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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43화 (933/1,404)

#943화 승자 없는 전장 (13)

거점 용아가 팔렸다는 말에 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 설마 했는데 진짜 팔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저쪽도 이번에는 꽤 급하니까요.”

아마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제안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거점 패황을 공략하다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연합원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지금 적들의 연합원들은 대부분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아주 먼 거점에 부활을 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꽤 있긴 하지만.

거점 사이에 끼어 중간에 오갈 데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꽤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지.

뭐 계속 도망만 다녀도 되겠지만.

그러면 결국은 이 패권 싸움에서 밀렸다는 걸 그냥 보여주는 셈이라.

아주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거점들을 노릴 수 있느냐 하면…….

이전에 그랬듯.

패황과 혼령의 연합 유저들이 거점들 사이로 포탈을 타고 지원을 가게 되면 어디 한 곳을 무너뜨리는 것조차 꽤 힘든 상황이었다.

전의 자신들이 했던 일을 반대로 당하는 셈이랄까.

거기다 이번처럼 비밀 통로라던가 하는 변수도 없으니.

한 번 당해 봤는데 또 그렇게 당할 정도로 멍청이들도 아니고.

혼령도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지금쯤 그에 대한 대책은 전부 세워뒀을 것이다.

한마디로 꼼수로 치고 들어가는 건 이제 안 먹힌다는 거다.

그럼 결국 정공법으로 거점을 뚫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

공성을 하는 입장에서 엄청난 자원을 또 들이부어야 하는데.

과연 언제까지 피해를 보면서 싸울 수 있을까.

이건 초월 연합 쪽에 자금이 계속 들어온다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 번 더 실패라도 하는 날에는 피해와 더불어 이탈자까지 생길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면 견고하게 쌓아두었던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손을 내밀자 연이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결국 손을 잡았다.

신중한 성격에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급하긴 정말 급했을지도.

“흠, 그런데 정말 이렇게 팔아먹어도 괜찮은 거야?”

레스가 물어보자 괜찮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네, 어차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으음, 이거 가만히 앉아서 돈만 챙겨 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한데.”

“뭐 이름값 해주셨다고 하면 돼요.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이번 거래로 레스에게는 일정 부분을 떼어 주기로 미리 약속을 해둔 상태였다.

“내 살다가 거점도 가져보고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네.”

“마음 같아선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있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지금 팔지 않으면 계속 수성만 하면서 돈은 돈대로 나가면서 나중에는 함락될 거라서요.”

“하, 함락되는 거냐?”

“으음,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거점 셋 중에 하나는 결국 무너질 거예요. 그럼 세 개의 거점이 가지는 이점은 챙길 수 없으니까. 의미도 없을 테고요.”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어떻게든 거점 중 하나는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것도 그리 먼 미래도 아니었고.

우리가 빠진다는 전제하에 길어 봐야 몇 주 안에는 무너질 게 뻔하다는 게 재중이 형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거점 중 하나가 무너지고 나면 우리가 얻을 수 이득은 그때부터는 거의 없어진다고 봐야 했다.

한 곳만 무너져도 거점 패황으로 가는 길이 뻥 뚫릴 테니까.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어야 지키지.

재중이 형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기 전에 빨리 팔아 버려야지. 반대로 지금이라면 아주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거든.”

아까 연이 그냥 간 것 같지만 이미 계약금도 다 받아둔 상태였다.

“연도 할 때는 하네요.”

“어, 이번에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자기 돈도 아닌데. 딴에는 막 쓸걸?”

“하하…… 저도 좀 그렇게 써봤으면 좋겠네요.”

거점을 돈으로 산다라.

아마 내 남은 생 안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곧 레스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선 레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흠, 마지막 역할인가. 그래, 난 뭘 하면 되지?”

그런 레스를 보며 웃어보였다.

“어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 * * * *

얼마 지나지 않아 병력을 재정비한 초월 연합이 먼 거리에 거점을 만들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점 용아를 향해 전진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보란 듯이 방송까지 켜놓은 상태로.

“저렇게 다 보여줘도 돼요?”

“어차피 다들 찍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이기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도 있고.”

그때 갑자기 연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연> 준비는?

<윈> 이미 원하는 대로 해놨지.

<연> 만약 장난을 치면 그냥 있지 않을 거다.

<윈> 끝나고 잔금 받아야 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연> 결국 돈이라는거군.

<윈> 그러니까 걱정 말고 들어오라고.

<연> 알았다. 실수하지 말도록.

그렇게 연이 연락이 끊어지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거 참, 우리 고객님이 너무 의심이 많으시네요.”

재중이 형 역시도 피식하면서 웃었다.

“제대로 모셔. 비싼 고객님 아니냐.”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일 한 방으로 수십억이 계좌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손님이랄까.

“아, 그러고 보니 화련은 요즘 뭐 하고 있어요?”

비싼 고객님하면 화련인데.

내가 깜박 잊고 있었네.

“글쎄. 요즘은 잠잠하던데? 뭔가 준비하는 것 같긴 하더만.”

“흐음, 그런가요.”

“마왕 쪽과 거래를 텄다는 말도 있고.”

“형도 모르는 거예요?”

“아주 꽁꽁 숨어 버렸어.”

“음, 가만히 있을 화련이 아닌데.”

그동안 너무 잠잠한 것도 수상하단 말이지.

이 난리가 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것도 중간에 발을 빼지 못하는.

“그쪽도 프로 팀이 붙어 있죠.”

“어, 거기다 그때 그 슈퍼 루키도 데려갔지.”

“흐음, 그렇죠. 조만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굉장히 수상한 냄새가 나거든요.”

“큭, 그래. 이번 일이 끝나면 어차피 한 번은 봐야 할 거다. 이쪽 이름은 이제 접어야 하니.”

그냥 넘어가려고 해도 거점이라는 큰 물건을 팔고 나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을 것이다.

“이 이름도 정들었는데 아쉽네요.”

“큭, 계속 하려면 하고.”

“아뇨. 싹 털어먹고 날라야죠.”

그렇게 앞으로 있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초월 연합군들이 세 거점으로 나누어져 이동을 마친 상태였다.

이곳 거점 용아는 약속대로 연이 연합원을 이끌고 왔고, 다른 두 곳의 거점은 전신과 명궁이 각각 자리 잡았다.

데스는 전신을 따라간 모양이었고.

아무래도 전신이 간 거점이 함락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이미 패황 연합 쪽에서도 방송을 보고 대규모의 병력을 각 거점에 보내둔 상태니까.

거기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며 거점의 방어 시설도 더 좋아져 지금 뚫으려면 정말 사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이어질 큰 격전을 앞두고 양쪽 다 살벌한 대치를 이어갔다.

아마 여기서 이기는 쪽이 다시 흐름을 가져갈 수 있을 테지.

멀리 필드에 나와 두 진영이 싸우려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을 때 혼령에게서 연락이 왔다.

<혼령> 정말 참가 안 하는 거냐?

<윈> 어, 우린 발 뺐다고 했잖아. 할 만큼 했어.

<혼령> 후, 아쉽네.

<윈> 그래서 어딘데?

<혼령> ……아쉽지만 후방 지원이다.

<윈> 뭐? 아니 왜?

의왼데?

혼령에게 후방 지원을 맡기다니.

가득이나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판에.

<혼령> 패황이 손을 쓴 모양이더군.

<윈> 흐음, 여기서 더 활약을 하지 말라 이건가?

<혼령> 그래, 웃기는 일이지. 그럼 나중에 보자.

그런 혼령의 말에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집안싸움 할 때가 아닐 텐데.”

“제 말이요.”

안 될 집안은 어떻게도 안 된다더니.

딱 그 모양이군.

거대 연합이 되도록 도와줬더니 이젠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뭐 어느 정도 우리가 유도한 면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혼령을 배제할 줄이야.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재중이 형이 다시 웃었다.

“혼령은 덕분에 또 주가가 올라가겠군.”

“네, 질 전투에서 빼줬으니 감사하다고 해야겠네요.”

한쪽이 실수를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의 주가가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패황은 엄청나게 실수를 할 예정이었고.

“거점 용아에 패황이 와 있죠?”

“어, 이쪽만 제대로 된 지휘관이 없으니까.”

거점의 주인으로 레스가 있다고는 하나 레스에게는 연합군을 이끌 만한 세력이 없었다.

아마 지금 패황이 각종 갑질을 레스에게 다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

그만큼 패황과 레스에게는 큰 격차가 있었다.

레스가 거점 주인만 아니었더라면 마주 볼 일도 없을 정도의.

“레스가 잘 하겠죠?”

거점 주인이 되었지만 어차피 버린 패와 같던 레스에게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없었다.

지금 게시판만 봐도 죄다 패황과 연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중이었으니까.

레스의 이름은 어디 한 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패황 역시도 레스를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모든 걸 지휘하려고 할 테지.

하지만 패황은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이 공성의 승패가 레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그 잘난 패황이 아니라.

“흐음, 바로 시작하지는 않네요.”

“어, 아무래도 양쪽 다 신중할 수밖에. 이번엔 붙어서 지면 정말 큰 손해니까.”

연이 이어지는 실패로 고통받고 있듯.

패황 역시도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여기저기 뚫리는 걸 혼령이 겨우 막아 준 모양새라 서로 입장이 매한가지였다.

연도 조심스럽게 거점 정면에 모든 병력을 쭉 대기만 시켜놓았고, 패황은 아예 거점 밖으로는 나올 생각도 없어 보였다.

“수적으로 패황이 몇 배나 많을 텐데. 정면으로 붙는 건 아예 고려조차 안 하는 모양이군.”

“네, 확실히 기습도 안 할 생각이네요.”

예전에 적들이 거점을 지키고 있을 때 심심하면 나와서 기습을 해 피해를 누적시키고 돌아갔던 걸 생각하면.

기습이나 함정같이 뭔가 작전을 낼 만도 한데.

지금은 정말 거북이 등껍질에 숨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뭐 저게 정석이긴 하니까 딱히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때 레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레스> 그럼 시작한다.

<윈> 네, 고생하세요.

그리고 레스에게서 연락이 오자마자 공성의 승패를 좌우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그그긍!!

갑자기 멀쩡하게 있던 도개교가 크나큰 진동을 내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연의 연합 쪽에서 환호를 했고.

반대로 성벽 위에 우르르 몰려 있던 패황 연합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린 모양이었다.

“어어? 갑자기 저게 왜 내려가?!”

“미쳤어? 누가 저걸!!”

“빨리 막아!”

“젠장! 이미 다 내려갔어!”

누구도 도개교가 내려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쪽에는 지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성문까지도 열리기 시작하자 다들 얼굴이 헬쓱하게 변해 버렸다.

그러자 연의 연합 쪽에서 엄청난 함성과 함께 대규모 전진이 시작됐다.

“우와아!! 가자!!”

“성벽만 없으면 너희 같은 것들이야!”

“다 쓸어버려!!”

그리고 연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연> 큭, 확실하군.

<윈> 난 약속은 칼 같이 지킨다니까?

<연> 잔금은 지금 보내지.

호오.

이놈 봐라.

거래가 확실한데?

아마 연은 성벽을 연 것만으로 이미 이겼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연에게서 대금이 완전히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요리해 보라고.”

패황이라는 거대한 먹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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