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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02화 (792/1,404)

#802화 마계 상인 연합 (6)

당연히 마왕 바이카르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설마 아스티아의 무기를 마왕 아르곤이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스티아를 보자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오고 나서 가장 기뻐 보이는 표정이려나?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아스티아의 웃음에 나 역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아스티아가 보고 있는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쳐다보았다.

꽤 하단에 적혀 있는 다섯 글자.

『 엑스사이더 』

용마족 아스티아의 고유 무기.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보였다.

이상하네.

분명 마왕급의 무기일 텐데…….

왜 이렇게 아래에 적혀 있지?

마왕 바이카르도 그렇고 마왕 올펠, 데미안의 두루마리 모두 그랬다.

딱 보기에도 좋은 물품들이 위에 적혀 있었다.

아마도 마왕이 판단하기에 보다 나은 녀석들이 상단에 위치했을 터.

정말 이게 맞는 건가?

혹시 이름만 같은 다른 무기?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나?

고개를 갸웃하면서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보통은 좋은 것부터 위에 적혀 있지 않았어요?”

“응, 맞아.”

그렇다는 말은…….

마왕 아르곤, 이 녀석은 이 물건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거야?

아니라면 지금 이 목록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만약 정말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었으면 상단에 놨을 건데 말이지.

“아르곤은 모르는가 보네요.”

“으음, 그럴 수도 있어. 보통은 반응을 안 하니까.”

“그래요?”

“응, 이 녀석은 용마족만 쓸 수 있어. 다른 녀석들은 그냥 좀 날카롭고 단단한 무기라고 생각할걸?”

아스티아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의 이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마왕 아르곤이 어떤 경로로 입수를 했는데 본인이 들어보니 전혀 반응을 안 했을 테니까.

물론 마왕급의 무기이다 보니 기본 스펙만 해도 다른 무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두루마리 목록에 올라와 있는 걸 테지.

“이쪽이 더 다행이었네요.”

만약 마왕 아르곤이 아스티아의 무기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목록에서 빼버렸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서 이렇게 올리는 쪽이 우리에겐 좋았다.

이렇게 되면 무조건 마왕 아르곤과 거래를 해야 하는 거려나.

마왕 아르곤과 거래를 하는 게 좀 찝찝하긴 하지만.

전쟁 중인 상대에게 『 피닉스의 알 』을 넘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기다 다른 마왕들의 두루마리 목록들 역시 탐이 나는 물건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역시 최우선으로 가져와야 하는 건 아스티아의 무기였다.

“이걸로 결정하죠.”

“괜찮겠어?”

“오래 찾아다녔잖아요.”

“흐음, 그래. 알았어.”

농담으로 ‘먹고 째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내 목숨을 한 번 구해 준 적도 있고.

그리고 아스티아가 그렇게 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이미 그러려고 했다면 몇 번은 했을 테니.

누군가를 무작정 믿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냥 믿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럼 거래를 해보죠.”

* * * * *

내가 네 개의 두루마리 중 하나를 선택해 나오자마자 누군가는 환호를, 누군가는 절망을 했을 것이다.

물론 네 명의 집사들이 그걸 겉으로 내색해보일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고.

누가 가져갔는지 알게 되면 피곤해지는 건 결국 본인들이니까.

그렇게 집사들이 각자 자리를 뜨고 난 뒤.

운영자 가른이 내게 다가왔다.

“결정하셨습니까?”

“네, 하기는 했는데. 좀 의외의 상황이 생기긴 했어요.”

“의외라면……?”

“고르지 말아야 할 걸 골랐다고 해야 할까요.”

“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요.”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고르지 말라고 제안한 운영자 가른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골랐다고 하니 의아함을 나타낼 수밖에.

“원하는 물건이 아르곤 마왕님에게 있었나 봅니다.”

“음, 뭐 그런 셈이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일단은 좀 지켜보도록 하죠. 거래가 완전히 끝나야 이쪽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최소한 아스티아의 무기가 들어와서 안정적인 무력을 구축해야 마계에서 뭘 하든 할 수 있다.

여기 저기 다 마왕 같은 괴수 놈들만 있으니.

이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거래가 끝나야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그럼, 전 거래를 끝내고 오겠습니다.”

“네, 좀 부탁드릴게요.”

나가기 전, 마왕 아르곤의 마왕성은 멀리 있기에 운영자 가른이 따로 아이템들을 받아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찾아오기로 했다.

그렇게 운영자 가른은 따로 마왕 아르곤의 집사와 거래하기 위해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재중이 형이 옆에 다가와 물었다.

“아스티아의 무기가 그쪽에 있었나?”

“네, 아쉽게도요.”

“흐음, 『 피닉스의 알 』이 아르곤 마왕에게 넘어가면 꽤 곤란해질지도 몰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내 눈빛을 살피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보였다.

“너, 뭔가 생각해 둔 게 있구나?”

“눈치챘어요?”

“아주 눈빛이 반짝반짝하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래서 이번에는 뭐야?”

“하하…… 일단 거래를 하면 말씀드릴게요. 꽤 재밌을 겁니다.”

“오케이, 좋아. 그럼 마계 탐사단 일도 마쳐야 하고. 바쁘게 움직여 보자고.”

* * * * *

암흑 상인의 무역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몇 번 약탈선들의 위협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약탈선들을 털며 안전한 무역 경로를 만들어 놓았다.

“갈수록 약탈선 수가 줄어드네요.”

예전 처음 부딪혔을 때는 막 일곱 대씩 몰려다니던 녀석들이 이젠 한두 대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털고 다니니 그렇지.”

“털어 달라고 달려드는데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이 녀석들은 학습 효과가 없는지 매번 다른 해적들이 들이닥쳐서 약탈선들을 뱉어 놓고 갔다.

그래서 지금 인벤에 쌓아 놓은 약탈선만 무려 13대나 된다.

초기에야 힘들었지.

이젠 무역선 숫자가 약탈선 숫자를 압도할 수준이라.

약탈선은 줄어드는데 암흑 상인의 무역선은 계속 늘어나니 당연한 결과였다.

단순 포 싸움으로 가도 이젠 밀리지도 않고.

굳이 우리가 없더라도.

이 경로에서는 무역선이 털리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슬슬 이것도 팔아야겠죠?”

“어, 여긴 연료로 타르를 사용하니까 속도도 안정적이고. 그리고 길드 연합 애들도 제대로 된 비공정을 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더라.”

“사장님이 그래요?”

“어, 예전에 팔려던 거 왜 안 파냐면서. 아주 다리에 매달리는 수준이라던데.”

“큭, 그러게. 싸게 팔 때 샀으면 서로 얼마나 좋아요.”

“이젠 부르는 게 값이지.”

몬스터를 테이밍한 탈 것으로는 그렇게 긴 거리를 날아갈 수가 없었다.

속도나 내구성도 문제고.

무엇보다 탈 수 있는 인원이 문제까지.

장거리를 정찰하려면 결국 비공정이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가진 약탈선의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값 안 떨어지게 하나씩 풀어야겠어.”

“네, 사장님이 잘해 주시겠죠.”

길드나 연합에서 쓸 몇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금을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무역선을 타고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도착하자 어쩐 일인지 마왕 벨라가 나와서 우리와 아스티아를 반겼다.

“없는 동안 무슨 일 없었죠?”

혹시라도 마왕 아르곤이 쳐들어 왔다던가 하는 일이 제일 문제였다.

그래서 바로 물어봤는데 마왕 벨라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잠잠해. 예전에는 한 번씩 도발을 하긴 했는데.”

“흠, 마계 경매장 일 때문에 그럴 겁니다. 아마 당분간은 조용할 거예요.”

“그래?”

마왕 아르곤도 지금 여기저기 벌집 쑤시듯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시점에 괜히 다른 마왕들을 자극하기라도 하면 꽤 곤란할 테니.

“지금쯤 가른이 찾아갔을 거예요. 함부로 도발하진 못하겠죠.”

“가른이면…… 마계 경매장?”

“네, 아시네요?”

“으음…… 좀 악연?”

아, 거기서 깽판 쳤다고 했지.

돈도 빌렸고.

못 갚는 돈으로…….

지금 왠지 모르게 마왕 벨라가 뒷걸음 치고 있다고 보이는 건 순전히 내 착각일까.

“도망가면…… 빚 처리 안 됩니다.”

“앗! 네…… 에…….”

아주 말 잘 듣는 순한 양처럼 내 앞에 다서 와서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왕 벨라를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

누가 이 마왕이 그 무시무시한 마왕 중 하나라고 생각할까.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겁니다. 그 많은 빚 갚으려면요.”

“으응…… 알았어.”

돈으로 마왕을 부릴 수 있다면 뭐 남는 장사지.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가끔 필요할 때 자리를 비워야할 수도 있어요.”

“으음, 그건 곤란해.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비울 수 없어.”

“마왕 아르곤 때문이죠?”

“응, 여길 내가 비우면 바로 쳐들어올 걸?”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마왕 벨라가 있어야 방어가 된다.

유저들이 당장 아무리 많아도 결국은 이런 식이겠지.

“일단 거래를 마치고 난 뒤에 다시 이야기 하죠.”

“응, 그래.”

그렇게 기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대의 휘황찬란한 거대한 무역선이 옆에 수많은 호위함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내려섰다.

웅성웅성.

유저들뿐만 아니라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NPC들까지도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간 베르테니아 마왕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함일 테니.

드디어 도착했네.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유저들의 유입으로 한참 번창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다른 마왕성에 비해 시설이나 발전도가 많이 부족했다.

완전 폐허와 같던 곳이 그렇게 금새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운영자 가른의 무역선이 더욱 돋보였다.

“오셨군요.”

“네, 말씀하신 거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마왕 아르곤이 순순히 내주던가요?”

“아, 좀 의문을 가지긴 했습니다. 전혀 고르지 않아야할 것 같은 물품을 달라고 하니까요.”

역시.

다른 두 개에 비해.

아스티아의 무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폼이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의외로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자기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그렇겠죠?”

“눈치로 그렇더군요. 그리고 빚 이야기를 살짝 꺼냈더니 귀찮은 듯 그냥 아무 말 없이 줬습니다.”

알다시피 마왕 아르곤이 운영자 가른에게 진 빚이 상당히 많았다.

겉으로 달라고 안 해서 그렇지.

언급만 해도 마왕 아르곤이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지.

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안 내놓고는 못 배겼을 터.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가는군요.”

“하하, 저도 뭐 집사 님 덕분에 큰 소리 한 번 치고 왔습니다. 속이 확 내려가는군요.”

운영자 가른이 씨익 웃어 보이면서 내게 교환 아이템 세 개를 꺼내놓았다.

다른 녀석들은 나중에 봐도 좋다.

지금 중요한 건.

『 엑스사이더 』

날 전체에 보랏빛을 품고 있는 커다란 낫 형태의 무기는 처음 보는 지라 한참을 뚫어져라 봤다.

기다란 창과 넓은 낫이 합쳐진 딱 그런 모습.

이런 형태는 아예 없었는데.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

전투 시에는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 거지?

평범함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무기에 잠시 쳐다만 보다가 곧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이거 맞나요?”

“응, 이제야 찾았네.”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쥐는 듯 두 손으로 엑스사이더를 쥐어 올렸다.

그러더니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봉인된 동안 약해졌어.”

“그래요?”

“응, 회복시켜야겠는 걸.”

“어? 그게 되나요?”

잠시 생각을 하던 아스티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 잠시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

“그거 복구하려는 거죠?”

“응. 괜찮겠어?”

“뭐 어쩔 수 없죠.”

당장 아스티아가 없다고 크게 뭔 일이 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일에 아스티아가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온전히 힘을 회복해 와야 나중에 있을 일들을 처리할 수 있어.

“그동안 문제 없도록 처리해 둘게요.”

“응, 고마워.”

그리고는 곧장 아스티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휴.

그럼 이쪽의 일을 처리해 볼까?

바로 운영자 가른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숨겨놨던 말을 꺼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아마,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운영자 가른이 깜짝 놀랄만한 말을 꺼냈다.

“다른 마왕성에…… 아르곤 마왕이 『 피닉스의 알 』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내주시죠.”

지금 돌아가는 판이.

내가 원하는 판이 아니라면.

판을 전부 갈아엎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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