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3화 성마대전의 시작 (1)
전에 재중이 형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이 성마대전 시대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당연히 이 과거 성마대전을 만들어 내는데 자원이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이는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유저들이 참여 가능한 형태의 방식으로 공개가 될 것이라 했었다.
단순히 우리만 즐기라고 이 거대한 무대를 준비해 놓은 건 아닐 테니.
그리고 지금.
전체 공지와 함께 성마대전 시대가 본격적으로 유저들에게 오픈되는 모양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요.”
그래도 재중이 형이 예상한 시점은 지금보다는 훨씬 뒤였는데.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예상한 것보다 다소 빠르긴 해.”
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을 하고 있었던 덕분에.
“얼마짜리 점검이죠?”
“보자. 이 정도 규모면 최소 하루짜리는 되겠는데? 이 녀석들이 제때 열어 주는 일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그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 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접속 시간이 다 돼서 나가야 했는데 잘 됐네요. 다들 쉬고 점검 끝나고 봐요.”
전사 형은 좀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였고.
“아, 타이탄 풀 플레이트 한번 입어보나 했는데 말이지.”
“어차피 만들어지는 데 꽤 걸린다잖아요. 점검 후에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을 거예요.”
“하하. 그러네. 좋아. 한숨 푹 자고 보자.”
먼저 전사 형이 접속을 끊고 우리 팀들도 각자 인사를 한 뒤 한 명씩 접속을 끊고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점검 끝나고 봐요.”
“다들 수고했어요.”
“나중에 보자.”
모두가 접속을 끊은 뒤 드워프 장로에게 말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급하게 써야 할 것 같아서요.”
“허허. 그래, 맡겨만 두게.”
이게 바로 아크 드래곤 비늘과 뼈의 일부를 넘겨준 효과지.
앞으로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기세라 웃음을 짓고는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물었다.
“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황녀님에게 형제나 자매가 있나요?”
아까 물어본다는 게 갑자기 점검 공지가 뜨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가기 전에 생각나서 급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이상하다는 눈치로 내게 말했다.
“피를 잇는 형제, 자매라면…… 비록 친하진 않지만 아마 백 명은 가볍게 넘을 거예요. 드러나 있지 않은 분들까지 합쳐서요.”
아.
이 집안.
완전 개족보라고 했었지.
정작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도 자신의 형제, 자매가 얼마나 많은지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저러다 갑자기 누가 황자나 황녀 행세를 해도 모르겠는데?
“음…… 그쪽 말고요. 모계가 같은 분들요.”
어차피 황제야 씨만 뿌리면 그만이고 결국은 전부 모계가 다른 황자나 황녀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 몇 명 정도는 같은 어머니를 둘 순 있지만.
그리고 내가 물어본 건 후자였다.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궁금해한다는 눈치려나?
잠시 날 보던 레오나 에센시아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해 주었다.
“아뇨. 전 혼자예요.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자식을 낳지 않았다면요.”
으음.
레오나 에센시아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예상한 것 중 한 가지는 확실히 틀렸다.
황녀가 정령신의 무구를 구해서 자신의 남자 형제에게 줄 경우.
이건 애초에 없다니까 선택지에서 삭제다.
후.
그럼 결국 15 황실 기사단을 뒤져봐야 하는 건가?
높은 확률로 그곳에 레온 브라이더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왜 물어보나요?”
“아, 서로 손을 잡았는데 다른 형제분이 있으면 알아둬야 해서요. 괜히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요.”
“그런가요.”
별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자 레오나 에센시아도 내 질문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나 역시 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VRS에서 나오자 뜨끈한 열기가 나는 느낌이라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스마트폰으로 게시판을 살폈다.
- 성마대전?
- 오, 이번에 대규모 업데이트임.
- 간만에 크게 하는데?
- 근데 성마대전이면 뭐 하는 거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성마대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바로 떠오르진 않을 것이다.
게임 배경으로만 있는 과거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
로스트 스카이의 퀘스트들에 관심이 많은 녀석들이라면 또 모를까.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생각보다는 많이 있는 했다.
- 성마대전이면 과거에 대륙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잖아.
- 이야. 공부 좀 했나 봐?
- 에헴. 모르는 게 없지.
- 그런데 갑자기 무슨 성마대전임?
- 설마 마왕이 한꺼번에 쳐들어오기라도 하나?
- 에이, 이미 우리가 마계에서 사냥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음?
하긴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했다.
마계의 필드와 던전에는 끝도 없이 많은 유저들이 이미 사냥터를 잡고 사냥 중이었다.
거기다 세력이 있는 몇몇 길드들은 이미 거점이나 성을 가진 녀석들도 있었고.
이들의 소속을 굳이 분류한다고 해보면…….
인간족이라기보단.
오히려 마족에 가깝지 않을까.
매일 사는 곳이 마계라.
- 설마 천사 같은 것들하고 싸우라는 거려나?
-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
- 오, 그럼 마왕 밑에 들어가는 거임?
- 아놔. 마왕 새끼들 하나같이 성격이 개차반이라서 피곤할 텐데.
-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죽이고 가는데 같은 편이 되긴 하려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왕이라는 게 아마 저런 인상인 듯했다.
딱히 나 역시 아니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만나 본 마왕 중에 그나마 정상이라고 할 만한 마왕은 예전에 본 마왕 벨라밖에 없었다.
그나마 인간족에게 우호적이랄까.
나머지 마왕은 인간 알기를 무슨 돌멩이 같은 걸로 보니까.
“꽤 오해들 하고 있네.”
아직 업데이트 내용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추측성 가득한 내용들밖에 없었다.
어쩌다 한두 명이 근접한 내용을 말하기는 했는데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면서 묻혀 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 웃어 버렸고.
- 혹시 과거의 성마대전 말하는 거 아닌가?
- 어? 그럼 시간 여행이라도 하라는 거야?
-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에이. 과거로 갈 수 있으면 히든 피스 다 빼먹을 수 있겠다. 역사를 다 알고 있는데.
- 너도 나도 다 아는 내용 가지고 그게 됨? 서로 칼부림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 맞네. 다 같이 좋은 던전, 몬스터에게 붙어서 칼질한다고 정신없겠다.
- 그럼 난 숨겨진 영웅의 아이템이라도 찾아볼까나?
- 진짜 과거로 가면 난 왕이다!!
진짜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들 너무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역시 저런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니까.
과거로 돌아가면 그 지역과 시간대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미리 선점한다는 걸 목적으로 삼으니까.
저들 역시 다들 그런 말을 했고.
그런 일은 앞으로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서로 하나라도 더 좋은 아이템을 선점하기 위한 싸움.
어쩌면 한 왕국을 뒤엎어서 왕이 되려는 녀석들도 있을 수도 있다.
아마 유저들의 숫자와 세력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려나.
약점이 많은 왕국은 널려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낙관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정보의 양과 질.
그 모두가 충족되어야 정확한 역사에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모은다고 모았는데도 실제로 적용해 보니 안 맞는 것투성이였으니까.
다들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려면…….
아마 꽤나 고생을 할 것이다.
그때 스마트폰에 뭔가의 문자가 왔는데.
발신자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잠시 멈칫했다.
내 번호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등록이 되어 있었다.
딱히 내 번호로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역시 스팸이려나…….”
바로 문자를 지우려는데 그 내용을 보고는 순간 손이 떨렸다.
《 나 화련이다. 계속 안 보면 뒤진다. 》
어…….
그러고 보니 화련에게도 전화번호를 주기는 했었지.
거의 반강제이긴 했지만.
막상 줘놓고 연락이 안 와서 까먹긴 했는데.
근데 계속 안 보면?
그래서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화련으로 예상되는 번호로 문자가 열 개나 와 있었다.
으음.
이럴 거면 그냥 게임 안에서 연락하면 되는 것 아니었나?
왠지 모르게 의아한 느낌에 문자를 보내봤다.
<승호> 화련 맞나요?
그러자 얼마 뒤에 화련으로 예상되는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 뭐야? 왜 이제 봐?
<승호> 이제 접속 끝나서 확인했어요.
<??> 이씨…… 알았어. 그럼 차희연이라고 저장해놔.
<승호> 네? 아. 이름요.
희연?
어떻게 들으니 화련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희연> 너 이름이 뭔데?
<승호> 주승호라고 해두시면 됩니다.
<희연> 뭐야? 네임하고 똑같네?
아이디 만들기 귀찮아서였다는 말은 절대 못 하겠다…….
그땐 솔직히 이렇게 오래 플레이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못 했었으니.
<희연> 뭐, 댔고. 안에서 연락이 안 돼서 답답해 뒤지는 줄.
<승호> 그래요?
연락되던 거 아니던가?
아니지.
생각해 보면 전쳇말도 안 올라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기억하기로 외부에서 오는 연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희연> 그런데 너 대체 어디로 떨어진 거야? 마왕 비밀 창고에서 아이템 받아서 나오니 완전 이상한 데 떨어졌잖아.
<승호> 몰라요? 그 난리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도 아차 했다.
나야 자력으로 멀리 있는 에센시아 제국을 찾아낸 거라.
아마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꽤 고생을 했겠지.
지금은 그런 사람이라고는 화련네 사람들밖에 없었다.
<희연> 난리였다고? 뭐 전쟁이라도 났어?
<승호> 혹시 어디 떨어지셨는데요?
외곽의 어디 산 깊은 곳에 떨어진 거려나?
빠져나오려면 꽤 고생을…….
그런데 화련에게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것도 내 예상치를 한참이나 벗어나는.
<희연> 나? 너 혹시 타란 제국이라고 알아?
<승호> 네? 어디요?
<희연> 아이. 한 번에 좀 알아들으라고. 타란 제국. 과거의 무슨 폐쇄 국가라는데 무슨 놈의 나라가 하늘에 알 수 없는 용들이 빼곡히 날아다니더라니까?
하.
방금 타란 제국이라고 한 건가?
그리고 화련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 타란 제국이.
내가 아는 그 타란 제국이 맞는 것 같았다.
하늘에 용이 우르르 날아다닐 만한 국가는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딱 하나뿐이니까.
용기사 카샤스 대공의 나라.
그제야 좀 전에 화련이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난리라고 해도 전혀 알지 못하는.
애초에 같은 국가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이 그렇게 요란하게 뒹굴어도 화련은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승호> 타란 제국이 확실히 맞나 보네요.
<희연> 뭐야? 넌 어디 떨어졌는데? 타란 제국 아냐?
화련 역시도 우리가 어딘가 비슷한 곳에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승호> 전 에센시아 제국요.
<희연> 정말? 어쩐지 그렇게 뒤져도 안 보이더라.
<승호> 설마 저 찾은 거였어요?
<희연> 먼저 들어갔으니 뭐라도 알겠다 싶어서. 그런데 뻘짓거리 한 거였네.
그게 내 잘못은 아닐 텐데.
그래도 바로 날 찾았다는 말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아예 없는 사람 찾는다고 애쓴 걸 생각하니.
<희연> 처음에 너 찾다가 포기하고 여기서 뭐 좀 해보려고 했거든? 근데 평민이라 일정 수준 이상은 올라가질 못하더라니까?
<승호> 고생했겠네요.
그 고생 우린 잘 안다.
오죽하면 없는 죄까지 지어가며 지하 감옥을 들어갔겠는가.
<승호> 우리도 그랬어요. 결과적으로 뭐 좀 이상하게 되긴 했지만요. 화련은 어땠어요? 타란 제국의 성향이면 정착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안 그래도 폐쇄적인 국가다.
쉽게 풀어가긴 어려울…….
<희연> 응? 전혀 안 힘들던데?
<승호> 네?
<희연> 나 지금 타란 제국의 귀족이야.
<승호> 그게 무슨 말이에요?
<희연>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 귀족이지.
<승호> 대체 어떻게……?
<희연> 샀어.
<승호> 네?
<희연> 돈 왕창 들이부어서 작위를 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