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화 아크 드래곤 몰이 (10)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비공정이 소환되더니 이내 지상을 향해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방에서 뿜어내는 성벽 방어포의 포화 속으로 그 거대한 선체를 감추어 버렸다.
정확히는 갑판과 창고에 폭탄을 가득 싣고 불덩이로 뛰어드는 셈이랄까.
그리고 이어지는 귀가 멍멍해지는 폭발음의 향연.
쿠아앙!!
콰콰콰쾅!!
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그 폭발은 크기를 더 키워 나갔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 눈이 멀 정도의 폭발 속에서 크리티컬이 수백, 수천 번은 연달아 뜨고 있지 않을까.
“크에에엑!!”
동시에 아크 드래곤에게서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포화 속에서 연이어 터지는 폭발이란.
아크 드래곤에게는 재앙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여기에서만 끝나지도 않았다.
내가 소환한 비공정이 폭발 속으로 떨어져 터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재중이 형이 떨어뜨린 비공정이 시커먼 그을음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은 지저로 녹아들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콰아앙!!
콰콰콰쾅!!
이번에도 이어지는 수도 없이 들려오는 폭발음과 함께 대지를 들썩이는 충격파가 동시에 따라왔다.
“오우, 잘 터지는데?”
재중이 형은 그 광경을 신나하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봤다.
자신이 떨어뜨린 저 비공정 한 대의 값이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서.
아니지.
그다지 관심조차 없을 것 같은데?
지금도 연이어 다른 비공정을 소환해내는 걸 보면.
전혀 아까워 보이는 눈치도 아니었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크에에엑!!”
한 척의 비공정이 떨어질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지상이 쿵쿵 울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미 시커멓게 변한 폭발 속에서 아크 드래곤의 비명만이 녀석이 아직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돈이 샤르르 녹는다는 표현은.
지금 해야 하는 말인 것 같다.
그야말로 저 포화 속에서 한 척의 비공정이 그대로 산화되어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 작업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눈 먼 돈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쓰는 일은 다음에는 쉽게 오지 않을 테니.
지금 팍팍 써봐야겠다.
모로 가도.
제국만 지키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뒷일은.
얼굴도 모르는 그 황녀가 알아서 하겠지.
【 비공정 소환! 】
또다시 한 척의 비공정이 소환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자 한 번 더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크에에엑!!”
음.
정말 아주 잠깐이긴 한데.
아크 드래곤의 네 날개가 펄럭였던 것 같기도 했다.
“형, 저 녀석 아직도 안 뻗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방어가 단단한데?”
그 말을 하더니 재중이 형이 다시 한 번 비공정을 소환해냈다.
“어디 보자. 이번엔 어디 나라 비공정인가?”
마치 비공정의 국기를 총평이라도 하듯.
무심결에 한 번 흘깃 보고는 그다지 관심 없다는 듯 그대로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 비공정 소환! 】
이어지는 자유 낙하.
그리고 또 한 번의 대폭발.
콰아아앙!!
콰콰콰쾅!!
나도 그에 질세라 다시 한 번 비공정을 꺼내들었다.
【 비공정 소환! 】
슈아아악!
바람을 가르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비공정을 멍하게 바라본 뒤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이번에 몇 발째죠?”
마치 한 발의 포탄을 세듯이 말하는 모습에 재중이 형이 킬킬거리며 웃으며 대답했다.
“여섯 발째네.”
“음. 그럼 대략 저기쯤 되는 구역 하나는 날아간 셈이겠네요.”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상업 지구를 가리키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대충 그 정도 되려나?”
말이 한 구역이지.
에센시아 제국을 구성하는 한 지역이 날아간 셈이나 다름없었다.
“슬슬 말리러 오려나요?”
“누가?”
“황녀요.”
이렇게 막 써대고 있긴 한데.
사실 아주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재중이 형은 손을 휘적거리면서 괜찮다는 듯 말했다.
“황녀가 저 비공정 안에 들어있는 게 뭔지 어떻게 알겠어?”
“흐음. 하긴 그렇네요.”
성유와 정령탄을 빽빽하게 채운 비공정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비공정일 뿐이다.
“그리고 비공정이야 저렇게 터지고 나면 증거도 안 남는데.”
재중이 형 말대로 비공정이 지상으로 낙하해 터지면서 완전하게 산산조각이 나는 중이었다.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증거조차 찾아볼 수 없을 터.
“통제는 잘 되고 있겠죠?”
딱 하나의 문제.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작업은.
최소한 다른 나라의 NPC들이 보면 안 되는 일이었다.
과연 누가 자신의 비공정들이 불쑤시개로 쓰이고 있는 걸 납득할 수 있을까.
“비에른 자작이 알아서 하겠지. 그 녀석도 이 일에 사활을 걸었을 테니.”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비에른 자작이 손수 다른 나라의 고장난 비공정들을 회수해 온 상태였다.
제국의 비공정들도 있긴 하겠지만.
비율로 보면 타국의 비공정들도 만만치 않을 터.
지금 우리가 떨어뜨린 비공정들의 대부분도 타국의 비공정들이었다.
중간에 어떤 방법으로 회수해 왔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무튼 비에른 자작 역시도 자기 목을 걸고 싸우는 중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에른 자작은 이 모습을 타국에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상황 통제를 하는 중일 테고.
흘깃 멀리 시선을 바라보자 저 멀리서부터 에센시아 제국의 병사들이 블록을 짜고 외부에서 인원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잘하고 있네요.”
비에른 자작의 군사 통제력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물론 황녀에게 작전의 통제권을 일임받았을 테니 가능했겠지만.
저것도 군 통솔 능력이 부족하면 어딘가는 삐걱이게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비에른 자작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했다.
“어려도 영웅은 영웅이야. 그렇지?”
“네, 확실히.”
상황만 주어진다면.
최고의 위력을 보여 준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의 성향과 맞는 전투 상황일 때는 더욱.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됐지. 현 제국 최고의 실세들을 등에 업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다시 한 번 비공정을 떨어뜨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이어지는 폭발에 나 역시 새로운 비공정을 꺼내들려고 하는데.
계속 들려오던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재중이 형도 그걸 눈치채고는 다시 웃었다.
“호오. 이 정도는 해야 강제로 쓰러진다 이거지?”
“죽었을까요?”
폭발이 워낙 커서 그런지 단순히 시야만으로는 확인하기 힘들어 보였다.
“아니, 아직. 죽었으면 퀘스트가 완료됐을 거야.”
“흐음. 그렇네요.”
확실히 관련 퀘스트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정도의 돈질의 폭탄으로도 완전히 죽일 수 없다라…….
대체 옛 과거 시절에는 어떻게 이 녀석을 잡을 걸까 싶기도 하네.
아마 지금 상태는 과도한 대미지를 받아 강제로 다운이 된 모양이었다.
일단 녀석이 방어태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뚫어버린 정도의 화력을 냈다는 거려나.
전에 비공정 하나로 녀석을 다운 시킨 건.
그냥 녀석이 멋도 모르고 머리를 들이밀어서 가능했던 거다.
직격으로 터졌으니 다운이 된 거고.
지금은 몸을 웅크리고 보호를 하는 와중에도 화력으로 찍어 누른 셈이지.
최소한 녀석에게 이 방법이 통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잠시 내려갔다 오죠. 남은 비공정들도 리필 받을 겸.”
어차피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비공정 수를 넘어서 한 번은 더 채워야 한다.
그렇게 지상에 내려가는 동안 비에른 자작을 필두로 한 방어포의 포격은 계속 이어졌다.
“숫자가 늘었네?”
“아, 오셨습니까? 좀 전에 추가로 반대편 성벽에 있던 방어포도 도착했습니다.”
이 양반.
아주 제국의 성벽은 다 뜯어올 생각인가?
반대편이면 아크 드래곤이 침범했던 성벽과 달리 멀쩡했던 성벽까지 다 철거해온 셈이니까.
“다른 몬스터들은?”
성벽 방어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방어용이지.
“어차피 저 녀석을 여기서 못 잡으면 끝나지 않습니까.”
마치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모양새에 나와 재중이 형, 전사 형이 동시에 웃어 버렸다.
어째 우릴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젠 비공정을 넘겨주면서 불안해하는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뭐 이미 터질 만큼 터졌다는 거겠지.
여기서 좀 더 터져 봐야.
어차피 황녀에게 한 소리 듣는 건 똑같다.
“황녀는?”
“음, 사실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입 관리 잘해야 할 거야.”
말 한 마디에 자기 목숨 날아갈 판이라.
“다른 왕국 사람들은?”
“전부 통제 중입니다.”
“좋아.”
“사실 이미 대부분 피신한 상태라. 딱히 통제라 할 것도 없지만요.”
“그런가?”
말이 그렇다는 건 저 비공정들도 결국 피난길에 미처 가져가지 못해서 그냥 버리고 갔다는 말이 된다.
“그럼 줍는 사람이 임자지?”
“당연합니다.”
“그럼 걱정 없네. 어차피 버리고 간 거. 잘 써준다고 해.”
“아, 그리고 가급적…… 제국의 비공정은 남겨주시는 게…….”
“고려해 보지.”
여유가 남는다면 말이야.
우선순위를 두자면 왕국의 비공정을 터트리는 게 맞다.
그래야 나중에 비에른 자작도 할 말이 생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황녀에게.
“포격은 계속하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저 녀석은 잡아둘 테니까.”
이젠 확실히 확신이 서는지 비에른 자작의 눈빛에 믿음이 감돌았다.
《 에센시아 제국 비에른 자작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그래.
이렇게만 가자.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자세히 보니 다른 왕국의 휘장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노발대발하면서 외치는 걸 보면.
아마 우리가 자신들의 비공정을 터트린 걸 본 보양이고.
“저건 뭐야?”
“아무래도 통제선 안쪽에서 생존해 있던 녀석 같습니다.”
바로 병사들이 가서 녀석을 잡자 녀석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우리 왕국의 비공정을……!”
보아하니 왕국에서도 제법 지위가 있는 듯한데.
입고 있는 옷이나 말하는 투로 볼 때 최소 귀족 작위는 되어 보인다.
슬쩍 비에른 자작을 바라보니 아무 표정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녀석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너냐? 여기 책임자가? 소속이 어디야?! 나 디베로 백작…….”
그런데 녀석 바로 앞에까지 간 비에른 자작이 갑자기 자신의 칼을 빼들더니 녀석의 목을 그 자리에서 바로 날려 버렸다.
심지어 아주 깔끔하게.
스아악!!
“커억!!”
마치 길가의 풀을 베듯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버리고는 비에른 자작이 다시 내게 와서 차분히 보고했다.
얼굴에 녀석이 튀긴 피를 묻히고선.
“못 볼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으음…….
나,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을 주운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