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화 파편의 시험 (1)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녀석과 함께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 마신의 파편이 유저 『 주호 』에게 반응합니다. 》
《 마신의 파편의 특수 이공간으로 입장하셨습니다. 》
마신의 파편이……?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시스템 메시지에도 특수한 장소라는 언급이 있었고.
그렇다면 이 공간은 지금 저 녀석이 만들어 놨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방금 나타는 저 녀석은…….
아마도 마신의 파편의 정체라고 보면 되려나?
앞에 뜬 메시지에서 내게 반응을 했다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내 생각에 확신을 주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 : 마신의 파편 제작2 (특수). 》
- 마신의 파편 제작1 완료.
- 마신의 파편 정보 습득.
- 드워프족 왕과 함께 마신의 파편 제련 시도.
- 퀘스트 보상.
마신의 파편의 시험 퀘스트 연계.
퀘스트가 뜨자마자 완료가 되면서 바로 다음 퀘스트가 떴다.
《 메인 퀘스트 : 마신의 파편의 시험 (특수). 》
- 마신의 파편 제작2 완료.
- 마신의 파편의 시험 시작.
- 퀘스트 보상.
마신의 파편 소유권 획득.
일단 과정 자체는 어차피 카르바할이 진행한 것을 따라가기만 했으니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많이 걸린다는 것만 빼면 퀘스트의 방향을 몰라서 헤매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노가다 끝에 지금은 완전히 마신의 파편과 관련된 메인 퀘스트를 끝낼 수 있었다.
이제…….
저 녀석만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건데.
메인 퀘스트를 슬쩍 눈으로 확인 후 한 가지 문구에 집중했다.
마신의 파편의 시험.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어두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시험이라는 뜻이려나.
아니면 지금 나타난 저 녀석이?
어느 쪽이 되었든 지금까지의 진행을 보면 결코 쉬운 길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시험이라면…….
대비해야겠지.
저 앞에 있는 녀석도 눈에 계속 밟히는 중이고.
혹시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상태인가 싶어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넣어봤는데 의외의 상황이 일어났다.
《 귓속말이 차단됩니다. 》
《 특수 이공간의 결계 안에서는 귓속말이 불가능합니다. 》
귓속말이 차단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공성전을 한다던가.
상대방에게 정보를 완전히 막아야 하는 상황일 때.
흐음.
그럼 지금도 그런 거려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막는 거라면…….
결국 이 상황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다.
지금은 얌전히 서 있기는 한데 말이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감각을 퍼트리자 주변의 흐름들이 바로 내게 밀려들어 왔다.
저 멀리 서 있는 녀석을 포함해서.
문제는.
현재 감각에 느껴지는 이 공간이 생각보다 작았다.
어쩌면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던지.
혹은 크게 만들면 안 되는 건가?
여기가 오직 퀘스트만을 위한 공간이라면…….
크기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감각에 재중이 형을 비롯한 모두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곳은 완전히 별개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답은 저 녀석에게 있는 건가.
바로 인벤에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르아 카르테를 업그레이드해 놓는 건데.
설마 여기서 이런 퀘스트로 이어질 줄 생각도 못 했다.
“금속의 정령…….”
혹시나 싶어 금속의 정령을 불러 보자, 르아 카르테가 환하게 빛나며 금속의 정령이 르아 카르테에서 빠져나왔다.
“응? 여긴 뭐야?”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자는 거지?
“어딘지 모르겠어?”
“응.”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녀석이 내게 걸음을 옮겨왔다.
저벅.
아마 금속의 정령이 나와 르아 카르테가 빛나면서 녀석의 이목을 끌게 된 모양인데.
이런 어둠 속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은 그 자체로 잘 보이는 사격지나 마찬가지였다.
“빛을 없애.”
“응.”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금속의 정령이 르아 카르테에서 나오는 모든 빛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곧장 최대한 소리를 죽이면서 발을 박차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벗어났다.
적어도 저 녀석이 나와 웃고 놀자고 여기 나온 건 아닐 터.
확실히 알 때까지는 최대한 조심할 필요가 있어.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자리를 옮기기 전의 자리쯤에서 뭔가가 크게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캬가각!!
이건 바닥이 쓸린 건가?
날카로운 뭔가가 바닥을 헤집으면서 긁어놓았을 때나 날 법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무기라도 던졌나?
아님 직접?
전자의 경우에는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가진 궁수 계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혹은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녀석이거나.
내가 기척을 죽이고 자리를 뜬 그 순간 바로 타격음이 터져 나왔으니까.
꽤 먼 거리를 아주 정밀하게 조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에 맞는 신속한 판단까지.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굉장한 수준이었다.
아주 잠깐 빛이 나왔다고 그곳의 위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 타격 가능하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아.
이쪽에서 기척만 잘 죽일 수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다른 경우라면 꽤 피곤해진다.
녀석이 직접.
몸을 날려서 타격을 한 경우.
이건…….
어쩌면 최악이려나?
나와 녀석의 거리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는데 그 거리를 빛이 나오는 아주 찰나에 바로 좁혀 와서 바닥이 깊게 파일 정도로 타격을 했다는 뜻이니까.
접근한 거리와 시간을 생각해 보면…….
직접 맞붙는다면 꽤 고생을 할 게 뻔해 보였다.
차라리 원거리여라.
아까 감각을 퍼트려서 확인한 이곳은 마구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기에는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접근전으로 몰고 가면…….
그런 생각을 하는데 타격이 있던 그 자리에서 뭔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릉…….
큭.
역시 쉽게 가는 법이 없다니까.
일단 저 소리만 들어봐도 녀석이 검을 쓴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일부러 보여 주듯이 기척을 내오는 걸 보면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려나?
날 한 수 아래로 보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때 녀석에게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도 울리면서.
《 마신의 파편이 유저 『 주호 』를 시험합니다. 》
《 마신의 파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마신의 파편의 소유권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
《 유저 『 주호 』는 열 번에 걸쳐 마신의 파편의 시험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
《 지정된 횟수 동안 성공하지 못하면 메인 퀘스트 초기로 돌아갑니다. 》
《 마신의 파편을 제거하거나 빈사 상태로 만들 경우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
“네 녀석이 날 깨운 건가?”
그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음성을 듣는 순간 시스템 메시지를 이미 관심 밖이었다.
이렇게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설 정도의 위압감이라니.
그리고 녀석의 기척이 감각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지자 몸이 먼저 반응해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자동적으로 들어 올렸다.
카앙!
카갸갹!!
끼기긱!!
뭔가가 갈리는 소리와 심하게 긁혀오는 소리.
그와 함께 두 손에 엄청난 타격이 들어와 양팔을 동시에 헤집어 놓았다.
크윽.
뭔 놈의 힘이 이렇게……!
녀석을 잠깐 놓쳤을 뿐인데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검을 휘둘러 맞부딪혀 왔다.
그 순간.
서로의 검에서 불꽃이 튀며 어두운 공간 안에서 녀석의 얼굴이 얼핏 드러났다.
“호오, 이걸 막아?”
그리고 그때 나도 모르게 녀석을 보며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
녀석을 밀쳐 내기 위해 곧장 최대치의 힘을 끌어올려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휘두르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아무 저항도 없이 그 힘을 타고 바람처럼 밀려 나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칫.
손에 아무 감각이 없어.
검을 서로 부딪치면 그만큼 타격이 가야 정상인데 방금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운영자 이놈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미친놈들이 왜 남의 얼굴을 가져다 쓰는 거냐고!
녀석이 강한 것도 강한 건데.
더 놀란 건 어둠 속에 비친 불꽃 속에서 내가 아침마다 보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봤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혹시 도플갱어 같은 건가?
내 모습을 따라 하는?
그게 아니라면 마신이 처음부터 내 모습을 가진…….
하.
이건 말도 안 되지.
너무 어이가 없다 보니 이상한 생각을 해버렸잖아.
“그렇군. 이게 네 모습인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들어 올렸는데 이번에는 녀석이 접근하지 않았다.
아까 그건 탐색전?
간을 보는 건가?
날 공격할 때 전력을 다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완급조절을 하는 여유가 있었어.
아마 저 녀석이 내 기량을 상회해야 아까와 같은 동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이건 꼭 누굴 보는 것 같아서 영…….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스펙이 높아졌을 때 저만큼의 컨트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묘하게 비슷하단 말이지.
마치 누군가에게 훔쳐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소름이 돋았던 이유가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저런 컨트롤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신의 파편이라지만.
NPC가 이런 수준의 컨트롤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딱 한 번 부딪혀 본 거지만.
이 녀석.
분명히 강하다.
단순히 스펙이 높아서가 아니라.
만약 유저들 사이에 이런 녀석이 하나 떨어지면?
그땐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유저들이 몰살당할 것이다.
그만큼 강해.
아니, 유저들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그런 마신의 파편이 내 몸과 얼굴을 한 상태로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다시 말했다.
“날 깨운 녀석이 이렇게 약한 녀석이라니. 나까지 약해졌잖아.”
“그게 무슨?”
“네가 약하니까 나도 약하다는 거다.”
약해졌다?
저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 중 하나.
마신의 파편이 유저들 앞에 등장하는 건 한참이 지나서 유저들의 레벨이 상당히 올라가고 난 뒤일 것이다.
이 마신의 파편을 무기화시키는 과정은.
아마도 깨우는 자가 엄청나게 고렙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 쪽에서는 꼼수를 써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다른 말로 하면.
마신의 파편이 요구할 만한 레벨 대에서는 엄청나게 미달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아직 절대 깨울 수 없을 스펙의 내가 깨운 셈이니.
그래서 뭔가가 잘못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마신의 파편 말대로 녀석이 꽤 약해졌다면?
녀석이 내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래.
분명히 녀석에게 내가 뭔가의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시험이라…….
아예 말도 안 될 정도의 밸런스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내 수준에 맞춰서, 녀석도 변하는…….
문제는 지금도 끔찍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데.
스펙 자체가 완전하게 높은 건 아니야.
그럴 거면 아예 처음의 일격도 막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어야 정상이었다.
그때 다시 마신의 파편이 어둠 속에서 내게 달려들었다.
이거.
꽤 위험해.
감각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몸이 못 따라가고 있어.
까가강!!
카아앙!
그렇게 연속 공격을 몇 번 막아 내는 순간.
촤아악!
방금도 분명히 접근한 것까진 알았는데 팔 한쪽을 완전히 내어주고는 뒤로 밀려났다.
어……?
지금.
내 검을 타고 넘어왔어?
어둠 속에서 녀석의 검과 내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녀석의 검이 내 검에 붙어 마치 뱀처럼 휘어 들어와 내 팔을 베고 지나갔다.
그 순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뭘 상대하고 있는지를.
미친.
이건…… 내 기술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