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96화 (984/1,404)

#996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4)

《 시아트 마왕성에서 거점 포엔으로 포탈 연결을 요청합니다. 》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연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중립 연합의 거점에 연결 신청을 하자 곧 답이 왔다.

《 거점 포엔에서 시아트 마왕성으로의 포탈 연결을 허락했습니다. 》

《 시아트 마왕성과 거점 포엔의 이동 포탈이 연결되었습니다. 》

보통 때 같으면 마왕성에서 연결을 요청했으면 아마 기겁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왕성에서 대놓고 쳐들어오겠다는 뜻인데.

하지만 지금은 이미 서버 내 모든 유저들이 시아트 마왕성이 누구의 소유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허락됐네요.”

화련에게 웃으면서 말하자 화련이 졌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정말 잘 써먹는구나. 이런 건.”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서요.”

예전에 베르테니아 마왕성과 신성 제국성을 연결해 보기도 했고.

경험이라면 차고 넘친다.

“여차하면 지원 오기도 좋겠네.”

화련의 날카로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다른 거점에서 이곳 마왕성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병력을 지원 올 수도 있었다.

이곳 마왕성에 마왕 스티어가 나타난다면 말이지.

순간적으로 병력을 뻥튀기하는 건 일도 아니다.

시아트 마왕성이 마왕 스티어의 소유였을 때와는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마왕 스티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운영하진 않을 테니까.

잠시 몇 가지 후보군을 더 생각했다.

과연 다른 거점들과도 이곳을 연결하는 게 득일지 실일지.

이번 경우에는 중립 지역이라 포탈을 연결하는 게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전신이나 패황의 연합의 거점들과 연결을 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다.

포탈로 접근하기 쉽다는 건.

만약 저들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그만큼 이곳에서의 위험도가 늘어나는 셈이다.

지금은 뭐…….

저 녀석들보다 오히려 마왕 스티어가 더 문제이긴 한데…….

이건 형들하고 좀 더 의논을 해봐야 하려나.

반대로 전신과 패황은 이곳 마왕성과 포탈 연결을 원할 수도 있었다.

마왕성의 인프라가 아직 좋지 않다고는 하나.

이곳에서는 비공정을 생산하고 수리할 수도 있는데다가.

상위 사냥터로 갈 수 있는 중간 지점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굳이 저쪽의 득과 실을 따지자면.

아마 득에 가깝겠지.

우리완 다르게.

이건 또 협상할 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 포탈로 넘어가기 전에 내게 물었다.

“NPC들은 다 직위 해제했지?”

“네, 뭐…… 어쩔 수 없죠.”

지금까지 시아트 마왕성의 NPC들은 전부 마왕 스티어의 부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언데드 계열의 유령 타입인 NPC들.

이들 중 전투형인 NPC도 있는 반면에 일반적인 NPC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애초에 인간인 나와는 계열 자체가 달랐다.

마왕 스티어가 직접 꾸린 NPC들을 마왕성에 그대로 놔두는 건.

특히 지금처럼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에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전투형 NPC들이 마왕 스티어를 따라 나가긴 했다.

이쪽은 오히려 고마운 편이지.

문제는 남아 있는 NPC들이 내 통제를 전혀 듣지 않는 중이었다.

만약 내가 마왕이 되어서 정상적으로 마왕성을 차지했다면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확률이 그나마 존재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인간인 상태로 마왕성을 억지로 차지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현재 이들은 내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자기보다 약한 주인을 따를 녀석들은 마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방해가 되는 녀석들이라면 쫓아내는 편이 낫겠지.”

하루아침에 마왕성을 잃고 떠돌아다닐 녀석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불안 요소를 남겨놓고 자리를 뜨긴 힘들었다.

“이곳 방어는 어떻게 할까요?”

“마왕성을 아예 걸어 잠가.”

이건 그냥 폐쇄하라는 말이군.

당분간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이러면 임시적인 조치는 될 것이다.

비전투 NPC들이 마왕성의 성벽을 넘어서 들어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휴, 갈 길이 머네요.”

어떻게 보면 베르테니아 마왕성 때보다도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는 마왕 벨라의 직접적인 전투력 지원이 있기라도 했지.

이젠 주변에서 흔들면 흔드는 대로 전부 싸워줘야 할 판이다.

“이번에 가서 협상을 잘 해야겠지. 최소한 녀석들은 무조건 데리고 와야 해.”

“네, 가 보죠.”

《 시아트 마왕성의 모든 기능을 일시 폐쇄합니다. 》

《 마왕성 성벽의 배리어가 모든 접근을 자동 방어합니다. 》

《 배리어의 한계 수치보다 높은 공격을 허용하면 방어가 해제됩니다. 》

《 현재 배리어의 타르 충전률은 100%입니다. 》

이건 마왕성의 기능 중에 하나.

NPC들이 없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타르를 소모해 방어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유저들의 거점과 마왕성이 확연히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당분간만 버텨 주길.

아마 마왕이 직접 와서 두들기지 않는 이상에야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임시 조치를 해두고는 NPC가 모조리 빠져나가 텅 빈 마왕성의 거리를 한 번 바라본 뒤 그대로 중립 연합의 거점 포엔으로 포탈을 탔다.

《 중립 연합 거점 포엔에 입장하셨습니다. 》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확 변하면서 중립 연합의 거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완전히 비어 어두운 기운만 가득한 마왕성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수많은 유저들이 빽빽하게 돌아다니며 활기가 넘쳐나는 광장의 거리에 순간 다른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립 연합의 거점.

포엔.

여긴 유저가 너무 많은데?

시선을 돌려 어딜 봐도 개떼처럼 몰려 있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발 디딜 틈도 없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그런데 유저들도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는 크게 외쳤다.

“어?! 주호다!”

“뭐? 주호라고……?!”

“와! 주호 님이다!”

“오빠!! 여기 한 번만 봐요!”

“이야, 진짜 그 주호 맞아?”

“맞잖아! 복귀했다더니 여기로 왔네.”

“형! 마왕성 먹었다면서요!”

“저희도 구경 좀 시켜줘요!”

어느새 우르르 몰려드는 끝도 없는 인파에 순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뭐야.

여긴.

그런 관심은 소란을 더 불러일으켜서 주변에 장사하고 있던 유저들까지 죄다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대가 마비되는 것 같은 유저의 파도에 순간 당황해 버렸다.

“형, 여긴?”

“좀 많지?”

“좀이 아닌데요?”

그간 봤던 유저들을 몇 번이나 겹쳐놓은 것 같은 인파의 환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후. 일단 빠져나가죠.”

여기 계속 있다가는 막혀서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곧 인파를 가르면서 말했다.

“자자, 좀 지나갈게요.”

화련이 그런 날 보고는 한마디 했다.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네.”

“꽤 달갑지 않은 단어네요.”

차라리 그냥 마왕하고 싸울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재중이 형이 먼저 치고 나가고 그 뒤를 겨우 따라나서 인파를 돌파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우리 뒤쪽에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오고 있다는 거다.

“주변에 적당한 중 레벨 대의 사냥터를 여럿 보유하고 있는 거점이기도 해서 유저들에게 인기가 좋아.”

“네. 확실히 너무 활기가 넘치네요. 대체 여기 얼마나 있는 거예요?”

“흠. 아마 단순히 거점에 주둔하는 유저들의 숫자만 놓고 본다면. 이곳이 서버 내에서 가장 숫자가 많을 거다. 중간에 거쳐 가는 거점이기도 하고. 어지간한 평범한 유저들은 이 레벨 대에서 머물러 있으니.”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거네요.”

이거 참.

중립 연합장을 다시 봐야 하나?

마왕 올펠과 싸울 때는 거의 도움이 안 되어서 솔직히 좀 쉽게 보고 있었는데.

이 정도 규모의 거점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세력의 크기나 재력이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

“덕분에 중립 연합에 속했거나 상인 연합들 모두 이곳에 본진을 두고 있었다. 사실상 이곳이 1서버 내에서 가장 물류가 많이 도는 곳이라 해도 된다.”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여기가 전신이나 패황의 거점보다 훨씬 발달이 잘 되어 있었다.

인프라 쪽으로는.

그런데 곧 의문이 생겨서 물어보았다.

“왜 이런 알짜배기 거점을 전신이나 패황이 그냥 둔 거예요?”

이해가 되지 않는.

돈이 도는 곳에 저 둘이 손을 대지 않는다?

워낙 유저 숫자가 많다보니 이곳에서 나오는 세금만 해도 다른 거점들을 압도할 것이다.

물론 상위 사냥터를 차지하고 있는 전신과 패황의 거점도 부족하진 않겠지만.

내 말에 오히려 화련이 대답을 해주었다.

“이 거점만큼은 전신이나 패황이 쉽게 건들 수 없어. 전 서버의 유저들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아니라면야. 말 그대로 여긴 중립이니까.”

“그런데 패황도 중립 아니었어요?”

이번에 전신과 싸우라고 패황에 몰아준 유저들도 대부분 중립 길드의 유저들이었다.

현재 패황의 세력을 유지하는 주축이기도 하고.

“걔들은 중립인 척하는 세력이지. 진짜 평범한 유저들은 저런 상위 연합들의 전쟁에 관심이 없거든.”

“흐음. 이해가 될 것 같네요.”

일상적으로 플레이하는 진짜 중립 유저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고 보면 되는 거려나.

“크게 보면 전신이나 패황이나 기득권인 건 똑같아. 이들이 보기에는. 끼리끼리 다 해먹는 거지. 네임드나 상위 사냥터만 봐도 그렇고.”

그 말을 화련에게 들으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음, 정말 화련 맞아요?”

“뭐? 죽을래?”

“아뇨.”

맞군.

“아무튼, 이곳은 건들 수 없다는 거네요.”

“응, 그리고 여기 말고 몇 군데 더 있어. 내 거점도 그렇고.”

“화련도 거점이 있었어요?”

그동안 말을 안 해서 몰랐는데.

아니다.

생각해 보면 저 화련이 거점 하나 없이 지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넌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한 거야?”

“으음. 할 말이 없네요.”

그보다 화련의 거점이 중립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그렇게 보지 마. 내 거점은 좀 다르니까. 순수하게 미개척 구역만 돌아다니거든. 일종의 개척 연합이랄까.”

순수하다는 것도 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화련이 확 째려보는 게 보였다.

“너 방금 무슨 생각했어? 표정이 아주 이상해?”

“아뇨.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화련이 그간 잘 안 보였던 것도 이해가 되는 건가.

다른 연합들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은 것도 의아했는데.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가 되었다.

“아, 그리고 네 쪽 사람들. 우리가 데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네?”

“예전에 너희 쪽 연합 사람들. 분해되고 남은 유저들은 우리 쪽으로 넘어왔거든.”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했다.

“당시 마왕에게서 피난시키기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흐음. 그런가요.”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아 보여서 입맛이 썼다.

당시에 내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마왕이 상대니…….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방법이 된 셈이다.

내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자 재중이 형과 화련도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연락 한번 해보죠.”

그렇게 얘기하면서 중앙으로 쭉 가자 곧 중립 연합에서 사람이 나와 있었다.

좀 난감해하는 눈빛을 하고선.

“주호 님. 손님들을 많이 몰고 오셨군요.”

“하하…….”

“일단 안으로 모시지요.”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는 유저들을 뒤로 하고 안내를 받아 중앙성에 들어가자 중립 연합과 상인 연합의 연합장들, 거기에 전신, 패황, 혼령도 한 자리씩 잡고 있었다.

올 만한 사람들은 다 온 건가.

그런 그들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길이 너무 막혀서 늦었어요. 다들 바쁘신 듯한데 바로 시작하시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