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화 성마대전의 시작 (10)
필드고 던전이고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좋은 사냥터는 항상 피 터지는 경쟁이 함께 한다.
특히 값어치가 나가는 던전은 그 정도가 심해서 항상 사냥터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길드끼리 원수가 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고.
눈만 마주치면 서로 칼질을 한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 웃돈을 주고 거래가 되는 자리가 있을 정도로 좋은 사냥터는 귀하고 비싼 존재였다.
그런데 이런 사냥터를 독점한다?
그것도 남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아니.
방해를 받을 수가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사냥터라는 건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냥터도 아닌.
경험치.
아이템.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을.
에센시아 제국 황실에 존재하는 비밀 던전이었다.
스칼렛, 이슬두잔, 엔느 모두 지금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다.
“방금 황실 비밀 던전이라 했나요?.”
“독점? 정말이에요?”
“진짜…… 볼 때마다 놀랍네요. 다른 곳도 아닌 황실 던전이라니.”
거의 길 가다 당첨된 복권을 주운 표정이랄까.
잠시 숨을 가다듬은 스칼렛이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고는 내게 물었다.
“성마대전 시대가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가능한 이야기예요? 아직 다른 사람들은 정착도 못 했는데 말이죠.”
그 물음에는 이슬두잔, 엔느 모두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궁금함 가득한 딱 그런 얼굴로.
“아, 그게 사실 전 성마대전을 다른 유저들보다 좀 일찍 시작했어요.”
“역시.”
그래.
이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겨우 왕국에 소환되어 주변에서 퀘스트를 좀 알아보는 정도가 다일 것이다.
아니면 주변에 좋은 사냥터를 물색하거나.
혹은 가장 중요한 숨겨진 특수 퀘스트와 아이템들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고.
실제로 별 이득도 없는 왕국을 고른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이 성마대전 역사를 미리 파악하고 좋은 아이템을 선점하기 위해서니까.
모든 이가 다 동일선상에서 시작하는.
어떻게 보면 공정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성마대전이.
사실은 그렇게 공정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산 증인이 바로 나니까.
“그러면 설명이 되겠네요. 그 로가슈 왕국 왕자라는 타이틀과 황실 던전 같은 것들요.”
그때 이슬두잔이 조금은 다른 말을 해왔다.
“아, 오다 보니까 전부 주호 님 찬양하는 NPC밖에 없던데…….”
엔느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말 걸어 보면 죄다 그 얘기만 해서요. 어떤 NPC는 대놓고 하느님처럼 찬양하던데요? 이 정도면 거의 나라를 구한 영웅 대접 아닌가요?”
“맞아요. 솔직히 무슨 신앙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니까요.”
그런 둘의 반응을 보면서 머쓱하게 웃음 지었다.
이거 참.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NPC들은 딱히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따로 부탁한 것도 없었으니 당연한 거려나.
스칼렛이 그런 둘의 반응에 대신 말을 꺼냈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 맞으니까요. 그것도 무려 아크 드래곤을 잡아낸 영웅이죠.”
엔느가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그거 성마대전 중후반부에 나오는 마왕군 최상위 네임드 몬스터 아닌가요?”
“정확히 아시네요. 그것도 마왕군이 천사군을 밀어붙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네임드죠. 일반적인 광역기를 뛰어넘는 초광범위한 광역기를 수도 없이 시전해 주변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괴물 말이에요.”
그런 스칼렛을 보고는 웃음 지었다.
“성마대전 시대 공부를 꽤 많이 하셨네요. 시간이 별로 없었을 텐데.”
우리야 미리 성마대전 시대를 겪어봐서 조사를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만큼 자세하게 조사를 할 수도 있었고.
필요하면 남들이 모르는 부분까지도 접근해서 이미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다.
그런데 다른 유저들은 아니었다.
성마대전이 업데이트가 되고 난 뒤 실제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정도를 안다면.
조사를 엄청나게 해댔다는 거다.
정보 파악에 일가견이 있다고 할까나.
“시간이 많진 않았죠. 그래도 핵심이 되는 전쟁에 대한 건 꽤 연구를 했어요.”
그 뒤에는 곧장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서.
“대체 어떻게 아크 드래곤을 잡은 거예요? 그냥 유저 몇 명이 좀 강하다 정도로는 절대 못 잡는 네임드예요. 기록대로라면 성마대전 시대에도 제국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도 못 밀어냈던 네임드인데요. 물론 그 당시에는 다른 요인들도 존재하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잡는 게 불가능한 네임드라는 건 확실하죠.”
그리고는 확신하는 말투로 말을 덧붙였다.
“제가 파악하기에 당장 전 서버의 유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한꺼번에 달려든다고 해도 절대 못 잡을 거예요.”
너무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맞다.
아크 드래곤 자체가 잡으라고 놔둔 네임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했다.
만약 내가 한 방식대로 아크 드래곤을 땅에 처박아놓고 싸우지 않았으면.
지금쯤 에센시아 제국은 풀뿌리 하나 남겨두지 않고 싹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실제 아크 드래곤 자체가 광역기를 미친 듯이 날리는 것에 특화된 네임드니까.
이런 특성의 네임드는.
그 전장이 크면 클수록 더욱 큰 효율을 발휘한다.
광역기라는 게 애초에 그런 특성이니까.
밀집된 다수를 향해 모두 타격을 주는.
그러니까 마왕군과 천사와 인간군이 운집해서 싸우는 전장은.
아크 드래곤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상의 무대가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전 서버의 유저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봐야.
답도 없다는 거지.
오히려 그렇게 몰리면 몰릴수록 아크 드래곤이 싸우기 더 좋은 전장이 되어 버린다.
거기다 아크 드래곤은 다른 탈것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고속 기동이 가능한 네임드이기도 하고.
현재 유저들의 전력으로는 기동력에서 밀려 절대 잡을 수 없었다.
몰려들었다가 무한대로 쓰는 광역기에 쓸려나가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셋 모두 궁금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보자 난감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주었다.
“으음. 영업 비밀쯤으로 해두죠. 사실 안다고 해도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에센시아 제국의 창고를 전부 털어오고 비공정을 수도 없이 폭파시킬 수 있는 여력에.
나와 재중이 형같이 단독으로 아크 드래곤을 잠시라도 묶어둘 수 있는 유저가 있지 않는 이상에야.
거기다 무엇보다 르아 카르테,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 용을 잡는 드래곤 슬레이어, 체력을 갉아먹는 마검 같은 무기들의 특성을 동시에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크 드래곤의 체력을 퍼센트 단위로 깎아낼 수 있으니까.
이건 방법을 안다고 해도 절대 못 따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이해해 주시니 다행이군요.”
“그래서 제국을 구한 영웅이라 받은 던전인가요?”
“아, 뭐 이런저런 처리해야 하는 조건들과 여러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가 섞이다 보니까 어떻게 제 손에 들어오긴 했어요.”
그런 내 말에 스칼렛, 이슬두잔, 엔느가 이해가 안 된다는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
이렇게 말하면 확실히 못 알아듣긴 하겠네.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에센시아 황제에게 임대로 좀 빌려 쓰기로 했어요. 어떻게 보면 시간 제약이 있는 조건부죠.”
“그래도 일단은 독점인 거죠?”
“네, 그건 확실합니다. 다른 유저들은 절대 못 들어와요. 제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은.”
혹은 에센시아 황제에게 입장 권한을 얻어야 하는데.
당장 황제 발 앞에라도 갈 수 있는 유저는.
사실상 전 서버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봐야 한다.
뭐 어느 이름 모를 마왕 머리라도 잘라서 바치면 또 모를까.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른 유저들은 아직 햇병아리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난 그런 기여도를 거의 억 단위로 들고 있는 중이고.
시작점부터가 다르다는 말이지.
“일단은 달 길드와 치맥 길드가 황실 비밀 던전에 입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둘게요.”
내 말에 스칼렛과 이슬두잔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대가 높은 데다가 방해 없이 독점으로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를 제공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엔느가 손을 들었다.
“전 어떻게 할까요?”
“엔느 님은 미르 길드에서 나왔어요?”
“오래됐죠.”
슬쩍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불멸> 미르 쪽 길마하고 의견이 안 맞는지 그냥 나왔다던데?
<주호> 그런가요?
<불멸> 황룡이 엔느 의견을 듣지 않고 너무 급하게 움직이다 일을 몇 번 그르쳤다는군.
<주호> 흐음…… 의견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런 경우는 너무 허다하게 봐와서 그런지 딱히 감흥이 있진 않았다.
안 맞는 곳에서 계속 시간 낭비하며 있으니 그냥 나오는 방법도 있으니까.
내가 보기엔 황룡이 굴러들어온 복을 찬 것 같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럼 소속이 없겠네요?”
“지금은 이쪽에 잠시 발을 붙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엔느가 스칼렛 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일단 입장 인원에 올려둘게요. 던전은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고마워요.”
아직은 소속을 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굳이 신화 길드나 최강 길드로 오라고 하진 않았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테니.
“아, 그리고 우리 목적은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하되 절대 클리어하지 않는 겁니다.”
“네……?”
“으응?”
“무슨 소리죠?”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들 날 바라봤다.
“음, 간단히 설명하면…… 완전히 클리어하면 제국 황제가 제 목을 칠 거예요.”
그리고 이 말은 그들의 표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스칼렛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황제가 허가해 준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자세하게 말해드리긴 좀 문제가 있고요. 일단 황제가 제게 원하는 게 있는데. 제가 던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그게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그때 엔느가 뭔가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본인의 쓸모가 없어지거나 뭔가 물건의 효용 가치가 없어진다는 거군요?”
“빙고. 꽤 근접했어요.”
머리 좋은 걸로는 으뜸이라더니 역시 괜히 프로를 하는 게 아니다.
대충 겉 사정만 듣고도 핵심을 파악해버리니.
“그러니까 여러분은 비밀 던전을 이용할 수 있는 동안 최대한 안에서 뽑아먹어야 해요.”
“어차피 우리에겐 잘 된 일이네요. 말한 대로라면 던전이 클리어됐을 경우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요.”
잠시 생각을 하던 엔느가 내게 물었다.
“던전이 생각보다 위험한가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뭔가 하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요.”
“뭐 그렇죠. 공짜로 놀고먹으라고 있는 던전은 아니에요.”
그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 드리자면 던전 클리어를 위해 에센시아 제국에서 내놓으라는 황자, 황녀들이 기사단을 잔뜩 데리고 들어가서도 실패했어요.”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네요.”
“네, 잘하면 조기에 죽을 수도 있어요. 성마대전 탈락이죠.”
“반대로 버틸 수 있으면…….”
“꽤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훨씬 앞서나갈 수 있을 테고.”
그 말에 스칼렛, 이슬두잔, 엔느 셋 다 서로의 눈빛이 오갔다.
그러더니 곧 결정했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죠.”
“할게요.”
“해야겠네요.”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 될 겁니다. 저도 그냥 무턱대고 들어가라고 하진 않을 거니까요.”
엔느가 바로 물었다.
“그럼?”
“일단은…… 다들 알아야 할 게 우린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를 밀고 있어요.”
그 말에 다들 어디서 들어봤나 생각을 하다가 곧 스칼렛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또 어려운 길을 택하셨나 보네요.”
역시 스칼렛은 황실 정보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끈 떨어진 황녀라는 걸.
하지만 실제로는 스칼렛이 모르는 것도 상당히 많지.
5황녀는 겉으로 보기와는 전혀 다르니까.
그런 스칼렛을 보면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뇨. 이번엔 꽤 잘 고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