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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71화 (761/1,404)

#771화 지저 세계 (7)

마왕성.

흔히 생각하는 마왕과 관련된 일화를 생각해 보면 저런 풍경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걸까?

성벽 곳곳에 몬스터들의 시체가 즐비하고 저주라도 받은 듯 성 전체가 핏빛 안개 무리가 흩날리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마왕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규모 역시 기존에 보던 거점이나 제국 성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였지만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왕이 거주하는, 가운데 자리한 고성 하나만 거대하니 오히려 나머지는 다 생략한 듯한 딱 그런 느낌이려나?

그보다는 성벽의 높이에 시선이 갔다.

꽤 높아.

기존의 성들과는 달리 거대한 적들을 방어하기 위한 방비들과 성벽의 규모.

그리고 그런 성벽을 넘지 못해 중간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잔상까지.

아마 얼마 전에도 전투가 있었는지 채 사라지지 못한 시체들도 즐비했다.

마왕성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접근하던 아스티아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런 아스티아의 신호에 나 역시 달리던 것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여기까지라는 듯 딱 경계를 두고 멈춰선 느낌.

아니나 다를까.

아스티아가 나를 다시 보고는 말을 꺼냈다.

“그 모습으로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역시 그런가요.”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에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다.

일단은 몬스터라고 인식이 되니까 주변에 있던 다른 몬스터들에게 어그로가 전혀 끌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변신을 했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몬스터가 없기는 했다.

마치 버려진 땅처럼.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 버린 땅.

편했기는 한데…….

역시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여기도 나름 사냥터 아닌가?

이 정도로 몬스터가 없을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왕성 근처까지 달려왔더니 이젠 주변에 몬스터가 나 하나만 있는 이상한 그림이 나와 버렸다.

멀리서 보면 바로 보일 만큼.

마계 미노타우르스의 덩치가 새삼 크다고 느끼네.

아마 이쯤 다가섰으면 저쪽 마왕성의 성벽에서도 눈에 들어올 만한 위치가 될 것 같았다.

눈이 좋은 자들이 있다면 말이지.

달려오면서 계속 맘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기존의 상식은 전부 버려야 함을.

이곳은 스펙상 전의 모든 NPC들보다 높음을.

그렇다면 시야 역시도 남다를 터.

혹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역시도 마찬가지.

마왕성에 있는 저들이 보기에는 우리도 침입자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근처에서 본 적이 없는.

대화가 좀 통한다면야 어떻게 넘어가 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쪽은 기대를 안 하고 있는 편이라.

할 수 없이 바로 변신을 풀어 버렸다.

【 마왕의 영혼 파편 해제! 】

몬스터로 변신이 스펙은 좋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익숙한 몸이 좀 더 편하달까.

몸체가 엄청나게 커진 만큼 동작 자체가 전부 어색한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마계 미노타우르스로 변신하고 느낀 점은…….

확실히 힘은 엄청나게 강했다.

기존의 유저 스펙을 상회할 정도로.

아마 평범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하면 쥐잡듯이 쥐어팰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 반해 민첩이 너무 낮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이것도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높지만 힘에 휘둘리는 느낌이었지.

이렇게 제어가 잘 안 되는 몸으로 전투를 하기에는 마왕이라는 녀석이 너무 강하니까.

변신을 풀고 난 뒤 잠시 기다렸지만 마왕성에서 먼저 병력이 나온다던가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흐음.

눈치를 못 챈 건가.

아니면 마왕성이 비어져 있다던지…….

혹은 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겠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마왕성 곳곳을 눈에 담아 갔다.

“병력이 정말 없긴 하네요.”

보통은 성벽 위를 순찰하면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파수병 정도는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아무 일 없이 접근한 것도 아마 저런 상태의 영향이 큰 듯 보였고.

아스티아가 이 자리에서 멈추라고 한 것은 아마 마왕이라는 녀석의 인지 범위가 이 정도 수준일 거라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제 어쩐다?

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만약에 저쪽 마왕이 못 알아보고 바로 공격해 오면요?”

“이 거리에서는 못 벗어나. 전투.”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아스티아에 어깨를 으쓱했다.

흐음.

역시 수틀리면 전투밖에 답이 없는 건가.

마계에 오자마자 마왕이라니.

이건 중간 과정 다 뛰어넘고 바로 최종 보스로 가는 길인데…….

솔직히 이게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물론 외곽에서부터 몬스터를 한 마리씩 사냥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천천히 기반을 다지면서 충분히 레벨을 올린 뒤, 거점을 세우고 적들의 공세를 막는 딱 그런 시스템으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일단 나를 도와줄 우리 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

아스티아가 있다고는 하지만…….

같은 마왕급에 수많은 적들의 공세가 펼쳐지면 이야기가 또 달라져.

여기서 거점을 펼친다는 건 그런 상황까지 고려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물약이나 다른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하면 이것도 역시 문제지.

당장 갑옷이 박살 나도 어디 가서 고칠 곳 하나 없었다.

물약은 더하지.

미리 인벤에 가져온 물약이 다 빠져버리면 이젠 답도 없다.

곧장 귀환을 해서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라.

그래서 아스티아와 마왕성까지 달려오면서 쭉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보급할 곳은 보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아마 마계란 곳 자체가 꽤 나중에 인간들의 세력을 끌고 조금씩 점령해야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나.

최소한.

여기서 사냥이라도 해보려면.

몸을 비벼볼 만한 장소 정도는 있어야 해!

그런 의미에서 이 마왕성은 중요했다.

단계가 좀 건너뛰긴 했어도…….

여기가 아니라면 답도 없어.

“잘 되기를 바라야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아스티아의 인맥에 기대는 측면이 있었다.

흐음.

삼백년 전의 인연에 기대해야 하는 거려나.

얼핏 봐서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좀 불안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지금 기댈 자리는 이곳밖엔 보이지 않았다.

여차하면 튈 방법도 있으니까.

잠시 아스티아를 바라본 뒤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아스티아의 말대로라면 이 이상 들어가면 반응이 올 터.

그렇게 조금씩 걸어가자 마왕성 부근에서 큰 진동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뭔가가 비상할 때 울리는 큰 파장처럼.

이건 스컬 드래곤 정도의 크기가 있는 물체가 바닥을 박찰 때 나는 진동이려나.

묵직한 파장과 함께 마왕성 안에서 거대한 스컬 드래곤이 두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말 병력이 없나 보네요.”

애초에 다른 병력이 있다면 먼저 튀어나와야 정상인데 지금은 그냥 바로 최종 보스가 나와 버렸다.

그러던 중 하늘 위에서 스컬 드래곤이 정확하게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았다.

설마.

브레스를 쏘지는 않겠…….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아스티아가 달려와 내 팔을 붙잡더니 외쳤다.

“뛰어.”

이런 젠장.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브레스부터 날리는 건 무슨 경우람.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스컬 드래곤이 발사한 검은 브레스가 화끈하게 우리 쪽으로 뿜어져 날아왔다.

빨라!

인식하는 순간 이미 지척까지 날아올 정도로 브레스의 속도가 빨랐다.

다행히 아스티아가 먼저 눈치채고 둘 다 빠르게 자리를 옮겨서 피해 지역을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콰과가가가!!

대지를 그대로 쓸어버리면서 지나가는 검은 브레스에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휴.

조금만 늦었어도 휩쓸렸겠는데?

위력은 안 맞아 봐도 당연히 충분히 강할 테고.

우리가 브레스에 맞지 않고 자리를 피해 옆으로 빠지자 스컬 드래곤의 두 날개가 공중에서 다시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는 다시 브레스가 시전되는 모습이 보였다.

뭐?

브레스를 이렇게 바로 쏠 수 있다고?

보통 브레스 같은 큰 스킬은 한동안 기다려야 시전이 되는데.

마치 평타라도 날리듯이 자연스럽게 다시 시전되는 광경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아스티아가 줬다고 했었지.

“저거 사기 아니에요?”

내 물음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스티아가 답했다.

“응, 맞아. 그리고 조심해. 연속으로 온다.”

연속?

“연속으로 쏘려고 하는 건 저도 봤…….”

“아니, 그렇게 말고.”

무슨 말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스컬 드래곤의 화려한 마법진에 눈이 갔다.

확실히…….

아까와 뭔가 다르다?

그것을 느끼기 무섭게 다시 한 번 스컬 드래곤에게서 검은 브레스가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다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쏘아낸 뒤 다시 한 번 입에 브레스가 모이더니 그 뒤를 연이어 검은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콰아아아!

거기다 또 한 번 더.

콰아아아!!

트리플 캐스팅?

아니야.

이건 그냥 한 브레스를 연달아 세 번 쏜 거였다.

트리플 캐스팅은 다른 스킬을 세 가지 쓰는 거지.

저렇게 하진 못해.

무려 세 발의 브레스가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자 발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 대쉬! 】

【 헤이스트! 】

원래 하나의 브레스만 해도 범위가 꽤 되는데 그걸 세 발이나 궤도를 틀어가면서 날리니 마치 부채꼴로 방사되듯 범위가 너무 확장되어 버렸다.

그렇게 최대한 달려서 두 발째까지는 어떻게 벗어났는데 연달아 날아오는 세 번째가 문제였다.

칫.

범위가 너무 넓잖아!

잘못하면 휩쓸리겠어.

이동 스킬을 써서 피했는데도 안 될 정도로 빨랐기에 마지막 한 발은 할 수 없이 가이아 쉴드들을 정면으로 잔뜩 꺼내 들었다.

최대한 피해라도 줄여야 해.

그런데 그때.

내 정면에 아스티아가 달려와 크게 팔을 휘둘렀다.

마치 귀찮은 것을 쫓는 모습처럼.

하지만 그 한 번의 휘두름에는 좀 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저건…….

설마 마력?

아스티아의 팔을 감듯 휘둘러진 아주 진한 마력의 회오리와 검은 브레스가 맞닿는 순간.

카가가가가!!

키기기긱!

검은 브레스의 궤도가 아스티아의 휘두른 마력의 방해를 받아서인지 그대로 꺾여 나가더니 하늘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하…….

무기도 없이 맨팔로 브레스를 날려 버리다니.

이게 마왕급이 할 수 있는 능력인 건가?

그런데 아스티아가 날 돌아보면서 의외의 말을 했다.

“너 하던 거 따라 해 봤는데 괜찮네.”

“네?”

“검으로 하던 거 말이야.”

흐음.

그게 따라 한다고 바로 되는 거면 말을 안 하지.

다른 유저들도 날 따라 한다고 했다가 죽은 영상들만 해도 한 트럭이었다.

뭐, 용마족 정도의 스펙이 되면 할 수 있는 거려나 싶기도 하고.

그 덕분인지 잠시 스컬 드래곤의 공세가 멈췄다.

당연히 추가로 공격해 올지 알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지 마왕성 허공에서 멈춰 서서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아스티아가 미소 지었다.

“이제 이쪽을 인식했나 보네.”

그리고 그런 아스티아의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 스컬 드래곤에서부터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고 싶으면 계속 들어와.”

아마도 저 마왕 역시 스컬 드래곤의 브레스를 그냥 막아 낸 모습을 보고는 이쪽이 쉽지 않은 상대라고 느낀 듯했다.

만약 지금껏 다른 적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왔는데 여기 전혀 예상치 않은 강자가 끼어든다?

그건 마왕에게 불리한 그림이 되니까.

그렇게 시간을 벌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걸 보면 확실해 보였다.

우리와 함께 온 다른 적들을 찾는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적들이 보이지 않자 마왕이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 대체 누구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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