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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64화 (754/1,404)

#764화 신의 손 (13)

갑자기 등장한 아스티아의 목소리에 벙찐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못 봐서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사실 어디론가 사라지면 절대 찾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교황을 화끈하게 차서 날린 발에 이어 다리도 넘어오더니 곧 아스티아의 전신이 결계를 넘어오기 시작했다.

아스티아가 넘어오자 결계가 미친 듯이 출렁이며 일그러지는 모습도 보였고.

파지지직!

“아씨, 빡빡하게도 막아 놨네.”

교황이 친 결계를 말하는 건가?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아스티아가 교황이 친 결계를 뚫을 수 있는 거지?

분명히 교황이 자기 입으로 본인이 마왕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럼 그런 존재가 친 결계가 얼마나 강할지는 굳이 겪어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그런데 아스티아는 마치 제 안방 드나들 듯이 너무 쉽게 교황의 결계를 찢으면서 여기로 파고들었다.

이건 교황이 의외로 약한 건가?

아니면…….

아스티아가 마왕인 교황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 되는데…….

물론 지금 교황이 제대로 된 신체를 가지지 못해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까 힘이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태니까 아스티아가 쉽게 결계를 찢고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곧 아스티아의 전신이 모두 결계를 넘어오자 계속 일그러지면 출렁거리던 결계의 균열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저건 억지로 힘으로 찢고 들어온 거려나?

허리까지 오는 긴 보랏빛 헤어를 흩날리며 넘어온 아스티아가 나를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전에 말하지 않았어? 네가 있는 곳에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아…… 그랬었죠.”

분명히 예전에 아스티아가 말한 적이 있었다.

아스티아가 내게 원천마력을 주면서 본인과 내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그 말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스티아가 원하기만 하면 내 쪽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그게 누군가 억지로 막아 놓은 장소라고 하더라도.

직접 보니 굉장하긴 하네.

이런 상황에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그런 아스티아가 날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저 멀리 튕겨져 나간 마왕인 교황을 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 떨거지가 진짜 미쳐 가지고. 감히 누구 걸 넘보는 거야?”

내가 이미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아스티아를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뭐 도움이 됐으니 상관은 없으려나.

만약 지금 아스티아가 나타나서 저 교황을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꽤 복잡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좀 그렇긴 한데. 일단 고마워요.”

“일다~안?”

“아, 정말 매우 고맙다고요.”

그 말에 아스티아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보더니 곧 표정을 풀어 버렸다.

“됐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아, 설명하자면 엄청 긴데…….”

신성 제국에 넘어온 것부터 시작해서 월드 네임드들과 한바탕한 것에 모자라 지금은 마왕이라는 녀석과 이러고 있는 상황까지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짧게.”

“흐음, 짧게라고 하면…… 보다시피 저 녀석이 제 몸을 강탈하려고 하던 중이었죠.”

말하고 보니 좀 그런가.

앞뒤 다 짜르고 결론만 말했더니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스티아는 그것만 듣고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웃음 지었다.

참 심플하다니까.

“응, 나도 알아. 내가 심어둔 원천마력에 이상이 생겼다고 신호가 와서 말이야.”

나와 아스티아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스티아가 받기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 봐야 좋은 소리를 듣진 못할 테니.

그리고 그동안 굳이 아스티아까지 불러야 하는 상황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아스티아가 먼저 이변을 눈치채고는 알아서 날아와 주었다.

이건 역시 고맙다고 해야겠지.

“제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는 건가요?

“지금처럼 원천마력을 다른 녀석이 건들면.”

“저 교황이 그걸 건든 모양이네요.”

교황이 저 정체불명의 물건을 써서 내 심장에 뭔가의 기운을 침투시키려고 했었다.

그러자 거기에 아스티아가 심어 둔 원천마력이 반응을 한 모양이고.

내가 위기라고 판단한 아스티아가 곧장 넘어왔다는 말이다.

결계를 억지로 뚫어가면서.

“그런데 이 결계 어떻게 지나왔어요?”

나름 마왕이 친 결계가 아니었던가?

약해져 있다고는 하나…….

솔직히 이게 더 궁금했다.

“응? 그냥 돼.”

“그냥 되는 건가요…….”

방금 그 말을 들음으로써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

아스티아가 거의 마왕급일지도 모른다고.

애초에 급수에 확연한 차이가 나면 아무리 뚫으려고 해도 뚫지 못할 건데.

지금은 너무 쉽게 넘어왔고 본인도 그냥 된다고 하는 걸 봐서는 크게 틀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스티아를 본 교황의 태도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저 구석에 가서 처박혔다가 이제야 일어난 교황의 눈매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과 꽤 당황한 것 같은 목소리가 딱 그랬다.

“너……! 네가 어떻게 여기를?!”

나를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

거기다 교황은 아스티아가 누군지도 확실히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스티아의 태도는 또 달랐다.

“헤에, 그 파장…… 누군가 했더니 이런 곳에 처박혀 있었어?”

발로 쳐놓고도 누군지 몰랐다가 이제야 확인한 것 같았다.

파장이라…….

지금의 마왕의 껍데기는 이전의 교황일 테니.

겉만 봐서는 모르지만 저 파장이라는 걸로 본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반면 아스티아는 원래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스티아는 따로 제약 같은 걸 받지 않는 건가?

여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그런 상황이 없기도 했고.

흠.

이건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 하려나?

잠시 궁금증을 놓아 두고 둘의 대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말을 듣고 말았다.

“용마족…… 공주, 아스티아!”

공주……?!

방금 잘못 들었……?

곧장 고개가 돌아가면서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공주…… 였나요?”

“아, 왜? 내가 공주면 안 되냐?”

“으음. 뭐. 그런 건 아니고요.”

바로 눈을 부라리면서 바라보는 아스티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끙.

이건 말 한 번 잘못 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죽겠는데.

“공주라고 그런 식으로 안 봐도 돼.”

“……으음.”

왠지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든 느낌이 든다.

그런 아스티아를 향해 교황이 눈을 내리깔고는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방해를 받아서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듯.

“용마족의 공주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서열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다른 마왕의 일에 마음대로 끼어드는 건 아니지 않나?”

서열?

방금 그 말은 그 서열 안에 아스티아가 들어간다는 말인데…….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입을 닫고 있었다.

일단은.

지금 눈앞에 닥친 일부터.

“흥,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소린데. 이 녀석은 내가 먼저 침 발라 놨단 말이야.”

“그건 좀…….”

침 발랐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가.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교황이 다시 나를 자세히 뜯어보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내 심장에 이르러서는 뭔가를 발견한 듯 인상을 확 쓰기 시작했다.

“저건…… 원천 마력을 심어 둔 거냐.”

“이제 확인했으면 이 녀석에게 신경 끄시지?”

그러면서 아스티아가 내 앞으로 손을 쭉 뻗어 녀석과의 라인을 확실히 그어 버렸다.

마치 접근도 하지 말라는 양.

이거 참.

왠지 보호받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이려나.

상황이 이런 만큼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하지만 교황의 생각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저 녀석을 손에 넣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하.

날 포기 못 한다는 말인데.

교황 입장에서는 우리가 여기 신성 제국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침 발라 놨는데 아스티아가 끼어든 셈이 된다.

그래서 더욱 포기를 못 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이건 오히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던가 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에게 넌지시 말했다.

“혹시 마왕이라는 거…… 여기서 신체 없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건가요?”

“응? 잘 아네? 어디서 들었어?”

내 추측에 아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임으로 확답을 주었다.

흐음.

역시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런 판단이 확실하다고 생각이 들자 지금의 저 교황의 상태를 조금 더 면밀히 볼 수 있었다.

분명 아까 전에 신체가 무너지니 어쩌니 했었지.

그럼 교황 역시 지금 크게 여유가 없다는 말인가?

“혹시 신체를 한 번 차지하면 한동안 못 바꾼다던가 하는 것도 있어요?”

“응, 내가 알기로는 그래.”

역시 그랬나.

예전에 가르시아 제국의 황제 역시도 신체의 제약 때문에 힘을 쓰다가 그대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건 가지고 있던 신체가 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렇게 한 번 몸을 바꾸면 한동안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교황이 보기에 모험자 중 가장 높은 레벨인 내 몸을 마지막으로 노린 걸 수도.

자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딱 그런 신체를.

그래서 그동안 쭉 기다리기만 하면서 지금의 몸이 붕괴되었을 것이다.

교황 입장에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든 지금 내 몸을 차지해야 한다는 소리.

그런 상황에서 예상에도 없던 아스티아가 끼어들었으니 교황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지.

그렇게 상황 파악이 완전히 끝나고 나자 이제는 내 쪽에 여유가 생겼다.

이대로 시간만 끌면.

저 마왕인 교황은 그대로 역소환 당해서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아스티아, 저 녀석. 지금 제 몸을 차지하지 못하면 이대로 역소환될 거예요.”

“으음, 확실히 그래 보이네.”

내 말을 들은 아스티아도 교황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어?”

그리고 아스티아는 한발 한발 교황에게 걸어 나갔다.

당연히 교황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고.

“난 내 것에 손댄 녀석을 그냥 두진 않거든. 그게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이거 참.

일단 고맙다고 해야 하나.

내 것이라는 표현이 좀 아니긴 하지만.

마왕인 교황이 바로 악을 쓰면서 외쳤다.

“지금 뭐 하는……!”

“뭐 하긴. 싹을 잘라 내는 거지.”

그리고는 양팔 가득 마력을 끌어올린 아스티아가 교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그냥 달리기만 하는데도 주변의 대기가 일렁일 정도로 엄청난 압력을 주었다.

이전보다 더 강해진 건가?

원래의 힘을 찾으면 더 강해진다더니.

무슨 수를 쓴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어딘가에서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교황도 온몸에서 마력을 끌어올려 아스티아에게 대항해 갔다.

저쪽 역시 제대로 힘을 내니까 장난 아니네.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압력이 내리누를 정도면.

그런 둘이 중간에서 격돌하자 제단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지상까지 흔들릴 정도였나?

하긴 여기가 이 모양이니…….

<주호> 아, 여기 마왕급 둘이 치고받는 중이에요.

<불멸> 뭐?!

<주호> 자세한 건 조금 있다가 말해 드릴게요.

콰아아앙!

퍼엉!

콰르릉!

둘이서 치고받을 때마다 충격파가 계속 내 몸을 두들기자 바로 오러부터 끌어올렸다.

옆에서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이런 피해라니.

심지어 둘의 격돌이 눈으로 잘 확인도 되지 않았다.

잔상만 겨우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바로 혀를 찼다.

스킬을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꽤 부담스러운 속도였다.

저 속도에 적응하려면 연습이 좀 필요하겠는데…….

그렇게 한참을 격돌하는데 누가 봐도 아스티아가 교황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신체의 문제이려나…….

아스티아의 말끔한 모습과는 달리 교황에게서 피분수가 계속 터져 나오며 패퇴의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교황이 뭔가 스킬을 쓴 듯 큰 폭발을 일으켰다.

주변의 시야가 한순간 사라질 정도의 강렬한 폭발력에 잠시 눈을 감았는데 다시 눈을 뜬 순간.

교황의 잔상이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스티아는 바로 내 쪽을 보면서 외쳤고.

“뒤!!”

칫.

폭발로 시야를 가린 건가.

아스티아가 뒤라고 외치는 순간.

주저 없이 몸을 돌리며 오러로 둘러진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빠르게 찔러 넣었다.

촤악!

푸욱!

“크억!!”

그리고 내 두 개의 검에 정확하게 교황의 허리가 찍혀 있었고.

“젠장!!!! 너만 가졌어도!!”

그리고는 교황이 이전의 그 정체 모를 물건을 다시 한 번 내 심장으로 밀어 넣었다.

하……!

내가 바보도 아니고.

두 번은 안 당하지!

【 데스 버스트! 】

정확히 녀석의 몸에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이 박혀 있으니까.

지금 쓰는 이 데스 버스트는 녀석에게 직격으로 피해를 줄 터.

콰아아앙!

그리고 녀석의 몸 안에서 데스 버스트가 작렬하는 순간.

눈부신 폭발이 녀석에게서 터져 나왔다.

“크아악!! 이렇게 끝낼 수는 없……!”

녀석의 몸이 강력한 폭발력에 풍선처럼 터져 나가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최초로 마왕을 살해했습니다! 》

《 마왕이 지하 세계로 강제 역소환됩니다!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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