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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36화 (1,236/1,404)

#1236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2)

지금 우리를 향한 위협은 타란 제국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베르탈륨 광산이 안으로 매몰되듯 붕괴되면서 커다란 굉음이 일어났고.

곧 이어 우리가 올라왔던 구덩이는 폭발과 먼지로 완전히 시야가 덮여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하늘을 울리는 하울링이 터져 나오자 날아다니던 모든 타란 제국의 병력들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런 커다란 하울링을 듣고도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캬아아아악!!

다시 한 번 울리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주변의 대기마저 한꺼번에 떨리며 오싹한 경고를 보내왔다.

우리가 타고 있던 카샤스 대공의 실피드 역시 눈을 잔뜩 부라리고서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실피드 같은 급의 개체라면 분명히 알 것이다.

지금 저 아래에 뭐가 있고.

또 얼마나 강한 녀석인지까지도.

비늘을 잔뜩 세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실피드를 본 카샤스 대공이 손바닥으로 실피드를 쓰다듬자 그제야 실피드의 기세가 약간은 누그러뜨려졌다.

“이 녀석을 이렇게나 긴장시키다니…….”

카샤스 대공의 말대로.

타란 제국 황제의 전용 드래곤인 키로아를 상대로 전혀 꿀리지 않던 녀석인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실피드도 저런 녀석을 직접 상대하는 건 아마도 처음일 테니까.

아크 드래곤이나 고대 마룡 같은 것들은 애초에 성마대전 중후반부에나 가서야 나오기도 하고.

그때 베르탈륨 광산 아래쪽에서부터 뭔가가 크게 요동치는 것이 감각에 느껴졌다.

시야 저 너머.

비산하는 흙먼지로 인해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은.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움직임.

그건 바로…….

느낌이 싸하자 손을 뻗어 카샤스 대공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크게 외쳤다.

“최대한 여기서 벗어나야 해!”

“뭐라고?”

“시간 없어! 빨리!”

내 재촉하는 급한 말투를 처음 본 카샤스 대공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았는지 지체 없이 실피드의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타란 제국의 병력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우리의 진로를 막아섰다.

비공정이며 드래곤들이고 할 것 없이.

젠장.

저것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그때 내 옆에서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챠밍의 아이셔스 스태프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 순간 정면을 향해 맹렬한 얼음 폭풍이 퍼져 나가며 정면에 있는 모든 개체들을 공격했다.

콰드드득!

콰지직!!

끼기긱!!

그 광범위한 얼음 폭풍이 스치고 지나간 모든 드래곤 개체들의 날개가 얼어붙고.

동시에 비공정이 동력 기관이 냉기에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더 이상 비행을 유지하지 못한 개체들부터 하나둘씩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수수 드래곤들과 비공정들이 추락하자 챠밍이 내게 외쳤다.

“지금요! 범위를 넓게 설정해서 냉기가 오래 못 가요!”

“땡큐!”

카샤스 대공에게 신호하자 카샤스 대공이 실피드를 그대로 가속시켜 빠르게 이 일대를 벗어났다.

범위 밖에서 뒤늦게 우리를 따라나서려던 녀석들은 포위망의 반대편에서 쫓아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는지 차마 따라붙진 못했다.

타란 제국 황제의 키로아 정도면 따라붙긴 하겠지만.

황제는 저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렇게 우리가 완전히 베르탈륨 광산 위쪽 상공을 벗어난 순간.

갑자기 베르타륨 광산이 우르릉 울리더니 뭔가가 잔뜩 들썩이며 광산 전체가 한꺼번에 뒤엎어지기 시작했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외쳤다.

“고대 마룡인가?”

하지만 나르샤 누나가 바로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아니. 저건 그런 게 아니야.”

그 순간.

광산을 덮고 있던 바위고 흙이고 할 것 없이 까맣게 터져 올라오는 뭔가에 의해 완전히 녹아서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처음 본다는 듯 말했다.

“검은 용암?”

우리들 역시 저런 걸 보는 건 처음이다.

베르탈륨 광산을 녹이면서 올라오는 건 바로 검게 변해버린 용암이었다.

그렇게 한꺼번에 쏟아져 흘러나와 광산을 뒤엎은 그 검은 용암들이 무언가로 응집되더니 한꺼번에 공중을 향해 분사되기 시작했다.

이쁜소녀가 그걸 보고는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와…… 용암이 브레스가 됐어요!”

그것도 하나가 아닌.

무려 백여 줄기가 동시에.

일제히 하늘을 향해 굵게 뭉친 검은 용암들이 뻗어 나오자 원래 우리가 날고 있던 공중이 저 용암 기둥들의 분출로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콰콰콰!!

콰아아!!

광산으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올라오는 용암 줄기들의 광경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어쩌면 아름답기까지 한 저 용암 브레스는 닿는 모든 것들을 끝에서부터 타들어가게 하면서 범위 안에 있는 개체들을 죄다 녹여 버렸다.

그게 드래곤이면 날개와 뼈가 검은 불꽃에 불타오르면서 곧 녹아 사라졌고.

비공정은 아예 선체가 녹아버리면서 그 원래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전사 형이 그 놀라운 광경을 보더니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저거 어떻게 알았냐?”

“그냥. 광산 쪽을 보는데 기분이 오싹하더라고요.”

나라고 저런 미친 광경을 예상한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아래쪽에서 모여드는 맹렬한 기운을 느끼는 순간.

절대 피해야 한다고 감각이 강한 경고를 보내왔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옆에서 날 빤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검은 용암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말했다.

“저거에 비하면 용마포는 애들 장난이었네.”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현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용마포는 한 발의 강한 브레스라면.

방금의 검은 용암은 말 그대로 그런 용마포가 백여 발이 동시에 분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압도적인 화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냥 용마족과는 화력 면에서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그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아크 드래곤…….”

“꽤 비슷하죠?”

내 물음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 드래곤 역시 어마어마한 범위의 광역기를 미친 듯이 쏟아내던,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것도 한 발, 한 발이 모두 최종기에 가까운 것들로.

쉬지 않고 연달아서 쏘는.

“네. 다른 건 몰라도. 저 위력만큼은 확실히 체감이 되네요.”

그때도 비공정들이 아크 드래곤의 광역기에 맞아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도 했고.

그 광경을 눈으로 본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보면서 아크 드래곤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 다 성마대전의 재앙들이니까요. 제국 하나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능력이 있기도 하고요.”

옆에 그 말을 듣던 아이샤 황녀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 버렸다.

아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한데.

만약 알면서도 고대 마룡을 풀어주었다면 아이샤 황녀의 배포가 대단한 거고.

슬쩍 아이샤 황녀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알고 있었나요?”

내 물음에 아이샤 황녀가 굳은 표정으로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방법이 없었잖아요.”

마치 자신의 책망해 달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아이샤 황녀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서 여기 있는 누구도 아이샤 황녀를 탓하지 않는 겁니다.”

솔직히 아이샤 황녀가 기지를 발휘해 지하에서 고대 마룡을 풀어주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이들 중에 다수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됐을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물러서지 않는 이상에야.

하지만 황제 녀석이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인물은 아니었다.

다소 병력 손해를 보더라도 그곳에서 끝장을 보려고 했을 터.

“그리고 어차피 잘 안 되면 고대 마룡을 깨우려고 했었어요.”

“그런가요?”

“네.”

이어서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그러니 굳이 미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샤 황녀의 마음의 짐은 여기서 좀 덜어주고 가야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른 짐이 남아있는 듯했다.

“이대로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으로 가게 되면…….”

쯧.

이건 어쩔 수 없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고.

아니.

솔직히 그쪽이 우리에게는 훨씬 이득이다.

“그건 당신이 아니라. 이제 저 타란 제국의 황제께서 신경 쓰셔야 하는 일이겠죠.”

“하지만…….”

“어차피 황제 자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곧 아이샤 황녀가 입을 닫아 버리자 나 역시도 더 이상은 언급하진 않았다.

아이샤 황녀의 말이 아예 틀리지는 않았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실제로 이전 성마대전 시대에 타란 제국을 뒤엎어 버린 전례가 있기도 하고.

예상한 대로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으로 가면.

그게 그대로 재현될 예정이었다.

중간에 변수가 없다면 말이지.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아직 아이샤 황녀가 살아있고.

우리 팀이 여기 있다는 거겠지.

몇 가지 쓸 수 있는 패가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타란 제국이 온전한 상태로 넘어오는 게 베스트지만.

이미 타란 제국 황제와 척을 저 버린 이상.

다른 방식으로 넘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딱히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몇 가지를 떠올린 뒤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고대 마룡의 존재가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겠어?”

내 표현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는 답했다.

“휴. 결국 끝까지 가는 거군.”

“그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발을 빼시던가. 하차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이샤 황녀를 쳐다보자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피가 잔뜩 묻은 로브를 본 것이었다.

내 시선이 아이샤 황녀의 피 묻은 옷으로 향하자 카샤스 대공이 뭔가를 결정한 눈빛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는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은 어쩔 수 없군.”

전에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 고대 마룡 봉인지에서 타란 제국 황제가 아이샤 황녀를 공격한 일이 카샤스 대공의 결심을 굳히는데 크게 작용한 듯했다.

그런 카샤스 대공을 보던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불멸> 이제 이 연극의 주연이 제대로 무대로 올라왔네.

<주호> 네. 방관하는 건 이제 끝이겠죠.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치기로 결심했다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반역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타란 제국 황제에게 졌을 경우의 문제고.

우린 절대 질 생각이 없거든.

어떻게 하든.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불멸> 어차피 타란 제국이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잖아.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지.

<주호> 그렇죠.

애초에 타란 제국 황제가 그냥 넘겨줄 거라는 장밋빛 예상은 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오히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베르탈륨 광산으로부터 거리가 제법 멀어지자 카샤스 대공이 실피드를 멈춰 세우고는 내게 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고대 마룡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타란 제국 황제를 쳐야 하나?”

그런 카샤스 대공의 질문에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마.”

“뭐라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그럼 판은 고대 마룡이 다 깔아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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