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화 용 수호자 (8)
《 안전지대를 벗어납니다. 》
안전지대에서 한 발자국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네요.”
그리고 이제껏 우리를 인지만 하고 있었던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하나의 움직임을 가져갔다.
곧장 안전지대를 벗어나면서 몸을 날렸다.
【 헤이스트! 】
일단은 시선부터.
이곳 안전지대 앞의 구역은 너무 좁아서 다수가 전투하기에는 너무 불리한 환경이었다.
특히 저 5층의 괴물.
어떤 스킬을 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좁은 공간에 우르르 몰려 있다가는 한 방에 전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녀석들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조심해요.”
그리고는 챠밍과 막내별이 내게 추가로 가속 스킬과 몇 가지 보조 스킬들을 걸어 주었다.
【 더블 헤이스트! 】
【 윈드 워크! 】
【 하이 스트랭스! 】
【 웨폰 블레싱! 】
.
.
곧장 힘과 속도가 올라가면서 몸이 가벼워졌고 내 몸은 정면의 통로를 빠르게 스쳐나갔다.
어둠 속의 녀석들 역시도 내 움직임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느껴졌다.
흐음.
보지도 않고 따라온다 이거지?
당장 내 앞에 있는 녀석들이야 어그로가 끌려서 따라온다고 치더라도.
던전 내 저 멀리 소환된 녀석들까지도 내 이동에 반응을 한다는 건.
역시 저 괴물 녀석이 이 녀석들을 전부 통제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주호> 예상했던 대로 명령을 받고 움직이네요.
단순히 던전 내 장소 곳곳에서 별개로 리젠된 몬스터들이 아니라.
모두가 저 괴물의 지휘 아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어디서 싸우던지.
결국 5층을 건너기 위해서는 저 괴물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스스슥.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쭉 달리다 보니 움직임이 조금 다른 녀석들도 느껴졌다.
마법사들도 있나?
아마 3층과 4층의 녀석들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모양인데…….
뭐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따라와라.”
곧장 꺾이는 복도를 지나 달려 나가자 괴물을 포함한 소환 몬스터들이 나를 따라 개떼처럼 따라나섰다.
모두가 따라나서자 당연히 안전지대의 복도 앞은 한산하게 변했다.
괴물에게 있어 우선순위가 내가 아닌 아이샤 황녀라고 할지라도.
정작 황녀는 안전지대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
일단은 5층에 들어선 침략자를 먼저 제거한다는 판단을 내린 듯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이건 쉽게 넘어갔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복도를 따라 쭉 달리면서 중간에 날아오는 공격들을 르아 카르테로 쳐내며 그대로 다시 질주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위치에 도달하는 순간.
<주호> 제일 큰 방에 도착했어요.
<방패전사> 오케이! 여기도 앞이 텅 비었어.
<주호> 그럼 각 구역으로 이동해 주세요.
<방패전사> 그래. 조심해라.
내가 이렇게 몬스터들을 끌고 나선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지점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곳을 한 번은 비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정말 위험한 방법이긴 한데…….
모든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내게 끌리는 상황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감각에는 어느 방향에 몬스터가 몰려 있고 어느 쪽에서 날 따라다니는 것까지 모두 느껴졌다.
이 어둠 속에서 시야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곧 모든 몬스터들을 가장 큰 방으로 끌고 오자 우리 팀의 움직임이 바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용기사단들이 나누어져 각 구역을 사수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뒤를 이어서 화련의 길드 사람들로 생각되는 무리들이 따라나섰다.
우리 팀과 레오나 에센시아. 카샤스 대공, 아이샤 황녀. 용기사단장들도 약속했던 대로 지도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날 따라왔던 우르르 몰려왔던 몬스터들이 죄다 그 자리에서 움찔하면서 멈추더니 움직임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곧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날 따라 왔던 어둠 속의 괴물을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움직임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
잠시 판단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어느 쪽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주호> 전사 형. 녀석들이 돌아갑니다.
<방패전사> 좋아. 우린 좋은 위치 다 확보했다.
자리를 비웠던 소환된 몬스터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더니 이내 확실한 명령이 내려지자 분산되어 던전 곳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용기사단이 맵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니 그들을 잡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괴물 녀석 역시도 마찬가지.
예상했던 대로 아이샤 황녀를 노리려는 모양인지 괴물 녀석이 날 뒤로 하고 몸을 돌리자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한 손에 르아 카르테를 복사해냈다.
【 웨폰 카피! 】
그리곤 곧장 어둠 속으로 르아 카르테를 강하게 집어던졌다.
쇄애액!!
르아 카르테의 검신이 정확하게 괴물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자 다시 괴물이 고개를 돌려 빠르게 쳐냈다.
카앙!!
기형의 무기.
바람결에 흘러나온 파장에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무기를 써서 녀석이 내 공격을 막은 듯했다.
어쩌면 녀석의 신체가 변형될 것일 수도 있고.
“크으으!”
자신만을 노리고 날아든 르아 카르테를 쳐내고는 녀석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왜 아이샤 황녀에게 어그로가 끌리는 건지 몰라도.
그렇다고 한들 바로 앞에서 공격을 하는 날 무시하면서까지 움직이진 않았다.
곧장 몇 발의 르아 카르테를 연이어 날려대자 녀석도 더 참지 못하는 듯 내게 완전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완전히 내 생각대로만 녀석이 움직여주진 않았다.
바로 주변에 있던 고대 용기사들을 불러 모아 내게 던져주다 싶이 하고는 다시 녀석의 시선이 아이샤 황녀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거 봐라?
바로 앞에서 공격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어그로를 무시하고 움직인다고?
녀석이 몸을 날리려고 하자 나 역시 몸을 움직여 고대 용기사들에게 접근했다.
곧 그들의 공격을 빠르게 피해 내며 그대로 지나치고는 괴물 녀석의 시야권에 들어섰다.
거리가 좁혀지자 녀석의 모습이 온전히 내게 들어왔다.
어디 어떻게 생겼나 한번…….
그때 녀석의 팔이 가공할 속도로 크게 휘둘러지며 강력한 파공음과 함께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속도가 붙은 상태라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피해내 겨우 피해내고는 한 손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아마 조금만 더 접근했으면 목이 잘려나갔을지도.
공속이 그간 봐오던 그 어떤 존재들보다 빠른 느낌이 들었다.
이건 거의 마왕급이려나?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전에 본 마왕 올펠 정도.
아니다.
오히려 단순 속도만으로는 녀석보다 지금 이 녀석이 더 빠를 것이다.
예상 이상인데?
그리고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온 녀석의 팔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확실히 기형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기가 아니라 녀석의 팔이 변형되어 뻗어 나온 모습이었다.
마치 용의 비늘이 길고 날카롭게 버려진 것 같은 하나의 검과 유사한 형태랄까.
거기다 녀석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용……?”
보자마자 생각나는 딱 하나의 단어.
분명 신체는 인간형과 같은 모습인데 그 신체를 뒤덮고 있는 용의 비늘과 뒤로 쭉 뻗어 나온 긴 꼬리의 형태는 꼭 용의 그것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비늘이 덮고 있는 구조가 유선형에 가까워서 빠른 고속 기동에서도 저항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거무튀튀한 광택의 비늘들이 온통 몸을 감싸고 있어 그런지 어둠 속에서도 조금만 움직이면 동화가 되듯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기에 등 뒤로 크게 뻗어 나온 용의 날개과 더불어 검은 날개가 쌍으로 뻗어 나와 위압감을 주었다.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자 마치 매끄러운 가면 형태가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그 위로 거대하고 날카로운 뿔들이 양쪽으로 뻗어 나와 위협감을 더 했고.
용을 꼭 닮아 있는 신체라…….
“용마족.”
내 입에서 용마족이라는 말이 나오자 괴물 녀석이 순간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녀석의 검은 날개와 용의 날개가 동시에 펼쳐지면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주변을 내리누르는 듯한 폭발적이고 압도적인 기세로.
그러자 내가 입고 있던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에서도 같은 검은 기운이 강하게 피어올라 그 기세에 저항했다.
《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용마족의 용의 결계에 저항합니다. 》
동시에 르아 카르테 역시도 투명한 빛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용마족의 기운에 저항해나갔고.
주변에 펼쳐진 용의 결계에도 내가 전혀 굴하지 않고 버텨내자 용마족 녀석이 내게 완전히 시선을 집중했다.
아니.
얼굴이 가면 형태라 정확히 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까 같이 나를 두고 아이샤 황녀를 쫓아가거나 하진 않았다.
흥미 있는 대상이 변경된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순간 깜짝 놀랐다.
쇠가 긁이는 것 같은 거친 소리가 녀석의 가면으로부터 울리듯 나왔다.
“마…… 왕.”
말을 해?
그렇다는 건 이 녀석이 일반적인 형태의 네임드와는 결이 다르다는 뜻일 텐데.
문제는 딱히 이 녀석이 내게 우호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을 할 줄 아나?”
“…….”
물어보았으나 이번에는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변경된 두 팔을 내려더니 살짝 경계를 푸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이거 잘하면 대화로 풀어나갈 수…….
그런 생각을 하는 아주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급격한 경고가 울려지며 나도 모르게 뒤로 몸을 튕기면서 르아 카르테를 정면으로 쳐올렸다.
카앙!!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연이어 좌우에서 연달아 눈이 쫓아가기 힘든 공격들이 사각으로부터 계속 뻗어져 나왔다.
카앙!
카아앙!!
판단할 겨를도 없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르아 카르테를 휘둘려 겨우 녀석의 공격들을 쳐내면서 버티자 몸이 연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무슨 공속이……!
이건 공격이 나오고 난 뒤에 쫓으면 이미 반 박자 늦어.
그냥 감각이 경고를 울려주는 대로 바로 반응하지 않으면.
바로 목이 날아간다.
성마대전 시대에 넘어와서 처음으로 등에 땀이 날 정도의 상대를 만나 정신없이 르아 카르테들을 휘두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 번 강하게 녀석의 공격을 쳐내고는 빠르게 몸을 빼내었다.
녀석도 어느 정도 공격을 하다가 내가 완전히 몸을 빼자 나를 따라잡거나 하진 않았다.
분명 감각과 시야는 어떻게 따라잡긴 하는데.
몸의 스펙이 따라가지 못해 버티지 못하는 딱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 생각에 분명 막을 수 있는데.
신체의 반응이 계속 반 박자 늦는 느낌.
그러다 보니 무기가 격돌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이쪽이 억지로 공격 속도를 따라가는 중이라.
여기 넘어와서 이렇게까지 스펙을 쥐어짜야 하는 상태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금 눈앞의 녀석이 강적이라는 뜻이었다.
단순히 평타만 주고받았을 뿐인데 말이지.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적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에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 괴물과 붙으면 나와 재중이 형을 제외하고는 다 죽을 거라는 말이.
진짜라는 걸.
그런데 그와 상반되게.
분명 위기는 맞는데.
오히려 내 속에서는 기뻐하는 것 같은 미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곧 입가에 미소가 살짝 지어지면서 르아 카르테를 녀석을 향해 들어올렸다.
이 녀석과.
좀 더.
붙어 보고 싶다.
“너. 다시 들어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