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04화 (894/1,404)

#903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5)

뱀파이어.

이 녀석들은 이전에는 나온 적이 없던 몬스터들로 이 일대의 사냥터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다.

레벨대로만 보면 마계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레벨대의 사냥터에 존재하는 녀석들이라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다.

최소 어느 정도는 레벨을 갖추고 장비를 맞춰야만 안정적으로 사냥이 가능하겠지.

그래서인지 어설픈 수준의 유저들은 이곳 근처에서 찾아보긴 힘들었다.

거기다 이 사냥터는 초월과 관련된 연합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차지하고 있는 사냥터였다.

당연히 이곳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고가에 가격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고.

풀리는 아이템 물량도 철저히 관리를 했다.

돈이 되는 초고가의 사냥터.

아마 이런 사냥터 하나만 제대로 잡고 있어도 연합 몇 개는 살릴 자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관리 역시 철저했다.

그리고 이 사냥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존재.

한 번 잡기만 하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드랍하는.

이 사냥터의 주인.

뱀파이어 로드.

재중이 형이 말하기로는 저 녀석은 발록과 레벨이 동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내 옆에 있는 발록만큼이나 강하다는 뜻.

물론 레벨이 오를 대로 오른 발록과 비교하면 당연히 순정 상태의 뱀파이어 로드가 월등히 약할 것이다.

지금 당장 발록이 뱀파이어 로드의 목을 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하지만 그건 발록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유저들이 뱀파이어 로드를 한 번 잡기 위해서는 정말 모든 가용한 인력을 동원해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이 뱀파이어 로드를 잡은 연합은.

초월 연합.

뱀파이어 로드에게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다수 얻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최초보다는 조금 더 수월한 레이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사활을 걸지 않더라도 뱀파이어 로드를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뱀파이어 로드를 잡기 쉽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조금만 실수를 하면 아무리 고레벨의 유저라도 여럿 죽어 나가는 게 이런 레이드였다.

그리고 최초의 레이드와 두 번째의 레이드가 다른 점은.

첫 네임드가 죽고 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 네임드는 다시 리젠을 한다.

그렇게 네임드가 리젠이 되고.

가만히 놔두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일단 네임드의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은 주변의 몬스터들을 잡아먹고 성장하는 분류도 있었고.

유저를 습격해서 레벨을 올리는 네임드도 존재했다.

뭐 가만히 있는 네임드도 여럿 있었고.

그중 뱀파이어 로드는 앞의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네임드였다.

그대로 두면.

알아서 돌아다니며 학살을 하고 레벨을 올리는.

유저 입장에서 보면 거의 최악의 네임드라고 할까.

그래서 초월 연합에서도 이 네임드는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리젠이 되고 난 뒤에 그냥 두면 뱀파이어 로드가 레벨이 너무 높아져 도저히 잡을 수가 없게 되니까.

더 문제는.

이 뱀파이어 로드의 사냥터 자체를 이용 못하게 된다.

발록의 경우처럼.

레벨이 충분히 오른 발록은.

그 자체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발록이 거주하는 사냥터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고.

유저들이 사냥을 할 수 없는 사냥터로 지정됐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말한 것처럼.

뱀파이어 로드가 발록과 레벨대가 비슷한 네임드라면.

후에 일어날 일들은.

똑같다고 봐야겠지.

나중에 유저들의 레벨이 한참 올라서 다시 공략을 하게 되면 또 모를까.

그 전까지는 그냥 죽음의 땅이 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거점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사냥터와 뱀파이어 로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유저들을 보냈다.

만약 거점을 차지하더라도.

이곳이 황폐화가 되면.

그만큼 후에 얻을 수익이 줄어드니까.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최대한 소수의 인원으로 진행하는.

살얼음판의 레이드.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사냥터 관리나 레이드 진행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 정체 모를 유저들이 뱀파이어 로드의 영역에 아무렇게나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 기인했고.

경비가 삼엄하다가 중간에 그 경비가 싹 사라지니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레이드 역시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레이드를 하다가 유저가 죽어 나가면.

그만큼 뱀파이어 로드에게 경험치를 주게 된다.

다른 말로.

뱀파이어 로드의 레벨이 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뱀파이어 로드의 레이드는 조심해서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가급적 실수가 나오지 않게.

철저히 준비해서.

안 그래도 소수로 진행해야 해서 빡센데.

이런 정체 모를 유저들이 레이드 중간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심각하게 변했다.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뱀파이어 주변에 포진해 있던 레이드 진형의 바깥으로 몇몇 유저들이 화살과 마법을 날리면서 계속 신경을 거스르는 중이었다.

당연히 뱀파이어 로드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떨어져 있던 마법사와 힐러, 궁수들은 이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기도 했고.

“젠장. 이 새끼들 진짜 해보자는 거냐?!”

“우리가 누군지 알고 레이드를 방해해!”

“빨리 힐러부터 보호해! 죽으면 레이드 더 진행 못 한다고!”

“아, 지금도 빠듯한데 여기서 어떻게 빼라는 거야.”

“그럼, 그냥 맞고만 있을래? 저것들 처리해야 할 거 아냐!”

지금 뱀파이어 로드를 잡고 있는 유저들도 딱 봐도 굉장히 수준이 높은 아이템과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연합 내에서도 톱을 다툴 정도로 상위 랭킹의 유저들을 모아서 보낸 듯 했고.

그렇다고 전신이나 다른 녀석들은 보이진 않았지만.

저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프로 게이머일 것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형, 아는 사람들 있어요?”

지금 나와 재중이 형은 은신을 한 상태로 꽤 멀리 떨어진 상태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강 건너 불 구경이랄까.

거의 이건 팝콘 각인데.

발록은 주변 사물과 동화가 되듯 모습을 감추었다.

능력도 좋아.

숨겨진 능력이 이것 외에도 한둘이 아니겠지.

“몇은 잘 아는 애들이네. 대회 때 좀 발라 주기도 했고.”

“발라요?”

“아, 이겨줬다고.”

“흐음. 아무튼 정예라는 말이네요.”

“어, 저 정도면 어지간한 길드 몇 개는 순식간에 박살 내고 다닐 전력이다.”

재중이 형이 그렇다면 그렇겠지.

그만큼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가 녹록하진 않다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해요?”

“레이드 성사? 아니면 누가 이기는지?”

“뭐…… 둘 다요.”

“흐음. 레이드야 좀 늦춰져도 다시 와서 붙으면 승산이 있기는 해. 아직까지 레이드 팀 중에 사망자가 나온 건 아니니까. 물약도 넉넉하게 준비해 왔을 테니.”

“누군가 죽지만 않으면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거네요.”

“그래. 죽지만 않으면.”

그런데 말이 나오기 무섭게 외곽에서 레이드를 방해하는 유저들의 작전이 변했다.

바로 힐러나 마법사를 노리는 게 아니라 그대로 탱커에게 공격을 날렸다.

“어? 저건?”

“호오, 아주 멍청이들은 아니군.”

외곽의 방어가 약한 유저들만 노리니 어느새 근접 딜러들이 빠져나와서 그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당장 딜은 좀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힐러나 마법사들이 죽어버리면 레이드 자체가 망해 버리니까.

저게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는 정석이기도 했고.

그러자 오히려 외곽의 공격들이 탱커에게 집중이 되었다.

안 그래도 뱀파이어 로드를 맡고 있던 탱커는 항상 딜에 과부하된 상태였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탱킹을 하다 버티지 못하면 메인 탱커가 서브 탱커들에게 어글을 넘기면서 교대로 위기를 넘기곤 하는데.

그 상황에서 탱커에게 네임드 외에 다른 공격이 집중되면?

당연하게도 가득이나 힘든 상황이 더 어렵게 된다.

탱커가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지.

콰콱!

콰앙!!

“크윽! 씨발!”

메인 탱커가 정면으로 뱀파이어 로드를 직접 상대한다고 미처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지 못해 화살이 등에 와서 박히고 화염과 전격 마법이 등 전체에 터져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뱀파이어 로드가 놓칠 리가 없었다.

“죽어라!!”

그리고 보랏빛으로 물든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서 메인 탱커의 심장이 있는 부위를 확 파고 들었다.

콰직!!

콰앙!!

“큭!!”

다행히 눈치 빠른 서브 탱커가 재빨리 달려들어서 그 앞을 라지 쉴드로 겨우 막아 냈다.

그리고는 악을 쓰면서 외쳤다.

“뭐 하는 거야?! 똑바로 처리 못 해?! 우리가 당하면 끝이야!”

메인 탱커도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어느새 평정심을 찾은 듯 다시 뱀파이어 로드에게 달려들어서 어글을 끌어왔다.

아주 순간이지만 바로 레이드가 박살날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을 어떻게 넘기고는 다시 레이드가 진행되었다.

서브 탱커들도 이번에는 메인 탱커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리 배치를 완전히 바꾸었고.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하기보단 후방을 맡는, 좀 부담되는 방법이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테니까.

“칫, 타겟 어택 가능한 녀석들은 일부러 데리고 오지 않았는데…….”

“가득이나 정석 레이드 인원도 부족한데 할 수 없었잖아.”

레이드의 장비는 소홀해도.

장비 세팅이 PK에 유리한 유저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런 유저들은 주로 다른 유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배치되었고.

문제는.

지금 그런 성향의 유저들이 전부 거점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쪽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해야 하니 당연한 선택이랄까.

반대로 이곳은 그야말로 레이드만을 위한 세팅을 하고 온 셈이었다.

물론 유저들과 싸우려고 하면 싸울 수야 있겠지만.

효율의 문제지.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뱀파이어 로드를 붙들고 나머지는 저 녀석들을 타격한다. 지금 쭉 살펴보니 장비가 좋진 않아. 정리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해.”

“그래도 될까요?”

“어차피 뱀파이어 로드도 체력이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버티면 잡아 낼 수 있을 거다. 조금 지나면 견제 나갔던 녀석들도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버틴다!”

마치 누가 들으라는 식으로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메인 탱커의 모습.

그걸 본 뒤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어, 시간이 없다는 걸 인식해 상대가 실수해 주기를 바라는 거겠지. 지금처럼 외곽만 돌면서 레이드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심리전이라…….

나쁜 건 아니지.

이건 속는 놈들이 문제다.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흐음, 글쎄. 지금 같으면 바로 달려들 수도 있겠지. 지원 병력이 더 온다면 말이야. 귓속말로 빨리 오라고 말해 놨을 테고.”

뿔뿔이 흩어진 녀석들이라…….

그들이 가세하면 확실히 상황이 달라지겠지.

그럼 지금 외부에서 방해를 하고 있던 유저들이 일망타진 당하고 레이드는 그대로 끝이 날 터였다.

거기다 문제는 지금 방해를 하러 온 유저들의 장비가 생각보다 그렇게 좋진 않아 보였다.

역시 방해를 목적으로 온 거였나.

진짜 뱀파이어 로드를 잡을 목적으로 왔다면.

저것보다는 장비가 훨씬 좋아야 한다.

마치 지금의 저 레이드 팀처럼.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꾸 이상한 점이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형, 아무리 방해를 목적으로 왔다고 해도…… 장비가 너무 허술하지 않아요?”

“흐음. 확실히 그렇긴 하네.”

마구 올라오는 위화감.

이럴 때는 항상 뭔가 일이 벌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외곽에서 치고 빠지던 유저들 중 일부가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레이드 팀이 아니라…….

뱀파이어 로드를 향해.

“어?”

“어?”

나와 재중이 형 모두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몸을 날린 유저는 금방 뱀파이어 로드의 손에 장렬하게 허리를 뚫리고 그대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몇몇의 유저들이 동시에 몸을 날려 뱀파이어 로드에게 죽어 버리자.

갑자기 뱀파이어 로드의 몸 전체가 환하게 빛났다.

레벨업.

모든 체력 회복과 상태 이상 무효화의 기적.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메인 탱커의 표정이 곧장 헬쓱하게 변해 이곳이 떠나가라 외쳤다.

“야이! 미친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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