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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62화 (752/1,404)

#762화 신의 손 (11)

응?

신마대전?

교황의 뜻밖의 말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올려졌다.

예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조각조각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가르시아 제국 내에 있는 정보를 포함해.

뭐 그런 제국에서도 자료가 거의 대부분 날아가서 그렇게 의미가 있진 않았지만.

일단 궁금하기는 한데 말이지.

저 교황의 의도를 모르겠단 말이야.

시스템에 의해 죽었다고 나온 교황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도 그렇고.

이런 곳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앉아있는 것 자체도 수상했다.

이것도 뭔가의 함정이려나?

혹시나 몰라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언제라도 뻗을 수 있도록 완전히 힘을 빼진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계속 내려다보던 교황이 내가 들고 있던 르아 카르테를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띄였다.

“영웅의 무기인가.”

원래 존재하던 교황이라 그런지 내가 들고 있는 무기를 바로 알아보았다.

“교황이라 잘 아시는군요?”

“흠, 모를 리가 있나. 300년 전에도 봤는데.”

그 말에 순간 몸이 흠칫했다.

300년 전에도 봤다고?

일반적으로 사람이 300년을 살 수가 없지 않나?

그럼 대체 저 녀석은 뭐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혹시 마족?

아냐.

이건 너무 갔어.

너무 오래 산다고 다 마족은 아니다.

전에 가르시아 제국에서 황제의 탈을 쓰고 활동하던 마족이 있긴 했지만 그쪽은 애초에 신성력을 쓰는 곳이 아니니까.

반면에 지금 교황의 자리는 완전히 달랐다.

신성력으로 도배해 놓은 공간에 마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는 일이지.

일단 마족이라는 가정은 머릿속에서 날려 버렸다.

드워프 같은 종족도 아닐 텐데…….

애초에 그냥 눈으로 봐도 다른 종족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종족 자체는 인간 쪽이고.

그러면 역시 그것밖에 없으려나?

예전 고대 드워프 왕이 그랬듯.

저 교황 역시 같은 방법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곧장 물어보았다.

“혹시 영혼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겁니까?”

“호오. 어디선가 본 모양이군.”

역시 그랬나?

지금의 교황은 역시 고대 드워프 왕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이 동네의 머리들은 죄다 이런 식으로 오래 살아남네.

그냥 겉으로만 보면 영생을 사는 녀석들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그럼 전에 올렌드…… 그쪽 입장에서는 추기경이겠군요. 그 사람에게 죽은 건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올렌드 말인가.”

자기 밑에 있던 부하 중에 가장 높은 직위를 지닌 올렌드를 말하면서도 교황의 말투는 계속 무미건조했다.

딱히 감흥이 없다는 듯.

어쩌면 무관심에 가까우려나?

“젊어서 그런지 그 녀석은 참 바라는 게 많았지. 신성 제국을 감싸는 봉인을 모두 풀면서까지 말이야.”

“알고 있었습니까?”

“왜 몰랐겠나.”

……흐음.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올렌드 추기경을 그대로 놓아두었단 말인가?

조슈아 성녀는 교황이 힘이 없어서 올렌드 추기경에게 밀렸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그건 조슈아 성녀가 다 잘못 알고 있었다.

당장 느껴지는 저 교황의 위압감만 해도 어지간한 네임드의 기세는 한참 뛰어넘었다.

전투 능력은 확실히 모르겠지만…….

주변을 내리누르는 이런 압박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이제까지 몇 되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저 녀석.

강하다.

올렌드 추기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몸에 전기가 흐르듯 감각들이 내게 계속 경고했다.

위험한 존재라고.

어쩌면 마지막 관문은 저 녀석일지도 모르겠는데?

교황이 눈치채지 못하게 눈으로 슬쩍 스킬들의 쿨타임들을 바라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칫.

전에 올렌드와 붙으면서 쿨타임이 있는 스킬들을 꽤 써 버렸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오려면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일단은 장단에 맞춰주면서 시간을 벌어야겠어.

“다 알고 있으면서 그냥 둔 겁니까?”

그 물음에 교황이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고는 마치 예전의 회상하듯 물음과 다른 의외의 말을 꺼내 들었다.

“신마대전은 대륙의 인간들에게 꽤 많은 피해를 주었지. 흠, 아니지. 피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재앙이었어. 대륙의 인구 중 9할이 그때 죽어 나갔으니까.”

“……9할?”

내 쪽이 알고 있던 피해와는 너무 차이가 나는데?

9할이면 10명 중에 9명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그때 까딱 잘못했다면 완전 멸종할 수도 있었겠네.

1할만 남은 인구가 겨우 살아남아서 남쪽으로 피난 온 셈이니.

거기다 아직까지도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강력한 네임드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상황이니까.

아마 무한으로 접속하는 우리 유저들이 없었다면 이미 NPC들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 그리고 대륙 연합군과 신성 제국이 패퇴하면서 꽤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지. 이를 테면…… 자네가 가진 그 영웅의 무기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러면서 다시 교황이 눈을 내리깔면서 내 르아 카르테를 바라보았다.

누구처럼 욕심에 찬 그런 눈빛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르아 카르테를 콕 찍어서 말했다.

“이게 그쪽 물건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지금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

소유권을 달라는 말도 아닐 텐데.

내가 눈을 치켜뜨고 물어보자 교황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 물건들이 신마대전 때 나왔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걸 탐낸다고는 생각하지 말게나. 영웅의 무구는 그에 맞는 자격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욕심이 없다는 건가?

그때 교황은 조금 의외의 말을 했다.

“자네, 영웅의 무구들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흠, 생각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요.”

사실 내게 영웅의 무기가 어디서 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그냥 이 녀석들이 어디에 박혀 있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만 알면 그만이라.

기원 같은 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역시 그런가……. 사실 그 영웅의 무구들은 다 신들의 무기들일세.”

“신?”

뭐야?

갑자기 신이 불쑥 튀어나오자 조금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으음, 정확하게는 신이 아니라 천족의 무구라고 해야 하겠군.”

“천족…… 입니까?”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영웅의 무구에 대한 기원을 입수했습니다. 》

《 천족의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

신이 아니라 천족이라…….

하긴 버젓이 마족도 있는데 천족이 없는 건 좀 이상하다 했다.

마족이야 이미 여러 번 마주쳤다.

시작하는 장소에서 시작해 그것도 꽤 꾸준히.

반면 천족은 뒤꽁무니조차 본 적 없으니 문제였고.

그런 날 보던 교황이 또 한 가지를 물어왔다.

“이 대륙이 왜 이렇게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 말에도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냥 게임 배경이 그런 것 아니었어?

시작부터 어두컴컴한 숲에 떨어져 오크들을 몰아내고 겨우 숲을 환하게 되살렸었다.

당연히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마 재중이 형이나 전사 형이 여기에 있었다면 좀 다른 답을 내놓았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내 쪽은 그런 기원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저 눈앞에 적이 있으니 두들겨 패는.

딱 그 정도의 관심이라.

그런데 지금은 좀 더 유심히 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영웅의 무기들의 기원을 알면.

다른 녀석들을 찾아내는데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해서.

“사실 신마대전은 우리가 진 것과 마찬가지였다네.”

역시…… 진 거였나?

아니, 그냥 딱 봐도 진 것 같긴 하다.

만약 천족이나 인간들이 이겼다면 배경이 이렇게 어두컴컴하진 않겠지.

다른 말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교황이라는 작자도 패잔병이었다.

마족들에게 쫓겨 남쪽으로 후퇴한.

그것도 그때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는 NPC이기도 하고.

“그럼 이 결계는 당신이 만든 겁니까?”

신성 제국 제넨샤에 존재하는 세 개의 봉인.

그걸 매개체로 해서 신성 제국을 감싸듯이 결계를 만들어 놓았다.

사실 이건 교황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지.

신성력이 가장 높은 교황 정도는 되어야 이런 광범위한 결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안에 있는 NPC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에서는 네임드가 침략하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결계를.

그런데 의외로 교황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흠, 사실 이 결계는 내가 구축한 것이 아니라네.”

“그럼?”

그 말에 순간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혹시 천족이라는 존재입니까?”

“그렇다네.”

으음. 역시 천족이었나?

한 번도 정체를 보지 못한 천족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의 결계를 만들 수 있는 거였군.

생각해 보면 교황 혼자서 저 월드 네임드들을 죄다 봉인시키는 건 좀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그 고생을 하며 잡았는데 말이야.

여기서 의문.

천족이라는 굉장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방어막을 구축해 줬는데 굳이 그걸 부수게 놔두었다고?

신성 제국의 총책임자인 교황이?

결계를 부수면 어떻게 될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랬다는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9할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는데 결계를 푸는 건 거의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 미친 짓을 올렌드 추기경이 해 왔던 거고.

심지어 이 교황은 그걸 알면서 눈감아 주었다.

조슈아 성녀 혼자 방방 뛰면서 반대했을 뿐.

정작 본인은 결계를 풀어 버린다라…….

“대체 왜……?”

덕분에 우린 건진 게 많아서 좋긴 한데.

역시 이유가 궁금하니까.

그런데 그런 내게 교황의 전혀 다른 답변이 들려왔다.

“으음, 사실 말이야. 좀 지겨웠거든.”

지겨웠다?

무슨 말이지?

“올렌드 추기경도 그 짧은 삶을 못 참아서 결계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난 어떻겠나.”

“……그래도 당신은 책임자이지 않은가요.”

“그렇지. 300년 넘게 이곳을 책임졌지. 하지만 이제 지쳤어. 사실 이 몸도 이제 붕괴가 되어 가는 중이야.”

으음.

고개를 올려 자세히 바라보자 그곳엔 꽤 푸석푸석한 장발을 기른 교황의 수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부 곳곳이 비가 전혀 오지 않아 메마른 논이라도 되는 듯 쩍 갈라져 있었고.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죽기 전에 바깥을 보고 싶었다네.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이 결계를 부수고 나가지 못해. 천족이 그렇게 만들어 두었거든.”

생각보다 천족이라는 녀석들이 훨씬 강한 모양이네.

그리고 교황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한 가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가만히 있던 교황이 움직이고자 하는 이유로 살짝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왜 지금 갑자기 마음을 바꾸게 된 걸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혹시 모험자…….”

내 추측에 대견한 아이를 보듯 교황의 눈빛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래, 너희 모험자들은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더군.”

봉인을 부수려면.

유저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자신들로는 부수지 못하니까.

결국 신성 제국에 들어온 연을 이용해 먹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계속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교황이 막나간다고 하더라도.

결계가 없으면 신성 제국이 박살 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봉인을 풀었다?

이상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냐.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교황이 제단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내 쪽을 쭉 쳐다보면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아주 진하고 음습한 표정을 감춘.

딱 그런 표정이었다.

후.

저런 표정을 짓는 녀석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아니나 다를까.

“크큭, 지켜보니 모험자들은 꽤 강하더군. 특히 자네는 모험자들 중에 특출 날 정도로 강해.”

그러더니 교황이 품에서 뭔가 빛나는 물건을 꺼내들면서 스산하게 미소 지었다.

“내 다음의 신체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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