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17화 (1,217/1,404)

#1217화 용 수호자 (9)

이전에 마왕급들과 붙었을 때는 정말 확연한 스펙 차로 인해 격돌 한 번에 너무 크게 대미지가 들어와 제대로 막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용마족 녀석의 공격을 막았던 르아 카르테를 잡은 손에 힘을 줘 꽉 쥐어 보았다.

이 정도면.

아주 못 비벼볼 정도는 아니야.

적어도 지금은 무기끼리의 충격에 흔들려 못 움직일 수준으로 손과 팔이 떨리진 않는다.

그만큼 내게 대미지가 적게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다 아직 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르아 카르테를 앞으로 들어 올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녀석의 움직임에 반응만 할 수 있다면.

최소한 내 쪽이 먼저 털려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야가 다소 부족한 어둠 속에서 수십 번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자 용마족 녀석도 더 이상은 공격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간다든가 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의 시선.

아니.

가면에 가려진 터라 시선을 확실히 보진 못하지만 이 녀석이 내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놓은 상태였다.

그 말은 아이샤 황녀 쪽으로는 당장 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들어 와.”

내가 르아 카르테를 자신에게 들어 올리자 용마족 녀석에게서 약간은 기괴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 왕.”

저 녀석은 저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건가?

아마도 내가 입고 있는 이 마왕 올펠 플레이트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입에서 다른 말도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여기서 내 역할은.

이곳에서 녀석을 잠시 묶어두는 게 일이었다.

현재 다른 장소에서는 먼저 좋은 위치를 차지한 용기사단과 고대 용기사들이 붙기 시작했을 터.

이 상황에 이 용마족 녀석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면서 깽판을 쳐버리면 곳곳에서 구멍이 날 것이다.

그런데 순간.

내 뒤쪽으로 여러 개의 파공음이 들리면서 뭔가가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공격을 피해냈던 고대 용기사 여섯 마리가 동시에 내 뒤를 치면서 달려들자 바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피해낸 자리에는 쇄도했던 고대 용기사들의 검과 창에서 뻗어 나온 스킬로 인한 폭발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폭발력은 고스란히 내게 쏟아져 내 몸을 더욱 밀리게 만들었다.

칫.

너무 용마족 녀석에게만 신경 썼더니 이 녀석들이 말썽이네.

혀를 차면서도 내 시선은 여전히 용마족 녀석에게 가 있었다.

고대 용기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상대할 순 있지만.

녀석에게 조금만 틈을 주는 순간…….

그래.

바로 지금처럼.

내 자세가 흐트러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용마족 녀석의 신형이 잔상만 남기고는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며 어둠에 동화되었다.

저게 제일 골치 아파.

정확히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속 이동과 함께 어둠 속으로 동화되는 순간 녀석의 기척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게 문제다.

아마 녀석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처음 격돌 때도 잠시 시야에서 놓친 게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나마 정면으로 들어와서 망정이지.

지금은 아예 사이드로 빠지면서 흔적을 지워 버렸다.

바로 나도 감각을 끌어올렸고.

시야에는 잡히지 않는 녀석의 움직임이 순간 내게 잡혔다.

왼쪽!

그대로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듯 나타난 녀석의 검을 쳐냈다.

카가각!!

정확히는 녀석의 비늘검과 내 르아 카르테가 허공에서 불꽃을 튕기며 갈리듯이 서로 튕겨져 나갔다.

방금도 반응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내 목이 나갔을 터.

흡사 마왕의 고속 기동과 유사한 움직임이라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고.

이전에 몇 번은 막아 본 기억이 있기에 시야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녀석의 공격은 대처하기 어렵진 않았다.

카아앙!!

카앙!!

하지만 녀석이 좌우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면서 비늘검을 연신 휘두르자 뒤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반응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반격이 안 되네.

조금만 틈을 만들어 반격하려고 하면 내 사각에서 고대 용기사들이 튀어나와 검과 창을 찔러대는 탓에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간 일대일로만 싸우던 마왕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적어도 그땐 마왕만 신경 썼으면 됐는데.

이 녀석은 그만큼 강하면서도 부하들을 동시에 쓰는 걸 전혀 꺼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여럿이서 마왕을 상대하는 편이었지.

지금처럼 다수에게 포위당하는 상황은 꽤 어려웠다.

그것도 용마족 녀석이 나보다 강하다는 걸 고려해 보면.

이 자리를 당장 박차고 도망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내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그렇다고 네임드에게 일대일로 붙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이라도 통했으면 한번 해보겠는데.

용마족 녀석과 고대 용기사들에게 포위당해 정신없이 공격을 막아내는 와중에 내 감각에 뭔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통로 너머로 뭔가의 빠르고 강한 물체가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 앞에서 공격하던 용마족 녀석의 날개를 향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하나의 창날이 쇄도했다.

쐐액!!

그렇게 용마족 녀석의 날개 끝 부분에 창날이 닿는 순간.

카가강!!

응?

찢겨지는 소리가 아니야?

분명히 용마족 녀석의 날개 부분에 창날이 가서 닿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무기날과 무기날이 맞닿는 듯한 효과음이 나오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 일격을 내지른 사람도 황당한 듯 용마족 녀석을 쳐다보았다.

“와. 이 녀석 뭐냐?”

어둠 속에서 고대 마룡의 창을 앞세워 빠르게 쇄도했던 재중이 형이 황당한 눈빛을 전혀 감추지 않은 채 연이어 고대 마룡의 창을 휘두르자 그제야 용마족 녀석도 내게서 떨어졌다.

동시에 뒤따라온 타이탄 플레이트를 입은 전사 형도 대쉬 스킬로 빠르게 달려들어 타이탄 라지 쉴드로 고대 용기사들을 밀쳐냈다.

쿠우웅!!

“좀 늦었다. 아직 안 죽었지?”

“멀쩡히 살아있죠.”

“그런데 원래 여기 맞아? 찾는다고 시껍했네.”

“아. 그건 아니죠.”

전사 형이 말한 대로 처음에 약속했던 장소와는 다소 떨어진 장소에서 용마족 녀석과 붙고 있던 중이었다.

저 여섯 마리의 고대 용기사들 때문에 원하는 위치로 옮기질 못해서.

그래서 조금 늦은 듯했는데.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빠르게 날 찾아낸 듯했다.

그리고 뒤로 나르샤 누나의 화살이 마구 쏘아져 나가며 허공에서 파공음을 내었다.

저 화살은 보이지가 않으니.

당연히 고대 용기사들도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화살에 계속 공격을 당하면서 칼과 창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고대 용기사의 시선이 내게서 완전히 떨어지자 다시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저도 왔어요!”

이쁜소녀가 황금빛의 토르를 크게 연달아 휘두르면서 고대 용기사들을 통로 벽으로 한꺼번에 밀쳐냈다.

쿠우웅!!

콰광!!

그리고는 전사 형이 그들을 타이탄 라지 쉴드로 하나씩 몰아넣어 한곳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저 멀리 통로에서부터 화려한 얼음 이펙트를 한 폭풍이 밀려들어 고대 용기사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멈추게 만들었다.

휘이이잉!!

콰드드득!!

완전히 빙벽에 갇힌 고대 용기사들을 확인하자 조금 한숨을 돌렸다.

“왔네.”

“좀 늦었죠?”

“그렇게 늦진 않았어.”

역시 어둠 속에서 챠밍이 나타나 또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는 중이었다.

“이쪽은 맡겨줘요.”

“어. 좀 부탁해.”

용마족 녀석과 제대로 붙으려면 저 여섯 마리의 고대 용기사들은 방해였다.

그런 녀석들을 전사 형과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 누나가 완전히 붙잡아주었다.

재중이 형은 오자마자 고대 마룡의 창을 연신 휘두르면서 용마족 녀석을 밀어붙였다.

확실히 고대 마룡의 창날이 용마족 녀석의 피부나 날개에 가서 닿긴 닿는데…….

맞을 때마다 피격음이 아닌 타격음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카앙!

카아앙!!

키이익!!

진짜 무기끼리 부딪히는 딱 그런 소리가.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와…… 이 녀석 뭐냐? 왜 이렇게 딴딴해? 이거 죄다 용비늘이야?”

이제야 재중이 형도 제대로 마룡족의 모습을 확인했는지 혀를 찼다.

“네. 전신이 용비늘로 감싸져 있어요.”

“인간형에 용의 특징인가…… 쉽지 않겠는데.”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방어력은 거대한 용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여기 사냥터의 등급을 고려해 봤을 땐.

거의 아크 드래곤급의 방어력이라고 해야 하려나.

문제는 드래곤 같은 거체는 워낙 크다 보니 어지간한 광역형 공격은 일단 맞추면 다 먹히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완전 다르다.

신체가 훨씬 작기도 하고.

초고속으로 기동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의 공격은 기대하기도 힘들지도 모른다.

막 맞으라고 폭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재중이 형도 몇 번 공격해 보더니 통하지 않자 뒤로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내 쪽을 보고는 한 가지 말을 해주었다.

“이 녀석. 쉴드 같은 것도 있어.”

“네?”

“몸 전체가 마력 같은 걸로 감싸져 있다고. 그게 내 물리 공격 대부분을 상쇄시키네. 칠 때마다 파장 같은 게 나와.”

“그래요?”

아까는 여유가 없어 잘 안 보였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특히 저 용의 날개가 아닌.

어둠의 날개 쪽에서 뭔가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용마족 녀석의 신체 전부를 감싸는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저게 아마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한 마력을 쓴다는 뜻일 것이다.

적어도 저 검은 날개를 찢어내지 않으면.

일반 타격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고 보면 되려나.

곧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용마족이라더니. 정말 용의 신체랑 마력까지 동시에 쓰네.”

“안 그래도 방어력이 강한데 저건 사기죠.”

“아아. 원래라면 바로 튀자고 했겠지만.”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다시 어둠 저편을 쳐다보았다.

곧 그곳에서 하나의 인형이 나와서 마력으로 타오르는 대검을 꺼내 들었다.

“이런. 내가 좀 늦었나?”

카샤스 대공이 장비들을 꺼내며 걸어오자 이번엔 용마족 녀석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그간 적당히 봐주듯이 대치만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접근하는 카샤스 대공에게 용마족 녀석의 가면이 완전히 돌아갔다.

확실히 카샤스 대공은 용마족 녀석에도 위협이 되는 듯했다.

카샤스 대공은 이내 폭발적인 기세를 내면서 역시 용의 강한 부위로 만든 대검을 들고 용마족 녀석과 부딪혀 갔다.

콰아앙!!

첫 격돌부터 이 부근 전체를 울리는 화끈한 폭발력이 터지며 역시 카샤스 대공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런 카샤스 대공에 전혀 밀리지 않고 용마족 녀석도 강렬한 타격을 휘둘러댔고.

콰아앙!

콰앙!

콰콰쾅!!

이건 뭐 거의 힘 대 힘으로 붙는 수준인가…….

두 존재의 공격 속도가 비슷하다 보니 한쪽이 밀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에서는 카샤스 대공이 좀 더 강한 것 같기도 한데.

그걸 잘 보여 주는 게.

그간 한 번도 뒤로 밀려 나간 적이 없어 용마족 녀석이 계속 뒤로 튕기듯 밀려 나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중이 형도 휘파람을 불었고.

“휘유. 카샤스 대공 진짜 강한데? 내가 칠 땐 이도 안 나가던데 말이야.”

“그러게요.”

“저대로 두면 알아서 잡는 거 아냐?”

역대 최강의 영웅 중에 하나인 카샤스 대공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방금 용마족 녀석과 직접 붙어봤기에 내가 제일 잘 알기도 하고.

물론 내 쪽에서 최선을 다한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강한 건 강한 거다.

그때 언젠지 느낄 새도 없이 내 옆으로 나타난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두 괴물의 격돌을 바라보며.

“아냐.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래요?”

“곧 카샤스 대공이 밀릴 거야.”

그리고는 이를 살짝 갈면서 인상을 쓰더니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아니면 여기서 죽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