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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95화 (983/1,404)

#995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3)

우리가 안 된다면.

대리로 누군가를 내세워야 할 텐데.

지금 그 역할을 해줄 만한 녀석은 일반 유저들로는 절대 안 된다.

마왕 스티어를 상대할 만한 녀석들 중에.

내가 구슬릴 수 있는 존재는.

딱 셋뿐.

과연 그들이 내 말에 따라 줄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지금껏 해온 게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시아트 마왕성은 그냥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당장 유저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봐야 강해진 마왕 스티어의 상대로는 버거울 테니.

내가 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듯 마왕 바이카르가 우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흘리듯 말했다.

“내 마왕성은 따로 안내인을 보낼 테니 찾아오도록.”

하긴.

마왕 바이카르는 이곳 시아트 마왕성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마왕의 핵을 꺼냈을 때 조금 관심이 있어 보이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뿐.

어지간한 일로는 녀석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완전히 마왕 바이카르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진득하게 눌려 있던 마왕성 지하의 공기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련이 바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칫, 마왕이 강하긴 하네.”

화련을 감싸주고 있던 보랏빛 레이피어가 오랜 경계에 힘을 다한 듯 그 빛이 완전히 사라져 갔다.

그나마 저런 아이템이 있으니 마왕 바이카르가 내는 압력에서 버틸 수 있었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고.

예상하기에 평범한 다른 유저들은 저 마왕을 상대로는 머리도 제대로 들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마왕 올펠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

그 녀석은 맞서 싸울 수 있기라도 했지.

화련이 날 보면서 물었다.

“마계에 저런 녀석들이 더 있을까?”

“으음, 아마도요? 당장 제가 본 것만 해도…….”

봉인에 있던 그 미친 대천사 같은.

그때는 어떻게든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면 둘 다 괴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녀석을 등쳐먹고 나왔으니.

당시 얼마나 간이 부어 있던 걸까.

잠시 생각하던 화련이 조금 의외의 것을 물어봤다.

“마왕의 핵. 그거 녀석 앞에서 꺼내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나 역시 마찬가지.

“아, 마왕 올펠을 죽인 게 우리라고 너무 티를 낸 거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마왕 올펠은 마왕 스티어에게 죽었어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녀석은 아무 말도 안 하던데요?”

“흐음, 어차피 남의 세력이다 이건가?”

우리가 마왕 올펠을 죽였음을 알았어도 마왕 바이카르가 관심이 없었던 건.

그냥 자신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하지만 만약 마왕 데미안이 있는 와중에 꺼냈으면…….

이건 상상하기도 싫은데?

마왕의 핵을 꺼낸 타이밍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화련에게 말했다.

“일단은 우리도 준비를 하죠. 이제 화련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마왕성 전용 사냥터 말이지?”

“네, 각자 권한을 줬으니까 원하면 따로 파티를 꾸리셔도 됩니다.”

“나보고 알아서 하라 이거야?”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니 말을 잘못한 것 같기도 한데.

잠시 날 쳐다보던 화련이 곧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너네한테 끼어들 생각은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도 키우고 싶은 애들도 있고.”

화련 입장에서는 파티를 하나 꾸릴 수 있으니 그쪽에 투자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잘만 이용하면 급성장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레벨도 그렇고.

아이템이나 스킬도.

그간 접하지 못했던 각종 희귀한 것들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련이 어떻게 판단했든.

지금은 굳이 파티 수를 줄여서 갈 이유가 없었다.

흠.

그리고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가…….

“경매 건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마왕 올펠을 잡고 나온 드랍템?”

“네. 그쪽도 마왕성 사냥터로 가기 전에 처리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전신과 패황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는 따로 빠져서 마신의 파편을 구하려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시간을 끌리고 말았다.

“귀찮은데 하지 말까?”

화련다운 말이네.

하지만 이번에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 버리면 다음에는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서로 협조를 얻기 힘들어진다.

막말로 이번에 마왕 올펠을 상대할 때 녀석들이 그냥 빠져 버렸으면.

레이드도 뭐고 그냥 파토났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 귀찮아하는 화련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성의는 보여야겠지.

“흥, 나도 알아.”

그런 그들을 보고 말했다.

“어차피 중립 연합에는 한 번 가봤어야 하니까요. 그쪽에 발록들이 가 있기도 하고.”

녀석들에게 적당한 중립 거점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 마침 우리가 가야할 곳이 그곳이기도 했다.

겸사겸사 일들을 전부 처리하려면 한 번은 가야 한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그럼 여긴 어떻게 해?”

“당분간 주인 없는 마왕성이 되겠죠.”

그때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시아트 마왕성의 주인인 마왕 스티어의 패배로 마왕성 지분이 하락합니다. 》

응?

이건 또 무슨…….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

《 마왕 스티어의 패배로 하락한 지분이 마왕성 공통 지분으로 변경됩니다. 》

《 마왕성의 공통 지분은 마왕성의 지분을 가진 자들이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패배를 하면 지분이 낮아지는 건가?

지금껏 마왕 스티어가 패배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말이지.

화련 역시도 같은 메시지가 나왔는지 눈을 빛냈다.

“지분을 싹쓸이하면 누구나 마왕성을 가질 수도 있는 거잖아?”

“아, 그게 일단은 지분을 가져야 하는 건가 봐요.”

“그럼 여기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으음. 다른 녀석들도 있네.”

전신과 패황.

그리고 다른 연합의 길마들도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는 있었다.

여차하면 다들 마왕성의 주인이 될 수 있겠지만.

현재 이곳에는 나와 재중이 형, 화련뿐이지.

“일단 먹고 보죠.”

만약 우리가 지금 안 먹는다면 전신과 패황이 돌아와서 공통 지분을 사들이게 될 테고.

그럼 마왕성은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그럼 가죠.”

바로 다시 대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왕성의 대전 가운데 있는 마왕이 앉아 있던 의자 근처로 가니 다시 시스템이 떴다.

원래 4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24%는 다른 유저들에게 경매로 팔았었다.

당연히 남은 지분은 25%.

내가 이 마왕성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지분은 전체의 절반 이상은 되어야 한다.

아니지.

비율상 마왕 스티어가 잃어버린 지분과 비교해 보면 그보다 적은 지분으로도 가능할 수도 있고.

일단 손을 뻗어 확인부터 했다.

《 시아트 마왕성 공통 지분 26%를 획득하시겠습니까? 》

《 공통 지분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마왕성에 지분에 맞는 금액을 투자하셔야 합니다. 》

《 현재 시아트 마왕성의 등급은 최하입니다. 》

《 지분당 투자 금액이 최저로 책정됩니다. 》

“좋네요.”

생각 이상으로 이번 패배에 대한 페널티가 큰 모양이었다.

마왕이 마왕성에서 패배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앞마당에서 할 일을 못 했다는 거니까.

한 번에 저렇게 수치가 떨어진 것도 이해 안 되는 게 아니었다.

만약 마왕 스티어가 모든 지분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지.

거기다 더 좋은 점은.

이 시아트 마왕성이 마왕성들 중에 최하의 등급이라는 점이었다.

지분을 얻는데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이전에 경매에서는 1%에 십억이 넘어가는 돈을 벌어들였는데 반해.

지금은 그 금액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아니.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적은 돈이 들었다.

“화련은 어떻게 할 거예요?”

잠시 시스템을 살펴보던 화련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 지분은 1%밖에 안 돼. 공통 지분으로 나온 것들을 다 사도 내가 마왕성을 차지하는 건 불가능해.”

조금은 아쉽다는 듯 말하긴 했는데.

가장 큰손인 화련이 포기를 해주면 나야 고마울 뿐이다.

화련이 손을 떼자 다시 시스템에 명령을 내렸다.

“26% 전부 획득.”

곧 일정량의 돈이 인벤에서 빠져나가며 내 지분이 변했다.

《 유저 주호의 시아트 마왕성의 지분이 25%에서 26%의 공동 지분이 추가되어 총 51%로 변경됩니다. 》

《 축하합니다. 유저 주호가 시아트 마왕성의 주인으로 변경됩니다. 》

《 마왕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마왕성의 특수 기능은 제한됩니다. 》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가 서버 전역에 올라갔다.

《 유저 『 주호 』가 『 시아트 마왕성 』을 획득했습니다! 》

이런.

설마 이것도 시스템 메시지로 나갈 줄은 몰랐는데?

그 순간 서버 채팅창이 불같이 타올랐다.

- 마왕성?!

- 방금 마왕성이라고 했어?

- 이야. 주호가 마왕성 먹었다는데?

- 어, 저기 이번에 경매한다고 한 마왕성 아니었나?

- 맞는 듯. 그런데 마왕이 빤히 있는데 주호가 어떻게 마왕성을 가졌지?

- 설마 주호가 마왕 죽이고 차지한 거 아냐?

- 와씨. 미쳤네. 마왕을 잡았다고?

- 쟤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 그러니까 내 말이.

- 마왕이 잡을 수 있긴 했어?

- ㄴㄴ. 전에 마왕 떴을 때 유저들 몰살당한 거 기억 안 나냐?

- 그 전신도 마왕은 피해 다닌다고.

- 돌았네. 진짜.

- 대체 뭘 어떻게 플레이하면 마왕을 잡고 다니냐.

- 와, 부럽다. 마왕성이라니.

- 그럼 이제 저 마왕성은 유저들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거임?

- 역시 주호는 주호네.

- 복귀식 화려한 거 보소.

- 쟤는 애초에 노는 클라스가 다르다니까.

- 그래, 마왕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되지.

내가 마왕성을 차지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자마자 채팅창이 터져나갈 것처럼 계속 올라왔다.

“하,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는데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 말했다.

“그러긴 너무 늦었지.”

이전에는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집사였지만.

지금은 그냥 마왕성을 통째로 먹었다.

위상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이 마왕성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당장 마왕 스티어만 와도 다시 마왕성을 내줘야 할 판이라.

하지만 이쪽은 당분간은 무리일 것이다.

마왕 데미안의 세력들이 눈 크게 뜨고 있는 이상.

곧장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 테니까.

최소한.

녀석이 오기 전까지는.

작업을 마무리해 둬야 해.

유적지나 거점의 시스템은 자주 접해본 덕에 마왕성의 시스템을 조작하는 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거기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에서도 집사 역할을 하며 전체 권한을 받아 꽤 익숙하기도 했고.

곳곳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마왕성의 내정 시스템을 빠르게 안정시켜 나가자 옆에서 화련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잘하네? 마왕이라고 해도 믿겠다.”

“뭐 이건 익숙하니까요.”

“자랑이지?”

“하하…….”

그런 화련의 눈빛을 외면한 채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말했다.

“바로 이동하죠.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하진 않네요.”

“중립 연합까지는 꽤 먼데? 바로 갈 수 있겠어?”

“아, 이젠 마왕성이 제 거니까요. 이런 것도 가능하죠.”

그리고 곧장 시아트 마왕성의 포탈과 중립 연합 거점과의 포탈을 연결시키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가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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