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화 마계 상인 연합 (7)
모든 것들이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우리에게 그렇게 유리하다고만 할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 아스티아가 자리를 비우는 지금은 더욱 그렇고.
전력의 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비중이 클 수도 있겠지.
원래라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두고 보려고 했었는데…….
안전이 보장되어 있고 시간만 넉넉하다면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건 유저들에게 들어오는 수입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반대로 그런 여유가 없어진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아르곤 마왕성에 『 피닉스의 알 』이 있다는 소문을 내어달라는 말에 운영자 가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만…….”
“네, 뭐 그래도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잘못하다가 이쪽과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관계가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안 그러게 잘하실 거잖아요.”
여기 마계 짬밥을 수백 년 먹어온 인간이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냐라는 말을 싹 돌려서 말했는데 잘 알아 들었으려나?
현재 『 피닉스의 알 』의 출처를 알고 있는 건 우리와 마계 경매장의 운영자 가른 뿐.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몇몇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비밀스럽게 『 피닉스의 알 』을 운반한 병사들 중 몇몇의 변절…… 정도면 좋겠네요. 돈을 받고 매수를 당했다던지.”
내 비밀스런 제안에 운영자 가른이 혀를 내두르면서 두 손을 들어보였다.
“이거 참, 누가 인간인지 마족인지 구분이 안 되겠군요.”
운영자 가른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흠, 확실히 그렇게 하면 드러나더라도 이쪽에서 꼬리를 자를 수 있겠습니다.”
“네, 그 뒤는 알아서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계 경매장으로 이런 일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닐 테고.
어지간해서는 틈을 내어놓진 않겠지.
그렇게 어수룩하게 일 처리를 하는 마족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만약 그랬다면 마계 경매장이 지금까지 제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까지 퍼트리길 원하십니까?”
“한쪽에서 알면 다 알지 않을까요?”
“소문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습니다만?”
흐음.
그렇단 말이지.
“혹시 아르곤 마왕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쪽은 어디입니까?”
내가 물어보자 잠시 생각하던 운영자 가른이 대답을 꺼내놓았다.
“일단은 올펠 마왕님이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만. 예전에 둘 다 마왕성이 없을 시절에 한 마왕성을 가지고 치고 박으신 적이 있습니다.”
“호오, 그건 의외네요.”
“백 년 쯤 지난 일이지만 아르곤 마왕님이 올펠 마왕님의 뒤통수를 친 일화는 아주 유명한 일이지요.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의 마왕성의 주인들이 꽤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그렇단 말이죠.”
마왕 아르곤이 뒤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마왕성이 마왕 올펠의 것이 되었을 거란 말이네.
뭐 둘 다 껄끄럽긴 마찬가지긴 한데.
어쨌든 서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우리에게는 그만큼 좋은 소식이었다.
“그럼 마왕 올펠의 마왕성에 소문을 퍼트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거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
“그런데 혹여나 마왕 올펠이 마왕 아르곤을 죽여 버리기라도 하면 원하는 걸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이전에 운영자 가른이 마왕성의 지하 시설을 알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운영자 가른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시겠지만 마왕성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함락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수성하는 입장에서는 더 그렇고요. 아마 비슷한 전력의 마왕님들끼리 붙으면 정말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동안 싸우게 될 겁니다.”
“마왕성을 함락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말이죠. 일단 한쪽의 마왕성을 함락시키려면 최소한 상주하던 마왕이 완전히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자신의 마왕성을 비우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수성하는 마왕성을 무너뜨리려면 마왕이 마왕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게 바로 마왕이 오래 마왕성을 비워 둘 수 없는 이유였다.
특히나 전투 상황이 되면 한 번 나가서 한참 동안 적의 마왕성 주변에 머물러야 할 테니.
“보통 마왕이 마왕성을 너무 오래 비우면 다른 마왕 후보들이 쳐들어옵니다.”
“꽤 골치 아픈 상황이겠군요.”
그러면 나가서 다른 마왕성을 차지해야 겨우 본전치기 정도이려나?
자신의 본진을 내어주고 다른 마왕성을 차지해 봐야 남는 것도 없었다.
흐음.
그동안 아르곤 마왕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함부로 치고 들어오지 못했던 것도 이해는 되네.
비록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마왕 벨라 혼자만 있었다고 해도.
아니지.
그렇다고 해도 이쪽의 전력이 너무 약한데?
마왕끼리 일대일로 붙는다고 치면 남은 전력으로 마왕성을 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던가?
그때 마왕 벨라는 그걸 커버할 병력조차 없었다.
아직은 폐허의 흔적이 남아있는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보면서 말했다.
“용케 지금까지 버텼나 싶네요.”
“아, 벨라 마왕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흠. 사실 벨라 마왕님은 특수한 경우입니다.”
“무슨?”
“벨라 마왕님이 타고 계신 스컬 드래곤이 있으니까요.”
“그게 마왕성하고 무슨…….”
아.
운영자 가른이 스컬 드래곤을 말하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동력!”
“네, 그렇습니다. 만약 아르곤 마왕님이 이곳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쳐들어와도 반대로 벨라 마왕님은 돌아서 아르곤 마왕님이 놔두고 온 마왕성을 쳐버리면 되는 일이라서요.”
“용기사라는 게 엄청난 거군요.”
“그러니까 이 마왕성이 아직도 유지가 되는 겁니다. 거기다... 이 마왕성은 얻을 게 없습니다. 완전히 폐허인 마왕성을 얻으려고 자신의 화려한 마왕성을 내어줄 마왕은 마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흐음.
그 말에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마왕성 지하에 제조하는 녀석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절대 그런 말을 못할 텐데.
이것만은 마왕 벨라가 확실히 보안을 지킨 듯 했다.
아니, 애초에 보안이라고 할 것도 없지.
새어 나갈 병력이 하나도 없으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얻을 녀석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 피닉스의 알 』처럼.
다른 마왕들이 다 군침을 흘리던 물건이니.
그걸 마왕 올펠에게 흘려주기만 해도 어떤 식으로는 행동을 보일 것이다.
욕심이 아주 없지 않은 이상에야.
“『 피닉스의 알 』은 좋은 미끼가 되겠군요.”
“아마 올펠 마왕님이 직접 나설지도 모릅니다. 마왕성을 버리더라도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아이템 상태를 보기는 했는데 정확한 설명이 없어서 말이지.
“대체 그 『 피닉스의 알 』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인이 필요해.
“흠, 마왕님의 신체를 완전히 부활시켜 주는 물건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군요.”
“한 번 죽어도 그 자리에서 살아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보스 레이드를 죽을힘을 다해 진행해 겨우 다 잡아놨더니 마지막에 짜잔! 하면서 새로 부활한다고 보면 되는 거려나.
유저들에게는 다시 살아나는 게 일도 아니었지만.
NPC들에게는 또 다르지.
그것도 마왕급의 초괴수라면 더 그렇고.
“마왕들에게는 목숨을 하나 사는 일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소문에는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소문입니까…….”
“흠, 피닉스는 되살아나며 더욱 강해진다고 들었으니. 아마 틀리진 않을 겁니다.”
마왕들이 『 피닉스의 알 』에 목을 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네.
언제 한 번 피닉스를 잡으러 가 봐야 하려나.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좋은 소식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는 운영자 가른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에서 떠나갔다.
휴.
하나는 확실히 처리가 되었나.
옆에 재중이 형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아르곤 마왕이 여기에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들려고?”
“네. 아스티아가 없는 이상 꽤 불안하니까요.”
적어도 아스티아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벌어 주면 좋을 텐데.
솔직히 완전히 강해진 아스티아가 오면 더 이상 마왕 아르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그 사이에 좀 강해질 필요가 있겠어. 언제까지 의존할 수는 없으니까.”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너무 마왕들의 힘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너무 급하게 마왕성의 집사를 차지하면서 이쪽의 전쟁에 뛰어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마계 탐사대 가실 거죠?”
“어, 이 근처의 사냥터도 괜찮긴 하지만. 진짜 제대로 레벨을 올리려면…… 아예 고렙의 사냥터로 들어가야겠지.”
우리가 운영자 가른에게 괜히 마계 탐사대에 대한 권한을 얻어온 것이 아니었다.
어느 급의 아이템이 나오는 장소.
그 물건이 나오는 근처만 가도 분명히 던전이나 사냥터를 특정지울 수 있을 테니까.
혹 그게 아니더라도 네임드 몬스터의 위치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야.
재중이 형이 손을 휘두르며 시스템에서 몇 개의 목록을 꺼내들었다.
“보자…… 얼음 여왕. 리빙 아머, 아라크네 로드, 메피스토, 에이션트 드래곤, 크림슨 드레이크, 뱀파이어 로드, 발록, 티아메트, 야뉴비스, 팬텀 나이트, 서큐버스 퀸, 발타자르, 메두사, 디아블로, 바포메트, 피닉스…… 아, 스컬 드래곤도 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명단을 읽어 보던 재중이 형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여기서 뭐 잡으러 갈래?”
“……이거 다 잡을 수 있기는 해요?”
“뭐, 몇 개는 레벨이 400~500대가 넘는 것 같긴 한데? 여기 봐. 운영자 가른이 밑줄 빨간색으로 쳐 놨자나. 절대 접근 금지라고. 탐사 최상단 구역으로 막혀 있네.”
“레벨이 그 수준이면 잘못하다 스치면 죽겠는데요…….”
당장 아이템을 얻기도 전에 먼저 이쪽이 다 죽을 판이라.
유저들의 수준은 둘째 치고.
우리 역시 상대가 안 되는 녀석들이 즐비했다.
흐음, 마왕을 잡기 전에 이 녀석들한테 먼저 죽으려나?
반대로 이 녀석들을 잡아서 장비를 만들 수 있으면.
마왕도 해볼만한 게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것이고.
“그러니까 우린 몸으로 때워야지.”
뭐.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유저들이야 가능하기는 한데 말이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형, 전 죽으면 끝나요.”
“아, 그렇지. 흐음, 이거 피닉스의 알은 네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그것도 르아 카르테는 안 날아간다는 보장이 없어서요.”
“하긴 그런가?”
결국 죽지 않고 버티려면.
저 녀석들을 사냥할 수준은 넘어서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스펙을 올리는 방법이 제일이다.
일단 가장 빠르게 스펙을 올릴 수 있는 건…….
바로 인벤에 들어가 있는 몇 개의 아이템을 살폈다.
가장 먼저.
『 고대 정령의 가호 』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마계 경매장에서 뽑아온 아이템.
이걸로 르아 카르테를 더욱 성장시킨다.
그리고…….
단순히 이걸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마왕 벨라를 좀 찾아가야겠어요.”
호랑이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호랑이의 발톱 정도는 빌려와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