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성장형 네임드 (9)
원래라면 이렇게 블레이즈 슬래셔를 여러 번 쓸 수는 없었다.
애초에 베사노스는 한 자루밖에 없으니.
하지만 웨폰 카피로 여러 개의 베사노스를 미리 준비해 두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닿는 모든 화염을 모아서 한 방에 방출하는 것이 블레이즈 슬래셔.
주변 땅에 박아놓은 베사노스들이 각자 알아서 블레이즈 필드의 화염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화염의 위력을 키워갔다.
에너지를 쓰는 효율로 보면 아마 최고가 아닐까.
광역으로 퍼지는 화염을 한 곳에 집중해서 모을 수 있으니.
거기다 쿨타임도 없고.
시전 시간도 없다.
그저 화염만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블레이즈 슬래셔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그래서 전사 형에게 시간을 벌어 달라고 했던 것이고.
베사노스의 개수가 여러 개다 보니 필요한 만큼 화염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아둔 화력은 지금 이 순간.
일제히 터져 나갔다.
오버 된 히드라의 몸에서.
콰아아앙!
콰아앙!
키에에에엑!!
수많은 블레이즈 슬래셔의 폭격에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폭발이 일어나면서 히드라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몸을 틀어댔다.
우리 팀이 벌어주는 시간만큼.
딱 그만큼.
화력을 비축했다.
째앵!
파직!
그때 블레이즈 슬레셔들을 날린 베사노스들이 일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검신이 하나둘 박살 나기 시작했다.
으음.
역시 복사본의 내구로는 블레이즈 슬래셔를 버티지 못하는 건가.
거칠게 검신이 갈라진 복사본 베사노스들이 곧 가루로 변해 내려앉더니 이내 바람에 휘날려 사라져 버렸다.
그런 검신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폭발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전사 형이 기겁하면서 뒤로 빠져나왔다.
저건 어글을 잡고 어쩌고 할 수도 없지.
일단 접근 불가.
“어우, 이건 좀 너무 센데?”
나를 보는 전사 형의 표정에는 감탄과 함께 질린다는 딱 그런 표정도 함께 하고 있었다.
전사 형도 이 정도의 위력을 한 번에 뽑아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단순 위력만 본다면 챠밍이 네임드들의 최종 광역기를 연달아 수십 발 날리는 것과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혹은 이쁜소녀가 광화가 지속되는 시간 동안 헤븐즈 스트라이크를 연달아 폭발시킬 때의 위력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쪽은 한 방에 몰아넣는 거니까.
순간 폭딜 위력은 오히려 이쪽이 위겠지.
전사 계열의 유저가 이런 화력을 한 방에 낸다고 하면 누가 봐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재중이 형도 끝없이 올라오는 폭발 때문인지 히드라에게 빠져서는 내게 다가오더니 약간 놀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이런 걸 아껴두고 있었냐?”
“아껴둔 건 아닌데. 솔직히 될지 알 될지는 잘 몰랐어요. 복사된 베사노스들이 버텨 줄지도 의문이었고요.”
베사노스로 화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이 많이 요구된다.
그것도 한자리에 멍하게 있어야 하는 최대의 단점.
어지간해서는 쓰기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혼자서는 이 정도 화염을 모으지도 못한다.
챠밍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가능한 정도.
혹은 누군가 화염 공격을 엄청나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화염을 모으다가 오히려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베사노스의 내구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
거기다 베사노스들이 서로 간섭을 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복사본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단순히 여러 개의 토르를 복사해서 확률로 헤븐즈 스트라이크를 터트리는 것과는 준비 과정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쓰기 힘든 만큼.
화력 하나만은 확실했다.
활활 타오르던 오버된 히드라는 잠시 뒤 풀썩 주저앉으면서 그대로 다운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쁜소녀가 신나서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비명을 질렀다.
“와! 오빠! 히드라 누웠어요!”
“어, 봤다.”
오버된 히드라를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라…….
전사 형과 이쁜소녀 같은 경우 주변 화력이 강한 만큼 히드라에 접근하기 힘들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나르샤 누나는 달랐다.
쐐애애액!!
푸욱!
퍼억!
연이어 굵직한 풍절음이 들리며 화염 속으로 보이는 히드라의 머리에 계속해서 화살을 박아 넣었다.
가만히 있는 표적만큼이나 공격하기 좋은 녀석이 또 있을까.
오러를 담은 화살들이 계속해서 화염을 뚫고 날아가 머리에 정확하게 박히자 히드라의 머리가 크게 들썩거렸다.
무기나 스킬의 위력이 부족한 건 오러로 최대한 대신하는 거려나.
거기다 공격당하는 위치가 급소이다 보니 크리티컬이 나오기 딱 좋은 상황이라 박히는 모든 공격의 위력이 대폭 증가할 것이다.
이것도 매번 오차 없이 비슷한 코스로 화살을 날릴 수 있어야 가능했고.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다른 쪽에서 커버를 했다.
그리고 아직은 쓸 생각이 없는 건가?
잠시 나르샤 누나를 바라보다가 화염 속으로 빠르게 뛰어들어 가는 재중이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저 간다!”
“아, 형은 가능하죠.”
베사노스의 주인.
추가로 재중이 형은 지금 가르가의 심장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화염이 쫙 깔려 있는 자리.
이보다 재중이 형에게 좋은 상황이 또 있을까.
베사노스만 해도 화염 속에서 대미지가 몇 배로 증폭이 된다.
가르가의 심장 역시 마찬가지.
화염 대상에게 대미지가 몇 배로 증폭.
여기에 화염과 냉기 오러까지 유지가 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오버된 히드라 주변에 넘치는 화염을 베사노스가 그대로 빨아들이면서 엄청나게 벌겋게 달아올랐다.
멀리서도 확연히 보일 만큼.
가르가의 심장에 영향을 받아 냉기까지 동시에 흐르는.
말도 안 되는 상태.
그런 재중이 형이 히드라의 머리를 베사노스로 강하게 내려치자 단번에 머리의 단단한 껍질이 얼려지면서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화염이 더 치솟아 올랐다.
“아주 좋아.”
몇 번의 공격을 더 하자 상처의 균열이 점점 벌어졌고 갑자기 재중이 형의 몸이 뒤로 빠지더니 온몸의 힘을 실어서 전진해 베사노스를 그 균열에 박아 넣었다.
【 대쉬! 】
【 강격! 】
푸우욱!
키에에엑!
검신이 모조리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화염이 방어막을 다 깨버려서 이제 남은 게 껍질밖에 없다 보니 그 정도는 재중이 형이 충분히 찢고 들어갈 만했다.
음?
저건……?
겉으로 보기에 예전에 히드라의 등짝에 박아 넣은 것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
그렇게 완전히 검신을 박아 넣은 재중이 형이 씨익 웃었다.
“그럼 잘 가라.”
【 블레이즈 슬래셔! 】
온몸으로 화염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미 블레이즈 슬래셔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블레이즈 슬래셔가 방어막 외곽이 아닌 아예 검신이 깊숙이 박힌 신체 안에서 터져나가자.
콰아아앙!
화르르륵!
퍼어억!
키에에엑!!
순간 히드라의 머리 중 하나가 결빙되더니 내부에서 터진 블레이즈 슬래셔의 화염에 폭발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크, 맘에 드네.”
그런 재중이 형을 보고는 챠밍이 내게 물었다.
“오빠, 지금 광역기 쓰면 안 되겠죠?”
“음, 확실히…….”
챠밍이 광역기를 날리는 게 강할까.
재중이 형이 저 화염에서 공격하는 게 강할까.
이미 챠밍은 머릿속에 계산이 끝난 것 같았다.
“오히려 방해될 것 같아요.”
챠밍이 광역기를 날리면 재중이 형이 저 위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전사 형이 듣더니 챠밍에게 바로 말했다.
“일단 광역기 쿨 아껴놔 봐.”
“네, 알았어요.”
전사 형 역시 같은 판단을 했다.
그만큼 지금의 재중이 형은 위력적이지.
비슷한 위력이라면 광역기의 쿨을 아끼는 편이 더 좋기도 하고.
조금 더 기다리자 곧장 옆에 있는 또 다른 머리를 날려 버리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전사 형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어이없이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어우, 가르가의 심장과 베사노스의 조합이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그러네요.”
순식간에 두 개의 머리를 날려 버릴 줄이야.
오버된 히드라여서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완전 재중이 형의 독무대였다.
“잘하면 우리끼리 저 녀석. 잡을 수 있겠는데?”
“네, 아마도 될 것 같아요.”
일단 머리의 숫자가 여섯 개에서 두 개나 줄어 버렸다.
그만큼 히드라의 공격이 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전사 형이 탱킹하기에도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 정도면 오버 된 베히모스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전사 형 말대로 비슷한 체급인 베히모스 역시 가능하려나.
어떻게든 베히모스의 발만 묶어둘 수 있다면.
승산이 보이는데?
그리고 오버 된 베히모스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파괴된 이전 신성 제국이었다.
잡기만 하면 신성 제국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지하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화염이 잦아들면서 히드라가 드디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은 좀 아쉬운지 혀를 차면서 뒤로 빠져나왔다.
“아, 하나 더 날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 아쉬웠나 보네.
“일단 내가 붙는다.”
전사 형이 곧장 뛰어나가면서 다시 히드라의 어글을 잡으려는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히드라가 울부짖으며 히드라의 비늘들이 일제히 떨어져 나가더니 바닥에 떨어진 회색 비늘들이 주변 돌들을 흡수하며 거대한 뭔가를 잔뜩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저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전사 형도 놀라서 외쳤다.
“듀라한…… 고르곤…… 설마, 부하들을 만드는 건가?”
히드라 주변으로 수도 없이 많은 듀라한과 고르곤들이 일어났다.
그것도 단단한 석상으로 된.
원형보다는 다소 작긴 하지만.
저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 하나, 하나가 약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괜히 이 시점에 히드라가 저 녀석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 테니까.
“아무래도 페이즈가 변한 모양이다. 오버된 히드라의 최종 형태일 수도 있고.”
“곤란하네요.”
설마 다른 네임드들을 전부 만들어 낼 줄은.
그것도 오버할 때 죽여서 성질을 흡수한 딱 그 녀석들을 만들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거 난이도 미친 거 아니냐?”
“그러게요.”
완전 방벽을 쌓듯이 히드라를 호위하는 석상 네임드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재중이 형이 다가오더니 역시 어이없어했다.
“저놈 숨겨둔 한 수가 있었네.”
“네, 너무 쉽게 간다 했어요.”
저러면 이제 히드라를 제대로 공격하기도 힘든데…….
어지간한 공격들은 다 저 석상들이 막아 줄 것이 뻔했다.
다행인 것은 저 녀석들이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점.
아마 히드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두면 히드라가 회복해 버릴 테니까.
“한 번 더 해볼까요?”
“아냐, 아마도 석상에 다 막힐 거다. 어지간한 광역기도 전부.”
흐음, 어쩐다…….
그때 챠밍이 내게 다가오더니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오빠, 제가 저 석상들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