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화 성마대전의 시작 (12)
기존의 올펠 풀 플레이트만 해도 탱커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히 나쁘지 않았지만.
아니.
올펠 풀 플레이트 역시도 현재 유저들이 소유한 방어구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라.
그럼에도 타이탄 풀 플레이트는 좀 더 탱커에 특화되어 있는 방어력과 옵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사 형이 저렇게 목을 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전사 형이 착용하고 다니던 올펠 플레이트는 공중에 붕 뜨게 되었다.
두 방어구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누가 보면 부러워 미칠만한 상황이 아닐까.
처음에 올펠 풀 플레이트를 얻었을 때 나나 재중이 형이 쓰려고 한 적도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사 형의 방어력이 높은 편이 훨씬 좋았기에 전사 형이 맡았던 거였고.
지금은 새 주인을 찾아야할 때다.
그런데 그때.
전사 형이 올펠 풀 플레이트를 꺼내들자마자 옆에 있던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전사 형을 보고 외쳤다.
정말 눈이 번쩍 뜨였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엄청나게 놀란 모습이었다.
“아니……! 그건 도대체……!”
아.
그렇지.
지금은 아직 마왕이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을 시대였다.
성마대전이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정작 마왕이 직접 나서서 전쟁을 벌이진 않았으니까.
당연히 마왕 올펠을 잡고 나온 올펠 풀 플레이트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물건이었다.
그걸 대뜸 전사 형이 꺼내들었으니 맥크라이가 놀랄 수밖에.
아마도 드워프들의 장로라면 이 올펠 풀 플레이트가 어느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지 겉만 보고도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전사 형이 날 보면서 난처한 눈빛을 보냈다.
<방패전사> 주호야, 나 실수한 거냐?
<주호> 으음. 아마도요?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미 맥크라이가 너무 확신을 하는 눈치라.
이미 반쯤 눈이 돌아가서는 전사 형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제스처를 취하려 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따라온 다른 드워프는 딱히 알아보는 것 같진 않은데…….
그냥 좀 신기한 물건이구나 하는 정도랄까.
그렇다는 건 이 드워프 장로만 잘 구워삶으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을지도…….
잠시 드워프 장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레오나 에센시아가 맥크라이를 보고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이 물건이 어떤 물건인데 그렇게 놀라시는 건가요?”
“헉!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주변을 찢어버릴 것처럼 거칠고 폭발적인 기세를 내뿜는 녀석을……!”
흐음.
드워프 장로는 우리와 달리 저런 식으로 아이템을 감정하는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그런 맥크라이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불멸> 이미 속여먹긴 글렀는데?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어, 저 녀석. 눈이 완전히 돌아갔어. 보아하니 올펠 플레이트가 뭔지 대충 아는 눈치고.
<주호> 설마 마왕의 방어구라는 걸 알아챌까요?
<불멸> 그건 기다려보면 알겠지.
<주호> 알아보면 꽤 피곤해지겠네요.
말은 쉽게 했지만.
만약 맥크라이가 저 방어가가 마왕의 플레이트라는 걸 알아보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마왕의 물건인데.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우리를 마왕과 연관된 뭔가로 볼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마왕 본인이거나.
혹은 마왕의 부하 쯤?
아니면 그에 준하는 뭔가?
그중 뭐가 되었든 앞으로의 일이 피곤해진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전사 형은 실수했다는 걸 잘 아는지 이미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방패전사> 어쩌냐? 내가 너무 좋아서 실수한 것 같은데.
<주호> 일단은…… 알아보면 최대한 구슬려 보고요. 모르면 다행이겠죠.
구슬린다는 뜻에는 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긴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드워프 장로의 목을 날려 버려야…….
지금 자신의 목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맥크라이는 여전히 전사 형을 보면서 목을 맸다.
“자네. 그거 한 번만 더 보여주면 안 되겠나?”
“……안 됩니다.”
“에잉, 고얀놈. 그런 최상급의 방어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대체 왜 타이탄 풀 플레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건가.”
그러자 전사 형이 맥크라이의 말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음. 제겐 타이탄 풀 플레이트가 더 좋아 보이는데요.”
“당연히 내가 만들었으니…… 아니! 그게 아니고! 네놈의 눈은 단추 구멍인가? 이 방어구들의 격차가 안 보이냐고!”
맥크라이는 전사 형이 자신이 만든 타이탄 풀 플레이트가 더 낫다고 칭찬해줘서 그런지 순간 기분이 좋아지면서 우쭐했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는지 호통을 쳤다.
정작 만든 본인 자체도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훨씬 좋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쪽이 더 좋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자존심 상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드워프 대장로의 손을 거쳤거나 드워프의 왕이 손댄 작품이니까.”
그 말에 순간 우리 모두가 멈칫했다.
마왕의 방어구를 드워프가 만들었다는 건가?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어차피 좋은 방어구는 드워프들을 통해서 나오니까.
<주호> 그런데 마왕군 쪽에도 드워프가 있어요?
<불멸> 안 될 건 또 뭐야? 우리도 마왕성에 드워프 데려다가 작업시켰잖아.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정작 우리가 그렇게 했던 터라 할 말이 없었다.
<불멸> 그리고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고. 드워프들 안에서 특성도 꽤 갈리는 것 같던데.
<주호> 하긴 그렇네요.
드워프들이라고 모두 같은 속성을 타고 나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대지와 불이 혼합된 속성이기는 한데.
그 중에서도 암흑 속성을 타고 나는 드워프들 같은 경우에는 반대 속성의 드워프들과는 잘 지낼 수가 없는 편이었다.
그 예로 이전의 고대 드워프의 왕 같은 경우.
영혼 상태로 타락한 상태에 암흑 속성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마왕과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녀석이었다.
드워프들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마왕군에 붙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맥크라이는 올펠 풀 플레이트가 범상치 않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물건이지 확실히는 모르는 듯했다.
직접 손대보면 또 모르겠지만.
겉으로 단순히 보는 수준으로는 만들어진 재질이나 손댄 이의 수준과 아이템의 기운 정도를 알 수 있달까.
안에 옵션을 보는 순간.
바로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러니까 맥크라이에게 옵션을 보여주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좋은 물건입니까?”
내 질문에 맥크라이가 당연하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당연하고 말고. 저 플레이트에 비하면 내 플레이트는 그야말로 쓰레기나 다름없으니까.”
으음.
평가가 너무 적나라한데.
자기 자신을 저렇게 객관화시키기도 쉽지 않은데.
본인이 만든 플레이트를 쓰레기라 하고 있었다.
“들어간 재료 자체가 달라.”
“네?”
그때 맥크라이에게서 전혀 의외의 말이 나왔다.
“저 플레이트는 아무리 봐도 베르탈륨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설마 저 단어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베르탈륨이라는 말에 나와 우리 팀 모두가 놀란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깜짝 놀란 듯 전사 형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보조로 왔던 드워프 역시도 화들짝 놀랬는지 들고 있던 물건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서로 놀란 이유는 다 다르긴 한데.
어쨌든 베르탈륨이라는 단어가 주는 파장은 컸다.
여기에 맥크라이가 한 마디 말을 더 붙였다.
“그것도 플레이트 중 일부만 쓰인 게 아니라 플레이트 전체가 베르탈륨으로 만들어진 건다. 방금 그 광택은 베르탈륨의 순도가 높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을 수준이니까.”
확신이 가득찬 듯한 맥크라이의 말에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찼다.
<불멸> 이런. 저 드워프 장로를 너무 쉽게 봤는데?
베르탈륨.
우리가 듣기로 이 물질은 마왕군에게 눈에 불을 키고 찾는 물질이라고 했다.
특히 마왕들이 못 구해서 난리라는 물질이기도 하고.
상황이 이러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베르탈륨이 마왕들의 무구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물질이라는 것을.
혹은 마왕이 성장하는 데 쓰이는 무엇이거나.
그리고 지금의 맥크라이의 말에서 우리 역시 정보를 확정했다.
베르탈륨은 마왕의 무구에 들어가는 재료라는 것을.
솔직히 지금껏 우리 역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게 베르탈륨인지 아닌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추측만 할뿐.
그걸 지금 맥크라이가 확실하게 알려준 셈이었다.
다른 말로…….
플레이트 전체가 베르탈륨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그대로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맥크라이 본인이 말하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잠시 동공이 흔들리더니 잠시 멈칫하면서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봤다.
이걸 과연 이야기를 해도 될지 아닐지를 고민하는 모습이랄까.
그 망설이는 모습에 우리 역시 확신했다.
<불멸> 아무래도 맥크라이 저 녀석. 이게 마왕의 플레이트라는 걸 눈치챈 것 같다.
<주호> 으음. 골치 아파지겠는데요.
사실 그 정도를 넘어 당장 맥크라이의 목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라.
<주호> 말하기 전에 죽여야 할까요?
과연 드워프 장로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말이 새어 나가는 것보다는…….
그런데 맥크라이를 죽이는 것도 문제긴 했다.
당장 저 드워프 장로를 데리고 온 게 레오나 에센시아다 보니.
<불멸> 잠시 대기. 입을 열기 전에 죽이면 좋겠지만. 여기서 죽이면 더 문제가 심각해져.
<주호> 휴. 알았어요.
재중이 형도 선택의 폭이 크지 않다는 걸 일단은 날 말렸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건 동의하니까.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할 수 없다는 듯 내게 귀뜸했다.
<불멸> 여차하면 여길 뜰 생각하고.
<주호> 네, 마왕군으로 몰려서 포위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어차피 한 번은 일어날 일이긴 했는데.
그게 지금이라서 문제였다.
아직 제대로 된 세력이 형성되지 않아 불안정한 딱 그런 시기라.
거기다 이러면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의 방패막이 되는 게 아니라 아예 칼을 거꾸로 쥘 수도 있는 노릇이다.
<주호> 다들 준비해요. 여기서 잘못되면 다 접고 타란 제국으로 갈 겁니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내가 모두에게 전달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저 맥크라이가 한 마디만 잘못 내뱉어도 우린 마왕군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크 드래곤을 잡아 에센시아 제국을 구했든 아니든.
<방패전사> 휴, 미안하다. 괜히…….
<주호> 아뇨.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할 일이에요. 우리가 가진 무구들. 전부 정상적이진 않으니까요.
특히 내가 가진 대천사의 무기라던가.
마신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테르타로스 같은 경우도 그렇고.
거기다 마검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들고 있는 무기 중에 대부분이 문제가 될 녀석들로 즐비했다.
꼭 전사 형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터질 문제라는 거지.
당장 르아 카르테도 레오나 에센시아 때문에 못 꺼내고 있는 판이라.
챠밍의 무기도 문제겠지.
무려 이전 마왕 서열 2위의 스태프니까.
하나 같이 문제인 상황에 하나쯤 터질 때는 됐다.
그때 날 빤히 쳐다보던 이쁜소녀가 말을 걸었다.
<이쁜소녀> 오빠. 지금 저 플레이트가 문제가 되는 거죠?
<주호> 응? 그렇지.
<이쁜소녀> 우리가 마왕군으로 몰릴까 봐요?
<주호> 높은 확률로?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쁜소녀가 곧 알았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응? 재가 갑자기 왜 저러지?
다들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이쁜소녀를 바라보자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이쁜소녀가 할 말을 다 했다.
<이쁜소녀> 그러니까! 우리가 마왕군이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요.
<주호> 아마…… 도?
얘가 뭘 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때 갑자기 이쁜소녀가 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우리 역시 감탄했다.
동시에 우리 쪽을 흘깃 보던 맥크라이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세상에……! 헤르마늄이 통짜로……!”
그 시선의 끝엔 이쁜소녀가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번쩍이는 토르를 들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엣헴!! 나 이런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