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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04화 (794/1,404)

#804화 고대 정령의 가호 (1)

이번에 마계 경매장에서 쓴 돈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만약 유저들이 그걸 지켜봤다면 전부 다 뜯어말릴 정도의 엄청난 금액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많은 금액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 고대 정령의 가호 』

일단 뜯어말릴 만한 이유 중 하나로 이 아이템에 대한 설명 자체가 없었다.

요즘 나오는 몇몇 아이템들이 이런 식이라…….

정확한 용도를 몰랐다면 절대 경매에 나서지도 않았겠지.

아스티아의 말에 따르면 성장할 수 있는 무구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준다고 했었다.

그게 확실한 건지는 이제 써 봐야 아는 일이고.

아마 용도 자체가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다른 마왕들이 일제히 경매가를 올려 대진 않았을 테니까.

분명히 이 물건의 효과를 확실히 알기에 경쟁을 한 것이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신기하다는 듯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더 이상은 성장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네, 전에 설명으로는 완전한 르아 카르테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말과 함께 잠시 날 보던 재중이 형이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뭐 더 좋아지면 된 거지. 안 그래도 주변에 비해 스펙이 밀린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야.”

재중이 형 말대로 마계에 오자마자 계속 드는 생각 중 하나였다.

한꺼번에 사냥터를 너무 훅훅 건너뛰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존재들이 대놓고 죄다 마왕부터 튀어나와서 그런 건지.

레벨도 그렇고.

하나같이 부족한 것 투성이야.

“일단 써 봐야겠죠?”

“어,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조심해서 하고. 그거 얼마짜린지 알지?”

“두말하면 입 아프죠.”

아마 건물 몇 개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스펙에 대한 투자도 이 정도면 확실히 과하다.

괜히 떨리는데?

혹여나 날리게 되면 돈이 아까운 문제보다는 이 물건을 다시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분명 운영자 가른이 이 물건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물건의 용도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흐음, 그건 좀 의외긴 하네. 혹시 예전에는 몇 개가 더 있었나?”

“모르겠네요.”

“그래서 안 할 거야?”

“아뇨, 해야죠. 이걸 모셔 놓고 제사 지내려고 산 건 아니니까요.”

곧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인벤에서 꺼내들자 환한 빛이 『 고대 정령의 가호 』의 표면에서 터져 나와 회의실 안을 온통 환하게 만들었다.

일단은 귀한 물건이라 이건가?

팔각의 투명한 형태를 한 아주 커다란 보석이었는데, 손에 쥔 채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계속 다른 빛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보석 안에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빛무리들이 휘몰아치면서 움직이고 있었고.

“호오, 굉장히 화려한데? 전에 운영자 가른이 들었을 때와는 천지 차이야.”

“네, 이렇게 보니까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이걸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보석만으로도 꽤 값어치가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뭐 외형이 중요한 건 아니지.

진짜 중요한 건…….

일단 르아 카르테를 인벤에서 꺼내놓고 회의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손에 쥐고 있던 『 고대 정령의 가호 』를 나란히 두었다.

뭔가 반응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르아 카르테와 『 고대 정령의 가호 』가 남을 보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 반응이 없지?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그 순간 한 가지 가정이 스쳐가며 등에 식은땀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꽝인 건 아니겠죠?”

“설마…….”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얼굴로 두 개의 아이템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곤 르아 카르테 검날 위에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올려놓았는데…….

이번에도 무반응.

잠시 다시 살펴보던 재중이 형이 이번엔 르아 카르테를 들어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확 내려치려고 하자 깜짝 놀라 형을 말렸다.

“형!”

“흠, 이건 아닌가?”

“내려친다고 되겠어요?”

“역시 그렇지?”

휴, 십년감수했네.

잘못하다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날리기라도 하면 답도 없다.

“아무래도 이 녀석, 우리와 밀당하려는 것 같은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요.”

반응이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우리 팀이 연이어 안으로 들어왔다.

챠밍이 반가운 듯 먼저 인사를 했다.

“어? 오빠. 언제 오셨어요?”

“방금. 나간 건 잘 됐어?”

“아, 사냥터만 좀 살피고 왔어요. 별로 쓸 만한 정보는 없지만…….”

“왜? 괜찮은 곳이 없어?”

“네, 몬스터 숫자가 너무 적어요.”

옆에 전사 형도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마. 이 근처 사냥터는 씨가 말랐어. 그냥 폐허라니까?”

“그 정도로 안 좋나요?”

“어, 저쪽 마왕성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이 다일 정도야. 이 주변 필드 몬스터는 발견해도 리젠이 너무 느리고. 몇 팀만 자리를 잡으면 답도 없어.”

“그건 꽤 난감하네요.”

주변에 적절한 사냥터가 없다는 건 곧 마왕성을 굴리기에는 꽤 좋지 않은 환경이 된다.

역시 필드는 안 되겠어.

“곧 사냥터는 해결될 거예요.”

“그래?”

“마계 탐사대를 이용하면 주변에 숨겨진 사냥터들을 꽤 알아낼 것 같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아마 다들 꽤 고생하지 싶지만…….”

그리고 마계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추려 우리 팀에게 알려 주었다.

다들 내 말을 들으면서 표정이 헬쓱하게 변한 건 어쩔 수 없었고.

특히 전사 형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가 들고 있는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바라보았다.

“저게…… 그렇게 비싼 거라고?”

“네, 아마 건물 몇 개 값은 할 것 같아요.”

“하아, 너 돈 많은 줄은 알았는데…… 진짜 넘사벽이네.”

“뭐 저도 이번에 돈을 좀 썼어요.”

“좀?”

“하하…… 좀 많이?”

“난 가끔 네가 무서울 때가 있어.”

그것 말고도 『 피닉스의 알 』도 이야기를 해주자 또 다시 모두가 얼이 나간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그 미친 가격으로 사댔으니…….

심지어 이쁜소녀조차 입을 벌리고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부, 부자!!”

“음, 네가 더 부자일 텐데.”

이건 사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라…….

“회사 돈이지 내 돈은 아닌 걸요.”

“그런가?”

놀라는 것도 잠시.

이젠 다들 『 고대 정령의 가호 』에 시선이 모아졌다.

“그런데 이게 아무리 해도 반응을 안 하네요.”

그러자 모두 달려들어 이리저리 르아 카르테와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살펴보았다.

둘을 부딪혀도 보고, 날을 갈듯 문질러도 보고.

별별 짓을 다 했는데도 반응을 하지 않는 가운데, 이쁜소녀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르아 카르테를 들고 『 고대 정령의 가호 』에 확 내려쳤다.

다들 놀라서 말리기도 전에.

까아앙!!

티이잉!!

맑은 쇳소리와 보석이 공명해서 울리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고 난 뒤 순간 다들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설마 깨진 건 아니겠지?

“헤에, 이것도 안 되요오!”

정말 십년감수했네.

그런데 그때.

『 고대 정령의 가호 』의 표면에 약한 균열이 생겨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표시가 나진 않지만.

정확하게는 르아 카르테의 날로 내려친 부분에 미세한 금이 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내 그 균열들이 마치 거미줄이 퍼져 나가듯 『 고대 정령의 가호 』의 매끈한 보석 표면으로 쭉 이어져 나갔다.

“어! 어?!”

르아 카르테로 내려친 이쁜소녀의 표정이 바로 사색이 되며 나와 표면이 갈라져 가는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번갈아 바라봤다.

거의 울듯한 표정과 함께.

“오빠…… 제가 부순 건 아니겠죠?”

재중이 형이 옆에서 고래를 저었다.

“으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설마 내려치는 게 답일 줄 몰랐는데?”

그 말과 함께 갈라진 『 고대 정령의 가호 』의 보석 틈새로 환한 빛이 다시 새어 나오며 공중에 뭔가의 형체를 만들어 갔다.

그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것과는 완전 다른 모습.

그리고 점차 그 형체는 흡사 갑옷을 두르고 있는 긴 흑발의 소녀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얼마 뒤.

공중에서 온전히 형태를 만들어 낸 소녀가 나를 바라보면서 하이톤의 비명을 질러 댔다.

“야!! 미쳤어?!!!”

끙.

이건 또 뭐지.

설마 『 고대 정령의 가호 』에 이런 녀석이 들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만남은 아닌 듯 보였다.

“하마터면 소멸할 뻔했잖아!!!”

소멸?

그 말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내려친 이쁜소녀는 더욱 더.

그때 이쁜소녀의 떨리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주 잘했어!”

“잘했어요?”

“응, 매우.”

언제나 그랬듯 당연하겠지만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지.

그리고 난 뒤 『 고대 정령의 가호 』에서 나온 정령에게 시큰둥하게 말을 꺼냈다.

“소멸 안 됐으니 됐잖아.”

“뭐?!! 아니…… 내가!!”

“그러게, 아까 얌전하게 나와 줬으면 좀 좋냐.”

“칫, 이 몸은 아무에게나 모습을 보이는 정령이 아닌……!”

정령……?

“방금 정령이라고 했죠?”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 대답했다.

“어, 정령이라네?”

정령이라…….

그러고 보니 정령이라는 존재는 여기서 처음 보는 거려나?

“그런데 정령이 보통 이래요? 막 불 나오고 바람 불고, 그런 정령 아니에요?”

평소 생각하던 정령과는 뭔가 많이 어긋나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인지 기묘한 표정으로 새로운 정령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 고대 정령의 가호 』에서 나온 정령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외쳤다.

“감히 고대 정령인 나를 그딴 하급 정령들하고 날 비교하다니!! 내가 누군지 알면……!”

“……으음. 이것 참.”

굉장히 성격 강한 소녀를 보는 듯한 느낌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했다.

앞으로 좀 피곤하겠는데...

일단 고대의 정령이라고 하니까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일반적으로 구할 수도 없는 특수한 정령인 건 확실해보였다.

“흠, 지켜봤으면 알겠지만…… 내가 너한테 투자한 게 적지 않거든.”

이건 다른 말로 제대로 된 성능이 안 나오면 두고 보자는 말과 동일했다.

“날 돈 따위로 사다니…… 천 년 정령생에 완전 굴욕이야!”

천 년?

깜짝 놀라 재중이 형을 보자 역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호오, 생각보다 꽤 많이 됐잖아? 오래된 정령이니까 더 좋은 거려나?”

마왕이나 마족들도 몇 백 년이면 오래되었다고 하던데.

천 년 정도로 살았으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려나?

“흥, 어지간한 정령들은 다 내 밑이야.”

치켜세워 주니 금방 좋아하는 거 봐.

세월은 오래됐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새침한 소녀를 다루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거 잘하면…….

꽤 재밌으려나?

이왕 치켜세워 주기로 한 거.

조금 더 서비스다.

“그래서 우리 고귀한 정령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내가 인정해 주는 듯 말을 하자 마치 고양이가 골골거리듯 콧대가 한껏 올라간 정령이 선언하듯 말했다.

“흥, 이제 좀 알아보는구나? 난 모든 무구들의 어머니인, 금속의 정령이야!”

금속의 정령?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금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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