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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14화 (1,102/1,404)

#1113화 신의 흔적 (6)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의 면담을 마치고 난 뒤 다시 황녀궁으로 돌아오자 평소의 고요한 황녀궁과는 다르게 지금은 이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내가 황제와 면담을 하면서 전달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상당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내가 황녀궁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몇몇이 날 반겨주었다.

달 길드의 스칼렛.

치맥 길드의 이슬두잔.

그리고 최강 길드의 우리 사장님.

우리 연합의 축을 담당하는 길마들은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들 벌써 모이셨나요?”

“그럼. 모두가 목 빼고 너만 기다렸지 뭐냐.”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새로운 사냥터로 들어간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다들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고.

한편으로는 긴장감도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일단 이곳 성마대전에서 한 번이라도 죽으면 끝이니까.

아직은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우린 알지 못한다.

나중에라면 또 모르겠지만.

“준비는요?”

“필요한 물자는 모두 준비했고. 장비는 5황녀의 기사단에서 좀 힘을 써 줬어.”

“그래요?”

“생각보다 후하던데? 전에 끈 떨어진 황녀라고 하지 않았냐?”

“아마 지금은 좀 다를 겁니다. 제국 황제가 여기에 예산을 마구잡이로 쓰는 중이라서요.”

제국 황제가 노리는 건 신의 흔적만이 아니라 정령신의 흔적도 있을 테니까.

그만큼 레오나 에센시아에게도 넉넉하게 지원을 해줄 터였다.

그 수혜를 지금 최강, 달, 치맥 길드가 받고 있는 중이었고.

슬쩍 사장님을 위 아래로 훑어보니 장비가 전체적으로 다 바뀌어져 있었다.

“그게 에센시아 기사단의 플레이트인가요?”

“어, 번쩍번쩍하지?”

『 에센시아 제국 기사단 풀 플레이트 』

『 에센시아 제국 기사단 라이트 플레이트 』

확실히 청색과 힌색이 어우러진 매끈한 곡선의 플레이트는 전투에 쓰기보단 오히려 예술품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풀 플레이트가 조금 더 각지고 묵직하다면 경갑 쪽은 좀 더 활동성이 좋게끔 경량화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플레이트가 사장님뿐만 아니라 스칼렛과 이슬두잔 역시도 착용하고 있었다.

궁수인 이슬두잔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법사 계열인 스칼렛을 보면서 물었다.

“생각보다 가벼운가 봐요.”

“네. 생각보다 훨씬요.”

“그런데 로브는?”

“기사단에서 챙겨 주기는 하던데…… 다들 그냥 이쪽을 택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위험도를 낮춘 건가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여기선 죽으면 끝이니까요.”

로브를 입음으로 얻을 수 있는 지력과 마력 상승보다는 방어 쪽에 좀 더 치중한 모습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

지력과 마력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는 일이라.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느려지겠군요.”

“어쩔 수 있나요. 최대한 맞춰서 해봐야지.”

그런 스칼렛을 보면서 오히려 손을 흔들었다.

“아뇨. 오히려 더 좋아요.”

“네?”

“최대한…… 공략 속도를 늦춰 주세요.”

내 의미심장한 말에 스칼렛의 눈이 살짝 빛났다.

“숨겨진 뭔가가 있군요?”

“뭐 그렇죠. 지금 자세하게는 설명 못 드리지만. 지금은 공략을 느리게 하면 할수록 더 좋다는 것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아요.”

“그건 우리도 바라는 바예요. 공략을 완전히 하면 던전 이용권을 반납해야 한다면서요.”

그러면서 사장님을 바라보는 게 적당히 설명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네, 완전히 공략할 수 있더라도. 안 하는 게 좋아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스칼렛이 내게 다시 물었다.

“비밀 던전 내에서 나오는 아이템의 분배는요?”

스칼렛이 한 번쯤은 물어볼 줄 알았다.

“전량 가지시면 됩니다.”

“꽤 후하네요?”

이런 비밀 던전의 이용권을 그냥 내어주는데 어떤 이득도 보지 않겠다는 내 말에 잠시 의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스칼렛은 그냥 웃음을 보이면서 넘어갔다.

“그냥 유지만 해주세요.”

“시간만 끌어달라는 말로도 들리는데요?”

“아주 정확합니다.”

역시 똑똑한 사람들과는 일하기가 좋다.

한마디만 해도 알아들으니까.

“아쉽게도 우리가 벌여놓은 일들이 좀 있는데 손이 하나라 양쪽을 다 할 수가 없거든요.”

주어진 시간상.

비밀 던전과 헤르마늄 광산.

이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했다.

같이 진행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우선 순위에 헤르마늄 광산을 올려놨을 뿐이다.

다른 한 곳은.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에게 맡길 수밖에.

“좋아요. 우리에게도 좋은 조건이니까.”

“아마 정령석이 꽤 나올 겁니다.”

“그럼 더 좋죠.”

지금 상황에서 정령석은 풀리는 게 돈이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을 스칼렛이기에 시간 벌이를 대신 해주는 것 정도는 흔쾌히 허락했다.

스칼렛과 이슬두잔과의 이야기가 끝난 뒤 사장님에게 따로 말을 꺼냈다.

“저희가 있는 것처럼 좀 꾸며주세요.”

“흐음. 그건 그다지 어렵진 않다만. 기사단을 속여야 하는 거냐?”

“네, 기사단을 속여야 해요.”

5황녀의 기사단이라고 해도 분명 황제의 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빠지면 분명히 보고가 들어갈 테고.

“흠. 가급적이면 기사단과 나눠서 움직여야겠군.”

“위장도 좀 해주시면 좋고요.”

“그건 최종병기와 수호가 알아서 해줄 거다.”

“아, 형들이 있었죠.”

적당히 흉내 내는 정도라면 어렵지 않을 터.

이쪽은 어떻게든 해결인가.

문제는 레오나 에센시아다.

이쪽과도 말을 맞춰놔야 하는 상황이라.

기사단 내의 끄나풀의 눈을 최대한 돌리려면.

레오나 에센시아의 도움 역시 필요했다.

모두를 보내놓고 레오나 에센시아를 찾자 기사단과 함께 모여 뭔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잠시 볼까요?”

“네, 모두 대기하세요.”

그러고는 레오나 에센시아와 멀리 나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주호 왕자는 조금 늦게 오실 거라는 거죠?”

“네. 황녀께서 도움을 주셔야 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적당히 하는 척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만 벌어 주세요.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해볼 테니.”

“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겁니다.”

들켜도 뭐 그냥 몸 좀 아파서 늦어졌다 하면 그만이긴 한데.

이쪽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이라.

앞으로 할 일은 제국 황제의 뜻에 반하는 일이니까.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지금으로는 레오나 에센시아의 기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황녀도 보내고는 우리 팀을 불러모았다.

“다들 준비됐어요?”

내 말에 우리 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전사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부탁한 건 바로 진행해 놨다.”

“유저들 반응은요?”

“아직 간을 보는 느낌이긴 한데. 이미 조회수가 몇 만이 넘어갔어.”

그 말에는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엄청 빠르네요.”

“인기글로 올라가면 순식간이지. 지금쯤 주요 연합들은 안에서부터 들썩이고 있을걸?”

“반응이 좋으면 더 좋죠.”

“거기다 헤르마늄이 천사들의 무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광물인 것까지 풀었다.”

“아주 난리가 낫겠군요.”

마왕이나 천사 쪽의 무구를 만들어 쓸 수 있다면 단번에 랭커가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레벨 차이는 바로 씹어 먹을 스펙이 나올 테니까.

그리고 동 레벨이라고 치면.

그 무구들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없으면 앞으로 게임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헤르마늄을 자기들이 가진 것처럼 신나 하는 녀석들도 있던데?”

“어떤 녀석들이죠?”

“요즘 주요 자원들을 통제하기로 유명한 연합들이야. 전신이 하락세인 틈을 타서 자금이 있는 녀석들 위주로 모였는데 이쪽도 만만찮아. 돈 쓰는 게 장난 아니더라고.”

“그럼 어지간한 실력자들은 돈으로 다 포섭했겠네요.”

“그렇지.”

“패황 쪽 연합하고 신시아의 중립 연합은요? 전신이야 어차피 주력은 안 빠질 테니 그쪽이 피해가 심하지 않아요?”

“말도 마라. 알아보니까 요즘 영역 침범이라고 전쟁이니 뭐니 말도 아니었던데?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는 중이라고 하더라. 도중에 성마대전이 열리는 덕에 좀 조용해지긴 했지만.”

“그들도 죄다 넘어왔겠군요.”

“앞으로 골치 아파질 녀석들이지.”

“아, 맞다. 혼령은요?”

“패황 말이지? 이미 패황하고 갈라섰어.”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한 집단에 머리가 두 개 있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겠지.

아마 전신이 세력을 축소하고 난 뒤에 서로 힘을 합칠 필요는 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으려나.

“아, 그리고 전신 쪽도 꽤 피곤해진 모양이야.”

“네?”

“잘 나갈 땐 좋았는데 네 덕에 균열이 꽤 많이 가서 말이지.”

“설마 연합이 쪼개졌나요?”

“아까 말했잖아. 전신 쪽의 세가 줄었다고. 아무리 전신이라고 해도 계속 잡아둘 순 없었나 보지.”

“흐음. 뭐 다 같은 프로 팀이긴 하니까요.”

만약 의견 충돌이 나면 언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단이긴 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해도 서로의 능력은 비등할 테니까.

“그럼 지금 세력도가…….”

“완전 개판이지. 네가 전신 쪽을 패버리고 패황 연합 역시도 쪼개놓은 덕분에.”

“으음…….”

설마 아이디를 위장해서 뛰어다녔던 게 이렇게까지 파장이 클 줄은 몰랐는데.

그때 전사 형이 재밌다는 듯 크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이 상황에서 네가 헤르마늄 광산을 풀어버린 거야.”

“으음. 뭔가 상황이 이상한데요?”

“그래. 지금 조회수가 미쳐 날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거지.”

“그 말은 저들이 헤르마늄 광산에 올인하겠다는 건가요?”

“대충? 그거면 지금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니까. 누가 잡든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기만 하면. 바로 1강으로 올라설 수 있거든.”

“아주 볏짚에다가 불을 질러 버렸네요.”

“흐흐. 난 솔직히 네가 이 상황을 다 알고 헤르마늄 광산을 풀라는 줄 알았다니까?”

“설마요.”

이건 순전히 내 헤르마늄 광산에 천사들이 침을 바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앞으로 크게 전쟁이 일어날 거야. 그게 유저들이 되든. 천사와 마왕이 되든 말이지.”

전사 형의 장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럼 더 좋죠.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마왕군하고 접촉할 수 있어요?”

내 물음에는 나르샤 누나가 대신했다.

“원 역사를 뒤져서 이미 찾아놨어.”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마왕군이 숨어 있었네요.”

서로 전쟁 중인데 첩자를 안 심어놨을 리도 없을 테고.

“문제는 어떻게 접촉하는 건가 하는 건데…….”

“그쪽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래 보여도 저 마왕 후보에요. 현 마왕 서열 1위가 공인한.”

용사 후보에 마왕 후보까지 겸하고 있는 아주 이상한 포지션이긴 하지.

그럼 마무리를 지어 볼까.

헤르마늄 광산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 * * * *

“꽤 대놓고 첩자질이네요.”

무슨 마왕군이 대놓고 기사단에 짱 박혀 있는지 모르겠다만.

이런 저런 소식을 듣기에는 이만한 자리도 없긴 할 테다.

무려 5기사단에 있는 녀석 중에 하나.

비번인지 몰래 돌아다니고 있는 녀석의 뒤를 쫒자 녀석 역시 눈치를 채고는 어두운 골목으로 날 유인했다.

“누구냐!”

“요즘 마왕군단에서는 상위자에게 반말하도록 시키는가 봐?”

“뭐?!”

그리고는 바로 품에서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었다.

이건 무려 마신의 무구지.

그렇게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짙은 암흑의 기운이 녀석의 신체를 점점 감싸갔다.

여기서 나오는 기운을 못 알아본다면 저 녀석도 틀려먹은 거다.

암흑 기운에 화들짝 놀란 녀석이 바로 무릎을 꿇으면서 물었다.

“헉!!! 혹시 마왕님이십니까?”

“그래. 급하게 전할 것이 있어서 과정을 생략했다.”

머리를 숙이고 차마 들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다가가 하나의 지도를 떨어뜨렸다.

“이건……!”

“천사군이 몰래 보유하고 있는 베르탈륨 광산의 위치다. 그리고 헤르마늄의 광산 위치도 몇 개 있고.”

“헉!!! 이렇게 귀한 것을 어떻게!”

“마왕이 괜히 마왕이겠냐. 그럼 이제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명 받들겠습니다!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모습을 흐려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녀석.

급하긴 급했나 보네.

하긴 정보가 정보인 만큼.

앞뒤 가리지 않을 수준이긴 하다.

“그래. 그럼 성마대전을 아주 불바다로 만들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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