴 아주 약간의 시간이 있다는 거지.”

바로 화련에게 연락했다.

<주호> 아쉽게도 영지에서의 모임은 좀 미뤄야겠네요.

<화련>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주호> 당장 진로를 바꿔야해서요. 지금 바로 타란 제국의 수도로 갈 겁니다.

<화련> 흐음. 그래? 알았어. 아. 그리고 방금 원로회 장로하고 대화했는데.

<주호> 어떻게 됐죠?

<화련> 카샤스 대공에게 힘을 빌려주기는 하겠지만. 지금 저 고대 마룡은 막아야겠다는데?

화련의 그 말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휴.

그거 막아봐야 다 죽을 건데…….

어째 장로라는 것들은 도움이 안 되냐.

<주호> 뭐 알아서 하라고 해요. 거기까지 강요할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영지는 최대한 보존해두세요. 고대 마룡이 거기까지 가진 않을 것 같네요.

당장 고대 마룡이 원하는 건 다른 물건이라.

화련의 영지를 엎어버리진 않을 듯했다.

<화련>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안 그래도 타란 제국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길래 안심하는 중이었거든. 저런 괴물이 영지로 오면 그냥 털려버릴 거니까.

그렇게 화련과 연락을 끊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실피드를 최대 속도로. 이미 고대 마룡이 방향을 틀었다네요.”

이제는 속도전이었다.

우리 쪽의 실피드가 타란 제국의 수도에 빨리 도달할지.

아니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먼저 도착할지.

곧 카샤스 대공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가속을 붙여 실피드를 몰았고 다들 휘날리는 거친 바람에 바싹 실피드에 몸을 붙였다.

그렇게 산을 수십 개나 넘기며 얼마나 날았을까.

다행히 빠르게 움직인 덕분인지 우리 쪽이 좀 더 앞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 전사 형이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먼저 도착하겠지?”

그런 전사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으면서 뭔가의 경고가 뇌리를 마구 헤집고 지나갔다.

젠장.

이 느낌은 전의 그 느낌과 전혀 다르지 않다.

“카샤스!! 당장 실피드 틀어!!”

내 외침에 카샤스 대공이 지체 없이 실피드의 동체를 크게 회전시키자 우리가 원래 날아가려고 했던 궤적을 향해 검은 용망이 세차게 하늘의 구름을 가르고 쏘아져 내렸다.

방향을 트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바로 저 검은 용암에 녹아 버렸을 터.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하늘 쪽으로 올라가자 그 곳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을 헤집으며 아래쪽으로 바르게 하강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의 동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

저 덩치로 은신도 가능한 거였어?

“카브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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