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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15화 (1,103/1,404)

#1114화 신의 흔적 (7)

에센시아 제국 기사단으로 잠복해 있던 마왕군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난 뒤 골목의 어둠 속에서 재중이 형이 걸어 나왔다.

“잘 됐나?”

“그럭저럭요.”

“하, 이게 먹히네.”

재중이 형이 웃음과 함께 나를 바라보자 손에 들고 있던 테르타로스를 공중으로 살짝 휘둘렀다.

그와 함께 검은 기운이 검신의 궤적을 따라 잔상처럼 흩어졌다.

“마신의 무기니까 아마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순 비교는 힘들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왕의 무기의 상위호환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테르타로스라면 분명히 마왕군도 알아볼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런 노림수는 정확하게 통했다.

“안 됐으면?”

“뭐 그냥 튀어야죠.”

오랫동안 기사단에 짱 박혀 있는, 그것도 높은 넘버의 기사단에 들어가서 다른 녀석들에게 들키지도 않는 마왕군?

이건 최소한 상위 마족이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마왕급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빈약한 스펙으로 상대하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존재일 터.

무엇보다 한 번 노출되어 버리면 다른 녀석을 찾는 건 어려우니까.

괜히 붙어서 녀석의 정체를 바깥으로 노출시킬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써먹어야 했을 테니까.

그런 날 보더니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성마대전은 개판이 되겠네.”

“네, 그러라고 건네준 건데요.”

원 역사에서는 이 시점에 천사군과 마왕군이 정면으로 붙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화약고에 불을 붙여 버리면?

과연 마왕군이 저 지도를 가지고도 가만있을까?

이건 아니라는 쪽에 손목을 걸 수 있을 정도다.

반드시 마왕군에서는 천사군 진영에 태클을 걸게 될 것이다.

“천사군이 꽤 바빠지겠어.”

“그사이에 우리 할 일을 마쳐야죠.”

“그래. 일단은 헤르마늄 광산인가.”

“다들 준비됐어요?”

“출발만 하면 돼.”

“감시자들은요?”

“이미 레오나 에센시아가 처리했다는데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아마 죽였다는 말은 아닐 테고.

조금 시간을 벌었다는 정도이려나.

15황실 기사단에 있는 제국 황제의 눈을 속이는 건 죽이지 않는 이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 바로 빠져나가죠.”

그 자리에서 바로 재중이 형과 동시에 하이딩 망토를 뒤집어썼다.

곧 나와 재중이 형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고 골목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몸을 감추었다.

* * * * *

에센시아 제국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 저 멀리 에센시아 제국성이 작게 보이자 하이딩 망토를 벗었다.

재중이 형 역시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황녀가 제법이잖아? 이런 뒷문도 알고 있다니.”

“덕분에 안 들키고 나왔잖아요.”

어째서인지 레오나 에센시아라면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안전하게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어 두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그러면서 감각을 퍼트리려고 하는데 주변 수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우리 여기 있어요.”

챠밍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막내별과 이쁜소녀, 전사 형, 나르샤 누나가 이어서 수풀 사이로 나왔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 지었다.

“뭘 그렇게 숨어 있어?”

“혹시나 해서요.”

“뒤에 붙은 녀석들은 없지?”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먼저 재중이 형이 앞장섰고 이어서 우리 모두 주변을 경계하면서 숲속으로 하나둘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몇 개의 숲을 지나왔을까.

처음에 왔을 때는 정말 멀어보였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한 번 왔던 길이라 그런지 돌아가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두 정지.”

선두의 재중이 형이 손을 휘젓자 모두 제자리에 멈추었다.

“다 왔어요?”

“어.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그러면서 고갯짓으로 저 멀리 보이는 장소를 가리켰다.

우리가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랄까.

수도 없이 많은 병사들과 기사단으로 보이는 녀석들 몇몇이 주변을 바쁘게 오가는 드워프들 사이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칫, 황제 녀석. 헤르마늄 광산 바깥으로 바리게이트를 쳐 놨어.”

“어차피 예상했잖아요.”

“생각보다 수가 훨씬 많아.”

“비집고 들어갈 틈은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주변을 한 번 슥 둘러본 뒤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어렵겠는데. 병사들은 그렇다 해도 기사들은 하이딩 망토로 속이지 못할 거야.”

하이딩 망토라고 완벽한 안전을 보장하진 못한다.

특히 레벨이 높거나 감각이 좋은 녀석들 상대로는.

그리고 제국 황제가 이곳에 어중이떠중이 같은 기사들을 배치해놓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적어도 이곳에 있는 기사 녀석들은.

유사시에 천사군과도 맞짱 뜰 생각으로 배치해 놓은 녀석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하이딩 망토도 잘못하면 들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곳은 뭐 그렇다고 쳐. 외곽에서야 어떻게든 조심해서 비집고 들어가면 되지만…….”

“입구가 문제네요.”

“그래. 입구가 문제지.”

헤르마늄 광산으로 보이는 장소는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하를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구조랄까.

저 헤르마늄 광산이 지금까지도 들키지 않고 계속 존재했던 이유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구조였다.

그런 폐쇄적인 구조 때문에 입구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결국 헤르마늄 광산 속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든 저 입구를 통과해야만 했다.

“몰래 죽이는 건요?”

“거의 불가능. 거기다 전투가 일어나면 외곽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도 모조리 달려들 거다. 안에는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진 않겠죠.”

“일단 무력으로는 답이 없어.”

에센시아 제국 내에서도 내놓으라하는 기사들 수십을 상대로 싸움이라…….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무력으로 저 헤르마늄 광산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황제가 어지간히 공을 들이는군. 광산 하나에 이 정도 숫자의 기사단을 파견하다니.”

“그만큼 원하는 게 있다는 거겠죠.”

지금으로는 황제 본인이 직접 오지 않을 걸 더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저 기사들 사이로 제국 황제까지 껴 있으면 정말 답도 나오지 않는다.

“황제는 오지 않겠죠?”

“그건 모르지. 기사들이 뭔가를 찾아내면 그때서야 움직일 수도 있고.”

“아직 기사들이 아무것도 못 찾아냈다는 말이에요?”

“아마도?”

“혹시 이미 찾아서 제국으로 돌아갔을 확률은요?”

“전혀. 그랬으면 저 녀석들 전부 광산에서 철수했을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를 찾았다면 변화가 있었을 테니까.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겠네요.”

“아아. 안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진 몰라도. 결국 녀석들이 찾아내긴 하겠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광산에 시간제한까지 있는 상태라.

퀘스트라고 생각해보면 굉장히 짜증나는 물건 찾기 미션일 테다.

그것도 한 명도 죽지 않고 해결해야 하고.

“일단 어떻게든 시선을 돌려서…….”

“그건 제가 해…….”

나와 재중이 형이 하이딩 망토를 쓰면서 앞으로 나서려는 때.

챠밍이 옆에서 붙잡았다.

“둘 다 안 그러셔도 돼요.”

동시에 나와 재중이 형이 의아한 눈빛으로 챠밍을 돌아봤다.

그러자 챠밍이 맑은 미소를 보이며 우리에게 말을 꺼냈다.

“둘이 없을 때 미리 작업해 놓은 게 있어서요.”

“응?”

“어?”

어리둥절한 우리와 달리 챠밍의 표정에는 시종일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는 검지를 입술에 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곧 보일 거예요.”

흐음.

뭘 준비했다는 거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의문은 바로 풀리게 되었다.

우리가 숨어 있던 수풀로 뭔가의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이쯤인가.”

멀리서 수풀을 제치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영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곧 챠밍을 돌아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꽤 재밌는 걸 준비해 놨는데?”

챠밍 역시도 나를 보면서 미소로 답했고.

“혹시나 해서 말해 놨는데 잘된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인영은 드워프 대장로인 맥크라이였다.

왜 저 투박한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허, 꼼꼼하게도 잘 숨어 있군. 찾기 힘들게.”

“그랬나요. 나름 안 들키려고 했는데 말이죠.”

“나도 보고 지나칠 뻔했어.”

“그러면 안 되죠.”

곧 모두 수풀에서 일어나자 맥크라이가 너털웃음을 보이며 우리 숫자를 세어 보았다.

“모두 일곱이군. 어떻게 가까스로 가능하겠어.”

뭐가 가능한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맥크라이가 이곳에 왔다는 건 헤르마늄 광산으로 우리를 들여보낼 방법이 있으니까 왔을 터다.

“보다시피 경비가 삼엄해. 거기다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니까.”

“그렇게 보이네요. 그래서 방법이 있나요?”

내 물음에 맥크라이가 슬쩍 손을 내밀었다.

“어허. 어려운 일에는 손이 무거워야…….”

그런 맥크라이의 능청에 인벤에서 아크 드래곤의 이빨을 한 개 꺼내들었다.

그리고 맥크라이 손에 턱하고 올려주자 바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도리를 아는 친구군.”

일은 일이고 보상은 보상인 거려나.

뭐 아크 드래곤의 드랍템 하나를 주고 들어갈 수만 있으면 충분히 남는 장사다.

맥크라이가 바로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에 세 명의 드워프가 멀리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오게.”

그렇게 맥크라이와 드워프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뭔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건……?”

“그래. 보다시피 광산 카트지. 헤르마늄이 그냥 막 캐는 대로 바로 나오는 광석이 아니라서 말이야.”

엄청난 양으로 쌓여 있는 돌들이 광산 카트에 실려서 바깥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원래 있는 일이라는 듯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고.

하긴 오가는 광산 카트를 일일이 확인할 거라면 피로도가 적지 않게 쌓일 것이다.

병사들이 하기는 하는데 그것도 그냥 지나가는 카트의 숫자를 세는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워낙 많은 카트들이 오가고 있으니.

어쩌면 이 헤르마늄 광산에서 유일하게 감시가 느슨한 부분이랄까.

“셋이 하나를 타고. 나머진 둘로 나눠서 타게나.”

“이거 확실히 안 들키는 것 맞죠?”

“내가 직접 운반할 거니 절대 안 들킨다.”

그리고는 맥크라이가 환한 미소와 함께 장담하듯 말했다.

“내 심기를 거슬리면 여기 광산은 바로 파업이거든.”

“그 어떤 말보다 확신이 서는 말이네요.”

재중이 형도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광산 총책임자인 맥크라이와 충돌해 봐야 얻을 게 하나도 없겠지.”

그렇게 나와 챠밍이 한 차에 타고.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가 한 차.

재중이 형과 이쁜 소녀, 막내별이 마지막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 위에 넓은 발판을 만들더니 뭔가 묵직한 물건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요?”

“폭탄.”

“네?”

“괜히 움직이지 말라고. 쾅 하고 터지니까.”

“하아. 안 터지게 조심하죠.”

그렇게 광산 카트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얼마동안 움직이다가 곧 정차하고는 카트 바깥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무슨 일이지?”

“예정에 없던 카트입니다만.”

억지로 넣은 거였나?

그럼 병사나 기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다들 숨죽이고 기다리는데 맥크라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충격에 민감하게 터지니까 건들지 마라. 광산 채굴용 폭탄이다.”

“폭탄요?”

폭탄이라는 말에 기사로 생각되는 녀석이 한 발자국 물러서는 소리가 들렸다.

“왜? 너네 황제가 하도 빨리 진행하라고 재촉해서 아예 폭탄까지 가져왔는데. 하지 말아? 늦어지면 너 이거 책임질 수 있어? 기사 하나가 막아서 채굴이 늦어졌다고 말하면 황제가 어지간히 좋아하겠군.”

“아…… 아닙니다!”

어딜 가나 상위자를 통한 협박은 잘 통한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거기다 폭탄이라는 말에 더욱 접근조차 못하는 모습이었고.

카트를 확인해 보려는 시도는 당연히 없었다.

제 목숨 아까운 건 매한가지라.

그렇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광산 입구를 통과하게 되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옆에서는 챠밍 역시 웃음 지었고.

“어때요?”

“최고네.”

워낙 밀착되어 있어서 숨 쉴 때마다 서로의 숨이 닿아서 난감하긴 했지만.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에센시아 제국 소유의 헤르마늄 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

《 헤르마늄 광산에서 아주 미약한 정체모를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

《 새로운 정보 입수로 메인 퀘스트 신의 흔적이 갱신됩니다. 》

메인 퀘스트 갱신이라.

“아주 잘못 짚은 건 아닌가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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