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 고대 마수의 탑 (8)
솔직히 아까 재중이 형이 말했던 것처럼.
그냥 르아 카르테의 포식을 써버리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애초에 르아 카르테에 흡수되지 않을 무기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지막까지 르아 카르테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르아 카르테로 포식을 했을 경우엔.
옵션을 딱 두 가지밖에는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복사를 했을 때 온전히 옵션을 다 가져올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말이지.
저 마검에 붙어 있는 옵션들은 최소 못 해도 대여섯 가지는 그냥 넘어갈 것이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거고.
특히 금속의 정령이 말해 줬던 피와 관련된 스킬들이 몇 가지 있을 텐데.
그 옵션 중에 뭔가 하나만 빠지더라도.
바로 반쪽짜리 무기로 전락하게 된다.
그나마 핵심 옵션을 운 좋게 가져왔을 경우에는 괜찮겠지만.
재수가 없어 이상한 옵션만 가져오게 되면?
그냥 이 마검을 날려먹는 것과 다름없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웨폰 카피만을 시도했었다.
르아 카르테라는 확실히 패가 있음에도.
하지만 이 마검 녀석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예전에 테르타로스를 얻을 때도 그랬지만.
이 마검 역시도 소유자에게 힘든 시험을 주었다.
체력을 무식하게 잡아먹는 마검을 쥐고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마도 그런 시험의 일종이겠지.
보통의 경우에는.
현재 아무도 이 마검을 상대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체력이 퍼센트로 빠져나가는데 그걸 해결할 만한 방법은 아직 없으니까.
나중에 가면 또 모르겠지만.
마검 자체를 아무도 못 쓰게끔 만들어놓진 않았을 테니.
아마 시간이 지나 뭔가의 아이템이나 스킬로 이 미친 체력 강탈을 해결할 수 있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이템과 스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웨폰 카피로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험은.
일단은 녀석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도 역시 마지막 패를 꺼냈다.
“르아 카르테. 이 새끼 먹어치워!”
안 되는 걸 억지로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좀 확률적으로 불안한 길이긴 해도.
아예 실패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내가 명령을 하자 바로 르아 카르테의 검신에서 특유의 기운들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의 줄기는 곧 마검으로 추정되는 보랏빛 수정구를 감싸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마검인 수정구에서 거친 혈향이 퍼져 나오더니 짙은 보랏빛의 결계를 수정구 근처에 만들어 냈다.
저건 포식되는 걸 방어하려는 거려나?
하지만 녀석의 방어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르아 카르테에서 뻗어 나온 빛이 수정구의 결계를 통째로 뜯어먹으면서 순식간에 분해시켜 버렸다.
그러자 내가 들고 있던 수정구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이제 아는 거다.
르아 카르테가 얼마나 독한 놈인지를.
그리고 자신의 목을 물어뜯을 만한 녀석인 것까지도.
순간 수정구가 강렬한 보랏빛을 내더니 이내 빛이 사라진 장소에 하나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잡이에서부터 검신까지 모두 정체 모를 검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 온전한 검의 형태.
그리고 검은 검신을 가로질러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의 무늬들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특이한 건.
손잡이와 검신 사이에 붉은빛을 내는 크리스탈 모습을 한 거대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것도 숨을 쉬는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아마 이게 이 마검의 핵심인 모양이었다.
혹시 그간 복사가 되지 않았던 게 이런 이유일 수도 있었고.
이 검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다.
마검의 본체 정보조차 없는데 처음부터 복사는 불가능했을지도.
순간 마검이 크게 진동을 하면서 내 손아귀를 울렸다.
응?
설마 이 녀석……?
지금 모습은 한 손에 마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르아 카르테를 겹쳐 올리려는 중이었다.
당연히 마검이 반항하는 거고.
포식에 먹히면 끝장나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부르르 떨던 녀석에게서 변화가 생긴 건 그때였다.
이어지는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
《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체력을 강탈을 중단합니다. 》
녀석이 체력 강탈을 그만두더니 이내 내 손을 파고들었던 보랏빛의 기운을 전부 걷어 들여 중앙의 크리스탈로 회수했다.
그 순간 입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건 신호다.
휴전을 원하는 딱 그런 제스처.
아마 공격하던 걸 걷어냈으니 나도 그만두라는 거겠지.
르아 카르테를 완전히 마검의 검신에 겹치기 전에 마검을 보고 물었다.
“휴전이라도 하자는 거냐?”
그런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마검의 보석에서 빨간 빛을 연신 내뿜었다.
주변을 날아다니던 금속의 정령도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 크게 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렇대.”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긴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금속의 정령을 통해 완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소멸되긴 또 싫은가 보네.”
한 손에 쥐어진 마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이전과는 다르게 두 손 두 발 다 든 느낌.
하긴.
이 녀석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르아 카르테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천적이랄까.
똑같이 흡수라는 개념을 쓰지만.
마검은 르아 카르테를 잡아먹을 수 없는 반면.
르아 카르테는 다르다.
그야말로 무기들의 천척이지.
일단은 녀석이 더 이상의 체력 강탈을 하지 않자 물약과 체력 회복으로 다시 체력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안전 수치까지 올라가자 슬쩍 마검에게 물었다.
여기서부터는 반 협박, 반 회유를 섞어서 간다.
“지금부터 맞으면 두 번 반짝이고, 틀리면 한 번만 반짝이면 돼.”
기다렸다는 듯 내 말에 녀석의 붉은 보석이 두 번 연속 반짝였다.
이제 최소한 대화는 가능하다 이거지?
르아 카르테로 녀석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라.
녀석도 더 이상 난리를 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녀석이 이렇게 나와 주는 게.
내 쪽에서는 훨씬 이득이었다.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입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날 죽이려던 녀석을 이렇게 들고 있는 게 영 찝찝하단 말이지.”
그 말과 함께 마검을 바닥에 슥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녀석을 들어올렸던 그곳에 그대로.
당연히 녀석과 떨어짐으로 해서 체력 강탈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이런 녀석인 걸 알았다면 애초에 잡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자. 내게도 그렇고. 네게도 선택지가 몇 개 있어.”
손가락을 몇 개 들어올린 뒤 마검에게 말했다.
“첫째는 내가 여기서 널 그대로 놔두고 나간다.”
그 말에 아주 잠시 마검의 검신이 떨리는 게 보였다.
아마 당황한 거려나?
“사실 난 딱히 너 말고도 쓸 녀석들이 차고 넘쳐서 말이야. 지금 줄 서 있는 녀석들 모두 좋다고.”
이건 사실이다.
우리 팀이 모아주고 있는 무기들도 있을뿐더러.
나 역시 다른 비밀의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꼭 이 마검이 아니더라도.
내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또 아니란 말이야.
“그럼 넌 여기 박혀서 또 몇 십 년은 세월을 보내야겠지?”
나중에.
그것도 정말 나중에.
유저들 중 누군가가 마왕 바이카르를 잡거나, 어떻게 사이가 좋아져서 이 창고에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자는 이 비밀 창고에 마검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 할 테고.
후자는 어떻게 마왕 바이카르가 알려줘서 여기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얼마나 길까.
나야 중간 과정 다 뛰어넘고 온 거라지만.
다른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왕과 친분은커녕 당장 칼부림 안 하면 다행이지.
다른 말로 당분간은 유저들이 찾고 싶어도 못 찾는다는 거다.
마왕 바이카르가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이곳에 유저를 들여보내지 않을 테니.
그건 곧 이 마검 녀석도 여기 쭉 눌러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에 마검이 다시 부르르 떨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에게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뜨는 걸 봐서는 꽤 오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자력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는.
누군가 미친 녀석이 마검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갈 일 자체가 없지.
“자, 그럼 여기서 두 번째.”
잠시 뜸을 들인 뒤 마검에게 말했다.
“너 배고프지 않아?”
내 물음에 마검이 바로 웅웅 떨렸다.
“어차피 날 먹을 수 없다는 건 알았을 테고.”
내게 문제가 생기면.
이 녀석도 같이 소멸이다.
르아 카르테를 흔들자 녀석의 보석이 바쁘게 깜박였다.
싫다는 걸 아주 역력하게 보여주네.
“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조만간 여길 나가야 하거든. 여기서 선택지.”
선택지라는 말에 마검이 다시 반짝였다.
“나갈 때 얌전하게 날 따라 이곳을 나간다. 그게 아니면. 평생 여기 박혀 있던가.”
나가고 싶으면.
너도 협조하라고.
르아 카르테가 있긴 해도.
녀석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꽤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격한 전투 중에 갑자기 체력을 뺏어간다든지.
뒤통수 맞기에는 최적의 상황.
이걸 방지하려면 녀석이 계속 협조적으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따라 나가자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럼 녀석이 혹할 만한 먹이를 물려주는 게 맞다.
“너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닐 거다. 난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녀석들이 너무 많거든.”
잠시 녀석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아직까지는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자.
여기서 녀석이 제일 좋아할 만한 것.
“네 허기를 내가 만족시켜 주지.”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꽤 약해진 상태인데 너도 강해지는 건 좋잖아? 피를 많이 먹어서.”
솔직히 마신의 무기를 이런 식으로 얻는 건 좀 사기에 가까운 방법이긴 해도.
녀석의 상태와.
내 상황을 연결해 보면.
절대 서로에게 나쁜 환경이 아니었다.
녀석은 녀석대로 체력 강탈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마검을 들고 싸우면.
하기 싫어도 그렇게 될 테니까.
거기다 안 한다는 걸 때려서라도 하게 시켜야 할 판이다.
이미 녀석의 능력을 봐버린 것도 크고.
그 능력이 아군에게만 적용되느냐.
적들에게도 적용되느냐는 차차 알아 가면 된다.
일단은 녀석의 협조만 얻어내는 게 제일 중요했다.
내 말에 마검이 고민하는 듯 검신이 흔들리다가 곧 결정을 내렸는지 붉은 보석에 빛이 들어왔다.
그것도 두 번 깜빡이면서.
“좋은 선택이야.”
마검은 자신을 꺼내줄 수 있는 나에게 협조를.
그리고 난 그런 마검을 내 전력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마검에 손을 뻗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르아 카르테를 옆에 두었다.
녀석이 미친 척하고 체력 강탈을 걸어올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마검은 내 손에서도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체력 강탈도 쓰지 않을 채로.
이건 조절할 수 있다 이거지?
혹여나 계속 체력 강탈이 되는 상태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지고 나갔을 것이다.
그때는 나도 방법이 없으니까.
곧장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마검 손에 넣었어요.
<불멸> 뭐? 그걸 얻었다고?
<주호> 네, 협박 좀 하고. 회유하니까 넘어오던데요?
<불멸> 큭. 미친놈. 이젠 하다하다 검한테도 사기 치냐.
<주호> 사기는요. 정당하게 딜 했어요.
<불멸> 그럼 넌 그걸 들고 나가려고?
<주호> 일단 옵션 좀 보고요.
솔직히 마신의 무기를 들고 나가는 건 정해진 수순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좋은 아이템들이 많았다.
슬쩍 마검의 스펙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옵션이 죄다 막힌 상태였다.
“이거 참…….”
금속의 정령이 궁금한지 옆에 와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뱅뱅 돌았다.
“왜왜?”
“아, 거의 메말라 가기 일보직전이었나 봐. 옵션이 다 죽어 있다.”
마신의 무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옵션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숨겨진 것처럼.
아마 웨폰 카피가 성공해서 복사를 했더라도 제대로 된 복사가 안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옵션이 없어서야…….
그때 금속의 정령이 말했다.
“체력 강탈로 피를 흡수하면 계속 강해질 거야. 지금은 약해.”
“확실히 그런가 보네.”
이 마검 역시도 어떻게 보면 성장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도 피를 흡수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몬스터를 죽이는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 마검도 강해지겠지.
나중에 다 강해지고 난 뒤에 변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또 방법이 생길 것이다.
졸지에 마검을 손에 넣은 뒤 비밀 장소를 빠져나오는데 재중이 형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여기 한 번 와봐야겠는데?
<주호> 지금요?
<불멸> 어. 네가 꽤 좋아할 만한 녀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