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화 고대 정령의 가호 (2)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물론 고대 정령에게 들리지 않게.
<주호> 금속의 정령도 있어요?
<불멸> 몰라. 나도 처음 봐.
재중이 형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그냥 직접 물어볼까?
하지만 마냥 뿌듯해하는 저 고대 정령에게 쓸모가 있는 정령이냐고 물어보면 확 삐질 것 같기도 하고.
아까 전에도 표정이 오락가락하는 걸 보면.
이런 쪽으로는 굉장히 감정 변화가 심한 것 같았다.
<주호> 그런데 가른에게서 이런 설명은 없었잖아요.
<불멸> 확실히 그렇긴 하지.
운영자 가른에게 금속의 정령이 나온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 했다.
흐음.
이거 사기 당한 거 아냐?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운영자 가른은 이 『 고대 정령의 가호 』에 대해서 하나뿐이라는 말만 했을 뿐.
특별히 이것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거나 어떤 운을 띄우지도 않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분명 그때 아스티아가 꼭 사라고 했었던가…….
전대의 용사가 가졌던 가호라는 말도 했었고.
다른 말로 정령의 눈물.
고대 정령이 선물을 했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정령을 부릴 수 있냐고 아스티아에게 물어봤을 때.
저 고대 정령은 특별하다는 말과 함께 아무나 부를 수도 없는 물건인데다가 부른다고 해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돌아가 버린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고대 정령이 가호를 주고 사라진다는 말까지.
아스티아의 말을 떠올려 보면 저 금속의 정령이 『 고대 정령의 가호 』 안에 있다가 나타나 가호를 준다는 말이 된다.
그럼 지금의 저 금속의 정령은 내게 가호를 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려나?
아무튼 그 가호를 한 번 받으면 저 금속의 정령은 사라진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좀 아까운데?
아니.
그런 것들은 둘째치고.
아스티아가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의 아무나 부를 수 없다는 말.
일단 등장부터가 좀 이상하긴 했다.
정확하게는 『 고대 정령의 가호 』를 박살 내기 전에 헐레벌떡 튀어나온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할까.
『 고대 정령의 가호 』의 표면이 깨지면서 분명히 고함을 질렀었다.
하마터면 소멸될 뻔했다고.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금속의 정령을 불러 낸 것은 절대 아닐 터.
원래라면 내가 마음에 든다던가.
주인을 평가한다던가.
뭐 그런 종류의 아이템이겠지.
이건 일단 어쩔 수 없나.
방법이야 그렇다 치고 벌써 불러내 버렸으니…….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 한 말이 더 신경 쓰였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돌아가 버린다고 했던가?
다른 말로 지금 금속의 정령이 우리가 마음에 안 들면 이대로 사라질 확률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사행성 확률형 게임도 아니고…….
무려 백억 대의 돈을 들여서 구한 건데.
그것도 확률을 봐야 한다니.
<주호> 설마 돌아가 버리진 않겠죠?
<불멸> 그럼 달려가서 다 엎어야지.
재중이 형 역시 옆에 있었기에 이 녀석이 얼마나 비싼지는 잘 알고 있었다.
<주호> 솔직히 그만큼 값어치를 해줄지 모르겠어요.
그냥 정령의 재롱 정도를 보기 위해서 그 거금을 투자한 것이 아니야.
만약 이 정령이 내 기대치에 못 미친다면…….
물론 이런 기대와 달리 챠밍과 이쁜소녀는 이 자그마한 정령에게 푹 빠진 느낌이었다.
“귀여워…….”
“꺄! 정령이 날아다녀요!”
이전에 소녀 라미아처럼 귀여운 녀석도 있긴 한데.
뭐 일단 그쪽은 펫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정령은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르샤 누나와 막내별도 꽤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하아.
제발 귀엽게 보이는 것만큼이나 이 금속의 정령이 좋길 바랄 수밖에.
그런데 이상한 점이 계속 생각에 걸렸다.
왜 이 금속의 정령이 뭔가를 하지 않는 거지?
분명 『 고대 정령의 가호 』에서 나왔으면 내게 뭔가 가호를 준다던가 하는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일단 말을 해봐야 하려나.
“모든 금속의 어머니라……. 네가 고대 금속의 정령이라는 건 잘 알겠고…… 그런데 혹시 내게 뭔가 해줘야 하지 않아?”
숨겨진 정체는 정체고.
받을 건 받아야지.
그렇게 던진 물음인데 그 순간 금속의 정령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러더니 마치 화가 난 듯한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으로 날 확 째려보았다.
어?
이 반응이 뭐지?
금속의 정령의 저 반응을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재중이 형이 날 보며 물었다.
“저거 네가 바라던 반응은 아니지?”
“아마도요.”
그때 금속의 정령이 허리에 손을 착 얹고는 내게 말했다.
“해주긴 뭘 해줘!! 네가 『 고대 정령의 가호 』를 부숴 먹었잖아!!”
그러면서 금속의 정령의 작디작은 손가락으로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르아 카르테에 내려친 부분을.
그냥 금이 간 정도가 아니었나?
설마…….
이것 때문에 안 된다고?
그런 금속의 정령의 말을 들은 이쁜소녀의 표정이 퍼렇게 죽어 버렸다.
“오빠, 제가 진짜 부셨나 봐요오…….”
미안함 반, 난처함 반이 섞인 이쁜소녀의 울먹거림에 나 역시 난감함을 느꼈다.
설마 금속의 정령이 보석에 금이 좀 간 걸로 일을 못한다고 땡깡을 부리다니.
이런 상황은 생각도 못 해봤으니.
“아냐, 괜찮아.”
“……엄청 비싼 거잖아요.”
“으음, 그렇긴 한데…….”
“제가 물어 드릴게요…….”
난감하네.
그렇게 쉽게 물어 줄 정도의 물건은 아니라서 말이지.
“방법이 있겠지. 일단 이야기를 좀 해 보자.”
혼란 속에서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아직 금속의 정령이 『 고대 정령의 가호 』 위에 떠 있다는 것.
분명히 아스티아가 말하지 않았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 버릴 거라고.
그런데 지금 이 금속의 정령은 여전히 『 고대 정령의 가호 』 근처에서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우리가 마음에 들었나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개판이지.
당장 금속의 정령이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깨부쉈다고 쌍심지를 켠 상태인데.
그럼 당연히 마음에 안 들어야 정상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왜 돌아가지 않는 거지?”
이건 순전히 내 가정일 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물어보자마자 금속의 정령의 영롱한 눈이 크게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저건…….
분명히 당황했을 때의 딱 그런 표정인데.
내 질문이 금속의 정령을 꽤 당황시킨 모양이었다.
잠시 나와 금이 간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번갈아 바라보던 금속의 정령이 깊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못 돌아가…….”
“응?”
“어?”
“에?”
못 돌아간다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가 황당한 눈빛으로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설명이 필요한데?”
“에잇! 못 돌아간다고!!!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부숴서!!”
빼액하며 비명처럼 크게 울리는 소리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다른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못 돌아간다는 말은.
일단 사라지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다만 문제는 가호를 주지도 못한다는 건가.
이러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데.
잘못하다 정말 돈 다 날리는 거 아냐?
그때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금속의 정령에게 물었다.
“혹시 저 『 고대 정령의 가호 』이 매개체인가?”
“……그래.”
“역시 그래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군.”
그 대화를 들은 전사 형이 재중이 형에게 궁금한 듯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 고대 정령의 가호 』이 없으면 사라지지도 가호를 내리지도 못한다는 거겠지.”
“흠, 그럼 더 문제군요.”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뭔가가 떠올랐는지 금속의 정령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아까 소멸된다는 건 무슨 말이지? 『 고대 정령의 가호 』이 부서지면 소멸된다는 소린가?”
재중이 형의 날카로운 질문에 금속의 정령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그래, 소멸된다. 어쩔래?!”
막상 질문을 한 재중이 형도 뜻밖이었는지 꽤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 했다.
흐음.
단순히 귀환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설마 정말 소멸이 된다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천년이나 살아남은 정령이 이렇게 쉽게 사라진다고?
“난 다른 정령들하고 다르단 말이야!”
확실히 그렇게 보이긴 한데…….
문제는 이 금속의 정령이 소멸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대체 얼마짜리인 줄 아냐고.
이대로 소멸했다가는 그 엄청난 돈이 정말 허공에 날아가게 돼.
그래서 곧장 금속의 정령에게 물었다.
저 『 고대 정령의 가호 』 외에도.
녀석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소멸되지 않는 방법이 있을 것 아냐. 내게 알려 주면 좋겠는데.”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의 눈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네가 말해 줘도 어차피 넌 못 해! 『 고대 정령의 가호 』처럼 특수한 물건이 아니면……. 내가 머무르려면 최소한 정령의 축복이 들어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금속의 정령의 말에 생각나는 아이템들을 모조리 떠올려 봤지만 정령의 축복이라는 말은 따로 듣지 못 했었다.
옆에 있는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을 바라봤는데 역시나 마찬가지.
혹시나 싶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지만 역시 몰랐다.
정말 곤란한데…….
이대로면 진짜 금속의 정령을 날릴 것 같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르아 카르테를 더 업그레이드시키려면 네 녀석이 꼭 필요했다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아마 한동안은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구할 방법도 없을 터.
경매장에서도 하나 밖에 없다는 물건을 무슨 수로 구하나.
거기다 만약 있다고 한들 그렇게 큰돈을 또 쓸 수도 없을 테니.
내 돈…….
어쩌나.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르아 카르테를 아무렇게나 툭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때.
금속의 정령에게서 이상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어, 어라?!”
왜 저러지?
또 뭐가 잘못됐나.
아니.
최악은 이미 지나갔으니.
이젠 더 뭐가 잘못될 만한 것도 없는데.
“왜 그래?”
“세상에! 이거…… 탐식이잖아!!!”
역시 천년 먹은 정령답게 알아보는 건가.
뭐 금속의 정령이기도 하니 못 알아보면 더 이상하겠지.
“그래서 뭐? 이게 무슨 정령의 검이라도 돼?”
무심코 물었던 건데 금속의 정령에게서 의외의 말이 떨어져 나왔다.
“응!! 축복받은 정령의 검!!”
“뭐?”
“어?”
“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금속의 정령과 르아 카르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게 정령의 검이라고?”
“응, 응. 어쩐지 아까부터 좋은 향기가 난다 했는데.”
그리고는 금속의 정령이 곧장 시선을 돌려 『 고대 정령의 가호 』을 바라보았다.
“그래, 정령의 검이 아니면 부서질 리가 없었잖아.”
“같은 정령의 축복이라?”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속의 정령이 정확하게 르아 카르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나, 여기 머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