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5화 아크 드래곤 몰이 (9)
재중이 형이 정말 대단한 건.
아크 드래곤의 매서운 추격을 피하면서도.
일정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면.
당장 죽을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가르가의 이동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아크 드래곤의 움직임까지도 제어를 했다는 뜻이 되니까.
난이도만 따지자면 그냥 마구잡이로 도망 다니는 편이 훨씬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재중이 형은 아크 드래곤이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정확하게 오게 하기 위해.
그냥 단순하게 공격만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닌 게 아닌.
녀석을 끌고 다니며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 덕분에 지금.
아크 드래곤이 우리가 원하는 구역으로 머리를 떨구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새삼 대단한 것 같네요.”
“응?”
“떨어뜨리는 건 제가 했어도 형이 다 만들어 놨잖아요.”
“아. 부러우면 너도 연습 좀 하던지.”
재중이 형의 말에 그냥 웃음만 지었다.
그게 쉬우면 말도 안 하지.
몸을 컨트롤하는 것까지는 자신이 있는데 반해.
탈것은 직접 조작을 해야 하는 문제라.
감각이 좋으면 물론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 정도까지 완벽하게 운용을 하진 못한다.
그래서 일부러 재중이 형이 먼저 나서 아크 드래곤을 달고 날아다녔다.
탈것의 실력은 재중이 형이 우위라.
“네 녀석 덕분에 일을 줄였지.”
“아. 비공정요.”
“그래. 그렇게 미친 짓 할 놈은 세상에 너밖엔 없을 거다.”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요.”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 큰 웃음과 함께 말을 받았다.
“크큭. 아마 황녀가 지금쯤 비명을 지르고 있을걸?”
“어차피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뭘.”
사실 몇 마디 나눠 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황녀가 뭐든지 가져다 쓰라고 했으니까.
일단 책임은 없을 걸로…….
“만약 이번에 아크 드래곤을 못 잡으면…….”
“뭐 같이 목이 날아가겠죠.”
이미 우리가 들고 나온 물건만 해도 헉 소리가 나올만큼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비싼 것들만.
황녀가 주도권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내어주지 않았을 물건들이라.
당연히 이번 일을 실패하면.
여기 관여한 우리 입장은 꽤 좋지 못하게 될 것이다.
“흠. 목이 날아가면 꽤 볼만하겠는데? 그거 방송으로 내보낼까?”
“자기 목 아니라고 너무 하시네요. 왕자를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재밌다는 듯 배를 잡고 웃는 재중이 형에게 약간의 눈초리를 주자 알았다는 듯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를 지상으로 하강시켰다.
“그럼, 우리 왕자님 목이 안 날아가도록 열심히 해볼까나?”
하강을 하자 먼저 추락하던 아크 드래곤이 지상에 들이받는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마치 대지에 포탄이 떨어지듯.
거대한 중량을 가진 아크 드래곤이 그 육중한 몸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휘유. 제대로 떨어졌네. 전사한테 시작하라고 해.”
“네.”
<주호> 전사 형, 위치 잡았으면 시작하세요.
<방패전사> 잠시만. 약간 위치가 틀어져서 지금 옮기는 중이다.
음.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공중에서 아무리 위치를 잘 맞추고 떨어뜨린다고 해도.
추락 장소가 약간 어긋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 전사 형이 부랴부랴 지상의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크 드래곤이 떨어지는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가는 같이 터져 나갈 테니.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 움직여야 했고.
“우리가 내려가면 바로 볼 수 있겠네요.”
“오케이.”
그렇게 가르가 주니어가 계속 하강을 하자 어느 순간 지상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내고 중앙에 파묻혀 있는 아크 드래곤의 몸체와 그 주변을 포위하듯 포진하고 있는 무언가들이.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미소를 지었다.
“호오. 비에른 자작이 고생 꽤나 했겠어.”
“네, 그렇네요.”
지금 아크 드래곤을 빽빽이 둘러싸면서 포위한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센시아 제국의 외곽 성벽을 지키는 성벽 방어포였다.
일단 한 대 맞기만 해도 그 한 방으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는.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바로 피떡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정확하게 직격을 한다면 말이지.
아쉽게도 어지간히 밀집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이상은.
저 방어포에 멍청하게 맞아죽을 만큼 멍청한 몬스터는 없다고 봐야 했다.
한마디로 정말.
위협용 방어 무기인 셈이었다.
무엇보다 저 방어포는.
작은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병사나 유저가 상대하기 힘든.
거대한 몬스터들을 견제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뭐.
작은 녀석들을 맞추려고 사방으로 퍼지게 하는 포탄도 있긴 하겠지만.
당연하게도 이 경우에는 명중률이 올라가는 대신.
위력이 급격하게 약해진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방어포를 잘 쓰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차피 성벽이 튼튼하니까.
조무래기 몬스터들은 굳이 신경 쓰진 않는다.
어지간히 몰려오지 않으면 방어 NPC들이 직접 처리할 수도 있고.
한마디로.
지금 비에른 자작이 가져온 저 방어포는.
위력만 더럽게 강하지.
실제로는 맞추기가 힘든.
그런 물건이라는 거다.
<주호> 전사 형. 배치 끝났으면…….
<방패전사> 오케이. 시작한다.
곧 아크 드래곤을 포위한 외성벽 방어포들에서 일제히 강렬한 굉음이 뿜어내기 시작했다.
공중에 있는 우리까지 전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방어포가 일시에 한 장소를 향해 불을 뿜는 광경은.
그 자체로 화려함을 자랑했다.
동시에 아크 드래곤이 파묻혀 있던 장소는 눈을 뜨기 어려울 수준으로 폭발이 중첩되어 터져나갔다.
콰아앙!!
쿠아앙!!
콰콰쾅!!
“오. 제대론데?”
“네, 저러면 한 방도 빗나가지 않겠죠.”
이전에 재중이 형이 나르샤 누나에게 물어본 말이 있었다.
안 맞는 포를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질문에 나르샤 누나는 딱 한마디로 대답해 주었다.
바로 거리.
애초에 못 맞출 것 같으면.
아예 거리를 줄여 버리라는 것.
지금 이 포격 상황은.
바로 그 거리를 확 줄여 버렸다는 데 있었다.
무엇보다.
표적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거든.
이러면 눈 감도 쏴도 맞출 수 있게 된다.
저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성벽의 방어포가 말이지.
아크 드래곤도 저 방어포는 맞지 않고 피했었다.
워낙 아크 드래곤 자체가 빨라서 못 맞춘 것도 있겠지만.
굳이 녀석이 브레스까지 써가면서 성벽의 일부를 날려 버린 것도.
맞았을 경우에는 충분히 위협이 되니까.
그게 아니라면 방어포 따윈 무시하고 그냥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런 방어포가 지금은 무려 이백여 문이 넘어갔다.
사실 에센시아의 성벽의 길이는.
에센시아 제국이 넓은 만큼이나 충분히 길었다.
당연하게도 그 성벽을 지켜야 하는 방어포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다만.
한쪽 방향으로 한 번에 쏠 수 있는 방어포는 딱 몇 개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역시나 성벽의 길이 때문이다.
한 장소에만 방어포가 몰리면 다른 성벽은 당연히 허술해지게 될 테니.
물론 이 경우에는 비공정이 있긴 했다.
즉시 이동해 부족한 외성 방어를 도와주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포는 따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이 제집 드나들 듯 뚫릴게 아니라면.
그런 성벽 곳곳에 배치된 외성벽의 방어포가.
지금 이 장소에.
전부 다 이동되어 있었다.
방어포가 연신 불을 내뿜으면서 시야가 자욱하게 변하는 걸 지켜보며 외곽으로 내려섰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전사 형과 비에른 자작이 우리에게 달려왔고.
“고생하셨어요.”
“그래, 고생 좀 했지. 제 시간에 맞춘다고.”
전사 형이 씨익 웃자 나 역시 마주보며 웃었다.
성벽 방어포는 절대 크기가 작지 않다.
당연히 무게 역시 무겁고.
이걸 제때 원하는 장소로 옮기려면 엄청난 숫자의 NPC들이 동원됐을 터.
비에른 자작은 헬쓱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째, 그사이 많이 늙은 것 같은데?
그는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모든 외성벽 방어포를 걷어오라고 할 때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했습니다만.”
“지금은 아니지?”
“절대 아니죠.”
어떻게 보면 비에른 자작 입장에선.
정말 파격적인 행동을 한 셈이었다.
NPC들의 상식으로는 할 수 없는.
제국의 성벽 방어포를 다 떼어 오라고 하는 명령은 그야말로 미친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에른 자작은 내 명령을 이행했다.
보통 낮은 호감도 상태에서는 아무리 설득을 하려고 해도.
해당 NPC가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NPC의 행동 양식에 어긋나면.
무슨 짓을 해도 안 통한다.
그런데 비에른 자작은 그게 가능했다.
전술 운용 폭이 다른 NPC들의 그것보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고.
<불멸> 저러니까 영웅 NPC겠지.
<주호> 네. 덕분에 수고를 덜었네요.
비에른 자작이 열심히 성벽 방어포를 가져와준 덕분에 지금은 부족한 화력의 일부를 메울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이전에 우리가 쓴 방법들은.
가성비로 치면 거의 최악에 가까운 방법이라.
효과가 확실하지만.
그만큼 황녀와 비에른 자작.
그리고 우리 목이 처형대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아크 드래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최대한 체력을 깎아야 해.”
“네! 사수들에게 방어포가 녹아내릴 때까지 쏘라고 지시했습니다.”
“좋아.”
성벽 방어포도 쿨타임이 있어서 녹아내릴 때까지 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데 그때 재밌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아, 임시방편이지만. 방어포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비에른 자작 이거.
진짜 물건인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올지 미리 알았는지 방어포마다 냉기 마법사들을 대거 배치해 두고 미친 듯이 냉기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냉기 마법이 방어포의 포신을 식혀줘서 그런지 다음 포가 훨씬 빠르게 준비되는 듯했다.
처음부터 예상하고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
재중이 형도 그 모습엔 감탄을 빼놓지 않았고.
“호오. 제법이잖아?”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쿨타임을 줄여주는 방법 중에 하나이려나?
비에른 자작이 괜히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이러면 통상적인 포격보다 단기간에 훨씬 많은 포격을 쏟아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무리한 운용으로 방어포의 내구가 떨어지는 건 둘째치더라도.
어차피 전쟁에서 어떻게든 이기면 되는 일 아니겠나.
방어포야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지고 난 뒤에는 그 방어포를 고칠 장소조차 사라져 버린다.
그럴 거라면 무리해서 이기는 게 백번 낫다.
<주호> 우리가 뽑은 패가 최고였네요.
<불멸> 그러게. 생각 이상이야.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지 미소 지었다.
비에른 자작 덕분에 예상보다 아크 드래곤의 체력을 더 깎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그만큼 레이드 시간이 줄어든다는 걸 뜻했고.
앞으로 나갈 예산을 많이 아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황녀가 좋아하려나?
한참의 포격이 이어지는 와중에 뭔가를 봤는지 비에른 자작이 쓴웃음으로 외쳤다.
“저 괴물이 이런 포격을 맞고도 다시 일어나는군요. 지금의 성벽 방어포의 밀집 포격이면 어떤 존재라도 죽일 수 있을 텐데.”
정말 질린다는 표정.
비에른 자작은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이렇게 잡는 게 맞다.
성마 대전 중후반부에서야 나오는 녀석이니까.
지금의 저 치트 같은 방법으로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비에른 자작에게 말해 주었다.
“안 죽으면 죽을 때까지 패죠 뭐.”
“네?”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었다.
재중이 형 역시 가르가 주니어를 불러내고 동시에 날아오르자 어느새 깨어난 아크 드래곤이 괴성이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악!!
악에 바친 정도를 넘어.
울분을 토해내는 딱 그런 울음이었다.
“일어났네.”
“네, 그럼 다시 잠재우죠.”
그리고는 나와 재중이 형이 아크 드래곤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곧 둘 다 하나의 작업을 같이 했다.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 비공정 소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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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늘에서 비공정들이 동시에 아크 드래곤을 향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차마 셀 수도 없는 폭탄들을 갑판에 빼곡하게 채운 채로.
그렇게 떨어진 비공정들은.
포격 속으로 떨어져 거대한 폭발음을 일으켰다.
지금껏 한 번도 본적 없는.
화려하고도 압도적인 폭발과 함께.
“넌 임마, 절대 못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