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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78화 (1,066/1,404)

#1078화 5황녀 (2)

르아 카르테의 원 주인이었던 과거의 영웅.

레온 브라이더를 찾기 위해 지하 감옥에 잠시 잠입했던 적이 있었다.

후에 영웅으로 올라서는 레온 브라이더와 미리 접촉하려고.

그때 당시에는 외부인인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 황실에 들어가기 위해 취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방법이어서 다소 무리를 했다고 할까.

뭐 지금에 와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라 잠시 잊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타이탄을 얻고 아크 드래곤을 잡으면서 현재 내 위치는 로가슈 왕국의 왕자 신분이었다.

굳이 레온 브라이더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국 황실에 들어오는 건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지금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대면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레온 브라이더에 관련된 일은 후순위로 밀렸다.

꼭 지금 찾지 않더라도.

이후 시간이 날 때 찾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머릿속에서 밀려 나갔던 일들이 스치듯 지나간 덩치 녀석을 보자마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중이 형과 잠시 눈빛을 마주치고는 다시 집무실로 들어온 5황녀를 바라보았다.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자 허리까지 오는 은발이 한 올, 한 올 빛에 반사되어 흘러내렸다.

장식이 거의 없어 수수한 느낌이 드는 하얀 제복은 왠지 모르게 이 황녀의 성향을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화려한 황녀의 이미지와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와 반대로 그녀의 미모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잘 정리된 부드러운 눈매와 오똑한 콧매.

그리고 은발과 어울리는 백옥과 같은 피부결은 그녀의 미모를 한참 더 끌어올려주었다.

지나치다 마주치면 반드시 고개를 돌려볼 정도의 미모랄까.

제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 미모가 퇴색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상반된 매력이 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불멸> 휘유, 제국의 5황녀가 예쁘다고 소문나 있더니 결코 과장이 아닌데?

<주호> 왜요? 형 스타일이에요?

<불멸> 흠흠. 나쁘지 않지.

<주호> 형수님한테 전화 걸까요?

<불멸> 하하하, 이놈이 오늘 왜 이러실까?

잠시 날 째려본 재중이 형이 다시 5황녀를 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 상황의 심각함과는 둘째로 재중이 형은 일단 외모에서 5황녀에게 합격점을 준 듯했다.

아마 이건 전사 형도 비슷할 듯 하고.

5황녀는 누가 봐도 괜찮다고 해야 하려나.

그 증거로 닫히고 있던 집무실 문 사이로 카샤스 대공 역시 잠시 5황녀에게 시선을 줄 정도로 5황녀의 미모는 아름다웠다.

그렇게 완전히 집무실이 닫히자 5황녀가 제국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다소 딱딱한.

아니.

뚝 끊어지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하는 5황녀의 태도는 거의 군인의 그것과 비슷했다.

각이 딱 져 있다고 해야 하나?

<주호> 형, 원래 황녀들이 저래요?

<불멸> 나야 모르지. 그런데 확실히 특이하긴 하네.

보통 황가나 귀족가의 영애라고 하면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잔뜩 보석과 화장품으로 치장한 뒤.

간드러지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5황녀는 그와는 달리 완벽하게 각이 잡힌 느낌이 들었다.

알고 있던 상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원래부터 군이나 병사 출신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일단 황녀의 출신이 그럴 리는 없으니.

아까 전에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집무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른 황녀들과는.

그 이미지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5황녀가 인사를 올리자 제국 황제 역시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5황녀의 인사를 받았다.

딱 한 마디 말로.

“수고했다.”

“네.”

보통 황제와 황녀 사이에서 오간다고 볼 수 없는 딱딱한 분위기에 보고 있던 우리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았다.

<주호> 끼어들기 애매하네요.

<불멸> 잠시 기다려 봐.

그런데 어떻게 보면 5황녀와 통신을 할 때 보여줬던 그 화끈한 성격과 어느 정도 매치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히 제국 귀족들을 보고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했었던가?

입이 굉장히 거칠어서 황녀가 맞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조금은 수긍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껏 봤던 그 어떤 황자와 황녀보다.

이 5황녀는.

저 에센시아 제국 황제를 닮아 있었다.

비록 외모적으로 황제가 사자와 같은 금발의 갈기를 가지고 있고 굳고 매서운 느낌의 소유자고.

5황녀가 은빛 머리에 눈부신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게 대조적이긴 해도.

둘 다 그 성격이 왠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내 착각이려나?

딱 닮은 둘이 서로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결국 황제가 먼저 손을 들었다.

“이쪽은 로가슈 왕국 주호 왕자다. 인사하도록.”

그러자 5황녀가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내게 돌렸다.

아주 짧지만 그 스치듯 지나친 시선에서 나를 읽으려는 노력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곤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실례라는 것을 아는 듯 5황녀가 시선을 거두고는 인사했다.

이번 역시 빳빳한 군인의 그런 표정으로.

“에센시아 제국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입니다.”

“로가슈 왕국 1왕자 주호 로가슈입니다.”

레오나 에센시아?

분명 처음 들어보는 건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대륙 원 역사를 찾아보면서 스치듯이 봤었나?

아니.

애초에 5황녀는 대륙 역사에 그 비중이 너무 적어서 등장 자체가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황자, 황녀 이름이 백이 훌쩍 넘는데 그중 하나를 잠시 봤다고 기억하고 있을 리가…….

그럼에도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가 빤히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흐음?

방금 웃은 거 맞나?

정말 찰나에 지나간 거라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날 보면서 표정이 변하긴 했었다.

그런 표정과 상관없이 레오나 에센시아가 내게 말했다.

“제국민들을 대신해 제국을 구해 주셔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황녀께서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황제 앞이라 더 딱딱한 느낌이려나?

이전에 통신할 때는 이보다는 자유스러운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아마 황제가 계속 있으면 이런 대화는 지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 역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황제가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말했다.

“황실 비밀 던전을 주호 왕자에게 개방할 생각이다.”

그 말에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녀가 집무실에 들어오고 가장 큰 표정 변화이려나?

그리곤 곧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황제에게 대답했다.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다는 듯.

“……주호 왕자는 안 됩니다.”

“왜? 또 죽을까 봐 그러냐?”

“쓸데없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타국의 왕자가 제국의 비밀 던전에 들어가는 건…….”

마치 제국 황제가 이 일을 주도했다는 듯이 다소 원망 섞인 표정으로 레오나 에센시아가 황제에게 대놓고 반발했다.

<불멸> 아까 황제에게 찍소리도 못하던 황자와 황녀들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주호> 그러게요.

그 사실을 분명히 느끼는 건.

이전에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던 황자와 황녀들은 차마 그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황제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특히 황제가 불호령이라도 하면 바로 쭈글어들어서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기도 했고.

애초에 반항할 생각조차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는 달랐다.

대놓고 황제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게 황제의 의견에 반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저 황제에게 자기 할 말은 다 하고 보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흐음.

이 정도로 대놓고 황제에게 대들 수 있는 황녀가 역사상에서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 했다고?

황제에게 저렇게까지 하려면…….

최소한 황제가 인정하거나 혹은 그만큼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중이떠중이 황자나 황녀들과는 그 격차가 아득할 정도로 멀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연히 다른 황자나 황녀만큼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원 역사에서는 한 줄로도 표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엑스트라 중에 엑스트라.

이해할 수가 없네.

이게 가능한 건가?

<주호> 형, 혹시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가 언제 죽는지 알 수 있어요?

<불멸> 글쎄? 나도 본적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전사에게 물어봐야 하려나?

재중이 형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그냥 정보 자체가 없는 거겠지.

혹시나 싶어서 전사 형에게도 연락했다.

<주호> 전사 형, 5황녀 언제 죽는지 아는 것 있어요?

<방패전사> 응? 5황녀? 잠시만. 정리해둔 게 있을 텐데...

그러더니 잠시 찾아본 뒤 다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없어. 나중에도 기록이 없고. 검색해도 안 나오네.

<주호> 휴, 알았어요.

<방패전사> 왜 그러는데? 5황녀와 무슨 사고라도 쳤어? 황실하고 트러블 나면 아직 안 되는데.

<주호>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이따가 다시 말해드릴게요.

전사 형도 모른다는 거네.

한 마디로 공중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라는 거다.

저런 관계라면 분명히 황제에게도 영향을 줄 텐데.

흐음.

어쩌면 저 황실 비밀 던전 때문이려나?

<주호> 형, 만약에 황실 비밀 던전에서 5황녀가 죽었다면요?

<불멸> 음. 그건 모르겠네. 그럴 수도 있고.

만약 우리가 황실 비밀 던전을 황제에게 언급하지 않았다면 계속 묻혀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보아하니 레오나 에센시아도 비밀 던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비밀 던전을 말하자 바로 죽음을 이야기 했다.

내가 그 던전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처럼.

딱히 황실 비밀 던전이 비밀이라고 쉬시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들어가서 누군가가 죽는 걸 더 우려하는 5황녀의 모습.

그건 지금 이전에 꽤 많은 이들이 들어가서 죽었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한 가지 가정을 꺼내놓았다.

<불멸> 이 녀석들…… 아직 황실 비밀 던전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어.

<주호> 그래요?

<불멸> 어, 안쪽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다. 어쩌면 겉만 파고 있을 수도 있지. 정령석을 캐려고.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 대략적인 상황이 이해가 가려고 했다.

공략이 덜 된 미공략 던전.

그리고 들어가겠다는 우리를 말리지 않는 제국 황제.

비밀인 황실 비밀 던전을 알고 있는 것조차 상관없다는 듯.

<불멸> 이것 봐라? 황제는 죽을지 알고도 밀어 넣겠다는 건데.

섬뜩한 미소를 짓는 재중이 형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황제에게 눈을 돌렸다.

우리가 일종의 일꾼이라 이거지…….

그런데 왜 굳이 5황녀를 같이 들여보내려는 거지?

죽을 위기가 있는 자리인 걸 알면서도?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던전과는 별개로.

아까 집무실 밖에서 봤던 덩치.

그 덩치가 5황녀를 보좌하는 건지.

아니면 감시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5황녀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5황녀뿐만 아니라 영웅 중에 하나인.

레온 브라이더와.

분명히 서로 엮여 있을 텐데…….

지금은 상황을 다 알 수 없으니 그저 5황녀가 입을 열기를 바랄 수밖에 없나?

경우에 따라 우리에겐 전부 다 변수가 될 테니까.

의심스러운 눈빛을 숨기고 5황녀를 빤히 바라보자 5황녀가 조금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께서 뭐라고 하셨든…….”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뇨. 황녀께서 뭔가 잘못 아셨나 본데요.”

“네?”

“막을 필요가 없어요. 황실 비밀 창고에 들어가려는 건 우리가 원하는 거라서요.”

그러니까.

같이 한 번 들어가 보자고?

의심스러운 5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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