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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80화 (1,068/1,404)

#1080화 5황녀 (4)

집무실 밖으로 나오니 카샤스 대공이 심심했었던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네이던 후작과 대화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카샤스 대공이 피하려는 네이던 후작을 괴롭히고 있다고 해야 하나?

네이던 후작은 그다지 저 대공을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황실 근위대장이니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만약에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이 붙는다면 이 둘은 필시 서로에게 칼을 겨누어야 하는 상대였다.

그것도 양측을 대표하는 전력으로.

아마 정면에서 싸우면 카샤스 대공이 승리를 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네이던 후작이 만만한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황제를 보좌하는 근위대장을 낙하산으로 딴 건 아닐 테니.

흐음.

저 네이던 후작이 1황자의 세력이라고 했었지…….

그럼 지금의 이 제국 황제와의 대면은 모두 1황자에게 정보로 들어간다는 뜻이 된다.

거기다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가 황제의 부름에 이곳에 왔다는 사실 까지도.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긴 한데 레오나 에센시아가 황궁 내에서 후드를 쓰고 다녔던 건 자신의 활동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황녀가 굳이 황궁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이유는 없었다.

딱히 이유를 찾자면…….

자신의 행적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정도겠지.

뭐 그것도 네이던 후작이 여기 있어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조금은 소문이 늦춰지긴 할 것이다.

1황자만 제외하면.

문득 든 다른 생각 하나.

<주호> 형, 1황자가 레오나 에센시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불멸> 응? 아마…… 그저 적당한 황자, 황녀 중에 하나로 여기고 있을 걸? 레오나 에센시아가 그간 별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주호> 지금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다녔다면 더 그렇겠죠?

굳이 황실에서까지 모습을 감추고 다니는.

영웅 후보임에도 공식적으로는 대외적인 활동이 전혀 없는 황녀라…….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튀는 외모도 그렇다.

아까 본 관리가 잘 된 다른 황자나 황녀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레오나 에센시아의 외모가 빼어났다.

어딜 내어놓더라도 눈에 띄는 황녀인데 말이지.

그간 이토록 소문이 안 났던 걸 보면.

계속 자신을 숨기고 몸을 낮추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른 황자나 황녀들에게 견제의 대상이 아닐 수준까지.

레오나 에센시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대처였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런 수는 통하진 않는다.

이제부터는 상위의 모든 황위 계승자들이 경쟁자다.

<주호> 네이던 후작이 쪼르르 가서 알리겠네요.

<불멸> 아아. 그렇겠지. 저 녀석은 1황자의 측근이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황실 근위대장이지만.

실제로 속한 세력은 1황자 쪽 라인이었다.

정치적인 선택이랄까.

후에 저 네이던 후작이 속한 가문은 차기 황제가 된 1황자를 등에 업고 그야말로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지금의 근위대장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그렇게 각종 이권과 부를 모두 쓸어 담아 최고의 가문에 이름을 올리지만.

애석하게도 그 찬란한 시간과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마대전의 여파로 에센시아 제국 자체가 박살 나니까.

어떻게 보면 성마대전이 저 네이던 후작의 탓은 아닐 테지만.

각종 부정부패로 제국의 재정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1등 공신 중에 하나니…….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에센시아 제국이 망하는데 저 네이던 후작의 가문이 일조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네이던 후작이 그 부정부패에 앞장선 건 또 아니었다.

네이던 후작은.

성마대전 중에 사망한다.

그 당시 황제가 되기 위한 업적에 눈이 멀어 무리수를 둔 작전을 펼친 1황자를 대신해서.

몰살할 위기에 처한 1황자를 겨우 사지에서 빼내는 수훈으로.

저 네이던 후작의 가문은 공신 가문의 위치를 얻게 된다.

한마디로.

자신의 목숨 값으로 최고의 가문을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그걸 보고 가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비운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전부 중간에 전사 형이 알려줘서 알고 있던 내용 중에 하나였다.

네이던 후작이 우리 앞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아 주었으니까.

지금도 카샤스 대공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타란 제국…….

아쉽지만 이 제국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진 않았다.

대표적인 무구나 인물에 대한 정보야 꽤 노출되어 있지만.

숨겨져 있는 히든 던전이나 아이템들에 대해서는 직접 손을 써야 한다.

어떻게 보면 타란 제국보다 에센시아 제국에 떨어진 게 다행일지도.

만약 타란 제국에 먼저 떨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는 형성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카샤스 대공에게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고.

타란 제국은 이방인에 대해서 그다지 우호적인 제국은 아니다.

나중에 타란 제국이 개방되면.

고생 꽤나 하는 녀석들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용기사라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직업이 있으니 혹할지도 모르겠다만.

우리가 집무실에서 나오자 카샤스 대공과 네이던 후작의 시선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네이던 후작은 더 이상 카샤스 대공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좋아하는 모습이었고.

황제 바로 아래인 대공은 아무래도 상대하기 부담스럽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로가슈 왕국의 왕자를 택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만약 왕자가 아닌 다른 신분이었다면.

저 카샤스 대공에게 시종일관 휘둘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

지금은 아예 대놓고 서로 말을 까는 사이이기도 하고.

그런데 둘은 보이지만 한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흐음.

그 덩치는 어디 갔지?

분명히 아까 전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들어올 때는 보였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곧장 네이던 후작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있던 녀석 못 봤어?”

“누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덩치 커다란 녀석.”

“아, 좀 전에 5황녀를 데리고 왔던 황실 기사 말씀하시는 거라면…… 예비단인 15기사단에 속한 녀석인데. 아는 녀석입니까?”

“아냐. 그냥 알던 녀석하고 비슷하게 생겨서.”

황실 기사?

순간 고개를 돌려 레오나 에센시아를 봤지만 그녀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으음.

이거 참.

5황녀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던 거였나?

황실 기사라 5황녀를 데려다주기 위해서 잠시 들렸던 것 같은데.

너무 과민 반응했던 것 같기도 하고.

<주호> 형, 어떻게 생각해요?

<불멸> 아직은 모르겠는데. 그보다 황실 기사라니……. 당장 그 녀석이 누구 라인인지부터가 중요하겠는데?

분명히 그 덩치가 레온 브라이더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던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게 황실 기사라.

에센시아 제국에는 당연히 많은 기사단이 존재한다.

황제를 직속으로 따르는 기사단을 포함해서.

각 황족이 부리는 개인 기사단.

그리고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단까지.

15번째 기사단이 예비군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황실 기사단이다.

실력이 없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인맥, 정치적인 입김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뭐 겉으로는 평민들을 위한 기사단도 존재하기는 한데…….

이쪽은 그다지 주요한 임무를 맡지도 못하고 한직에서 도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죽하면 다른 기사단을 위한 기사단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이번에 주요 기사단은 황자와 황녀들을 데리고 제국을 빠져나간 데 비해.

죽어 나간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 예비군 소속의 녀석들이었다.

한마디로.

몸빵이라는 거다.

여차하면 버리는 패.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어 줄 수 있는 적당한 방패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그 시간 끌기 용도로 죽어나갔어야 할 녀석들이 우리 덕분에 꽤 살아났을 지도 모를 일이지.

<주호> 네이던 후작에게 한 번 알아보라고 할까요?

<불멸> 아니. 괜히 네이던 후작이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면 안 돼. 어떻게 여기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레온 브라이더와 연관이 되어 있다.

<주호> 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진 말아야겠죠.

미래의 영웅이 될 레온 브라이더와 네이던 후작과의 접촉은 그다지 우리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레온 브라이더가 최소한 다른 녀석들의 손을 잡더라도 저 1황자 세력은 안 된다.

용사 후보인 네이던 후작조차도 1황자의 발판으로 쓰는데 레온 브라이더라고 해서 그러지 않을까.

무엇보다 망할 게 뻔한 세력과 손을 잡아서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르아 카르테의 주인이 그런 식으로 소모되는 건 피해야 한다.

괜히 저쪽과 엮어서 역사가 엉망으로 되는 것 역시 문제고.

가득이나 지금 우리가 개입하면서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레온 브라이더라는 변수까지 통제가 안 되면 진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 레온 브라이더가 1황자가 하는 짓을 보고 회까닥 돌아서 칼을 거꾸로 쥐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개판인 셈이고.

그리고 크루아 대륙 역대 최강의 용사를 앞으로 적대할 확률이 높은 1황자에게 넘겨줄 순 없었다.

녀석은 이미 우리가 침 발라 놨으니까.

상황이 나빠져 같은 편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적으로는 만나지 않아야 한다.

레온 브라이더가 1황제의 세력으로 가면 아주 높은 확률로 적이 되겠지.

그러니까 지금 네이던 후작이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는 건 막아야 했다.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자 네이던 후작도 곧 관심을 끊어버렸다.

지금 네이던 후작에게는 발에 치이는 기사 한 명은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닐 터다.

바로 옆에 카샤스 대공이 있고.

거기다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가 나와 함께 황제를 알현했다.

5황녀의 등장은 네이던 후작에게도 정말 의외였을 테다.

그리고 지금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과연 안에서 황제와 나, 레오나 에센시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궁금할 테고.

잠시 나와 레오나 에센시아를 번갈아보던 네이던 후작이 물었다.

“황제께서는 전후 처리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흐음.

대가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네.

<불멸> 떠보려고 열심히네.

<주호> 네. 직접 5황녀에 대해 물을 순 없을 테니까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떠보려는 것 같은데.

애초에 그쪽은 내 관심사가 아니라서.

“황제께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모르겠거든. 보안도 있고. 내가 막 떠벌이고 다니면 서로 피곤하지 않겠어?”

“흠. 알겠습니다.”

한 마디로 황제와의 대담은 함부로 알려주진 못한다는 걸 대놓고 말했다.

“황제께서 네이던 후작에게 필요한 지원을 받으라고 하더군.”

“네? 어떤?”

다 숨기고 싶긴 한데.

이건 어쩔 수 없이 이야기 해야 했다.

1황자 측근인 네이던 후작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지만.

말 자체를 안 해버리면 약속 된 지원을 받지 못하니.

최대한 네이던 후작 옆에 붙어서 녀석에게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혹시 황실 비밀 던전에 대해서 아나?”

내 말에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잠시 구겨졌다.

“설마…….”

“아, 이번에 거기 좀 다녀오게 됐어. 준비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황제께서 특별히 부탁한 거라.”

“……알겠습니다.”

지금 저 정보를 얻고 또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테지.

어떻게 1황자에게 전달해야 하나 하고 말이야.

황실 비밀 던전에 카샤스 대공도 흥미가 생기는지 날 빤히 바라봤다.

역시 속삭인다고 해도 대공 정도의 능력이라면 방금 말을 듣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곧 네이던 후작이 내게 물었다.

“왕자님만 들어가시는 겁니까?”

그러면서 슬쩍 내 뒤를 바라보았다.

하여간 눈치도 빠르네.

이건 황실 비밀 던전이 어떤 곳이라는 걸 알고 있어야 나오는 반응이었다.

준비를 하다 보면 어차피 알게 될 거 그냥 서비스해 주기로 했다.

“5황녀도 같이 간다.”

그럼 이제 1황자가 어떻게 나오려나 궁금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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