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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54화 (1,042/1,404)

#1054화 아크 드래곤 몰이 (8)

비에른 자작은 아크 드래곤만 잡을 수 있다면 뭐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듯 두 팔을 벌려 내 의견을 경청했었다.

그런데 그런 비에른 자작도 난색을 표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비공정.

성유와 정령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놀라워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늬앙스로 흔쾌히 도와준다고 했었지 아마.

에센시아 제국의 창고를 다 뒤져서라도 가져다준다고.

귀족들의 사재를 다 털어서라도 모아온다고.

그런 비에른 자작도 비공정을 통째로 폭파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비공정을…….”

그런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해 주었지.

아주 천진난만한 표정과 함께.

“어차피 저거 못 날잖아.”

그러면서 손가락으로는 엔진이 부서져 폐기물처럼 성벽에 처박혀 있는 비공정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리고 아크 드래곤 때문에 중앙성이 날아가고 나면 다 쓸모없어지는 것 아닌가?”

“음. 후에 영웅님들이 돌아오고 나서 재건을 하면…….”

“그때까지 이 제국이 남아 있을 수는 있고?”

“그렇긴 하지만. 역시…….”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비에른 자작에게 한마디 했었다.

“비에른 자작은 생각보다 돈 많나봐? 나라 하나 다시 세울 생각이면?”

“아닙니다…….”

“싸게 먹히는 거라 생각해. 비공정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잖아. 아닌가?”

“으음. 그게……. 제국 쪽 비공정이 아니라서 문제가…….”

“이 판국에 우리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해?”

재중이 형 말은.

결국 비에른 자작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정확하게는 그 윗선인.

황녀가 알아서 할 거라는 뜻이기도 했고.

분명히 말했었지.

아크 드래곤만 잡아오면 무슨 지원이든 해준다고.

뭐 그렇다고 황녀에게 전부 부담시키는 건 나중을 위해서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우리의 밧줄이 되어줄 황녀를 너무 써먹으면 곤란하다.

잠시 망설이던 비에른 자작에게 한 가지 벗어날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어차피 아무도 몰라. 그리고 아크 드래곤한테 다 부서졌다고 하면 되잖아?”

“으음…….”

“비에른 자작. 너만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돼.”

잠시 고민하던 비에른 자작이 우리가 준 선택지를 갸늠하더니 이내 결심이 섰는지 두 눈을 반짝였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아주 좋은 자세네.”

비에른 자작은 후에 철벽으로 불리는 사내가 된다.

그건 무슨 짓을 하던지 간에 결국은 성벽을 지켜내는 방어의 1인자가 된다는 뜻이고.

뭐 결과적으로 에센시아 제국이 망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비에른 자작의 능력이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만약 비에른 자작이 아니었다면 훨씬 빠르게 성벽이 무너졌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비에른 자작이 옳은 선택지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에센시아 제국을 지켜낸다.

녀석의 신념과 일치하는 대목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영웅의 신념과 맞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어떤 영웅보다 완전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정을 한 뒤 이어지는 비에른 자작의 뜻밖의 말은 나를 놀라기 하기엔 충분했다.

“제국 내 존재하는 비공정들을 전부 모아오겠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으음…….”

비에른 자작.

이 녀석.

생각보다 좀 급발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옆에 재중이 형도 저 말에는 놀랐는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큭. 나 이 녀석 마음에 들려고 한다.”

“과해서 그렇죠.”

“뭐 어때? 의욕 넘치고 좋잖아.”

“하하…….”

설마하니 전부 다 구해온다고 할 줄은.

기껏 해야 부서져 가는 비공정 한두 대 제공받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지금의 비에른 자작은 그 스케일을 넘어서는 포부를 보여주었다.

마치 뒷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오로지 목적 하나만을 위해 달리는 전투마처럼.

그렇게 가슴을 탕탕 치면서 경건하게 외치는 비에른 자작의 모습.

“나중의 일은 나중에 처리하도록 하죠.”

“……어, 그래.”

어째 한 녀석의 인생길을 내가 막아버린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비에른 자작이 준비한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다.

다른 왕국의.

부서진 비공정.

비행 핵심 기관인 하르 엔진을 쓸 수 없어 당장 급한 수리가 요망되는.

전투에 투입될 수도 없는 반쪽짜리 비공정이.

내 손에 소환이 되어 아크 드래곤의 머리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

줄기차게 브레스를 뿜어대던 아크 드래곤에게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비공정이 떡 하니 나타났으니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그것도 자신의 시야 바로 정면에.

아크 드래곤이 억지로 브레스를 비틀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강력한 브레스들이 비공정의 옆 장갑을 때렸고 곧 그 위력에 걸맞게 비공정의 몸체를 녹이면서 뚫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공정의 옆을 뚫은 브레스가 비공정 선체를 관통하는 순간.

쿠아아앙!!

콰와아앙!!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리면서 브레스에 뚫린 비공정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비공정이 터지는 수준의 폭발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마치 소형 핵이라도 터지는 것 마냥.

맹렬하고 압도적인 폭발력이 비공정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아크 드래곤을 덮쳐갔다.

그 강렬한 폭발은 아크 드래곤의 신체가 완전히 덮어질 만큼이나 범위가 넓기도 했고.

단순히 비공정이 폭발해서는 절대 저런 폭발력이 나오지 않는다.

“크에에에엑!!”

그 귀가 먹을 것 같은 폭발음 속에서 이전에 그랜드 크로스를 머리에 맞을 때만큼이나 아크 드래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뭐 그 소리도 저 폭발음 속에 묻혀버렸으니.

그렇게 비공정이 소환되는 순간.

난 이미 그 자리를 뜬 상태였다.

굳이 저걸 보겠다고 같이 맞아줄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비공정을 던짐과 동시에 아퀼라스 주니어를 급하게 가속시켜 폭발의 범위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확하게는 폭발의 후폭풍에 피해를 보긴 했으나.

애초부터 튈 생각으로 빠져나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피해는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폭발이었기에 아퀼라스 주니어는 또 기절 상태로 돌입해버렸다.

재중이 형이 급하게 날아와 미아가 된 나를 잡아주었고.

가르가 주니어에 올라탄 뒤 환하게 웃어 보였다.

“성공했네요.”

“큭. 여전히 미친놈이라니까.”

아크 드래곤이 방금 터트린 비공정은 그냥 비공정이 아니었다.

비에른 자작에게 따로 부탁해서 제조해낸.

그야말로 특제 돈 폭탄이었다.

“비공정에다가 폭발물들을 잔뜩 실어놓고 터트린다라……. 그것도 아크 드래곤의 면전에서.”

“나쁘지 않죠?”

씨익 웃자 재중이 형 역시도 웃음 지었다.

과연 유저나 NPC들이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폭탄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간 공성전을 많이 봐왔지만.

한 개체가 다룰 수 있는 건 기껏 해봐야 방어포 하나 최대치다.

그것도 여럿이서 붙어서 다뤄야하는 경우도 많고.

비공정의 경우 하르포 같은 주포들이 있긴 한데.

이것 역시도 한 사람이 조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 정도가 다였다.

그 크기가 커진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진 않지.

그런 주포나 방어포를 줄기차게 맞고도 버티는 아크 드래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려면 뭐가 필요할까.

해서 생각했다.

아예.

한 번에 몰아서 쓰는 건 어떨까.

그럼 보통의 경우는 무리.

하지만 비공정이라면.

이 모든 단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었다.

비공정은 넓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재할 수 있는 폭발물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갑판과 선체 안의 적재 칸까지 모두 쓰면.

정말 엄청난 양의 폭발물을 적재가 가능하다.

개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그런 압도적인 수준의 폭발을.

이 비공정은 이끌어낼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

뭐.

이 미친짓은.

평소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이다.

이유는.

비공정 자체가 더럽게 비싸기 때문에.

작디작은 일반 비공정 하나 구하는데도 유저들은 등골이 휘어지는 수준이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거지.

하물며 크기가 커지는 순간.

비공정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된다.

물론 돈이 철철 넘친다면 충분히 소유할 순 있겠지만.

그만큼 비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비공정을 단순히 폭발 한 번을 위해 소모를 한다?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성유나 정령탄 같은 물건이 아무리 비싸다고는 하나.

비공정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뭐 같은 크기나 무게로 치면 성유나 정령탄이 훨씬 비싸겠지만.

한 대의 가격으로만 치면.

비공정이 훨씬 비싸다.

그런데 지금.

그런 비공정을 대놓고 눈앞에서 폭파시켜버렸다.

수많은 폭발물들을 안에 집어넣고서.

심지어 저 폭발물 속에는.

단순히 하르포나 방어포에 쓰이는 폭탄만 들어있는 게 아니었다.

그 중엔 성유와 정령탄까지도 섞여 있었다.

어쩌면 비공정보다 안에 들어간 폭발물들이 더 비쌀 수도 있을 지도.

비공정이 한 번에 적재할 수 있는 양이 많으니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돈 지랄의 끝판왕이라는 거지.

아마 저 한 번의 폭발로.

제국의 시가지 몇 개 구역이 날아간 것과 맞먹는 돈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정확히 모르기는 해도.

이런 식으로 비공정 몇 대만 더 폭파시키면.

제국의 재정이 바로 휘청일 것이다.

그렇게 들인 돈만큼이나.

위력은 확실했다.

그 어떤 공격을 해도 버텨내던 아크 드래곤이 지금은.

혀를 쭉 내밀고 정신을 잃은 채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네 장의 날개는 이미 넝마가 되어 곳곳이 찢겨진 상태였고.

단단한 비늘로 보호 받던 아크 드래곤의 신체는 비늘이 깨져나가고 피가 철철 흘러 피분수를 내뿜고 있었다.

특히 비공정 폭발을 정면에서 맞은 머리 쪽은 형편없이 구겨진 상태.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하게 당한 모습이었다.

“큭. 돈질의 승리인가?”

“뭐 그렇죠.”

국가 단위로 돈을 쓸 수 있어야만 나오는.

그야말로 돈질의 결정체.

영웅?

지금은 딱히 그런 존재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돈을 처바르면 저런 위력이 나오는데 말이야.

물론 이걸 몇 번이나 반복하면 당장 에센시아 제국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임시방편에 불과하긴 했다.

그럼에도.

이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일단은 내 돈이 아니니까.

그리고는 곧장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아크 드래곤 추락합니다.

<방패전사> 하하. 지상에서도 폭발쇼 잘 봤다. 아주 여기까지 울리던데?

워낙 방금의 폭발이 강해서 지상까지도 여파가 닿았던 모양이다.

무려 비공정을 가득 채운 폭발물들이 동시에 터진 거다.

지상에서는 우뢰라도 터진 건가 싶을 정도로 큰 폭발음이 들렸겠지.

어쩌면 이게 당연할 수도.

<주호> 낙하지점 잘 맞춰서 세팅해놨죠?

<방패전사> 아무렴. 누가 하는 일인데.

<주호> 이제 아크 드래곤은 못 날 겁니다.

이미 전사 형과 비에른 자작이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숨겨둔 카드를 꺼내들 때가 되었고.

“형, 그럼 다 잡은 물고기를 처리하러 가 보죠.”

아크 드래곤은.

오늘 여기서.

무조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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