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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17화 (1,105/1,404)
  • #1116화 신의 흔적 (9)

    재중이 형의 목을 보니 사선으로 길게 검흔이 나 있었다.

    이것도 무기를 들어서 막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대로 검이 밀고 들어와 재중이 형 말대로 정확히 목을 갈랐을 것이다.

    “우리 정체를 눈치채고 한 짓일까요?”

    “그렇다면 녀석들이 그냥 넘어가진 않았겠지만…….”

    손으로 목의 상처를 감싸던 재중이 형이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면 뭔가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듯 했다.

    이거 아무래도 문제가 되려나?

    바로 전사 형에게 물었다.

    “전사 형. 2기사단, 어떤 녀석들이에요?”

    그러자 전사 형의 시선이 재중이 형의 검상에 머무르다가 곧 가라앉으면서 아는 사항을 알려 주었다.

    “황제의 사냥개들.”

    “사냥개인가요…….”

    “어, 그것도 황제의 명에 따라 제국 내부에 머물지 않고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기사단이야. 황제를 옆에서 지키는 1기사단과 달리 말이지. 기사단 넘버를 보면 알겠지만 녀석들 하나하나가 괴물이기도 하고.”

    확실히 기사단의 넘버가 앞으로 오면 올수록 실력이 좋아지게 되어 있었다.

    애초에 실력이 없으면 뒤로 밀리는 시스템이니까.

    그런 만큼 2기사단쯤 되면 에센시아 제국 내에 내놓으라하는 기사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아마 저 녀석들 중 몇몇은 거의 영웅급일걸?”

    “그 정도인가요?”

    “어, 저번에 왜 나서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황제가 명했으면 바로 나섰을 거야. 그럼 판도가 꽤 달라졌을 테고. 실전 경험으로 치면 제국 내에서도 최고일 거다. 1기사단과 달리 이 녀석들은 최전선에서 활동하니까.”

    “흐음. 실력 있는 사냥개라…….”

    그리고 잠시 생각나서 전사 형에게 물었다.

    “혹시 녀석들에게 다른 황자의 입김이 들어가 있어요?”

    “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어차피 황제가 죽으면 전부 차기 황제에게 복속되는 거라. 딱히 기사단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도 못 들어봤고.”

    “그런가요. 그럼 적어도 1황자가 개입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분명히 기사단에서 상당수를 1황자가 휘어잡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1황자의 의도가 들어간 건가 싶었지만 아직은 아닌 듯하고.

    “우리가 기사단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경우는요?”

    “그건 형님 말대로 바로 우리를 쳤겠지.”

    “음. 알 수 없네요.”

    정말 기사단으로 위장한 재중이 형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공격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지금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딱히 1황자의 입김이 들어간 것도 아닌 듯 한데.

    그럼 황제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일단 아니다.

    아직 황제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른다.

    그리고 만약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르 저지했겠지.

    지금처럼 그냥 놔두고 돌아섰을 리는 없을 테고.

    고개를 돌려 맥크라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2기사단이 평소와 달라 보였나요?”

    “흠. 저 녀석들을 자주 마주칠 일이 없어서 판단이 서질 않는구나.”

    “그런가요.”

    하긴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는 전투형 드워프는 아니니까.

    기사단과 합을 맞춰서 전투를 벌일 일도 아직은 없었을 테지.

    거기다 비밀 연구 시설에서 일하는 드워프가 사냥개인 2기사단과 자주 마주칠 필요도 없다.

    서로 하는 분야가 다르니까.

    그러니까 맥크라이가 이상함을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감에 맡겨야 하는 거려나…….

    다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어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의 눈빛이 가늘게 떠졌다.

    “수상하지.”

    “급습해서 그런 것 아니고요?”

    “딱히. 그런데 만약 내가 아니라 저기 챠밍이나 막내별을 노렸다면 바로 목이 날아갔을 거야.”

    “음…….”

    재중이 형의 예측에 챠밍과 막내별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막내별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럼 죽다 살아난 거네요.”

    “아아, 바로 성마대전에서 탈락할 뻔 했지.”

    “운이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요?”

    “꼭 그런 건 아니고. 너네한테 갔으면 내가 어떻게든 막긴 했을 거다.”

    확실히 재중이 형은 기사단이 움직일 때 바로 반응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도 챠밍 쪽으로 움직인다 판단했으면 원 장비를 꺼내서라도 기사단을 막았을 것이다.

    정체가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챠밍이 죽게 그냥 내버려둘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거기다 지금 상황에서 챠밍이나 막내별이 죽어 버리면 답이 없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야 할 판이라.

    그때 챠밍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야겠어요.”

    “2기사단 말이지?”

    “네, 보아하니 여기 남아있는 몬스터들보다 2기사단이 더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그런 챠밍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들이야 나오는 패턴도 있고 리젠 시간이나 장소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대처를 한다고 하면 되지만.

    2기사단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녀석들의 실력.

    만약 정말 2기사단과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될 지도.

    재중이 형이 바로 내게 물었다.

    “녀석들은 어때?”

    “흐음. 일단은 멀리 떨어지긴 했어요. 진동이 미약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이상한 행동이 느껴지진 않아요.”

    “그런가.”

    이전과 달리 감각이 비약적으로 증폭되어 거리가 어지간히 멀어도 사소한 것들조차 신경 쓰면 거의 다 잡힐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방법을 계속 쓰면 내가 먼저 지치겠지만.

    이건 굉장히 신경과 감각을 혹사시키는 방법이라.

    지금은 내 전용 VRS가 보조를 상당히 해주니 버티는 거고.

    보통은 그냥 미니맵을 보는 편이 훨씬 부담이 없었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미니맵에 안 찍힌다는 것.

    멀리서 들키지 않게 감지하려면 결국 이 방법뿐이다.

    그때 맥크라이가 우리에게 말했다.

    “흠. 지금은 멀어졌어도 곧 돌아올 걸세. 꼭 2기사단이 아니더라도 말이지.”

    “다른 기사단이 교대로 온다는 뜻이죠?”

    내 물음에 맥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는 현재 2, 3, 5, 7기사단이 주둔해 있다. 시간대별로 교대를 하고 있지. 그리고 나머지 하위 넘버의 기사단들은 바깥에서 외부 침입이 없도록 막고 있어.”

    생각보다 기사단 숫자가 훨씬 많은데?

    슬쩍 전사 형을 바라보자 전사 형도 맞다는 듯 말했다.

    “전부 황제 직속이야. 4기사단하고 6기사단은 1황자와 3황자의 전속이라.”

    “정말 상위 기사단 중 1기사단 빼고는 죄다 보낸 셈이네요.”

    “그만큼 제국 황제가 신경 쓴다는 거겠지.”

    이거 아무래도 느낌이 싸한데…….

    그래서 다시 한 번 감각을 퍼트려봤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

    기우인가?

    “바깥에 대기 중인 기사단은 하위 기사단이라고 했죠?”

    내 물음에 맥크라이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자네들을 들키지 않고 데리고 온 게 아니겠나.”

    “맞는 말이긴 한데…….”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위장이 가능한 기사단을 핑계로 대기에는 최적이긴 했다.

    바깥에 대기 중엔 기사단들이 존재하니까.

    만약 아예 없었다면 2기사단들이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공격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대체 뭘까.

    재중이 형이 내 표정을 읽고는 말했다.

    “역시 찝찝하지?”

    “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내 가라앉은 눈빛에 재중이 형 역시 시선을 맞추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필히 다시 확인하러 오겠지. 녀석들도 찝찝함을 누르고 있진 않을 테니.”

    “같은 기사단이라도 말이죠?”

    “글쎄. 그건 아까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예 같은 기사단 취급도 안 했잖아.”

    재중이 형 말에는 나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흠. 맥크라이가 있는데.”

    “그러니까 찝찝해도 일단은 내버려 두겠지. 맥크라이가 잘못되면 지들도 황제에게 욕먹을 건 뻔하니까.”

    확실히 현재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 맥크라이보다 잘 아는 이는 없었다.

    그런 맥크라이가 자신들이 개입해서 혹시나 잘못되는 경우가 생기면 곤란한 건 매한가지다.

    아무리 2기사단이라고 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는 확인하러 온다는 거네요.”

    “그러니까 시간이 얼마 없어. 우리에겐.”

    재중이 형 말대로 2기사단이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따라붙는 순간부터는 시간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예 마주치지 않았다며 또 모를까.

    이미 마주친 이상은…….

    “빨리 움직이죠.”

    그러자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을 보며 말했다.

    “전사하고 나르샤가 앞장서고. 좌우 측은 소녀와 내가 선다. 가운데 챠밍하고 막내별. 그리고 맥크라이를 보호해. 후방은 주호가 따라오고.”

    전사 형이 바로 타이탄 플레이트로 갈아입었다.

    “장로님 실력 믿어도 되겠죠?”

    그런 전사 형의 말에 맥크라이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직은 안 써도 된다네.”

    “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따라 왔겠나.”

    그리고는 갑자기 맥크라이가 안쪽으로 통하는 통로로 가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반대 방향 쪽으로 걸어갔다.

    음?

    뭐하는 거지?

    그때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외벽 앞에 서더니 그대로 팔을 밀어 넣자 쑤욱하고 맥크라이의 팔이 사라졌다.

    “장로님 그건……?”

    “비밀 통로지. 저 기사단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하더니.

    설마 비밀 통로를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쩐지 맥크라이의 복장이 너무 가볍기도 하고.

    “시간이 없다며?”

    넉살 좋게 맥크라이가 웃음을 보이자 다들 조금은 긴장이 풀려서 같이 웃음 지었다.

    “저건 어떻게 하죠?”

    내가 폭탄들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맥크라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가지고 와야지. 비밀 통로로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어.”

    그러자 재중이 형이 폭탄 하나를 손에 쥐면서 말했다.

    “인벤에 들어가네. 다들 넣어.”

    그리고는 모두가 폭탄을 인벤에 하나둘씩 넣자 곧 광산 카트에 있는 폭탄들이 전부 인벤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가지고 들어왔으면 더 좋은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아니지.

    그랬으면 위장으로 쓸 수 없었을 테니.

    “들어가시죠.”

    그리고 맥크라이를 따라 비밀통로를 쭉 따라 들어가자 점점 길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잘 따라와. 우리도 가끔 길을 잃으니까.”

    “아무리 봐도 이미 만들어져 있던 길 같은데요.”

    “그래. 잘 봤다. 이 길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야.”

    “그렇습니까.”

    드워프가 따로 만들지 않았다면 결국 이건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길이라는 뜻이었다.

    이 헤르마늄 광산이 애초에 처음부터 자연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고.

    그 말은 곧 뭔가가 안에 있다는 뜻이 될 터다.

    드워프들도 잘 모르는.

    하긴.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게 아크 드래곤이었으니까.

    그놈을 피해 드워프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건드릴 수도 없었을 테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비밀 통로의 끝을 지나자 점점 다른 공기가 우리 곁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다 왔다. 여기까지가 내가 데려다 줄 수 있는 마지막 길이야. 이 이후에는 너희가 가야 한다.”

    비밀 통로를 지나온 다음 우리 앞에 펼쳐진 장소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들 지하에 있는 그 광대한 구조를 보고는 눈을 의심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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