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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95화 (1,083/1,404)

#1094화 성마대전의 시작 (2)

과거 타란 제국은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에센시아 제국에 비해서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나라였다.

그런 구조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거쳐서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거기에다 귀족과 같은 특수한 직위에 대해서는 그 폐쇄성이 더 짙었다.

물론 귀족 직위 획득이 어려운건 에센시아 제국 역시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굳이 난이도를 비교하면 타란 제국이 좀 더 수행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타란 제국에서 귀족 작위를 획득했다고?

그것도 돈을 들이부어서?

비록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서 작위를 획득한 건 아니었지만.

비에른 자작을 백작으로 승작시키는 일에도 얼마나 큰 공을 세워야 했는지를 고려해 보면.

사실 사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승호> 정말 작위를 돈 주고 샀어요?

<희연> 왜? 내가 뻥치는 것 같아?

<승호> 아뇨. 화련 같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 같네요.

내가 의문을 가지며 말하면서도 화련이라면 정말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려나?

<희연> 별것 없어. 그냥 좀 허점을 파고들었을 뿐이야.

허점?

타란 제국에 그런 허점이 있을 리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과거의 성마대전 시대는 사실 누구나 써먹을 수 있는 치트가 존재했다.

우리도 과거 시대에 오자마자 써먹었는데.

이걸 화련이 써먹지 않았을 리가 있나.

<승호> 역시 타란 제국의 역사를 이용한 건가요?

<희연> 잘 아네. 맞아. 애들 시켜서 타란 제국의 역사를 좀 캐봤어. 그러다 보니 재밌는 사실들이 몇 가지 보이더라니까?

역시 화련도 같은 방법은 썼다.

잘만 이용하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쭉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치트키들을.

그것도 화련처럼 총알이 넘치는 유저라면.

얼마든지 타란 제국의 허점을 파고 들 수 있을 것이다.

<승호> 그래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희연> 응. 처음에는 중요 NPC들에게 뇌물을 먹여도 되게 빡빡하더라. 돈을 받아 처먹고 배 째더라니까? 그땐 확 죽여 버릴까 싶더라고.

뇌물을 먹인 걸 아주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화련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잠시 안 보여서 깜박하고 있었다.

<승호> 그런데 어떻게 성공하셨어요?

솔직히 이건 나도 궁금했다.

뇌물이 안 먹히는 나라에서 어떻게 먹여서 귀족 작위를 얻었는지.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우리도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희연> 공짜로?

<승호> 하하…….

<희연> 됐고. 어차피 조금만 알아보면 너도 알 테니까. 사실 몇 번 먹여 보다가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겠더라고. 일단 처음에는 상인부터 시작해서 상회를 차렸지. 이건 또 쉽게 되던데?

확실히 귀족 작위라면 몰라도 상회라면 돈만 있으면 허가 정도는 내어줄 것이다.

그게 잘 되든 못 되든.

어차피 상인 하나하나를 타란 제국에서 신경 쓸 일은 아닐 테니까.

<희연> 그러다가 우리 애들 중에 하나가 알아온 방법이 있었는데. 돈이 필요한 곳이 따로 존재했어.

<승호> 그게 어딘가요?

<희연> 어디긴. 때마침 타란 제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이 범람해서 난리더라고. 몇 십 년 만에 한 번 오는 대홍수 때문이라나?

<승호> 흐음. 그런데 그건 국책 사업 아닌가요? 개인이 뛰어들긴 힘들었을 텐데.

<희연> 응, 맞아. 근데 역사를 좀 보니까 그때 타란 제국에서 급하게 군비를 올린다고 이쪽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쓴 모양이야. 역사상에는 사상자가 엄청나게 나온 역대급 수해라고 기록돼 있더라. 그때 당시 죽은 사람이 기록상에는 거의 몇 천 단위니까.

군비?

아…….

확실히 지금은 성마대전 시대였다.

타란 제국 역시도 성마대전에 참전하는 나라 중에 하나였고.

아무래도 평소보다 훨씬 높은 규모의 자금을 군비로 소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뜻하지 않게 강이 범람하고 수천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라.

당연히 당장 쓸 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타란 제국이 부유한 제국이긴 해도.

나라를 굴리는 데 드는 돈이 어디서 막 샘솟아나는 건 또 아니라서.

분명 어딘가에서 빼오던가 해야 하는데.

귀족들이 그런 돈을 가져다 바쳤을 리는 또 없을 테고.

어떻게 보면 대놓고 이곳을 파고들라고 역사가 허점을 내어준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물론 이런 허점이 눈에 보이더라도.

절대로 아무나 파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그걸 이용할 충분한 자금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에야.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는 가지고 있는 자금만 탈탈 털리고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할 수가 있을 테니까.

끝까지 밀고 나가 완벽한 결과를 내기 전까지 버틸 자금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면.

<승호> 홍수를 막은 대가로 타란 제국에서 직위를 쥐어줬겠네요.

아마 남작위를 하나 주었을 확률이 높았다.

자작위를 바로 주기에는 타란 제국의 성향상 맞진 않았다.

<희연> 응. 명예직이긴 해도. 일단은 남작이야.

어떻게 보면 사기이긴 해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허점을 잘 파고든 셈이다.

돈으로라도 작위를 살 수 있으면 사는 게 맞으니까.

작위가 있고 없고는.

유저를 대하는 NPC들의 태도부터가 달라진다.

중요 NPC들 역시 마찬가지.

거기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들까지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귀족 특혜 중에 일반인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정보까지도 접근이 가능하다.

따로 귀족들만 모이는 모임 같은 것도 있을 테고.

특히 타란은 거대 제국이다.

왕국의 귀족 작위보다 한 끗발 더 높여주는 곳이 제국의 작위니까.

실제 다른 왕국으로 가면 자작위나 백작과 맞먹는 위세를 보일 것이다.

<희연> 덕분에 일이 좀 편해졌다니까? 상회를 굴리려고 해도 얼마나 제약이 많던지. 짜증나서 죽을 뻔했어.

<승호> 그런가요.

<희연> 응. 안 그래도 사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죄다 귀족들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고 막더라고. 그런데 이젠 어지간한 물품에도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됐어.

그 말에는 솔깃했다.

귀족들만 접근 가능한 물품이라…….

확실히 화련이라면 소화가 가능할지도.

자금력이 탄탄하니까.

<승호> 어떤 물품이죠?

<희연> 왜? 너도 장사하게?

<승호> 물건만 좋으면 못할 게 없죠.

물론 내가 직접 장사를 하진 않겠지만.

사장님에게 맡겨놓을 순 있을 터다.

물품이 돈이 된다면.

<희연> 너 너무 공짜로 해먹으려는 거 아냐?

<승호> 서로 방해가 안 되지 않아요? 여긴 에센시아 제국인데. 거리만 비공정 타고도 며칠 걸려요.

사실상 게이트 없이는 서로 오가기도 힘든 곳이다.

<희연> 흐응. 그렇다고 쳐.

이건 알면서도 져주는 느낌이려나?

<희연> 베르탈륨이라고 알아?

<승호> 그게 뭐죠?

<희연> 하긴 에센시아 제국에만 있었으니까 잘 모르겠네. 이건 타란 제국 근방에서만 나는 물건이라. 그것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광물이야.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

<승호> 비싼 거죠?

<희연> 응. 이거 거의 아다만티움이나 초결정 하르석하고도 맞먹는 물건이야.

<승호> 굉장하네요.

에센시아 제국 쪽으로만 조사를 했더니 타란 제국의 실정에 대해서는 허점이 너무 많았다.

전사 형에게는 이따가 물어봐야겠는데.

아마 타란 제국 쪽에 떨어졌으면 우선적으로 알아봤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전사 형도 잘 모르고 있을 지도.

만약 알았으면 타란 제국으로 먼저 가자고 했을 테니.

일단 아다만티움은 부르는 게 값이다.

무기로 만들면 바로 부러지지 않는 명검이 되고.

방어구는 여간해선 뚫기 힘든 최강의 방어 수치를 가지게 된다.

내구도에 있어서는 최강.

초결정 하르석 역시 귀한 건 마찬가지.

무려 하르 결정도 99.99%의 미친 순도를 가진 광석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성유가 액체 형식으로 된 물건이라면, 초결정 하르석은 그야말로 무기와 방어구의 제작에 들어가는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이건 천사들이 직접 쓰는 아이템에 들어가는 최고급 결정이니까.

아다만티움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해보기 힘든 물건들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

나 역시 몇 개 가지고 있기는 한데.

절대 팔거나 하지는 않는다.

마신의 파편을 제련하는 데 써야 하니까.

그런 물건들과 맞먹는다라…….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화련이 단순히 타란 제국에서 귀족 작위를 얻으려고 했던 게 혹시 이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가정.

<승호> 설마 이것 때문에 귀족 작위를 무리해서 얻은 건가요?

<희연> 감이 좋은데?

역시 그랬던가.

<희연> 응. 맞아. 귀족 작위를 얻고 난 뒤에 이 베르탈륨이 나는 곳을 내게 영지로 달라고 했어.

<승호> 그런 중요한 곳을 넘겨주던가요?

<희연> 당연히 모르니까 넘겨주지. 지금은 그냥 타란 제국 외곽에 있는 돌산밖에 없는 영지니까. 심지어 주인도 없더라고. 만약 주인 있는 영지였으면 죽여서라도 뺏으려고 했다니까?

하긴.

화련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려나.

<희연> 너도 잘 알 거야. 이제부터는 선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승호> 그렇죠.

화련의 말이 틀린 곳이 없었다.

성마대전 시대가 유저들에게 공개되면서 이젠 본격적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다.

선점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먹는 게 좋았다.

<승호> 그런 중요한 사실을 내게 말해줘도 괜찮아요?

<희연> 너 설마 내가 공짜로 말해줬다고 생각해?

생각해 보니 화련이 너무 쉽게 말을 해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의 비밀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알아내기도 힘들었을 텐데.

특히 선점이 중요한 이런 시점에서는 더더욱.

뭔가 따로 노리는 점이 없다면야.

바로 눈치를 채고는 말을 이었다.

<승호> 제게 바라는 게 뭐죠?

<희연> 역시 눈치가 좋아. 사실 베르탈륨이라는 거, 쉽게 캘 수가 없어. 무시무시한 놈이 가디언으로 있거든.

<승호> 설마 가디언이라는 게…….

<희연> 응. 아직까지는 봉인된 용이야. 그것도 용족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고대 마룡. 타란 제국에서도 아직 이건 몰라. 발견될 시기가 아니니까. 원래 고대 마룡의 주인인 녀석도 아직 모르고.

왜 화련이 내게 말을 해주었는지 이제 알겠네.

그런데 원래 고대 마룡의 주인이라고?

<승호> 누구죠? 그 주인이라는 게.

<희연> 흐음. 넌 에센시아 제국에 있어서 모르겠지만. 여기에 영웅이 있거든. 그것도 용족에 특화된 용기사가.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누군지 안 들어봐도 알 것 같아서.

카샤스 대공.

그자가 미래의 주인이었나?

당연하겠지만.

화련은 내가 카샤스 대공과 인연이 있는 걸 모른다.

시침을 뚝 떼고 화련에게 물었다.

<승호> 손이 필요한 거죠?

<희연> 응. 우리만으로는 무리야. 그렇다고 타란 제국을 끌어들였다가는…… 이건 따로 말 안 해도 알지?

당연히 안다.

타란 제국의 병력을 이 일에 끌어들이면 테르탈륨은 뺏기고 난 뒤 화련이 건질 수 있는 건 그냥 공적으로 인한 기여도 조금이 전부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 성마대전 시대에서는 한 번 죽으면 바로 아웃이었다.

위험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모험을 하기에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

화련도 여기서 단독으로 진행했다가 전력을 다 잃게 되면 그때부터는 성마대전에서의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질 테니.

최대한 전력을 유지한 상태로 고대 마룡을 잡고 싶을 터다.

꼭 잡지 못하더라도 베르탈륨을 가지고 싶을 수도 있고.

흐음.

어쩐다.

아직 이쪽에서의 일도 끝나지 않았는데.

물론 간다고 확실히 잡을 수 있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방법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바로 화련에게 제안했다.

<승호> 그 고대 마룡을 처리해 주면. 베르탈륨, 얼마나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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