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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79화 (1,067/1,404)

#1079화 5황녀 (3)

어떻게 보면 레오나 에센시아에게는 우리가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다 죽어가는 제국성을 5황녀와 함께 구해 주었으니까.

확실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말이지.

그것도 죽을 위기에 버금가는 어떠한 위험.

그게 아니라면 저 5황녀가 정면으로 황제의 뜻에 반해 대들 리가 없었다.

흐음.

지금 저 황녀의 반응만 놓고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레오나 에센시아는 늦게 들어와서 모른다.

우리가 먼저 황실 비밀 던전을 개방해 달라고 한 것을.

그렇기에 저 반응은 더 진실이라고 생각되었다.

황제를 쳐다보니 아무 표정이 없이 나와 레오나 에센시아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황녀가 반발하는 것을 거의 무시하듯이.

애초에 황녀에게는 저 황제의 뜻을 꺾을 힘까지는 없다는 소리겠지.

일단 들어는 주되.

결정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건가.

뭐 제국의 황제라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려나?

그보다 걸리는 건.

굳이 왜 5황녀를 같이 데리고 들어가라 한 걸까?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지.

좀 전까지만 해도 제국 황제는 5황녀를 밀어주는 듯한 늬앙스를 많이 보여주었다.

제국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비공정과 성유, 정령석을 가져다 쓴 것은 아예 무마해 주었고.

비에른 자작은 백작으로 승작한데 이어 직책까지 제국성 총 방어대장으로 올려주었다.

아크 드래곤의 소유권.

타이탄의 보상 등.

영웅 후보 특전을 쥐어주는 보너스도 마찬가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 걸쳐 제국 황제는 우리 쪽 편의를 봐준 셈인데.

지금의 의도는 그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상황이라…….

<주호> 황제가 무슨 생각일까요?

<불멸> 아직은 모르지. 5황녀를 버린 것 같지는 않은데…….

죽을 자리에 떠미는 건 버리는 패라는 것과 동일하다.

그런데도 밀어 버린다라…….

혹시나 싶어서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다.

<주호> 설마 이것도 그 시험의 연장일까요?

<불멸> 흐음.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이전처럼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주호> 그러다 죽으면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슬쩍 제국 황제를 쳐다보았다.

마치 어림도 없다는 듯한 늬앙스를 풍기며.

<불멸> 황제 밑에 잘 나가는 놈들 얼마나 많은지 벌써 잊은 거냐?

바로 재중이 형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네, 5황녀가 아니더라도 대안은 얼마든지 있겠죠.

<불멸> 정확하게 말하자면 5황녀가 그 대안인 거다. 메인은 다른 녀석들이고.

저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제국 황제 입장에서 보면 메인은 1황자, 3황자 같은 녀석들이다.

이미 입증된.

자타공인 황위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과 세력을 가진 영웅들.

오히려 레오나 에센시아는 그들에 비해 능력도 부족하고 세력 역시 부족한 편이었다.

아니지.

세력은 전무했었지.

그러니 제국 황제가 내게 5황녀의 후견인을 제안한 것이었다.

<주호> 황제가 보기에는 5황녀가 부족함 점이 아직도 많다는 거겠죠?

<불멸> 어, 단순히 제국 한 번 살려냈다고 동등한 입장에 설 수준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만큼 격차가 커. 다른 녀석들과는.

내부 사정을 잘 모르긴 해도.

제국 황제는 계속 5황녀를 시험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상위 황위 계승자들이 성마대전으로 나가고 없는 사이를 틈타서.

문제는 그 시험에서 한 번 탈락하면 그냥 죽는다는 건데…….

대안이 충분히 많은 제국 황제로서는 5황녀가 시험을 이겨내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거려나?

죽어버리면 그것도 그냥 시험 절차라고 말하는 듯한 황제의 의도가 느껴지는 듯 했다.

<불멸> 호랑이가 절벽으로 애새끼들 떨어뜨리는 건 애교네.

<주호>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래도 황제가 신경을 쓰고는 있다는 거죠.

만약 방금 쫓겨나듯 나갔던 다른 황자나 황녀들 같은 처지였다면.

말도 꺼내보기 전에 축객령부터 내렸을 것이다.

그나마 저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에 황제가 밀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써서 후계를 강하게 만든다라…….

어떻게 보면 황제의 변덕에 의한 편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우리도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

적어도 5황녀는.

썩은 동아줄은 아니라는 거다.

앞으로 다듬기에 따라서.

그게 황금실로 변할 수도.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가 먼저 황제에게 제안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황제의 시선이 보이지 않게 5황녀가 돌아서더니 내게 입모양을 만들어서 말을 전달했다.

황당하다는 뜻을 가득 담은.

한 마디를.

‘당. 신. 미. 쳤. 어. 요?’

한 마디, 한 마디를 딱딱 끊어서 힘주어 강조하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멍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큭.

옆에서 재중이 형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고.

이 형.

방금 황제 앞에서 크게 웃을 뻔했어…….

<불멸> 아놔, 이 여자 걸작이네.

<주호> 나름 걱정해주는 거겠죠.

황제 앞에서는 무뚝뚝한 듯 경직된 군인의 태도를 취했다면.

방금은 평소 성격이 나오는 듯한 멘트를 날렸다.

이게 전에 통신으로 느꼈던 딱 그런 느낌이지.

오히려 이쪽이 더 생동감이 전달되었다.

인형 같은 모습과는 정말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위험하기는 한 모양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만류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아니면 자신도 같이 황궁 비밀 던전에 들어가야 해서 열 받은 걸 수도 있고.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는 불행할 수 있는 한 마디를 던져 주었다.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황제께서도 승인하셨고요.”

“하아…….”

한숨과 함께 5황녀에게서 정말 미쳤어라는 말이 뒤에 아주 작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곧 레오나 에센시아가 크게 작게 숨을 들이키더니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황제에게 돌아서면서 말했다.

“황제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그곳은 아직 미공략 던전입니다.”

“그렇지.”

“이전에 다른 황자들과 황녀들도 모두 들어가서 실패하고 겨우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시죠?”

“내 기억엔 문제가 없다.”

<불멸> 호오, 이미 몇 번 시도를 해봤다는 거네.

<주호>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다 실패한 모양이지만.

능력이 좋다던 1황자와 3황자, 2황녀가 모두 실패했다는 거려나?

그 아래로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강력한 황위 계승자들조차 실패한 마당에 그 아래로는 별로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미공략 던전을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맡긴다라…….

<불멸> 아마 원래는 5황녀를 들여보낼 계획이 없었을 지도 몰라.

<주호> 결국 우리 때문이군요?

<불멸> 어, 5황녀 단독으로는 시도조차 못 했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생긴 거니까.

원 역사를 조사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5황녀에게 세력이 없는데 만약 황실 비밀 던전을 공략하라고 내몬다면.

고작 혼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이건 그냥 죽으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애써 다른 황자나 황녀들도 5황녀에게 강요는 하지 않았을 테고.

어차피 탈락한 황위 계승자인데.

굳이 홀로 들어가게 만들어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력이 없어도 일단은 황녀이기도 하고.

이런 때 우리가 후견인으로 붙는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게 되겠지.

무엇보다 정작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한 건 우리가 먼저다.

<불멸> 황제가 좋다구나 하고 기회를 봐서 5황녀를 끼워 넣은 거다.

<주호> 휴……. 어쩌다 보니 황위 계승 싸움에 끼어든 셈이네요.

이제 와 발을 빼기에는 너무 많이 온 느낌이 들었다.

제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이미 5황녀의 후견인이 된 거니까.

확실히 모르긴 해도 이미 소문은 쭉 퍼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지나가면서 제국을 구해준 영웅에서.

5황녀의 정식 후견인이 된다는 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만약 이번 미공략 비밀 던전을 공략하게 된다면…….

그래서 제국 황실에 또 다른 업적을 세우면 5황녀의 입지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게 될 터.

전자는 우리가 손님으로 있던 상황이었고.

후자는 5황녀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셈이라.

어떻게 보면 우리가 5황녀를 키워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겉으로만 보기엔 말이지.

아마 제국 황제도 이런 것을 노리고 5황녀를 밀어넣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레오나 에센시아도 결국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냥 마냥 손만 들지만은 않았다.

잠시 나와 재중이 형을 돌아보더니 위 아래로 막 스캔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입고 있는 장비를 관찰이라도 하듯.

그리곤 곧 시선을 돌려 황제에게 단호하게 제안했다.

“미공략 던전을 공략할 물자 지원이 필요합니다.”

“흐음. 이미 내어준 것만 해도 충분할 텐데?”

“그건 아크 드래곤을 막아낸 공로로 받은 보상입니다. 추가 보상을 원합니다. 최소한 다른 황자나 황녀들이 받은 수준으로요.”

5황녀가 보상에 대해선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우리와 함께 미공략 던전에 들어갈 테니 확실하게 지원을 해달라는.

<불멸> 황녀가 참 황제 상대로 잘 따지기는 해.

<주호> 그래야 살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황녀도 우리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을 거다.

지금 좀 왕자의 품격에 맞지 않는 상거지 꼴을 하고 있어서 말이지.

장비도 상당히 옛날 것들이고.

대놓고 말하면 우리를 무시하는 거니 그냥 황제에게 공을 돌린 거였다.

생각이 짧지도 않고…….

선을 지켜가며 모르게 배려하는 것도 있다.

딱 부러지게 따지는 것도 괜찮다.

점점 마음에 들려고 하네.

<주호> 나쁘지 않죠?

<불멸> 어, 패가 괜찮아.

어리숙한 황녀였다면 지금쯤 우리가 먼저 손절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것과는 완전 반대 지점에 서 있는 황녀였다.

황제도 그런 점이 마음에 드는 걸까.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레오나 에센시아의 청을 받아주었다.

“좋다. 황녀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지.”

확실히 저 제국 황제는 자신에게 무조건 머리를 숙이는 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처럼 대놓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황녀 같은 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이전에 내가 그랬듯이.

어쩌면 황녀도 그런 황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대신. 실패했을 경우에는…….”

“잘 알고 있습니다.”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뜻일까?

이렇게 대놓고 편애하듯 밀어주는 것도 황제 입장에서는 한계일지도.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한쪽만 너무 밀어주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금은 홀로 제국을 구해냈다는 점이 가산점을 받아 그나마 혜택을 보고 있을 터.

이 후광이 없어지기 전에.

최대한 5황녀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적어도 쟁쟁한 저들 틈에서 황위 싸움을 제대로 해보려면 말이지.

황제가 곧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필요한 지원은 네이든 후작에게 말하도록. 가능한 허락해주지.”

이제는 가보라는 뜻을 전하는 황제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날 바로 따라 나오면서 눈매를 한껏 모으고는 말을 꺼냈다.

“우리 따로 이야기 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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