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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36화 (1,024/1,404)

#1036화 에센시아 방어전 (2)

……?

고대 정령 병기?

쿠구궁!

딛고 있던 바닥을 타고 전해져 오는 강렬한 지진의 파동과 함께 타이탄의 거대한 동체가 곧 용암을 통째로 가르며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때 봤던 게 맞다.

아크 드래곤에 필적할 만큼의 거대함.

대략적인 크기는 아마 황실 비공정을 수직으로 세워뒀을 때의 길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작긴 한데.

그럼에도 땅에서 내가 올려다보기에는 충분히 큰 덩치를 자랑했다.

크어어어!

거대한 골렘 형태의 타이탄이 곧 완전히 용암을 뒤엎고 허리를 세워 올렸다.

묘한 금속 재질이 섞인 듯한 신체와 함께 가슴 중앙의 푸른빛의 코어를 타고 전신으로 물결치듯 흐르는 황금색의 라인들.

그걸 보는 순간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정말 비싸겠네…….

그냥 팔 하나 떼어다가 팔아도 돈이 될 것 같…….

아니지.

지금 녀석의 품평회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 주위를 날아다니던 금속의 정령이 물어왔다.

“와, 움직인다!”

그런 금속의 정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도 움직일 줄은 몰랐던 거냐…….

하긴.

보니까 금속의 정령이 축복을 내려준 푸른빛의 코어와 전신으로 흐르는 황금색 라인들만 정상적이지 나머지 부분은 죄다 고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설마 이런 형편없는 동체로 아크 드래곤과 싸운 거였나?

아니면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아크 드래곤에게 져서 박살난 거려나?

뭐 어느 쪽이 되었든.

현재 이 녀석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까 금속의 정령이 한 번밖에 못 쓴다는 말을 처음에 했겠지.

용암이 타이탄의 덩치에 완전히 밀려나가자 몸을 억누르고 있던 압박이 모두 사라졌다.

곧 재중이 형도 내 쪽으로 달려왔다.

“휘유. 멋진데?”

그 눈빛이 마치 거대한 장난감을 보듯 신나하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가지고 싶어요?”

“어. 이거 끌고 다니면 폼 나지 않겠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도 긍정의 끄덕임을 했다.

이런 녀석을 끌고 사람들 앞에 나서면 그날로 난리가 나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이 녀석은 1회용이었다.

그것도 시간 한정이 있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타이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마 오래 쓰진 못할 거예요.”

“확실히 그렇게 보이네.”

누가 봐도 고철이라.

그렇다고 해도.

이 덩치에서 오는 오오라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출력 역시.

비공정의 그것과 맞먹을 덩치니까.

단순히 치고받기만 해도 나쁘지 않지.

부서지기 전까지는 덩치만큼이나 잘 싸워주길 바라야 하나.

곧 손을 뻗어 타이탄의 다리에 가져다 대었다.

“고대 정령 병기라고 하네요. 이 타이탄이.”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묘한 눈빛으로 다시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얘랑 연관 있는 거냐?”

“네, 별이 타이탄을 일으켜세웠어요.”

“호오. 역시 고급 정령은 다르네.”

부럽다는 듯 재중이 형이 금속의 정령을 가리키자 금속의 정령의 콧대가 잔뜩 올라가 신난 듯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알아봐줘서 고맙다 뭐 그런 건가.

재중이 형에게 입고 있던 발록 풀 플레이트를 벗어 프로미넌스와 함께 다시 돌려주었다.

“잘 썼어요.”

차려입은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딱히 도움이 된 것 같진 않다만. 이걸 일으켜 세운 건 저 녀석이니.”

그리곤 다시 타이탄에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해야 할 것부터 처리해 보자고.”

재중이 형 말대로 고대 정령 병기라는 게 왜 이런 곳에 있고 저 아크 드래곤과 싸우고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금속의 정령도 딱히 모르는 눈치고.

만약 알고 있었으면 진작 알려주었을 텐데.

그건 아쉬운 일이지만 지금은 이 녀석을 써먹는 게 먼저다.

“가죠. 저쪽도 아마 쉽진 않을 듯 하니.”

저 멀리 있는 에센시아 제국성.

그곳에서는 현재 아크 드래곤을 상대로 한 방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챠밍이나 이쁜소녀가 상황을 계속 알려줘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메시지를 들어보면 상황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방어벽이 깨졌다던가.

에센시아 성벽의 곳곳이 무너지고.

군대와 함께 영웅들이 나서서 아크 드래곤을 막아서는 것까지.

병력이 대부분 살아있는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아크 드래곤에게 이렇다 할 피해를 주고 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녀석에게 결정적으로 적용할 유효타가 부족하달까.

비공정도 대부분 떨어져 내렸고.

제국의 가장 큰 비공정들은 아직 날아다니는 듯 하지만.

이건 아크 드래곤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포대 라인을 따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백 대의 함포수 하며.

거대한 만큼이나 비공정의 장갑 자체가 튼튼하기도 할 테니.

그나마 그 다섯 대의 거대한 비공정들이 있기에 아크 드래곤이 마음대로 설치지 못하는 거겠지.

적어도 그 비공정들이 추락하기 전에는…….

재중이 형이 날 보며 물었다.

“이 녀석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아. 저도 잘 모르죠. 그냥 명령하면 되려나?”

“혹시 타는 것 아냐? 그 있잖아. 로봇 같은 거. 안에 타고 다니잖아.”

“막 움직이면 따라하는 것 아니에요?”

고개를 돌려 금속의 정령을 보자 우리 둘을 한심하다는 듯 금속의 정령이 말했다.

“아냐! 타이탄은 혼자 알아서 움직여!”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 죽기 전에 로봇 조종 좀 해보나 했더니만. 로망이 사라졌어.”

이 형 의외로 그런 걸 좋아했던가.

다시 금속의 정령 보고 물었다.

“그럼 명령하면 돼?”

“응. 나머지는 알아서 해.”

“흐음. 그렇단 말이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되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알아서 움직이다가 아크 드래곤한테 터져서 이 모양이 된 거잖아.”

내 말에 금속의 정령도 할 말이 없는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재중이 형도 거들었다.

“그렇긴 하지. 애초에 성능이 모자란 건 둘째 치고. 아니 그러니까 더 문제야. 스펙이 부족하면 실력으로 메꿔야 하는데 말이지.”

앞에 있는 타이탄을 두고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크 드래곤에게 쥐어터진 건 팩트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덤벼봐야.

답이 없을 게 뻔했다.

뭐 이번에는 우리 쪽에 에센시아 제국이라는 패가 더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거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이야기였다.

최소한.

이 녀석의 제어권을 나나 재중이 형이 쥐고 있어야…….

그나마 게임이 될 것이다.

“가능해?”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되는지 안 되는지.

금속의 정령에게 묻자 금속의 정령이 타이탄을 빤히 바라보고 뭐라고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타이탄에서도 알 수 없는 코어의 반짝임이 보였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둘은 통신이 되는 것 같은데.

잠시 뭔가를 계속 주고 받던 금속의 정령이 졌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안 된대. 자격이 부족하다고.”

그러면서 미안한지 몸을 배배 꼬으며 재중이 형 뒤로 도망갔다.

“자격?”

“응. 자신을 만족할 만큼의 자격이 되진 않는다나 뭐라나.”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이거 아마 레벨을 말하는 거겠죠?”

“어. 넌 레벨이 낮으니까. 타이탄이 보기에는 무시할 만도 할 것 같은데.”

이거 참.

레벨이 이런 데서 발목을 잡나?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럼 형이 할래요?”

나보다는 일단 레벨이 높기도 하고.

그러자 다시 타이탄의 코어가 반짝였다.

금속의 정령이 그걸 대신 말해 주었고.

“안 된데.”

아.

이 녀석 진짜 까다롭네.

재중이 형도 안 된다면.

어차피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형, 그냥 쓰죠.”

“그러게. 아쉬운 대로 그냥 치고받아야지.”

자동으로 싸우는 건.

타이탄이 멍청하게 싸우지만 않으면 보조하기에 따라 해볼 만도 할 터.

그렇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꺼내며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었다.

【 아퀼라스 주니어 소환! 】

프로미넌스를 쓰기 위해 두 검을 넣어둔 상태여서 꺼냈는데 순간 타아탄에게서 격한 반응이 일어났다.

쿠구궁!!

응?

뭐지?

그때 갑자기 타이탄이 거대한 덩치를 숙이며 한쪽 무릎을 내게 꿇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르아 카르테에게 연신 푸른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마치 녀석의 푸른빛 코어에 반응이라도 하듯.

재중이 형도 신기한 듯 그 모습을 바라봤다.

“호오. 아무래도 그 녀석이 키인 것 같은데?”

“정말 그런가 보네요.”

일으켜세운 것과 달리 말을 하나도 안 들을 것 같았던 녀석이.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자마자 바로 저 자세로 숙여 버렸다.

정령신의 무기.

이게 이런 곳에서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르아 카르테가 일종의 신분 보증서랄까.

물론 내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금속의 정령도 다시 웃음을 지으면서 감탄했다.

“맞아! 정령신의 가호! 르아 카르테가 있으면 돼.”

좋아하는 금속의 정령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녀석을 조작할 수 있는 거야?”

“응응. 다 해준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가장 큰 관문이 르아 카르테 덕분에 쉽게 넘어갔다.

그 순간.

타이탄의 푸른빛 코어가 크게 일렁이며 거세게 돌아갔다.

동시에 르아 카르테 역시도 강렬한 푸른빛을 내뿜었고.

그리고 그 푸른빛이 퍼져 나와 마치 내 신체에 입혀지듯이 내 전신을 감쌌다.

아주 얇은 막이랄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의.

그와 함께 내 옆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타이탄과 동조가 시작됩니다. 》

《 시전자의 싱크로 수치를 테스트합니다. 》

.

.

《 시전자의 감각 수치가 월등히 높습니다. 》

《 타이탄이 시전자의 움직임에 45% 동조합니다. 》

45%?

“형, 얘가 45% 동조한다는데요?”

“그래?”

“네, 완전히 따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네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너 완전 날아다니잖아. 그거 곧장 따라 했다가 쟤 관절 다 날아갈걸?”

흐음.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적당한 수준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거네요.”

“어, 평소대로 막 움직였다가는 그냥 박살 난다는 거지.”

“뭐. 그것만 해도 나쁘지 않죠.”

아무튼 중요한 건.

내 움직임을 따라 한다는 거다.

딱 한 번에 한해서.

그렇다면…….

아크 드래곤을 에센시아 제국에서 몰아내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아니다.

그 녀석을 오히려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꽤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곧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형, 혹시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어? 흐음... 글쎄. 그건 꽤 어려울 것 같은데. 당장 연결되어 있는 고리도 없고 말이야.”

재중이 형 말이 맞다.

우린 에센시아 제국에 어떤 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방법도.

혹은 지원 받을 방법 역시.

최소한 뭔가 하나의 연결 고리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때 재중이 형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하려고 하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네?”

“큭. 너 잘 하는 거 있잖아.”

음?

그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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