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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72화 (762/1,404)

#772화 지저 세계 (8)

스컬 드래곤의 검은 브레스를 그냥 팔로 쳐서 날려 버리는 것이 아무나 가능할까?

아냐.

이건 애초에 아스티아 정도 수준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그래서인지 저 마왕도 쉽사리 우리에게 덤벼들지 않고 거리를 벌린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얼마 뒤 우리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만약 자신이 확실히 우리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절대 저런 식으로 물어오지는 않았겠지.

싸우기에는 껄끄럽고, 그렇다고 우리가 공격을 한 것도 아니니까.

거기다 주변에는 딱 우리만 존재할 뿐, 어떤 지원군이나 적들이 같이 있지 않았다.

이건 마왕이 헷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스컬 드래곤을 세워두고 내려다보는 마왕을 향해 아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흐음, 삼백 년밖에 안 지났는데 몰라보네?”

“삼백 년? 무슨 소리를…….”

그 말을 끝으로 마왕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음.

이거 제대로 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보면서 물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나 봐요?”

“그런가?”

의외로 아스티아는 저런 마왕의 반응에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지 크게 표정의 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미심쩍은 듯 스컬 드래곤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면서 우리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꽤 조심성이 있는데?

강한 마왕이라 막 나갈 줄 알았는데 말이지.

좀 전까지 브레스를 마구 날려 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보다 저 로브 좀 어떻게 좀 치웠으면 좋겠는데.

모습을 파악하려고 해도 몸을 싸맨 듯한 로브 때문에 도저히 파악이 힘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다시 스컬 드래곤이 멈추면서 더 이상 다가오진 않았다.

딱 위험한 수준의 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정도려나.

아스티아는 정말 빠르니까 이 정도까지 거리가 좁혀지면 한 번에 코앞까지 다가가는 게 가능했다.

나 역시 빠르게 이동하면 이 정도 거리는 한 순간에 좁힐 수 있었고.

역시 이런 건 경험인가.

모습은 확인하되 바로 빠질 수 있는 거리를 잡는 순간 마왕의 입이 살짝 벌려지면서 뭔가가 시전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경고 시스템 메시지가 급하게 울려댔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력이 몸에 가해집니다! 》

《 레벨 차이가 심해 상대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

큭.

나도 알아!

시스템 메시지가 나오는 순간부터 내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압력이 신체 전체에 걸렸다.

이건 마치 전에 가짜 황제가 걸었던 딱 그런 느낌의 압력이었다.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게 몸을 내리누르는.

저렇게 강한 마왕과 싸울 때는 딱 1초만 한눈을 팔아도 목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몸 자체를 못 움직이면 답도 없지.

칫.

스킬로 빠져나가야 하나?

사실 스킬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렇게 스킬을 준비하는 도중에 아스티아가 딛고 있던 땅에 발을 한 번 크게 굴렀다.

쿠웅!

그러자 갑자기 내게 가해지던 모든 압력이 눈 씻겨 내려간 듯 싹 사라져버렸다.

거기다 주변에 걸리던 모든 압력들까지도.

《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력이 사라집니다. 》

하.

이것도 숨겨진 능력 중에 하나인가?

같은 마왕급이라 그런지 내게 가해지던 압력 역시 한 방에 해제돼 버렸다.

아마도 마왕이 할 수 있는 뭔가의 스킬을 걸었던 모양인데 싹 사라지자 다시 로브가 흔들리면서 깜짝 놀란 말투로 말했다.

“……안 통해?”

그런 마왕을 향해 아스티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벨라. 시험은 그만하지?”

그리고는 벨라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로브가 크게 흔들렸다.

“너…… 누구야?”

반응을 보아하니 마왕의 이름 자체를 아는 사람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마왕의 머리 위에 정보도 안 뜨는 걸 봐서는 아마 저 이름 자체가 하나의 힌트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때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메인 퀘스트 : 마계 마왕의 정체 파악(완료). 》

- 마계에 존재하는 마왕의 진명을 알아내기.

- 퀘스트 보상.

진명을 알아낸 마왕과의 관련 추가 퀘스트 열림.

진명을 알아낸 마왕과의 호감도 시스템 열림.

메인 퀘스트?

안 그래도 마계에 와서 퀘스트가 아무것도 뜨지 않아서 좀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어쩌면 나만이 마계로 넘어왔기에 아무런 퀘스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데 의외로 마왕과 관련된 퀘스트가 떠버렸다.

그것도 그냥 완료가 되어 버리며.

보통은 퀘스트를 먼저 받고 완료가 되지 않나?

이렇게 술에 물을 탄 듯 얼렁뚱땅 해결되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당연하겠지만 저 벨라라는 마왕과는 호감도가 아마 제로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적대 관계가 아니면 다행인 건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마왕 벨라에게 아스티아가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몸에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의 모든 공간이 눌리는 듯한 압력이 걸렸다.

이건…….

아까의 그 팔에 휘감았던 마력과 같은?

거기다 마왕 벨라가 했던 것과 유사한 형식으로 마력을 뿜어내자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몸이 옆으로 밀려나갔다.

단순히 기세만으로 이런 위력이라…….

마왕 벨라가 했던 방식은 예전 가짜 황제처럼 짓누르는 압력이라면 아스티아는 주변으로 모두를 밀어내는 형태로 힘을 써냈다.

어쨌거나 둘 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힘은……?!”

마왕의 크게 놀란 목소리로 보아하니 힘 자체에 놀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반응이 오자 보랏빛 헤어를 흩날리면서 힘을 내던 아스티아가 곧 모든 힘을 거두어들이자 차분하게 다시 머리카락이 내려앉았다.

“어때? 이제 알겠어?”

아무리 봐도 아스티아가 너무 잘 안다는 말투라…….

그리고 그런 반응은 마왕 벨라에게서도 이어졌다.

“용마족 공주 아스티아?! 말도 안 돼. 이미 당신은 신마 전쟁 때 죽었을 텐데…….”

“하, 마음대로 날 죽이지 말라고. 멀쩡하니까.”

믿을 수 없다는 말투와 함께 마왕 벨라가 머리를 감싸고 있던 로브를 걷어냈다.

그러자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가 흘러내리듯 로브 위에서 흘러내렸다.

눈빛 역시 강렬한 붉은 빛을 띄고 있었고.

흔히 말하는 불의 화신이 떠오르는 딱 그런 느낌의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외모랄까.

마치 빗어놓은 듯 아름다운 외모 역시 한몫했고.

그리고 로브를 넘기는 순간 안에 입고 있는 장비도 얼핏 눈에 들어왔다.

붉은 갑옷?

그것도 그냥 경갑이 아니라 목까지 완전히 가려 주는 중갑에 가까웠다.

살짝 드러나는 형태만 봐도 굉장히 세공이 잘 되어 있는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갑옷이기도 했고.

음.

전에 굉장히 화려한 마법을 쓰던데 저런 갑옷이라…….

유저들이야 마법을 쓰는 마법사면서 중갑을 입기도 했다.

꽤 엽기적인 방식이라 그렇게 선호되는 편은 아니었지.

그런데 마왕이 저렇게 입고 있으니 의아할 수밖에.

아니.

마왕이라 좀 다른 건가?

어차피 마왕은 지력과 마력이 굉장히 높을 테니까.

유저들과 달리 원하는 장비는 제한 없이 다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애초에 저 갑옷이 경량화가 되어 있다면 무게 역시 신경 쓰지 않을 테고.

마왕 정도가 입는 갑옷이라면 아마 모든 갑옷들의 정점이 아닐까.

내 시선이 마왕 벨라에게 가서 고정된 듯 멈춰 있자 아스티아가 뚱한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쳤다.

“뭘 그렇게 봐? 예뻐서?”

“아뇨. 그게. 저 갑옷 때문에요.”

“아, 저거?”

잠시 마왕 벨라를 바라보던 아스티아가 뜻밖의 말을 해 주었다.

“벨라는 용기사거든.”

“용기사?”

“응, 스컬 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것 보면 몰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아스티아를 보면서 말을 이으려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의 그 마법이 너무 인상적이라…….

누가 봐도 마법사였으니.

흐음.

그럼 그때의 그 스태프도 그냥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는 거네.

삼지창처럼 쭉 뻗어 있던 모양이 실제로 스피어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용을 타고 다니고 중갑에 스피어를 들고 있으니까.

용기사 같은 전문 직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흐음.

그럼 마왕은 따로 분류가 되는 거려나?

뭔가 좀 복잡해지는데.

“그럼, 스컬 드래곤을 선물했다는 것도…….”

“응, 쟤는 용을 타야 더 강해지거든.”

사실 더 안 강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스컬 드래곤만 해도 이미 넘사벽이라.

당연하겠지만 저 스컬 드래곤보다 마왕 벨라가 훨씬 강하다는 말이 된다.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리에 스쳐갔다.

분명히 아스티아가 줬다고 했었지?

그냥 농담 삼아 툭 던지듯 아스티아에게 물어보았다.

큰 기대 없이.

“저도 용 한 마리만 주시죠?”

“아쉽겠지만 없어.”

이건 뭐 예상했던 반응이라.

그런데 아스티아가 다시 의외의 말을 했다.

“흐음, 네가 정 원하면 나중에 구해 줄게.”

“오! 정성과 신의를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아스티아를 돌아보며 바로 한쪽 무릎을 꿇자 아스티아가 재밌다는 듯이 크게 웃어 버렸다.

“깔깔, 너 진짜 대박이야.”

끙.

나름 성의 표시를 한 건데 말이지.

저 굉장한 스컬 드래곤을 그냥 준다는데 이 정도야 뭐.

받을 수만 있다면 이 두 무릎이 닳도록 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잘 보여야겠어.

그 와중에 마왕 벨라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마치 쟤들 뭐야 하는 딱 그런 표정이랄까.

“아스티아. 그쪽은?”

“아! 얘? 내 부하 1호.”

역시 부하였나.

아스티아가 부하라면서 한껏 웃으면서 대답하자 마왕 벨라가 나에 대한 관심을 끊고는 다시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으음, 봉인 당했어. 그동안.”

“봉인…… 입니까?”

“응, 그러다 옆에 얘가 봉인을 풀어줬거든.”

“그래서 부하로 삼으셨군요.”

그랬던가?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마왕 벨라가 아스티아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아니, 마왕이 존대를 해?

마왕이면 이쪽 세계에서는 끝판왕 아니던가?

혹시.

먼 친척쯤 되는?

아니면 직계 가족이던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둘 사이에 외모에서 연관성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둘의 관계를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다가 그냥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곧장 물어보았다.

“아는 사이라고 했죠?”

“응. 아는 사이.”

“혹시 관계가?”

“아, 이전 내 군대의 군단장이었어.”

그 말에 솔직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스티아가 마계에서 군대까지 가지고 있었나?

이거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데?

“물론 지금은 없지만 말이야.”

“하긴 뭐 삼백 년이나 지났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 유지되는 군대는 없다고 봐야 했다.

특히 아스티아가 봉인이 되었는데 강한 우두머리 없이도 계속 버틸 군대라면 애초에 무너지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왕 벨라를 바라보았다.

군단장이었던 부하가 지금은 마왕이라…….

지금 보니 아무리 봐도 마왕 벨라가 더 강해 보이기도 하는데…….

일단 지금은 아스티아에게 무기가 없긴 하지만.

과연 이런 아스티아를 상관으로 여기려나?

아니지.

굳이 상관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당장 적대적인 포지션이 되지만 않는다면야.

그리고 지금 반응을 봐서는 그렇게 될 확률이…….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아스티아와 마왕 벨라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런 침묵이 좀 길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을 굳힌 마왕 벨라가 먼저 말을 꺼내놓았다.

내가 원하던 최선의 방향으로.

“그대의 손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아스티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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