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5화 에센시아 방어전 (1)
시체 부활 스킬이 시전되면서 용암 속에 잔해가 파묻혀 있던 타이탄에게서 스킬 특유의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리고 타이탄의 잔해 전체에서 붉은빛의 기운 역시 동시에 올라왔다.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그 기운들을 보고는 손을 꾹 쥐었다.
제발.
한 번에 되라.
통상 시체 부활은 어지간해서는 한 번에 성공한다.
그것도 나보다 약한 녀석일수록 더 쉬운 편이었고.
아니면 시전자의 지력이 높다거나.
혹은 마력이 충분할 때.
거기다 시전자가 시체보다 레벨이 더 높다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 중에 내게 부합하는 조건은…….
일단 레벨.
이건 타아탄에게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서 처참한 정도였다.
아마 일반적인 랭커들이라고 해도 타이탄보다는 낮을 텐데.
내 경우는 그보다도 훨씬 낮으니까.
만약 시체 부활에 실패를 하게 된다면 레벨이 원인일 확률이 아주 높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지력.
이건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이용하서 어떻게든 맞추기는 했는데.
거의 어지간한 마법사에 맞먹을 만한 지력 수준으로 올려놓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여유가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
커트라인에 맞췄다 뿐이지.
그게 남아넘친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딱.
타이탄에게 시체 부활을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지력.
그나마 마력은 상황이 나은 편이긴 한데.
네임드를 시체 부활로 일으켜 본 적이 없기에.
어느 정도 마력이 들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특히나 타이탄은 기존의 네임드를 훨씬 상회하는 레벨 대의 네임드일 것이다.
당연히 마력이 추가로 더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다른 조건이 다 되더라도.
마력이 부족해서 부활을 못 시키는 경우도 생기려나?
휴.
차라리 지금 상황을 고려해 보면.
그냥 챠밍을 데려오는 편이 훨씬 나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챠밍을 찾아서 왔다면.
에센시아 제국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
나와 재중이 형이 에센시아 제국의 방어전에서 벗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강제적으로 방어전에 참여하도록 시스템이 변경되었다.
그것도 단 몇 초 차이로.
우리 팀을 찾는다고 에센시아 제국 내를 돌아다녔다면 꼼짝 없이 지금 방어전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
당장 에센시아 제국의 준비된 전력이 제 구실을 못하는 마당에 우리가 나서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에센시아 제국을 바로 빠져나온 건 잘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덕분에 지금 여기서 타이탄의 잔해라도 볼 수 있는 거다.
혹시라도 시간을 끌려 늦었더라면.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나면 타이탄의 잔해 역시도 사라졌을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로 만들어 놓은 이 기회가 내겐 유일한 기회였다.
다소 스펙이 모자란다 한들.
이 조건으로 무조건 해내야 한다.
시체 부활을 시전해서 나온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들이 얽히고설키며 시체 부활 마법진 사이를 계속 줄타기하듯 오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내쪽으로 당겨오면.
성공.
하지만 반대로 마법진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 실패.
그럼 시체가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마법진이 깨져 버린다.
제발.
실패만 하지 마라.
그렇게 한동안 계속 줄타기를 하더니 어느 순간 기운들이 전부 마법진 사이로 스며들어가 없어지더니 마법진 역시도 그대로 깨져 버렸다.
《 시체 부활 스킬에 실패했습니다. 》
《 해당 시체의 랭크가 시전자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
《 시체 부활 시도 횟수가 (1/5) 남았습니다. 》
《 시체 부활 시도 획수가 모두 사라지면 시체가 소멸되고 다시 스킬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
하.
역시 어렵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멸> 어떻게 됐어?
<주호> 아. 실패했어요.
<불멸> 그놈 참. 쉽지 않네.
<주호> 네, 다시 해 봐야죠.
챠밍이었으면 아마 한 번에 됐을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임시방편은 임시방편인가.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력의 잔량을 살펴보았다.
흐음.
대략 두 번인가?
이번에 시도한 마력과 남은 마력을 비교해보면 대략 두 번 정도 더 시도할만큼의 마력이 남아있었다.
시체 부활 횟수가 4번 남아있지만.
어차피 네 번이나 시도할 수도 없었다.
후.
이번엔 돼야 할 텐데.
【 시체 부활! 】
다시 한 번 시도하자 이번에도 역시 타이탄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내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 시체 부활 스킬에 실패했습니다. 》
《 해당 시체의 랭크가 시전자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
《 시체 부활 시도 횟수가 (2/5) 남았습니다. 》
젠장.
역시 네임드는 네임드인가.
평범한 몬스터를 일으키는 것과는 차이가 심하게 났다.
<주호> 형, 이번에 못 일으키면 망해요.
<불멸> 마력이 부족해?
<주호> 네, 당장 마력 수급할 곳도 없으니까.
<불멸> 흐음. 골치 아프네. 일단 하는 데까진 해 봐.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다른 방법이라…….
나도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잠시 기다려도 말이 없자 그냥 시도하기로 했다.
더 기다린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 시체 부활! 】
내게 있는 마지막 방법.
그렇게 타이탄에게 시체 부활을 쓰고는 눈을 꼭 감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제발 되라.
간절하게 비는 사이.
마법진이 분주하게 일을 하면서 붉은 빛과 검은 빛이 오갔다.
그런데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 시체 부활 스킬에 실패했습니다. 》
《 해당 시체의 랭크가 시전자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
《 시체 부활 시도 횟수가 (3/5) 남았습니다. 》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
이번에도 실패냐?
보통 이럴 때 한 번은 떠주던데.
힘이 쭉 빠진 채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형, 실패했어요.
<불멸> 음. 잠시만 위쪽 봐봐.
그렇게 용암 속에서 위를 바라보다는데 뭔가가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내게 쏘아졌다.
용암을 확 뚫고 들어오는 하나의 창.
저건……?
그리고 용암을 완전히 찢듯이 뚫고 들어온 녀석이 타이탄의 몸에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주호> 형, 이건?
<불멸> 프로미넌스 잡아 봐.
재중이 형 말대로 바로 손을 뻗어 프로미넌스를 잡았다.
그러자 순간.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프로미넌스에 이런 기능이 있었던가?
<주호> 마력이 차요.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게 찬다.
원리를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의 이 용암과 관련 있으려나?
<불멸> 내 어시스트 어때?
<주호> 최고죠.
솔직히 두 번 더 한다고 타이탄이 벌떡 일어날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시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아예 해 보지도 못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마력을 채운 뒤 다시 한 번 타이탄의 잔해를 쳐다보았다.
남은 두 번 안에 된다면 좋겠는데.
이제 실패하면 어차피 타이탄의 잔해가 사라지니 더 이상은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시도를 하려는 찰나.
갑자기 르아 카르테에서 금속의 정령이 빠져나왔다.
응?
지금 왜?
르아 카르테에서 빠져나온 금속의 정령이 용암 속에서 막 덥다는 듯 손 부채질을 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더 해도 안 될 거야.”
“역시 그런가?”
그냥 감이랄까.
시체 부활을 세 번째 시도하면서 느낀 점은.
아예 타이탄이 미동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시체가 조금이라도 일어나는 어느 정도 반응은 나와 줘야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냥 시도하는 것조차 벅찬 느낌이니까.
빤히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안 하면 사라져.”
시간이 오버되면 타이탄의 잔해가 사라지는 건 똑같다.
이러나 저러나 내겐 똑같다는 거지.
“조금 도와줄까?”
“이걸?”
솔직히 금속의 정령의 말에는 깜짝 놀랐다.
아니.
애초에 시체 부활을 하는 데 금속의 정령이 도와줄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이 타이탄이 무슨 금속도 아닌…….
그 순간.
머리를 확 스쳐가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 녀석이 금속이야?”
“아니. 타이탄의 전부가 금속은 아니야.”
하긴.
금속이면 시체 부활 자체가 안 될 텐데.
물어보면서도 나도 좀 웃긴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이 마음에 걸렸다.
“타이탄의 전부가 금속이 아니라는 말은…….”
“응. 타이탄의 코어는 금속이야! 정확하게는 금속의 일종인 최상위 정령석! 타이탄이 움직이긴 위해서는 정령석이 필요해.”
순간 인벤에 있는 아이템 하나가 생각났다.
아까 열심히 타이탄에게서 캤던 부위 파괴 템 중 하나.
설마.
내가 캔 게 최상위 정령석이었나?
다시 인벤에 손을 넣어 『 타이탄의 핵 』을 꺼내들었다.
“이거 말이지?”
“응! 응! 정령석!”
아주 반갑다는 듯 정령석 주위를 날아다니는 걸 보니 확실한 듯 했다.
그런데 이걸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단순히 아이템 하나 있다고 죽은 녀석을 살리진 못할 텐데.
시체 부활로 안 된다면 솔직히 이 녀석을 되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때 금속의 정령이 『 타이탄의 핵 』에 날아가 두 손을 가져다 대었다.
《 『 타이탄의 핵 』에 금속의 정령왕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
《 『 타이탄의 핵 』이 활성화 됩니다. 》
《 『 타이탄의 핵 』으로 타이탄을 가동할 수 있습니다. 》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줄은.
단순히 『 타이탄의 핵 』이 아이템을 만드는 재료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 『 타이탄의 핵 』을 쓰는 방법 자체가 달랐던 모양이다.
만약 금속의 정령이 없었다면.
아예 몰랐을.
진짜 사용법.
그렇게 『 타이탄의 핵 』에 축복을 걸어준 금속의 정령이 지친다는 듯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타이탄이 너무 상해서 아마 두 번은 못 움직일 거야.”
“그럼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거지?”
“응. 딱 한 번.”
솔직히 딱 한 번도 감지덕지지.
그리고 시체 부활이 안 먹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이 녀석은 시체 부활로 살릴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남은 횟수를 다 시도해도 부활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움이 됐어?”
“그래. 덕분에 살았어. 꼼짝 없이 망했나 했거든.”
내가 칭찬을 하자 금속의 정령이 기쁜 기색을 애써 숨기려는 듯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정말 살았네.
<주호> 형, 시체 부활이 안 돼요.
<불멸> 뭐? 프로미넌스로도 안 돼?
<주호> 아뇨. 그게 아니라 애초에 타이탄이 시체 부활로 일으킬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나 봐요. 금속의 정령이 알려줬어요. 정령석으로 일으킨다고.
<불멸> 호오. 확실히 비싼 정령은 다르네. 그래서 이젠 되는 거냐?
<주호> 일단 시도해 볼게요.
이번에는 시체 부활을 시도하지 않았다.
반대로 금속 정령왕의 축복이 걸린 『 타이탄의 핵 』을 다시 타이탄의 원래 위치에 집어넣었다.
파아앗!!!
순간 코어에서 엄청난 빛과 풍압이 내뿜어지면서 용암을 바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타이탄의 동체를 타고 수도 업이 많은 빛의 길이 뻗어나갔다.
마치 지도를 그려나가듯 코어에서 쭉 뻗어나가는 빛들의 향연에 눈을 떼지 못 했다.
그리고 나오는 시스템 메시지.
《 고대 정령 병기 『 타이탄 』이 활성화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