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화 고대 마룡의 둥지 (9)
화련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나?
크리스탈 리저드 때문에 1층은 사냥을 잘 안 한다고 하기도 했고.
거기다 우리와 사냥터가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도 있어서 알아서 1층 사냥터를 비워 준 것 아니었나?
“안 내려갔어요?”
“밑에서 사냥하다가 잠시 보급하러 올라오는 중이었어. 그런데 대체 이게 뭐 하는 거야?”
“보다시피 사냥하는 중이죠. 몹 몰이 몰라요?”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러더니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내게 눈을 확 치켜뜨면서 말했다.
“저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으음. 미쳤다고 하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음.
생각해 보니 아닌가?
나도 솔직히 저 정도까지 몹 몰이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당장 같은 팀인 내가 봐도 놀라운데.
화련이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일 것이다.
아마 어딜 가도 저런 걸 보지 못할지도.
“하. 사냥터 싹 비워 달라고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더니 다시 우리 팀이 잡고 있는 사냥터 자리.
일명 방을 쳐다보다가 그 앞에 우르르 몰려 있는 몬스터들을 보고는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니 비워 달라고 했겠지. 주변에 몬스터란 몬스터들을 죄다 긁어모았잖아.”
“음. 좀 방 여러 개를 쓰고 있긴 하죠.”
사실 감당만 가능하면 1층 전체를 쓸 수도 있을 텐데.
이건 나르샤 누나의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가기 때문에 무리이기도 했고.
1층의 몬스터들을 전부 다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감당이 가능한 건 둘째 치더라도 말이지.
곧 화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저러다 죽는 거 아냐? 너무 많이 몰았잖아.”
“음. 죽을 거 같아요?”
내 반문에 이번엔 화련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화련도 지켜봤으니 잘 알 것이다.
절대 안 죽을 거라는 걸.
아마 여기서 더 몰아온다고 해도.
챠밍이 중간에 빙벽을 쳐 버리면 그만이라.
어차피 한 번에 저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몬스터들은 딱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화련이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크리스탈 리저드는? 저 정도로 모았으면 한 마리쯤 보일 만도 한데…….”
“아. 그건 지금 리젠 타임 기다리고 있어요.”
“뭐? 리젠 타임?”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는 화련의 물음에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1층에 있는 크리스탈 리저드는 지금 다 잡아서요. 생각보다 몇 마리 없네요.”
잠시 이해가 안 되었던지 화련이 표정이 그대로 경직되었다.
그러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
“방금 뭐라고……?”
“다 잡고 기다리고 있다고요. 리젠 타임요.”
“다 잡았다는 말이…….”
“말 그대로요. 지금 1층에 크리스탈 리저드가 없어요. 덕분에 손가락만 빨고 있는데. 시간이 좀 아깝긴 하네요.”
내가 여기서 우리 팀이 사냥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던 건.
진짜 1층에 크리스탈 리저드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한 번에 40~50마리씩 몰아서 끌고 다니면서 한 번에 죽이니까.
그 덕분에 크리스탈 리저드들이 리젠되는 시간이 똑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지금은 그냥 통째로 쉬는 시간이 되는 거다.
“대체…….”
“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아요. 몰이가 좀 귀찮긴 해도.”
너무 당연하게 말하는 날 보던 화련이 이젠 이해하는 걸 포기한 듯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넌 크리스탈 리저드를 싹 다 잡았고. 쟤들은 저기 저 쇼를 벌이고 있다는 거네?”
화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이 그랬잖아요. 크리스탈 리저드만 없으면 사냥할 만하다고.”
“내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 그냥 크리스탈 리저드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방 하나 정도 잡아서 사냥하면 괜찮다는 거였지. 저렇게 잡으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그때 미리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렸다.
“아, 크리스탈 리저드가 리젠할 타임이네요. 한 바퀴 돌고 올게요.”
그러고는 화련을 놔두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곧 약속이나 한 듯 내가 달려 지나가는 자리 근처에서 크리스탈 리저드들이 리젠되는 것이 보였다.
이젠 하도 많이 해서 손에 익혀서 그런지 거의 눈감고도 녀석들을 베르탈륨 광석으로 맞출 정도라.
한 번의 미스도 없이 다시 50마리의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알뜰하게 모아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좀 늦었어.”
“아. 스타트가 살짝 늦었거든.”
그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마왕 헤르게니아는 우르르 몰려오는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바라보며 바로 마왕의 결계를 시전해 버렸다.
몇 마리 없을 때는 일일이 주먹질을 했는데.
워낙 수가 많아지니 이젠 그것도 귀찮은 듯했다.
마왕의 결계가 시전되자 달려들던 모든 크리스탈 리저드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쿠어!
으어어!
쿵쿵!
쿠웅!
크리스탈 리저드들이 결계를 벗어나 보려고 아무리 바둥거리며 노력해도.
애초에 몬스터들 따위와는 등급 자체가 달랐다.
한꺼번에 주저앉은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보더니 마왕 헤르게니아의 주변에서 수많은 검은 검들이 생성되어 그대로 크리스탈 리저드들의 등에 가서 박혀 들었다.
그리고 그 검은 검들이 크리스탈 리저드들의 마력을 일제히 뽑아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전달하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아까 막내별의 스태프도 사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마왕 헤르게니아가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다지 사기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한참을 마력을 빨아들인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얘들도 이젠 맛이 없네.”
“맛이 없다니?”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애들로 흡수해서 언제 다 채워?”
“역시 이걸로는 안 되는 거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마왕 헤르게니아가 실증을 느낄 줄이야.
벽에서 광석을 캐는 정도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으니까 몬스터를 택한 건데.
이젠 그 몬스터들조차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조금 더 강한 애들 없어?”
그 말에 슬쩍 내가 들고 있던 용신검 아스카론을 바라보았다.
마왕 헤르게니아와 이야기하는 틈틈이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죽여서 수치는 꽤 오른 상태였다.
《 용신검 아스카론이 크리스탈 리저드를 흡수했습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4.01% 해제됩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4.02% 해제됩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4.03% 해제됩니다. 》
.
.
문제는 용신검조차도 이 녀석들에게 질렸는지 흡수가 거의 안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분명 마리당 0.04~5프로 정도 오르던 게 어느 순간 확 줄어 버렸다.
갈수록 효율이 안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아마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듯했다.
“하긴 여기서 많이 해먹었는데. 슬슬 자리를 옮겨야지.”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정이 화색이 돌았다.
어차피 그녀가 하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이 좋은 로테이션도 다 써먹을 수 없게 되는 건 매한가지라.
지금은 그녀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주는 게 좋았다.
결국 그게 나나 우리 팀 모두에게 좋은 결과니까.
마지막으로 모아뒀던 걸 처리하고는 다시 우리 팀이 사냥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의외인 게 화련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 갔어요?”
“얼마나 걸리는지 보려고 기다렸다 왜?”
“그래서 어떤 것 같아요?”
“……5분도 안 걸렸네.”
“이번엔 미쳤다는 말은 안 하네요?”
“하도 많이 봐서. 하아. 우리 애들은 하나 잡는데도 그 개고생인데.”
그러더니 슬쩍 내 뒤에 따라온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화련> 진짜 쟤 좀 빌려주면 안 돼?
아무래도 누가 했는지 대충 눈치챈 듯하네.
<주호> 가능하면 해보던가요. 안 말림.
<화련> 칫. 안 된다는 말이네.
내가 대놓고 해보라고 하니 화련이 오히려 발을 빼버렸다.
이렇게 자신감 넘칠 때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화련도 그걸 잘 아는 듯했고.
“아. 2층은 사냥하고 있다고 했죠?”
“응. 우리 애들이 자리 잡고 있어.”
“흐음. 어쩐다. 그럼 3층 좀 우리가 써도 되나요?”
“맡겨 놨어? 그리고 어차피 거기선 사냥 못 해.”
“못 한다는 말이…….”
“거기 용아병 마법사들이 너무 많아서. 온갖 디버프에 저주에.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샤르르 녹아내려. 그것도 떼로 몰려다니면서 쉴 틈 없이 건다니까?”
“방어구가 없으면 힘들겠네요.”
“내 말이. 어지간한 방어구나 장신구로는 대처도 안 돼. 거기다 걔들은 자기들 머리만 한 커다란 베르탈륨 광석으로 된 스태프를 손에 들고 다닌다고.”
“그래요?”
“가뜩이나 방이나 통로도 좁은데 거기를 광역기가 수십 개씩 때려 봐. 답이 나와?”
“으음. 자리 사냥은 거의 불가능하겠네요.”
화련의 말에 따르면 그냥 3층은 광역기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는 구역이라는 뜻이었다.
가만히 자리를 잡고 사냥했다가는 그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죽어 버린다는 뜻이기도 했고.
특히 디버프 종류가 많다는 게 걸렸다.
혼란 같은 상태 이상이나 경직 같은 종류가 걸려버리면 정말 답도 없으니.
이렇게 높은 레벨 대의 마법사라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걸어댈 테니 쉽지 않은 사냥터가 되겠지.
방어구가 일정 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그것도 마법 방어가 높은…….
응?
마법 방어?
순간 고개를 돌려 우리 팀 쪽을 바라보았다.
으음…….
이거 참.
던전 3층이 화련 쪽 유저들에게는 지옥일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우리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화련에게 말했다.
“그럼 3층은 우리가 좀 쓸게요.”
“뭐? 미쳤어? 거긴 1층하고 2층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차라리 4층으로 가.”
“4층요?”
“응. 거기는 버틸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사냥은 되니까.”
“4층에는 뭐가 있는데요?”
내 말에 잠시 인상을 찡그린 화련이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도 깜짝 놀라서 화련을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 들은 게 맞는 거야?
“타란 제국의 기사들.”
“기사들이라는 건가요?”
설마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닐 테고.
그렇다는 건…….
“응. 이유는 모르겠지만. 베르탈륨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용기사들이 있는 층이야.”
“그건 어떻게…… 아니다. 4층에서 사냥하고 있는 녀석이 있다고 했죠.”
“그래. 우리 애들 장비를 가지고 단독으로 용기사하고 싸움이 되는 유일한 녀석이니까. 지금 힐러 한 명 하고 같이 내려가 있어. 그 이상은 녀석이 힐러까지 지키면서 싸울 수 없다고 해서.”
혼자 내려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힐이나 보급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물약 보급은 필수다.
힐도 마찬가지고.
“조만간 몇 명 더 내려보낼 생각이었어. 그 녀석이 잡은 용기사의 아이템을 입히고서.”
“확실히 드랍템이 있으면 버틸 만하겠네요.”
“응. 그리고 신기한 게 지금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이 입는 장비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좋아.”
“그래요?”
이건 정말 의왼데?
타란 제국 용기사들이 입는 장비는 결코 다른 곳에 가서 밀릴 수준은 아닐 터다.
그런데도 더 좋다고 하다니.
하지만 이전에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긴 했다.
우리가 갔던 헤르마늄 광산에서.
“아마 베르탈륨이 더 많이 들어가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역시 그렇지?”
베르탈륨은 마왕의 무구에 들어가는 재료인데 함량이 적다고 해도 들어가는 순간 완전 다른 등급의 아이템이 되어 버린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니 그녀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꽤 의외의 말을 해주었다.
“고위의 네크로맨서도 있겠네.”
“그래?”
“응. 제국의 용기사 정도를 언데드로 만들려면. 그 이상의 괴물이 있어야 해. 그것도 최소 최상위 마족 이상.”
최상위 마족이라는 말에 화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것도 최소라…….
그렇다는 말은 그 이상의 상황을 상정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던 화련이 마왕 헤르게니아로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혹시 여기에 다른 마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뭔가를 안다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화련에게 되물었다.
“그게 꼭 마왕일 이유는 없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