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화 신의 손 (12)
처음 이 제단에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일단 교황의 정체.
원래는 올렌드 추기경에 의해 죽었다고 나온 녀석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문제였고.
시험을 보는 듯한 관문이 있는 것도 처음에는 신의 손을 가지기 위한 조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주호> 형, 여기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은데요.
<불멸> 왜? 처리 못 하는 관문이라도 나온 거야?
<주호> 교황이 살아있어요.
<불멸> 그건 좀 의외네.
<주호> 그리고 좀 미친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몸을 내놓으라고 하는데요?
<불멸> 무슨 말이지?
<주호> 아마도 교황이 형체를 유지하는데 신체가 필요한 모양이에요.
<불멸> 유저의 신체를 노리는 건 처음 보는데…….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와.
재중이 형도 이 상황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았는지 일단 빠지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상대가 뭘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전에 지금과 비슷한 다른 케이스가 없기도 했고.
흐음.
순간적으로 감각을 퍼트려 주변을 살피니 따로 빠져나갈 공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저 녀석과 어떻게든 담판을 내야 한다는 말인데.
스킬들의 쿨타임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인상을 썼다.
조금만 시간을 더 끌어야 해.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이상은.
내 쪽도 최상의 상태에서 붙어야 했다.
“무슨 말이지? 내 신체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이미 제단의 탈출구는 막혀 있어서 그런지 교황의 늙은 얼굴에는 여유가 철철 넘쳐흘렀다.
“그렇지. 보다 강인하고 튼튼한 젊은 육체. 그게 내게 필요하다.”
그리고는 교황이 바닥을 긁는 낮은 말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네 녀석을 지켜봤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기를 기다렸고.”
오랫동안?
저 말은 꽤 시간을 들여서 날 봤다는 소리인데.
대체 언제부터 이 상황을 준비한 거지?
“처음부터 노렸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자네들이 여기 신성 제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쭉 자네들을 주시했지.”
이거 참.
이제 보니 우리가 신성 제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 교황이라는 놈이 계속 지켜본 모양이었다.
이참에 궁금했던 점을 하나 물어보았다.
“그럼, 중간에 올렌드 추기경에게 죽은 건 어떻게 된 거냐?”
자신에 대한 질문에도 교황은 별로 기분 나빠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계속 미소만 짓고 있을 뿐.
일단 녀석의 경계가 상당히 내려가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마치 이미 다 잡아놓은 물고기를 보는 것처럼 구는군.
“올렌드 그 녀석이 잘 해주었지. 꽤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었어.”
가지고 놀았다고?
“설마 일부러 죽은 척했던 건가?”
“흐흐, 잘 아는구나. 내 썩어 버린 육체를 죽이고 좋아하던 녀석이 지금도 기억나는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뭐가 있지?”
“흠. 이 지겨운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당연히 나가고 싶어지지 않겠나.”
갇혀 있다라…….
마치 자력으로는 못 나갔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설마.
그런 거였나.
올렌드 추기경이 교황과 조슈아 성녀에게 반기를 들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봉인을 깬 것도 모두 이 녀석 작품인 모양이었다.
“올렌드 추기경을 이용해서 봉인을 깬 건가?”
“흐흐. 그렇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이구나. 올렌드 그 녀석에게 조금만 바람을 불어넣으니 바로 움직이더군. 꽤 재밌는 작업이었어. 밑에 나를 따르던 기사단도 좀 붙여 주고. 나 역시 지병으로 죽어가는 척하는 것도 재밌었고 말이지.”
역시.
당시 올렌드 추기경의 세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그것만 믿고 신성 제국을 엎어버리기에는 너무 허점이 많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교황이 자신의 세력을 일부러 줄이면서 올렌드 추기경이 눈치채지 못하게 세력을 넘겨 주었다면?
그리고 본인은 모든 활동을 줄이고 성녀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점점 따르는 이들도 교황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추기경에게 붙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젊은 혈기에 조금만 힘을 불어넣어 주니 곧 자기 세상인 것처럼 날뛰더군. 덕분에 봉인도 모두 깰 수 있었지.”
“그 말만 들어보면 넌 봉인을 깰 수 없다는 걸로 들리는데?”
내 말에 교황이 갑자기 킬킬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그래. 아쉽지만 이 몸으로는 봉인을 깰 수가 없지. 제약이 있으니까.”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교황이라는 자리는 봉인을 깨는 게 불가능했던 것 같았다.
혹은 저놈 자체가 뭔가의 제약이 걸려 있을 수도 있을 테지.
“그럼 천족이라는 녀석들이 봉인을 만든 건가?”
“잘 아는군.”
“그래서 넌 못 깨는 거고?”
“그렇지, 그런 제약이었으니까. 내가 직접 봉인을 깨려고 하면 내 쪽이 소멸되는 계약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인가.
교황이 직접 못 나서는 이유.
결국 본인이 여기서 나가기 위해 눈을 돌려 올렌드 추기경을 이용했던 거고.
지금은 보다시피 봉인이 모두 깨져서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천족이라는 것들, 꽤 악취미네.”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갔는데 이 말이 오히려 교황에게는 자신에게 동조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크크큭. 그래. 그놈들 때문에 내가 몇 백 년을 여기 묶여 있었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스쳐가는 뭔가가 생각났다.
“너…… 원래부터 교황이 아니었군.”
“이런. 그걸 이제야 알았냐?”
“그럼 전에 있던 교황은…… 아니, 이건 말 안 해도 알겠군.”
일반적인 인간형 NPC가 수백 년을 산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저 교황이라는 녀석은 수백 년을 여기 갇혀서 살았다고 한다.
그럼…….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말이 되려면 한 가지 사실밖에 없었다.
교황이 인간이 아니어야 해.
“아마도 해답은 그거겠지.”
지금 교황이 손에 들고 있는 저 정체 모를 빛이 나는 물체.
“그걸로 전대 교황의 몸을 차지한 건가?”
“크크크. 아주 재밌구나. 여기까지 알게 되다니.”
맞다는 말을 아주 즐겁게 답하네.
그리고 계속 생각에 생각을 물고 들어가니 하나의 답에 도달했다.
“그럼 넌 역시 마족인가?”
애초에 천족이라는 녀석들이 신성 제국을 감싸는 봉인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굳이 교황이라는 존재를 여기에 묶어둘 이유가 있었을까?
교황이면 적어도 같은 세력권에 속할 건데.
그 당시 교황이 천족과 싸움이라도 했으면 또 모를까.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고.
결국 교황이 아닌 다른 먼가를 봉인해놓았다는 말인데...
답은 하나다.
마족.
그것도 천족들이 한 번에 소멸시키지 못할 정도로 강한.
현세에 육체도 없으면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거기다 신성력까지 버텨 가며 연기를 할 수준인.
아주 강한 마족.
“크크크. 그래. 마족이지. 어때? 만족할 만한 답변이 되었나?”
“뭐 아니라는 못하겠군.”
하아.
이제 어떻게 한다.
마족도 그냥 마족이 아니라 꽤 수준급의 마족 같은데.
우리 팀이 있었으면 어떻게 대처를 하겠는데.
지금은 이 자리에 나만 있었다.
육체가 없는 지금의 저 녀석은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해볼 수야 있겠지만.
역시 빠져나가야 하려나?
<주호> 형, 교황이 아니라 마족이었어요.
<불멸> 뭐?
<주호> 교황의 탈을 쓰고 있는 마족이었다고요.
<불멸> 하, 그거 오늘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신박하네.
<주호> 지원은 안 되겠죠?
<불멸> 흐음. 아무래도 들어가질 못하니까. 그냥 빠져나와.
<주호> 네, 그래야할 것 같네요.
재중이 형도 마족과 바로 붙지 말고 빠지라는 판단을 내렸다.
저쪽의 전력을 모르는 이상.
그것도 혼자 붙는 것은 꽤 불리한 일이니.
그런데 그때 교황이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정확히는 마족 따위가 아니지.”
응?
방금 뭐라고?
마족 따위라고 했나?
마족이 같은 마족에게 따위라는 말을 쓰지는 않을 거고…….
설마?
“암흑 세계에는 마족보다 상위의 존재들이 있다. 난 그중에 하나고.”
이제 하다 하다 마족 이상의 녀석들이 나온 건가.
“뭐 네가 마왕이라도 된다는 거냐?”
“잘 아는군.”
그 말에 순간 제단에 정적이 맴돌았다.
하.
아니길 바랬는데.
마족도 벅찬 마당에 마왕급이라니.
마족을 따위라고 한 걸 보면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여길 빠져나가도 문제겠는데…….
지금의 유저들 전력으로 이 녀석을 막을 수는 있는 건가?
아무래도 유저들을 전부 다 모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주호> 형, 이 녀석 마족이 아니고 마왕이라는데요?
내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재중이 형이 다시 물었다.
<불멸> 하, 애들 다 끌어모아야겠네. 지금 길마들한테 전부 연락 넣어둘게. 넌 바로 빠져나와라.
재중이 형 역시 심각함을 안 건지 바로 판단을 내렸다.
진짜 가진 최상의 전력으로 붙어야 함을.
그나마 다행인 건 저 녀석에게 신체가 없어서 다행인 건가?
이전의 가르시아 제국에서 가짜 황제가 본신의 몸으로 잠시밖에 버틸 수 없어 바로 역소환되었던 걸 생각해 보면…….
녀석에게 신체를 내어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 신체를 차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유저의 몸을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런데 이 몸을 차지하면 내 쪽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접속하면 그냥 몸만 넘어가는 건가?
아님 계속 지켜봐야 하는?
혹은 녀석의 몸이 생성되고 내 쪽은 따로 새로운 몸으로 접속하는 거려나?
여러 가지 최악의 나쁜 상황을 모두 시뮬레이션하면서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몸을 내어주었을 경우 내가 죽는 걸로 판단이 된다면?
그건 사실상 최악이었다.
르아 카르테나 다른 아이템들이 보존된다는 법도 없고.
하아.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은 지나갔네.
이제는 정말 빠져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뭐 마왕이든 뭐든 알아서 하고. 정체를 알았으니 이만 작별 인사 하자고.”
녀석이 지상으로 올라와서 붙는 건 둘째 문제.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바로 귀환을 썼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 귀환 불가 지역입니다. 》
《 알 수 없는 결계에 묶여 있는 장소입니다. 》
《 결계를 만든 존재를 죽이면 결계가 사라집니다. 》
뭐?
귀환이 안 된다고?
결계라는 말에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황이 킬킬 거리면서 배를 잡고 웃어 댔다.
“흐흐, 감히 도망을 가려고? 내가 널 이 자리에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교황의 모습이 순간 사라지더니 곧장 내 앞에 나타났다.
칫.
움직임을 놓쳤어!
곧장 교황이 품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거기서 붉고 검은 기운이 빠르게 튀어나와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럼 그 몸을 받아가 볼까?”
《 알 수 없는 기운이 신체를 강탈하려 합니다. 》
《 신체 강탈까지 10초 남았습니다. 》
10.
9.
8.
.
.
시스템 메시지가 굳이 울리지 않더라도 잘 알아!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몸에 기운이 파고들자마자 제어권을 뺏겼는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미친.
이대로면 정말 신체를 뺏길 텐데.
계속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일단은 불가능해 보였다.
젠장.
강제 이벤트라도 되나?
그런데 그때.
내 옆에서 환한 빛과 함께 결계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그 사이로 발이 튀어나와 교황의 면상을 그대로 후려갈겨 버렸다.
퍼어어억!!
콰아아앙!!
“크엑!!”
교황이 방심하고 있다가 면상을 얻어맞고는 저 멀리 튀어 날아가자 어이없는 눈으로 그 결계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그리고 그 결계 너머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게 미쳤나. 감히 누굴 걸 넘봐?!”
이건...
아스티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