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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21화 (811/1,404)

#821화 파편의 시험 (2)

지금까지 플레이하면서 이 기술을 쓰는 NPC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애초에 이건 규격으로 정해져 있는 스킬이 아니니까.

튕기지 않게 검신의 면을 밀착해 타고 들어가 공격하는 기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전에 써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일격으로 바로 목이 날아갔을 터.

그나마 지금 공격으로 팔만 내준 것은 내 감각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했기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뺀 것이었다.

지금 저 녀석의 공격은 스킬로는 절대 못 막아.

누구보다 내가 써 왔기에 제일 잘 안다.

최소한 동등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알고 나자 바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거참…… 남의 기술을 이렇게 베껴 써도 됩니까?”

이건 눈앞에 저 녀석에게 하는 말이 아닌.

저 녀석을 만들어 낸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었다.

당연히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을 테니.

다른 사람들이 모니터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려 마신에 관련된 일이다.

현재 마신 관련 퀘스트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이곳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리고 지금 저 녀석도.

내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써서 만든 녀석일 터.

거기다 이걸 구현했다는 게 놀랍기도 하네.

그동안은 이런 녀석이 없어서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내 한숨 섞인 말투에 녀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말이냐?”

“넌 알 거 없고. 아니, 알아도 모르겠네.”

어차피 저 녀석에게 운영자에 대해 말해 봐야 전혀 키워드가 먹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NPC들은 운영자란 단어 자체의 인식이 불가능하니.

그런 내 말에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확 구기는 녀석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참.

내 얼굴로 저런 표정이라.

난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는 표정이라 더 생소하기도 했고.

아니.

그보다는 나와 다르게 움직이는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게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내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도.

“다른 곳에서 보스로 나오면 좀 짜증날 것 같은데 말이야.”

이 말도 누군가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고.

최종보스가 나라니.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일단 녀석이 쓰는 기술의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는 대처를 해야 하는데.

말이 쉽지.

특히 저 녀석의 두 개의 검.

칠흑으로 물들어 있는 검면에 별들이 쏟아질 거 같은 형태의 무기.

마신의 파편.

하나도 아닌 무려 두 개의 마신의 파편을 들고 있는 녀석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이쪽은 아직 미완성인 스펙으로?

하아.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네.

시험 문제가 완전 넘사벽이라.

지금부터는 정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이놈이!”

“내 얼굴로 이놈, 저놈 하지 말라고.”

바로 녀석의 신형이 사라지자 곧장 자세를 최대한 낮추며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들어 정면을 막아섰다.

카아아앙!

키이이익!

사라졌던 녀석이 브레이크가 걸리듯 내 앞에 나타났다.

두 개의 검 역시도 내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에 걸려 멈춰져 있었고.

이게 누굴 눈먼 장님으로 아나.

똑같은 기술.

똑같은 패턴의 돌격.

알고도 못 막으면 내가 바보지.

어차피 내 지금의 민첩 수치로는 녀석의 움직임을 피하지 못 한다.

몇 발짝 떼기도 전에 뒤가 잡힐 터.

일단 이곳의 공간을 그렇게 넓지도 않았다.

아무리 뛰어 봐야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구간도 없고.

당연히 이런 곳에서는 순간 스피드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자가 유리했다.

녀석의 돌격 속도가 아스티아만큼이나 빠르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해도.

공격하는 그때의 딱 한순간만 따라잡을 수 있다면.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냐.

거기다.

녀석의 무기의 형태.

두 개의 검을 쓴다는 것까지도 나의 그것을 가져다 쓴 듯 완전히 판박이었다.

애초에 이 녀석의 모델을 누구로 삼았는지.

너무 잘 알겠잖아.

내가 자주 쓰는 스킬.

그리고 두 개의 검들을 휘두르는 방식.

어떤 손의 검을 먼저 날리고 이어지는 다른 검을 어떤 각도로 휘둘러야 얽히지 않고 휘두를 수 있는지.

검의 궤적.

속도.

휘두름의 강약.

몸의 자세의 높낮이.

허리의 움직임.

손목의 각도.

발의 위치.

무릎의 각도 등등.

녀석이 공격하면서 보여 주는 그것들이 너무도 내 공격 방식과 닮아 있어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대체 얼마나 날 관찰한 건지…….

덕분에 녀석이 어떤 경로로 공격해 올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 상태였다.

첫 번째 상단 평타에 이은.

하단 연속 공격!

카강!

캉!

그리고 이어서 회전하며 대각 올려치기.

카각!

뒤따라 중단!

카가각!

……에 이은 내려치기!

키기긱!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들어오는 5연타를 죄다 막아 내자 녀석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이걸 막아?!”

그럼 막지.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콤보인데.

그다음 녀석이 뒤로 빠졌다가 온몸을 밀어붙여 돌격하듯 중앙 목젖을 향해 내지르기가 들어오자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상단으로 올렸다.

당연히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하지만.

이건 페이크!

곧 첫 번째 검이 걸리자마자 다른 하나의 검이 비슷한 경로로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일격 필살인 듯 내 모든 신경을 처음의 검에 집중시킨 뒤.

곧장 심장을 노린 공격이었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네.

패턴까지 다 복사하다니.

당연하겠지만 이것 역시도 완벽하게 심장을 보호하며 쳐내자 다시 녀석이 인상을 썼다.

안 통해.

드워프왕이 준 장비들 덕분에 근력은 이전보다 상당히 늘어난 상태라 힘에서 아예 형편없이 밀리거나 하진 않았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패턴을 알았다고 해도 검을 맞부딪쳐 막는 건 꿈도 꿀 수 없었을 터.

그리고 민첩은 애초에 비상식적으로 높았던지라 어느 정도 녀석을 따라붙을 수 있었다.

공격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녀석이 노리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마치 공략이 끝난 네임드와 같다고 해야 하나?

패턴을 다 알면.

그만큼 공략이 쉬워진다.

오히려 너무 나와 똑같이 만들다 보니 저런 실수가 나오게 된 걸 지도.

다만 붙을 때마다 마신의 파편에서 나오는 기운에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이 밀리는 느낌이 강했다.

칫.

아직 이쪽은 미완성이라고.

그리고 발루딘은.

내 쪽이 속도에 우세할 때에 제 위력을 발휘한다.

연속 공격을 먹여야 후속타가 힘을 더 받으니까.

지금처럼 수세에 몰려서 계속 방어적으로 가면 제대로 타격치를 내지 못해 오히려 발루딘은 마력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었다.

게다가 저 녀석이 매번 크리티컬을 성공시킬 정도로 약한 존재도 아니다.

아마 이게 이벤트 무기의 한계이려나?

더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그렇다고 드래곤 슬레이어는 지금 상황에 도움이 안 되고.

용족 상대로는 최강이지만.

나머지를 상대로는 좀 아쉬운 감이 항상 존재했다.

물론 진(眞) 드래곤 슬레이어가 악마형에도 강하기는 한데.

그것만 바라보고 쓰기에는 반이 넘는 옵션들이 묻혀 버리니 좀 아쉽지.

역시 르아 카르테를 받쳐 줄 새로운 다른 무기가 필요해.

지금까지는 발루딘으로 가능했지만.

그래서 더욱 마신의 파편이 필요한 것이다.

더 높은 위력을 내려면.

그러기 위해선 네 녀석을 반드시 잡아야겠지.

키기기긱!

캬가갹!!

녀석의 검이 내 르아 카르테와 마주치는 순간.

다시 한 번 녀석의 검들이 내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의 검신을 타고 들어오며 휘어지듯 밀고 들어왔다.

연속기가 안 되니까 결국 이거냐?

순간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했다.

이 기술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이 절대 아니었다.

상대방의 검의 움직임을 모두 보고서 그때마다 자신의 검을 컨트롤해 완전히 상대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기술.

제대로 펼치면 검이 한 자루처럼 붙어서 마치 붙어 있는 듯한 느낌까지 주게 된다.

일어날 수 있는 마찰을 극한으로 줄여 버리니.

그리고 그 상태에서 상대 검의 궤적을 이용해 밀어버리면 검이 아예 원하지 않는 궤적으로 밀려 나가며 몸이 완전히 열리게 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의 통제를 뺏겨 버리는 것과 같은.

가드를 해야 하는 검이 저 멀리 몸에서 떨어지면…….

끝은 죽음뿐이다.

지금도 녀석이 내게서 검의 주도권을 뺏고자 완전히 검을 붙이고 들어왔다.

나도 이걸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

파훼할 방법이 없다면.

그럼 남은 길은 하나지.

동시에 녀석에게 승부를 건다!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해 녀석의 검이 붙어오는 만큼 내 검 역시도 녀석의 마신의 파편에 완전히 붙여 버렸다.

그러자 서로의 검이 접착제라도 바른 듯 완전히 허공에 붙어서 한 자리에 딱 멈춰버렸다.

아니 멈춘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둘 다 서로의 주도권을 뺏어오려고 미세하게 계속 검의 궤적을 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딱 한 번만 실수를 하면.

검이 튕겨 나가며 완전히 몸이 열려 버려!

집중해라!

더 집중해!

더!

좀 더!

그렇게 할 수 있는 온 감각을 검 끝에 모아 집중하자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가 확 열린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주변의 공기조차 느려지는.

흐름이 느려져……?

아득하게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 온몸을 파고들자 몸 전체의 세포가 들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녀석의 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움직이려고 하는지.

검의 궤적이 가야 할 경로가 수백, 수천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가 모든 가능성들이 지워지며 그중 가장 완벽한 길 하나를 내게 보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건…….

꼭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는 것처럼.

녀석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전부 파악되는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검의 궤적이 아닌.

미래의 녀석의 궤적을 파고 든다?

이게 정말 가능한가?

단순히 눈으로 보고 검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건 완전한 정상을 벗어난 극한의 감각이 결과를 가져다주는 궤적이었다.

이성은 하지 말라고 막고 있지만.

믿지 않으면 해볼 수도 없어.

반대로 믿는다면!

그리고 그 순간.

앞으로 녀석의 검이 움직여야 할 궤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 검의 궤적을 틀어 밀어 올렸다.

정상과는 다른 비정상.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믿고 휘두른.

절대적인 감각의 검.

카가강!!

그러자 내가 믿고 휘두른 르아 카르테가 빛을 발하며 마신의 파편을 완전히 바깥으로 쳐내면서 정적과도 같은 순간을 깨 버렸다.

서로가 팽팽했던 균형을 단순히 이중으로 궤적을 트는 것만으로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왔다.

“이게 무슨……!”

녀석 역시도 모든 신경을 이 궤적 겨루기에 쏟고 있었던지라 마신의 파편이 튀어나갈 것은 생각도 못 했는지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완전히 열린 녀석의 품 안으로 바로 파고들며 발루딘의 검 끝으로 녀석의 심장을 향해 일격을 넣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이렇게 무방비로 몸이 열린 상태로는 다시 검을 회수할 수 없어.

다른 한 자루의 마신의 파편이 있긴 하지만 이미 한쪽 팔이 위로 튕겨 나간 상태라 몸의 균형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싸움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은 전혀 없어!

단 한 방.

녀석의 심장을 박살내야 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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