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15화 (605/1,404)

#615화 악당 용사? (2)

전쟁을 일으킨다는 내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의 표정이 일변했다.

『 전쟁인 건가요? 』

“네, 전쟁.”

그렇게 내가 언급한 전쟁이라는 단어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꺼내었다.

『 귀족들을 쳐내기 위함인 거죠? 』

마리아 가르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리아 가르시아의 표정은 반대로 굳어졌다.

『 그건 제가 허락할 수 없어요. 억지로 전쟁을 일으켜 반대파를 죽이려고 들면 두 공작을 포함한 중립 귀족들도 더 이상 제게 충성하지 않을 거예요. 』

왕실파.

반대파.

중립파.

이렇게 크게 세 덩어리로 귀족들이 나뉘어 있는데 그중 중립파가 문제였다.

양쪽 다 발을 한 가닥 걸치고 있는 이들.

이들이 다른 쪽으로 돌아서 버리면 그때는 가르시아 제국이 절반으로 갈라져 버릴 것이다.

특히 중립 쪽에 서 있는 두 공작들.

무력과 마법을 대표하는 수장들이 마리아 가르시아에게서 등을 돌리면 그때는 정말 골치 아파진다.

혹여 반대파가 완전히 반역이라도 일으키면 또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반대파를 대놓고 죽여 버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마리아 가르시아도 이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면서도 반대파들을 완전히 숙청하진 못했었다.

이번에 귀족들을 장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손을 쓰진 못하니까.

귀족들이 나서서 공을 세우되 알아서 죽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리아 가르시아는 까마득히 모르겠지만 내게는 고대 드워프 왕이 있으니까.

“전쟁을 귀족들하고 하진 않습니다.”

『 네? 무슨 뜻이죠? 』

내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사실 몸으로 때울 녀석들은 따로 있어서요. 우리가 이 전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이해가 전혀 안 돼요.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리아 가르시아를 보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감각을 쫙 퍼트려서 멀리 보냈는데 주변에 잡히는 것은 밖을 지키는 경비병 정도.

딱히 누군가 엿듣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정도면 말해 줘도 되겠지.

다른 사람은 모두 모르더라도 마리아 가르시아는 알고 있어야 일의 진행이 편해진다.

“그게 사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마리아 가르시아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건 넋을 잃은 표정인데?

얼마 뒤 마리아 가르시아가 정신을 차리고는 내게 말했다.

『 제가 제대로 들은 것 맞죠? 』

“네, 정확하게 들으셨습니다.”

『 하아, 세상에. 』

놀라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딱히 반대하는 그런 얼굴은 절대 아니었다.

『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

거기다 내 생각 이상으로 적응이 빨랐다.

그 반응에 듣고 있던 재중이 형도 웃어 보였고.

<불멸> 우리 황제께서 화끈하신데?

만약 반대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주저함이 단 1도 없는.

그 모습에 충분히 만족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경계 밖으로 나가는 귀족들의 명단이 필요합니다.”

『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

“그리고 엉덩이 무거운 귀족들 좀 내보내 주시죠. 아직도 간만 본다고 버티고 있던데.”

『 안 그래도 다들 출진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가 들어왔어요. 드워프 왕국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에요. 』

“흐음, 그런가요.”

이득이 있어야 움직인다 이건가.

생각 이상으로 알고리즘이 잘 짜여 있단 말이야.

덕분에 이쪽도 진행에 문제가 없어졌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억지로 귀족들을 끌어내려고 했다가는 분명 나중에라도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런 종류의 의혹이라면 아예 만들지 않는 편이 좋았다.

일단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별도의 전력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드워프와 귀족들간의 전쟁이 되어야 한다.

지금 황실의 힘이 끼어들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지지.

오히려 끼어들지 않는 편이 더 나아.

겉으로 보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 갑자기 아스티아가 마리아 가르시아를 보면서 감탄을 했다.

“여자가 당대 황제라…….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구나.”

그러고 보니 전에 아스티아가 제국에 볼일이 있다고 했었던가?

잠시 스쳐 가듯 이야기했었는데 잊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볼일이지?

그런 아스티아를 보는 마리아 가르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도 황제인 자신의 앞에서 막 하대를 하자 적응이 안 된 모습이었다.

『 주호 공작과 같이 왔기에 지켜만 봤는데 예를 지켜라. 난 가르시아 제국의 황제다. 』

“흐응? 싫은데?”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한숨을 쉬었다.

예를 지킬 만한 존재는 아니니까.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마리아 가르시아를 말렸다.

“이쪽은 그냥 두셔도 됩니다. 일단은 인간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움찔했다.

『 인간이 아니라면? 』

“아스티아, 정체를 밝혀도 됩니까?”

“응, 상관없어. 어차피 쟤도 알아야지.”

휴, 다른 귀족이 없길 천만다행이군.

아니라면 지금쯤 황제 앞에서 예의를 지키니 어쩌니 하면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쓸려나가는 것은 당연히 귀족들이겠지만.

으음, 생각해 보니 이쪽도 나름 괜찮은 방법 아니었나?

<주호> 그냥 싹 몰아놓고 아스티아한테 죽었으면 일이 편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불멸> 크큭, 그것도 괜찮네.

하긴 그래도 그렇게 되면 귀족 몇 죽는 것으로는 끝나진 않을 테니.

아마 제국이 통째로 날아갈지도.

“일단 이쪽은 용마족이라고 합니다.”

용마족이라는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용마족! 』

역시 황제라서 아는 건가?

“잘 아나요?”

『 용마족이니까요. 그들 중 강한 존재는 마족 중에서도 최상위에요. 』

설마 그 정도였나?

애초에 마족이라고 본 녀석들이 몇 없어서 감을 못 잡았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결계는……. 』

그러고 보니 하르 결계가 있었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는 아무 영향을 안 받아.”

평범한 하르 결계는 소용이 없다는 말이네.

이건 기억해 두어야겠다.

다른 마족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 용마족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

“헤에, 역시 잘 알고 있네?”

『 왕족들은 따로 교육을 받습니다. 』

“그럼 혹시 마지막으로 탐식을 가졌던 용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어?”

그러자 마리아 가르시아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 탐식……. 』

“이 녀석 전에 녀석. 너희 왕국의 용사 말이야.”

응?

나 이전에 탐식을 가진 용사가 가르시아의 용사였어?

이제껏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어서 전혀 몰랐었다.

마리아 가르시아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 그건 말씀드릴 수가……. 』

그 모습을 본 아스티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리고 갑자기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지면서 강한 압력이 생겨났다.

거기다 무언가의 힘 때문인지 제국성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분노인가?

아니, 뭔가 조금 슬픈 그럼 느낌?

“쳇, 그 바보 녀석. 역시 인간들한테 배신당했었나?”

『 그건! 』

“됐고, 이따위 왕국 당장에라도 없애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서 아스티아가 나를 바라봤다.

“지금 이 나라를 없애 버리면 이 녀석이 싫어할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제국성을 울리던 강렬한 기운을 아스티아가 다시 거둬들이자 몸을 내리누르던 압박감이 곧 사라졌다.

이건 참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잘못했으면 진짜 제국이 날아갈 뻔했어.

“넘어가 주셔서 고마워요.”

“흥. 됐어.”

뭔가 사정이 있는 건 같은데.

아무래도 이건 듣고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전대 탐식의 일인데 내가 모르고 넘어가기에는 찝찝하지.

마리아 가르시아를 바라보면서 바로 물었다.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 아! 그게……. 』

마리아 가르시아가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못 하자 결국 아스티아가 말을 꺼냈다.

“이 녀석들. 용사를 팔아먹었어.”

“네?”

그리고 그 말에는 우리 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리아 가르시아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고.

“전대 용사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으니까.”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죠? 성마 전쟁 때는 강하면 더 좋은 것 아니었나요?”

그때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말을 했다.

“너무 강하니까 문제인 거야.”

“무슨?”

너무 강한 게 문제라고?

“아마도 용사들 덕에 그 성마 전쟁을 이기고 있었을걸? 내 말이 맞나요? 아스티아?”

“응, 정확해.”

그리고 둘의 대화를 듣자마자 한 가지 사실이 바로 떠올랐다.

“설마, 일부러?”

내 추측에 아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지로 내보냈다고 했잖아. 아무 지원 없이.”

“하…….”

전에 한 번 아스티아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용사들을 사지로 내보냈다고.

인간들끼리 서로 싸웠다는 말도 했었고.

재중이 형이 이번엔 마리아 가르시아를 보면서 말했다.

“너무 강한 용사들이 감당이 안 됐을 겁니다. 왕족들의 입장에서. 맞나요?”

『 네…….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

“그리고 마족하고 손도 좀 잡은 것 같고. 용사를 없애기 위해.”

재중이 형의 이어진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의 표정이 확 죽어 버렸다.

『 ……다 아시네요. 』

마리아 가르시아의 대답에 다들 침묵에 빠져들었다.

용사를 잡기 위해 정말 마족들까지 끌어들인 건가?

전사 형이 어이가 없는지 말했다.

“하,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잖아? 자기들을 지켜준 용사를 그렇게 버렸다고?”

이쁜소녀도 마찬가지.

“심하다…….”

그때 챠밍이 뭔가 알겠다는 눈빛으로 아스티아에게 물었다.

챠밍이 직접적으로 아스티아에게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혹시, 전대 탐식의 주인. 그 용사가 당신에게 중요한 존재였나요?”

그 말에 아스티아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바보 같은 놈 하나가 있었을 뿐이야.”

확실하네.

둘이 알던 사이였어.

어떻게 용사와 용마족이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거의 십중팔구는 제국이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주호> 제가 제국 멸망을 한 번 막은 기분이 드네요.

<불멸> 아아, 나도 그 생각했다. 너 없었으면 아스티아가 여길 날려 버렸을 거야.

생각해 보면 내가 없다는 가정하에 마리아 가르시아도 황제가 아니었을 거고.

그럼 누가 황제였지?

2황자?

5황자?

아니다.

그 전에 황제가 한 명 더 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황제를 하고 있을.

<주호> 설마, 원안이 가짜 황제와 아스티아가 붙는 시나리오였을까요?

<불멸> 그럴지도 모르겠네.

메인 시나리오를 내가 다 깨 먹는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러니 준비해 놓은 시나리오가 다 날아가지.

뭐 어쨌든 지금 이 상황은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가르시아 제국은 멀쩡하게 남아 있으니.

그리고 마리아 가르시아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그런데 아스티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한눈에 딱 봐도 마리아 가르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전대 용사를 배신한 왕가의 황제라…….

그리고 그 용사와 어떤 관계가 있던 용마족.

시간대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둘이 사이가 좋을 수가 없지.

마리아 가르시아를 차갑게 바라보던 아스티아가 선포하듯 한마디를 했다.

“너도 그 왕가의 핏줄이니까, 또 때가 되면 용사를 배신할 수도 있어.”

그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 전, 절대로 주호 공작을 배신하지 않아요! 』

“그걸 어떻게 믿지? 당시 왕족들도 너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배신을 했어.”

아스티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뭔가를 결심한 듯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게 후다닥 달려 내려왔다.

어?

갑자기 뭘 하는 거지?

그렇게 달려와 내 한쪽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꽉 쥐고는 더없이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 전 이분을 사모하고 있어요! 』

어?!

지금 뭐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