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화 고대 마수의 탑 (7)
예전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얻었을 당시에도 르아 카르테에 이런 반응이 있었다.
르아 카르테의 특성은 무기 포식.
난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근처에 먹음직스러운 뭔가가 있다면.
이 녀석이 대신 반응한다.
르아 카르테가 웅웅 울리면서 빛을 발하자 바로 르아 카르테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래.
어디 한 번 네가 원하는 물건이 있는 곳으로 날 인도해 봐.
그러자 르아 카르테가 한쪽 방향을 향해 빠르게 흔들렸다.
마치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듯.
하지만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허공일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흐음.
좀 이상한데?
혹시나 싶어 르아 카르테를 쥔 채로 조금씩 걸어가자 르아 카르테가 더욱 강하게 빛을 발하면서 진동을 키워갔다.
그때 르아 카르테에서 금속의 정령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얘 너무 울려.”
“아, 괜찮아?”
“안 괜찮으니까 빠져나왔지. 왜 이렇게 난리야?”
그러면서 금속의 정령이 허리에 양손을 척 가져다대고 르아 카르테를 빤히 노려보았다.
아마 대답해 줄 순 없을 텐데?
르아 카르테에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의외로 금속의 정령은 뭔가를 들었다는 듯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헤에. 정말? 정말이야?”
깜작 놀란 표정으로 마치 르아 카르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말하는 금속의 정령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르아 카르테의 의도를 알아듣는 건가?
그러더니 금속의 정령이 갑자기 내게 시선을 홱 돌렸다.
“앞에! 맛있는 녀석이 있데!”
“정말 알아듣는 거냐…….”
“응. 왜?”
“아니. 새삼 놀라워서.”
금속의 정령이 정령왕으로 승급되더니 이런 능력도 생긴 거려나?
검의 말을 알아듣다니.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능력은 더욱 도움이 된다.
“정확하게는 뭐라고 해?”
“너보고 멍청이라는데?”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고?”
“아, 들켰다.”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은 없는데…….
“휴. 제대로 말 안하면 다시 넣어버린다?”
“아냐. 음. 저기로 가면 알아서 된데.”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하고자 하는 확실한 뜻을 알아들었다.
들어보니 적어도 뭔가의 위협 같은 건 없는 모양이고.
르아 카르테와 금속의 정령의 말에 따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솔직히 여긴 너무 구석이라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이 지나갈 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보고 난 뒤에도 그냥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 버릴지도.
그런 구석의 허공을 향해 가까이 가자 어느 순간 확 시야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비밀 공간?
아까 나르샤 누나가 무심결에 벽에 등을 댔다가 비밀 공간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아마 여기도 그런 시스템의 일환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몸이 완전히 비밀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 카르페디움 마왕성의 숨겨진 비밀 창고에 입장하셨습니다. 》
역시.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던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뜨는 것을 봐서는.
그렇다는 건.
이 안에 뭔가 굉장히 좋은 게 있다는 뜻이겠지.
일단 비밀 창고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감각을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자 저 앞 어느 한 공간에서 뭔가의 형태가 일렁이고 있었다.
고정된 형태가 아니야?
무기가 아니었던가?
왠지 모르게 허탕 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형태를 보아하니 무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악세나 방어구도 좋긴 한데…….
내가 원하는 건 일단은 무기 계열이었다.
뭐 이런 비밀 창고에 있는 녀석이라면 어떤 아이템이라도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간 관계상 모든 비밀 창고를 뒤질 수는 없을 테니.
가급적이면 무기가 좋다.
작게 한숨을 쉬면서 조금 더 걸어들어가자 이젠 어둠속에서도 녀석의 형태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보랏빛을 내는 수정구?
설마 마법 무기인가?
아니면 악세서리?
그런데 생각해 보니 르아 카르테가 악세서리나 방어구를 보고 이렇게 반응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저 아이템은 무기라는 건데.
역시나 마법 무기이려나?
챠밍을 가져다 줘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손을 뻗어 그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대자 순간 손이 찌릿찌릿하면서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큭.”
곧바로 힘을 줘서 손을 뒤로 빼내자 그 수정구에서 뭔가의 보라색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와 내 손을 잡아채려고 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설마 이 녀석도 포식 계열인가?
슬쩍 르아 카르테를 보자 르아 카르테가 이전보다 훨씬 강렬하게 울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녀석을 경계하듯.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저 무기를 그냥 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일단 잡긴 해야 가지고 나가든.
복사를 하든지 할 텐데.
그때 옆을 날아다니던 금속의 정령이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이씨. 저주받은 마검이잖아.”
“응? 뭐라고?”
“마검이야, 저거.”
“마검? 마족의 무기야?”
뭔가 김이 샌다는 느낌.
마족의 무기 정도야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그런데 금속의 정령의 이어지는 뜻밖의 말에 내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아니. 마신의 파편 중에 하나야.”
“마신의 파편이라고?”
“응. 그것도 피를 매개로 한 상급 마신 계열의 무기 파편이야.”
하.
이곳 비밀 창고에서 마신의 파편으로 된 무기를 보관하고 있다고?
대체 마왕 바이카르는 뭘 얼마나 모아댄 거지?
아니.
그보다는 마신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애초에 본인이 쓰면 되는 일 아닌가?
무려 마신의 무기인데?
금속의 정령의 말을 들어보니 상급이라는 걸 봐서는 최소한 마신의 무기인 테르타로스와 비슷한 등급이라는 말이 된다.
테르타로스만 해도 거의 미친 녀석인데.
솔직히 마산의 파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들고 나갈 아이템은 거의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저주받은 마신의 무기라는 녀석이 호락호락해 보이진 않단 말이지.
방금 전에도 내가 손을 뻗는 순간 바로 뭔가의 술수를 써왔다.
“잡기 힘들겠는데?”
“저주 받아서 그래.”
“그 저주라는 게 뭔데?”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의 눈빛이 확 가라앉았다.
“마신의 파편 자체가 변질됐어. 너무 많은 피를 먹어서 주인의 명령을 더 이상 듣지 않을 거야.”
“의지가 있다는 말이야?”
“응. 마신 본인이 오지 않는 이상. 아무도 쓸 수 없어. 바로 잠식해서 뜻대로 휘두르고 말 거야.”
설마.
마왕 바이카르가 이 마신의 무기를 여기 창고에 이렇게 짱 박아둔 게…….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본인이 쓰려고 해도.
이 녀석이 오히려 마왕 바이카르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하긴 나 같아도 안 쓰겠네.”
유저와 달리 마왕은 본체 하나뿐이다.
마신의 무기에 신체를 장악당하면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
이 무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지만.
굳이 이 마신의 무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창고에 쓸 무기들은 차고 넘친다.
마신의 무기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 가지지는 못하게끔 이곳에 숨겨놨다면 말이 돼.
혹시나 누군가 이걸 들고 설치는 건 마왕이라 할지라도 피곤할 일일 테니.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새 될 뻔했네.”
“응? 무슨 말이야?”
“아, 그런 말 있어. 일이 꼬일 뻔했다는 말이지.”
이걸 아무것도 모르고 잡았다가 맛이 갔다면 분명 마왕 바이카르에게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이쪽도 죽으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
“흐음. 그냥 두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다른 비밀 창고에 뭐가 있을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 마신의 무기보다 좋은 무기가 있을 확률?
거의 제로에 수렴하겠지.
테르타로스만 봐도 거의 끝판왕인데.
“휴. 어떻게든 여기서 처리를 하고 가야겠네.”
“어떻게?”
“그건 지금부터 고민 좀 해봐야지.”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니까.
너무 오랜 시간을 여기서 쓸 순 없었다.
한두 번 시도해 보고 안 된다면.
접어야지.
<주호> 형, 여기 문제가 좀 있어요.
<불멸> 응? 왜?
<주호> 아, 비밀 창고를 찾긴 했는데…….
<불멸> 벌써?
<주호> 그게 르아 카르테랑 별이가 알려주던데요?
<불멸> 하. 부러운 자슥. 돈값 하네 진짜.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그래서 뭘 찾았는데?
<주호> 마신의 무기요.
<불멸> 큭. 처음부터 대박이냐.
<주호> 근데 문제가 있어요.
<불멸> 무슨 문제? 전에 테르타로스처럼 시험이라도 쳐야 해? 그건 시간이 별로 없을 건데…….
<주호> 아, 그건 아니지만. 이 녀석이 저주받은 무기라는데요?
그리고 금속의 정령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더니 재중이 형도 난감한 듯 말했다.
<불멸> 어차피 못 쓰는 녀석이면 그냥 버리고 나와. 다른 무기 많다.
<주호>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좀 아까워서요.
마신의 무기가 어디 길바닥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 한다.
<불멸> 정 안 되면 그냥 르아 카르테로 먹어치우라고 해.
<주호> 네, 해보고 안 되면요.
그럼 저 마검은 그냥 사라져 버리겠지만.
아쉽다고 버티기에는 시간이 없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별아. 혹시 저거 잡으면 바로 변하는 거야?”
“응? 잠시만.”
그러더니 금속의 정령이 마검 주위로 날아가서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금속 정령 특유의 맑은 빛을 내면서.
한참을 살피는 듯한 녀석이 알겠다는 듯 다시 날아와 내게 말했다.
“지금 마검 상태는 매우 배고파하고 있어. 피를 매개로 힘을 내는데,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어 피가 고갈됐어.”
흠.
잠시 살펴본다고 그런 것도 아나?
확실히 금속의 정령왕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얘만 있으면 굳이 무기 옵션을 보는 아이템이나 스킬은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뭐 스킬북과 악세 같은 경우는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잡으면 바로 흡수하려고 하겠네.”
“응. 그래도 힘이 약해져 있어서. 바로 변하진 않아. 대신 피를 다 흡수당할 때까지 버티면…….”
“죽거나 변한다 이거지?”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 거나 변하는 거나 뭐 매한가지라.
“좋아. 그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네.”
주저 없이 바로 손을 뻗어서 보랏빛 수정구를 손에 쥐었다.
“꺅! 너 미쳤어?”
금속의 정령이 화들짝 놀라기 무섭게 수정구에서는 예의 그 보라색 빛줄기가 스멀스멀 나와서 내 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곧 붉은 빛으로 변해가며 내 체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경고!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체력을 강탈합니다. 잔여 체력 97/100% 》
《 경고!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체력을 강탈합니다. 94/100% 》
《 경고!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체력을 강탈합니다. 90/100% 》
.
.
역시 이런 식이었나?
마검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내 체력을 빨아먹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빨려 나가다간 체 1분도 견딜 수 없을 터.
물론 녀석이라면 체력이 많으니 쓸 수 있긴 하겠지만.
정작 문제는.
녀석의 체력을 빨아가는 방식이었다.
무려 일정 수치가 아닌 퍼센트 단위로 체력을 갉아먹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나 마왕 바이카르나.
전체 체력이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마왕 바이카르가 학을 뗀 이유를 알겠네.
이건 마왕 할아버지가 와도 못 버틴다.
역시 마신의 무기는 마신의 무기라는 거다.
《 해당 아이템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
《 해당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당연하겠지만 아이템의 옵션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건 예상했었으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 웨폰 카피! 】
직접 잡아보니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녀석을 1분 안으로는 절대 길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국 녀석의 짝퉁이라도 건져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녀석이 복사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의 랭크가 너무 높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
다시 한 번.
최소한 가진 마력을 다 쓰면 몇 번은 더 해볼 수 있어.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의 랭크가 너무 높습니다. 》
《 웨폰 카피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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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 웨폰 카피 스킬을 실패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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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딱 한 번만 뜨면 되는데.
그 한 번이 걸리질 않네.
계속 피가 빨리면서도 놓지 않는 날 보던 금속의 정령이 놀라서 내 주변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면서 외쳤다.
“꺅~! 어떻게 해!”
“빨리 놓으라고!”
“야이! 미친놈아!”
《 경고! 정체불명의 아이템이 체력을 강탈합니다. 7/100% 》
체력이 완전히 바닥에 가까워지자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마검 새끼야. 어째 한 번이 안 되냐.”
그러고는 곧장 르아 카르테를 들어 올려 잔인한 미소와 함께 명령했다.
“르아 카르테. 이 새끼 먹어치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