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7화 아크 드래곤 몰이 (11)
갑자기 난입한 녀석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가차 없이 목을 날려버리는 모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히 그 녀석 입에서 백작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멀리 서 있던 내가 들었으면 당연히 비에른 자작 역시도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말 아무런 주저도 없이 칼을 꺼내 목을 날려버렸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눈치로 말했다.
<불멸> 오, 이 녀석 꽤 하는데? 아주 상남자잖아?
상대가 다른 왕국의 백작임을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목을 날렸다는 건.
지금의 상황을 절대 밖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이 자리에서 비밀이 새어 나가면.
그냥 다 죽일 각오라는 거고.
그런데 원래 비에른 자작이 이런 성향이었나?
처음 봤을 때는 크게 튀지 않는 그냥 무난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만약 처음에 이런 행동 양식을 보였다면.
에센시아 제국에 비공정을 타고 내린 순간부터 녀석이 우리 목에 칼을 들이밀었을 수도 있었다.
<주호> 저게 비에른 자작의 원래 성향일까요?
<불멸>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때야 딱히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 거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녀석 입장에서는 방금 백작을 살려둘 이유가 전혀 없었을 거야. 살려둬 봐야 나중에 입을 열면 골칫거리잖아?
<주호> 하긴 그렇겠네요.
재중이 형 말 그대로 저 백작이 살아나가 뭔가를 발설하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특히 왕국의 백작 정도 되는 신분이라면 적지 않게 파장을 줄 있을 테고.
<주호> 비에른 자작이 이런 성향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네요.
끊어야 하는 건 바로 끊어줄 수 있는.
칼 같은 성향.
그리고 그런 성향을 가진 녀석이 지금은 우리를 제대로 서포트 해주는 중이다.
이 정도 보여줬으면 확실히 믿을만 하달까.
<불멸> 뒤는 확실히 믿을 만하겠고. 우린 이제 저 녀석만 잡아 주면 된다는 거지.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아. 하던 대로 계속 수고하도록.”
내 말은 한마디로 거슬리면 그냥 죽여도 된다는 뜻이었다.
굳이 내 눈치를 볼 것도 없이.
그러자 비에른 자작이 눈빛을 강하게 세우며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도 즉결처분 하겠습니다.”
이미 알아서 다 해놓고 뭘 또 물어보나 싶지만.
일단 녀석에게 이곳에서의 상급자는 내 쪽이니까.
뭐 따지고 들면 굳이 내게 보고할 의무가 있고 하진 않겠지만.
녀석과 난 완전히 손을 잡은 상태이기도 하고.
적어도 아크 드래곤을 잡아낼 때까지는.
서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일단 녀석과 나만 입을 다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보면서 물었다.
“우리 팀은요?”
“네가 부탁한 것들 들고 나른다고 아주 고생하고 있지.”
“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일단 NPC들과 다르게.
우린 인벤토리와 시스템이 있다.
만약 비공정을 이동시키려면 병사들은 수백이 필요한 반면.
우리 팀은 시스템에 그냥 등록만 시키고 빨리 빼오면 되니까.
단순히 비공정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게를 줄여줄 수 있었다.
그렇게 인력 수백 명분의 일을.
지금 우리 팀이 나눠서 하는 중이다.
덕분에 지금 시간에 맞춰서 전사 형이 준비를 해줄 수 있었던 거고.
아마 당분간은 뛰어다닌다고 정말 바쁠 터.
거기다 나르샤 누나를 따로 부탁으로 빼버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몇 발짝은 더 뛰어 다녀야 한다.
“나르샤 누나는요? 부탁한 물건이 있는데.”
“찾고 있나 봐. 곧 오겠지.”
“그런가요.”
어쩌면 그 물건이 이번 레이드의 핵심이 될 수도 있을 터.
가급적이면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일단 최대한 녀석의 발을 묶어두죠.”
<방패전사> 하하. 제국 돈으로 발라서 말이지?
새삼 놀랍다는 투로 전사 형이 비에른 자작 몰래 말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여기 추가 비공정들이다. 형님도 받으십쇼.”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이 폭탄 가득 실린 비공정을 나눠 받았다.
“너 이거 하나에 얼마인지는 알지?”
“저야 모르죠.”
“으…… 이 돈이면 그냥 들고 날라도 삼대가 떵떵거리며 살 텐데.”
“어차피 팔지도 못할걸요?”
다른 아이템은 모르겠는데 여기서 얻은 비공정이 이벤트 바깥으로 가져간다고 그대로 남았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지간하면 남아 있기야 하겠지만.
수리 자체도 문제고.
가지고 나갔을 때 시대가 달라 기술이 안 되는 경우.
수리가 안 된다던가 매각이 안 되면.
그냥 허공에 날리는 셈이니까.
<주호> 이왕 들고 나를 거 더 비싼 걸 들고 나르자고요.
<방패전사> 그 말을 듣고 싶었지.
비공정도 비싸기는 한데.
더 값나가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를테면.
저 아크 드래곤을 잡고 나온 부산물이라던가.
아마 예상하기로 이 이벤트 시대가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거의 서버의 전 유저들이 모여서 잡아야 겨우 해결되는 수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들이붓는 자원만 고려해보면.
그렇다는 건.
일단 잡기만 하면 바로 대박을 터트린다는 소리다.
그때 전사 형이 우려 섞인 말을 해왔다.
“이대로 끝낼 순 없겠지?”
“아…… 역시 그렇겠죠.”
“저놈은 대체 얼마나 패야 페이즈가 넘어 가냐? 체력이 얼마나 많길래.”
확실히 지금은 비공정을 터트리는 임시방편으로 찍어 누르고는 있으나.
전사 형 말대로 아직 녀석의 페이즈가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방법으로도 끝은 내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하는 데까진 해봐야죠.”
“오케이. 그럼 다음 준비 시작할게.”
“네. 부탁해요.”
그리곤 전사 형이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나갔다.
곧장 나와 재중이 형은 아퀼라스 주니어와 가르가 주니어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크 드래곤이 다시 포효하는 순간.
“쏟아부어.”
“네.”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
.
어느 정도 맞아야 뻗는지는 이미 확인했다.
그럼 굳이 망설일 필요도 없지.
재중이 형과 함께 다시 우수수 비공정들을 떨어뜨리자 또 다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일대가 쑥대밭으로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콰콰쾅!!
최대한 녀석의 체력을 깎아 놓고.
마지막 페이즈는…….
그때 가서 고민해 봐야 한다.
재중이 형도 딱히 안심하고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바로 다음을 물어보는 걸 보면.
“다음 준비는?”
“일단 전사 형이 비에른 자작과 준비 중이에요.”
“흐음. 그걸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몇 번의 비공정 폭격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상당히 지나갔다.
이젠 외부에서도 모를레야 모를수가 없는 상황이랄까.
비공정 폭발이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몇 십 분에 걸쳐서 나고 있는 중이다.
“비에른 자작이 꽤 고생하겠어.”
확실히 비에른 자작은 바리게이트를 유지한다고 개고생 중이다.
겸사겸사 접근하는 누군가의 목들도 날려가며.
“네. 그래도 이제는 들켜도 상관없죠.”
이미 다른 왕국의 어지간한 수리 안 된 비공정은 다 날려먹었다.
현재 우리 수중에 남아 있는 건 에센시아 제국의 비공정뿐.
비에른 자작이 자국 비공정은 남겨 달라 해서 남겨놨는데.
이제부터는 비공정이 터지는 걸 보여 주더라도.
그나마 다른 왕국의 반발은 막을 수 있었다.
제국에서 욕은 좀 먹겠지만.
황녀가 그 정도는 커버해줄 듯하니.
그렇게 비공정 투하와 성벽 방어포 포격으로 아크 드래곤의 체력을 깎고 있는데.
갑자기 상황이 변화했다.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재중이 형이었다.
“페이즈 변했다.”
재중이 형의 말에 잘 보이지 않는 폭발 속을 감각으로 훑어보니 확실히 뭔가 변화가 생겼다.
“저건 새로운 날개일까요?”
기존의 두 쌍의 날개에서 뭔가 모를 두 쌍의 날개가 더 돋아나 있었다.
형체가 있진 않았지만 검고 붉은 기운을 내뿜는.
어떤 반투명한 날개들이 동시에 일렁거렸다.
곧 그 날개들이 아크 드래곤을 감싸듯이 특유의 방어막을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는 비공정의 연쇄 폭발을 점차 막아내기 시작했다.
분명 압도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아크 드래곤은 그 폭발의 여파를 그대로 버텨 냈다.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흐음. 다 비공정의 폭격 정도는 무마한다는 건가?”
아마 지금의 페이즈가 마지막 페이즈일 텐데…….
저 두 쌍의 날개로 된 반투명한 방어막은 그 기능 중에 하나인 듯 했다.
거기다 폭발이 먹히지 않으면서 점점 폭풍이 걷혀 나갔고 그 사이로 녀석이 신체를 서서히 복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껏 부셔놓은 비늘과 피부에서 터져 나오던 피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곤란하네요.”
지금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비공정 폭발과 성벽 방어포를 막아내면 더 이상 체력을 깎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저 기묘한 방어를 뚫어야 한다는 거고.
“형, 아무래도 숨겨둔 패를 꺼내야겠어요.”
“그래. 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게. 적어도 이 비공정 폭격이 이어지는 이상은 녀석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니까.”
최소한 어느 정도 신체를 회복하고 움직이겠다는 건가?
재중이 형 말대로 녀석도 저 방어막은 풀면 안 되는지 계속 안에서 버티는 모양새였다.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했다.
<주호> 전사 형, 준비 끝났어요?
<방패전사> 어, 페이즈 넘어간 거 봤다. 여긴 준비 끝.
<주호> 어떻게 시간을 맞췄네요.
<방패전사> 애들이 고생했지.
<주호> 그럼 갑니다.
“형, 여긴 맡길게요.”
남은 제국의 비공정을 전부 재중이 형에게 넘겨주고 난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를 끌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이게 통해야 할 텐데…….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사 형!”
“어, 저쪽에 준비해 놨어.”
먼저 전사 형이 빠르게 뛰어가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뛰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준비된 물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없었던지 정말 모양이라고는 하나도 다듬어지지 않은.
물건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옆에는 진땀을 흘리는 나르샤 누나도 있었고.
“왔어?”
“늦지 않았네요.”
“응. 재료들 준비한다고 고생했지 뭐야. 얼마나 뛰어 나녔던 건지 모르겠네.”
보니까 나르샤 누나 말고도 근처에 챠밍, 이쁜소녀, 막내별도 모두 탈진해서 앉아 있었다.
마지막에 이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바쁘게 뛰어다는 듯 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감사 인사는 나중에.”
그리고는 곧장 멀리서 대기 중이던 녀석을 불러냈다.
“타이탄.”
부르자마자 멀리서부터 지축을 쿵쿵 거리면서 뛰어왔다.
내게 남은 마지막 패이자.
가장 강력한 패이기도 하고.
우리 팀이 힘겹게 뛰어다니며 재료를 모아준 물건도 역시 타이탄과 함께 옆에 세워졌다.
“자, 가자.”
곧장 타이탄의 링크를 운용해서 내 움직임을 그대로 가져가게끔 했다.
그러자 녀석이 내 몸과 일체가 된 듯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쿵쿵쿵!!
그렇게 아크 드래곤의 폭격 지점으로 다가간 순간.
한순간에 땅을 크게 박차면서 공중으로 크게 날아올랐다.
녀석이 점처럼 높게 날아오르고.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마지막 순간.
두 팔을 지상으로 크게 내질렀다.
“찢어 버려!”
그러자 타이탄이 들고 있던.
거대한 하나의 창이 대기를 가르면서 동시에.
아크 드래곤의 네 장의 반투명한 날개를 그대로 찢고 들어갔다.
콰지직!!
그렇게 날개를 찢고 들어간.
커다란 창의 앞에 달린 건 바로.
아크 드래곤의.
부위 파괴된 뿔이었다.
“크에에엑!!”
어디 네 뿔에 네가 한 번 당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