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화 성마대전의 시작 (11)
솔직히 당장은 다른 황자나 황녀에 비해 밀릴지는 몰라도.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그렇게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될지는 한 번 해봐야 아는 일이고.
“전 이기지 못할 게임은 시작도 안 하는 편이라서요.”
내 담담한 말투에 스칼렛은 졌다는 듯 묘한 웃음을 보였다.
“확실히 지는 게임을 할 분은 아니죠.”
곧 스칼렛이 고개를 돌려 이슬두잔을 바라보자 이슬두잔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결심이 섰는지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저희 치맥 길드는 이번에도 함께하는 걸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스칼렛 역시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러면 우리도 안 할 수 없겠죠?”
“그래 주시면 역시 감사하죠.”
일단 달 길드와 치맥 길드는 확실히 같은 노선을 걷기로 약속되었다.
엔느 역시도 당분간은 도움을 줄 듯 하고.
<불멸> 이제 겨우 원위치인가?
<주호> 네. 그렇죠.
비록 각자의 길드에서 유저들이 많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이전의 연합으로는 돌아왔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빠질 사람들은 다 빠진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곧 스칼렛이 내게 물었다.
“우리가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요?”
“음. 들어가면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넉넉하게 물자를 준비하라는 말 밖에는 못하겠네요. 황실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는 우리 쪽도 없어서요.”
그때 이슬두잔이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질문했다.
“황실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는 기존에 공략했던 기사단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엔느가 고개를 저으며 대신 대답해주었다.
“아마 꽤 어려울 거예요. 에센시아 제국의 각 기사단은 충성하고 있는 황자와 황녀 라인이 다 다르니까요. 어지간해서는 우리에게 정보를 내어주지 않을걸요. 맞죠, 주호 씨?”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쪽 사정을 아주 정확하게 아시네요. 황위 싸움에서 앞서 있는 1황자, 2황녀, 3황자의 기사단은 절대 던전에 대한 정보 공개를 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나마 중립에 가까운 4황자가 접근할 만한데 아쉽게도 우리에겐 그쪽으로 끈이 전혀 없거든요.”
그 말에 이슬두잔이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5황녀의 세력 말고는 전부 다 적이라는 말이죠?”
“일단은 그렇죠. 그들 황자들와 황녀가 우릴 딱히 적이라고 생각할지는 떠나서라도.”
사실 경쟁자라도 안 볼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건 그다지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따로 붙이진 않았다.
“그러면 황제는요? 이번에 주호 님에게 황실 비밀 던전을 들어갈 수 있게 해준 장본인 아닌가요?”
“아. 음…… 굳이 말하자면 그쪽은 그냥 뭔가 시험하길 좋아하는 변태 같은 양반이라…….”
에센시아 황제에 대한 내 적나라한 평가에 스칼렛과 이슬두잔, 엔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엔느가 웃음과 함께 내게 말했다.
“한 제국의 황제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 주호 씨가 유일할 거예요.”
“뭐 없는 자리에센 나랏님도 욕한다고 하잖아요.”
“하긴 그렇죠? 그럼 결국 우린 정보 없이 들어가야 하는군요.”
레벨대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던전에 무턱대고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성마대전은 한 번 죽으면 바로 탈락.
위험도는 최소한으로 낮추는 게 좋았다.
엔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이쪽이고.
“아, 그렇다고 아예 정보가 없이 들어가진 않을 거예요. 5황녀에게 방법이 있다고 했거든요.”
“그게 어떤 방법인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사실 그쪽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들어가면 확실히 말해 줄 것 같기는 한데.”
“그럼 아직 모르는 거네요.”
“아쉽게도요.”
“흠. 모험이라…….”
여기서 황실 비밀 연구소에 대해 말해 주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거기다 이건 타이탄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잠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아도 아무것도 모르면 안 들어가겠다.”
“역시 그렇죠?”
솔직히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
“신용을 얻으려면 이쪽도 성의를 보여야지.”
“네. 그럼.”
그리고는 스칼렛, 이슬두잔, 엔느에게 황실 비밀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여서 해주었다.
거기다 타이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그러다 보니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엮어서 같이 나오게 되어 버렸고.
베르탈륨과 헤르마늄에 대한 정보까지도 쭉 오픈했다.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눈이 휘둥그렇게 변해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엔느가 대표로 놀라워하며 감탄한 투로 말했다.
“겉으로 성마대전을 조사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이네요.”
“그렇긴 하죠. 대신 여기서 들은 이야기들은 밖으로 새서는 안 되는 이야기예요. 아직 유저들이 제국에 진출하지는 못했어도 각 왕국을 통해 곧 성마대전의 전장으로 향할 테니까요.”
내 말에 엔느, 스칼렛, 이슬두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5황녀는 황실 비밀 던전을 통과할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예요.”
“네, 그 정도까지 정보를 알고 있는 황녀라면 한 번 믿어볼 순 있겠어요.”
엔느도 이번에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쪽은 설득이 된 듯 하고.
“아, 그리고 위험해지면 바로 빠져나오셔도 됩니다. 의외로 탈출이 가능한 던전이더라고요. 안으로 완전히 더 들어가면 또 모르겠지만요. 황자와 황녀들의 기사단들도 그런 식으로 빠져나왔다고 하니까요.”
“그걸 진작 말해 주지 그랬어요.”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된다는 말에 다들 굳은 표정을 풀고 웃음을 보였다.
확실히 지금 성마대전 시대에서 제일 무서운 게 바로 죽는 거니까.
“그럼 각자 준비를 해주시면 들어갈 때 말씀드릴게요.”
“네, 우리도 이제 에센시아 제국에 들어와서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아직 무기점이나 상가도 채 돌아보지 못 했거든요.”
“그렇게 하시죠.”
그때 이슬두잔이 내게 물었다.
“아, 혹시 5황녀에게 따로 도움을 받을 수 없나요?”
그 말에 이번에는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대답해 주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러자 재중이 형의 시선을 따로 주변을 둘러보던 엔느, 스칼렛, 이슬두잔이 모두 곧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안 되겠네요.”
“휴, 미는 황녀가 거지라니…….”
지붕도 날아가 다 무너져 가는 황녀궁을 바라본 이들의 반응은 다 똑같았다.
원래도 5황녀의 황녀궁은 그렇게 화려하게 꾸며진 것이 아니었다.
정말 소박한.
딱 있을 만한 물건만 있을 딱 그런 황녀궁이랄까.
거기다 스칼렛은 조사를 이미 해봐서 다 알 것이다.
5황녀는 딱히 자금이 많은 외가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한마디로 5황녀에게 자금적으로 지원을 받는 건 무리라는 뜻이었다.
네이던 후작에게 따로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들에게도 지원을 해줄지는 미지수고.
거기다 네이던 후작이 여기서 알게 되는 일은 곧장 다른 1황자에게 흘러들어가게 된다.
골치 아픈 상황을 방지하려면 일단 이들은 모르게 해두는 편이 나았다.
“준비는 우리가 알아서 해볼게요.”
“네, 부탁합니다.”
곧 엔느, 스칼렛, 이슬두잔 각자 황녀궁을 나가 흩어졌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황녀궁의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레오나 에센시아가 먼저 황녀궁으로 돌아오고 그 뒤를 이어 드워프 둘이 더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
뒤에는 작은 화물 마차를 한 대 끌고서.
“아뇨. 기다리면서 이야기 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마침 여러분들에게 드릴 물건이 다 준비되었어요.”
드워프 중 한 명은 이전에 우리를 보러 왔던 그 드워프 장로 맥크라이였다.
우리야 점검 때문에 접속을 끊어졌지만 그사이 맥크라이는 열심히 작업을 해둔 모양이었다.
잠을 못 잔 듯 눈 밑이 검게 변색되어 있는 걸 보면.
<불멸> 확실히 뇌물이 좋긴 좋아. 드워프 장로도 부려먹는 걸 보면 말이지.
<주호> 하하. 그렇죠.
아크 드래곤의 잔해 중 몇 개를 건내준 것만으로 저 드워프 장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허허, 내가 이 녀석들은 시간 내에 맞춘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고생하셨습니다.”
“자, 그럼 보게. 내 역작을!”
그리고 눈짓을 하자 다른 젊어 보이는 드워프가 화물 마차를 열고 몇 개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전사 형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오. 저건……!”
딱 봐도 알겠다.
『 타이탄 풀 플레이트 』
그것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구비된 완제품이었다.
심지어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라지 쉴드까지도.
저건 누가 봐도 전사 형을 위한 물건이네.
딱 봐도 엄청나게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아마 나나 재중이 형 같은 경우에는 착용하면 꽤 움직이기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전사 형이나 이쁜 소녀 정도가 착용하고 움직이는 게 가능하려나?
“몇 가지 재료가 부족해서 남은 부분은 내가 충당했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확실히 아크 드래곤이 좋긴 좋은가보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 보면.
그리고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침을 흘리고 있는 전사 형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뭐 해요? 받아 와야죠.”
“흠. 이거 내가 가져도 되는 것 맞지?”
“전사 형 아니면 누가 써요.”
“흐흐. 역시 그렇지?
그러더니 냅다 달려가서 타이탄 풀 플레이트를 드워프에게 받아왔다.
“으…… 이 때깔하며…… 죽여주는구만.”
타이탄과 같은 재료를 써서 그런지 형태와 색상 역시 타이탄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하게 닮아 있었다.
아마 착용하고 나면 미니 타이탄처럼 보이지 않을까.
곧 전사 형이 타이탄 풀 플레이트와 라지 쉴드를 착용하고 나자 정말 하나의 타이탄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타이탄 풀 플레이트를 착용한 전사 형이 놀랍다는 듯 감탄했다.
“이거 세트 템이야.”
“그래요?”
“어, 전부 착용하면 시너지 장난 아니네.”
그리고는 옵션과 방어력을 살펴보더니 이내 거품을 물고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와씨…… 이거 그냥 몬스터들 사이로 닥돌해도 피 하나도 안 깎이겠다.”
“그 정도예요?”
“어, 올펠 플레이트하고 순수 방어력 차이가 무려 1.5배 정도 나.”
그 말에 우리 모두 화들짝 놀라서 전사 형을 바라봤다.
1.5배?
그렇게까지 높다고?
사실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도 방어력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는데.
그보다 1.5배면 정말 전사 형 말대로 길 가다 몬스터들에게 갈려도 피가 안 깎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저 높은 방어력이 죄다 상쇄해 줄 테니까.
“흐흐흐. 거기다 세트로 착용하면 거의 두 배까지 방어력이 올라가.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 할 것 없이.”
“미쳤네요.”
안 그대로 높은 방어력이 더 올라간다는 말에 우리 모두 감탄했다.
탱커 입장에서는 현존하는 최상의 방어구이지 않을까.
곧 전사 형이 원래 가지고 있던 올펠 플레이트를 한편에 꺼내 들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이건 어쩌지?”
저게 바로 행복한 고민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