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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14화 (604/1,404)

#614화 악당 용사? (1)

생각해 보니 진짜 용사는 아닌가?

아스티아나 고대 드워프 왕이 자꾸 용사의 씨앗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용사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뭐 어때.

정 머쓱하면 용사 후보쯤으로 해두면 되지 않을까.

그것도 용사가 해야 하는 행동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아마 평범한 용사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드워프 왕이 죽어서 잔해만 남은 자국 위로 검고 붉은 기운들이 휘몰아치면서 잔해들을 하나의 형상으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한 고대 드워프 왕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만들어졌다고 해야겠지.

아스티아의 원천마력을 기반으로 마족의 뼈대를 얻은 고대 드워프 왕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젊어졌나?

드워프들은 나이를 당체 종잡을 수 없었지만, 주름이 가득했던 모습에서 지금은 한창 젊을 때의 그런 탄력 있는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아예 최적의 신체로 변한 건가?

저게 차라리 나을 수도.

원천마력을 훔쳐서 모습을 빌리는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고대 드워프 왕도 마찬가지.

한때 개구리로 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지렁이와 용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자신의 팔을 들어 변한 모습을 만족스럽게 살펴보던 고대 드워프 왕이 곧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내며 주변을 압도해 갔다.

『 크허엉! 날 깨운 것이 누구냐? 』

상급 드워프 특유의 하울링.

마치 대전사 칼룬이 외치던 것처럼 지하 공간을 울리자 잠시 귀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온전히 마족이 된 모습이군.

전과 다른 점이 또 있다면 검붉게 변한 눈빛.

마족 특유의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안광을 흘렸다.

그런데 그 순간.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고대 드워프 왕 뒤에서 나타난 아스티아가 가냘픈 팔을 확 휘둘러 고대 드워프 왕의 뒤통수를 때렸다.

콰아앙!

아주 약하게 때린 것 같았는데 들려오는 파공음은 상상 이상.

또 그만큼이나 강렬한 충격파가 일면서 고대 드워프 왕의 고개가 확 돌아가더니 육중한 몸뚱이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대 드워프 왕의 신형이 날아가더니 지하 벽에 처박혀 들어가면서 엄청난 지진을 일으켰다.

쿠우웅!!

『 쿠엑! 』

지하 벽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고대 드워프 왕이 깔려 개구리 멱따는 소리가 잔해 속에서 애처롭게 들려왔다.

등장할 때만 해도 더없이 강력한 마족의 모습이었는데 아스티아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GM 훈이 말한 것이 사실이었네.

마족으로 변해 봐야 상대도 안 될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딱 한 방.

그 한 방에 마족으로 변한 고대 드워프 왕이 회복불가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내뱉은 아스티아의 한마디.

“아, 시끄러. 확 죽여 버릴까 보다.”

끙.

죽이면 안 되는데.

아무튼 지금 한 방으로 확실히 이해했다.

고대 드워프 왕은 아스티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 크윽! 감히 내……! 』

잔해더미를 겨우 치우고 힘겹게 일어나면서 고대 드워프 왕이 뭐라 말하려는 그 순간.

고대 드워프 왕의 몸이 뭔가에 들리듯 붕 떠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아스티아에게 날아갔다.

그런데 모습이 굉장히 이상했다.

마치 두 발을 질질 끈 상태로 바닥을 쓸고 가는, 딱 그런 모습.

저건…….

끌려가는 것 같은데?

마치 자석이 철을 잡아당기듯.

앞으로 내민 아스티아의 손아귀에 고대 드워프 왕의 목이 착 가서 달라붙었다.

스킬인가?

아님 특유의 능력?

저런 식으로 다른 개체를 끌어당길 수 있다니.

예전의 가짜 황제가 주변을 짓누르던 능력과는 또 다른 능력이었다.

『 커컥! 』

“감히 뭐?”

『 어떻게 이런! 암흑혈을 그만큼이나 흡수했는데……. 』

고대 드워프 왕의 그 말에 아스티아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흡수한 힘이 다 네 것 같아?”

원래 가지고 있던 힘과 흡수했지만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힘.

그 격차는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확연한 차이가 났다.

아니,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아스티아가 훨씬 세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격차가 크네.

자기 체구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아스티아의 손아귀에 목이 잡혀서 바둥거리는 민망한 상황에 고대 드워프 왕이 잔뜩 화를 냈다.

『 당장 풀지 못해?! 』

“헤에, 분위기 파악 못 하네.”

그러더니 눈앞에서 아스티아와 고대 드워프 왕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보고 있다가 깜짝 놀란 이쁜소녀가 외쳤다.

“사라졌어요!”

그때 나와 재중이 형의 고개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정확하게는 높은 천장을 향해.

“위.”

“위다.”

그러자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아스티아와 고대 드워프 왕의 신형이 나타나더니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콰아앙!

이번에 나타난 장소는 원래 있던 바로 그 자리.

수직 하강하는 힘을 그대로 실어 고대 드워프 왕을 내리찍은 아스티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롭게 서 있었지만, 고대 드워프 왕은 강력한 폭발과 함께 대자로 퍼져 쓰러져 버렸다.

정말 게임이 안 되는군.

전투력에서 압도적인 것도 있지만 극한의 스피드를 쓰는 아스티아와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드워프 간의 상성에서 아스티아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파워 역시 아스티아가 높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머리가 좀 식혀졌으려나?”

고대 드워프 왕을 바닥에 깔아뭉개 놓은 뒤 내려다보면서 미소 짓는 아스티아를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재중이 형은 이 상황이 재밌게 보이는 듯 웃음을 보였다.

“말을 안 들으면 일단 패고 본다는 건가?”

“으음, 확실히 그렇네요.”

제일 처음에 봤을 때도 말보다 손이 앞서는 걸 보면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해.

그때도 다짜고짜 공격부터 했으니.

그리고 몇 번 얻어터지고 나서야 고대 드워프 왕도 상황 파악이 되는지 무거운 몸을 바닥에서 겨우 추스르고는 물어왔다.

『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겁니까?! 』

이전의 패기 넘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공손한 모습.

압도적인 강함에 패기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몸소 느낀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스티아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너 내 원천 마력 훔쳐가려고 장난질 치지 않았어?”

『 그건, 이미 지나간……. 』

“어쭈?”

다시 한 번 아스티아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고대 드워프 왕이 몸 전체를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학습된 아픔인가?

같은 마족을 저리 쥐어 팰 수 있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 흠흠, 드워프들의 염원을 풀려면 어쩔 수 없는……. 』

“잘못했다는 소리는 안 하네. 좀 더 맞을까?”

『 제 나이도 있는데 좀 봐주심은……. 』

그러면서 옆에 있는 우리를 흘깃 쳐다봤다.

당연히 아스티아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였고.

“봉인된 시간을 합치면 내가 좀 더 산 거 같기도 해?”

『 허허……. 』

나이도 안 통하자 고대 드워프 왕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더니 결국 손을 들어 버렸다.

『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아직 못다 한 드워프 족의 염원과 꿈이……. 』

“됐고.”

말이 길어지기 전에 아스티아가 바로 손을 저어 고대 드워프 왕의 말을 막아 버렸다.

“누가 죽인데?”

『 네? 그럼? 』

“괘씸해서 네 용혈과 암흑혈도 싹 뺏어 버리고 싶지만. 아직은 쓸데가 있어.”

그 말에는 우리도 화들짝 놀랐다.

설마 고대 드워프 왕의 용혈과 암흑혈을 흡수할 수도 있는 건가?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의 표정도 좀 심각해졌다.

지금도 저렇게 강한데 다른 힘을 더 흡수할 수 있다면…….

쓸데가 있다는 아스티아의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다시 고민에 빠졌다.

무슨 소린가 싶겠지.

솔직히 말하면 구상을 한 나도 어이없을 정도니 고대 드워프 왕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는 이미 넘어섰다.

그렇기에 아스티아도 한 팔 거들어 주는 거고.

“네 원천마력 누가 준 것 같아?”

『 흠, 설마. 』

고대 드워프 왕이 바로 아스티아를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제야 자기를 부활시킨 사람이 눈에 들어오나?

『 왜 저를 부활시켜 주신……. 』

이건 다른 마족이 고대 드워프 왕을 부활시키기 전에 우리가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라면 운영자가 준비한 어떤 마족이 나타나 부활시키겠지만.

그 사이를 잘 파고들었다.

“네 원천마력 언제든지 거둬 갈 수 있다는 걸 알지?”

아스티아의 그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우리가 노린 것 중 하나.

원형이 되는 아스티아가 이 사실 하나만으로 고대 드워프 왕에게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사실상 말 안 들으면 소멸시켜 버린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고. 안 잡아먹어.”

『 흠흠, 그럼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

“내가 놀이를 좀 하려고 하는데. 네가 좀 몸으로 때워야겠어.”

『 네? 』

“너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바로 제국 인간들을 죽이는 일이거든.”

그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결과물만 보면 거의 동일 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가르시아 제국에 원한이 많다며? 넌 그걸 풀어. 난 딱히 방해할 생각이 없거든.”

『 정말이십니까? 』

“응, 대신 파티 장소는 내가 만들 거야.”

이 말에는 좀 주저하는 것 같았지만 고대 드워프 왕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드워프 족의 염원을 풀 수만 있다면. 』

딜 성사인가?

같은 행동.

다른 목적.

둘의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자 기묘한 그림이 완성되어 갔다.

좋아.

아스티아가 정말 제대로 해 주었다.

솔직히 고대 드워프 왕이 거절하면 어쩌나 좀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걸 힘으로 눌러 버려 이야기가 너무 쉽게 되었고.

완전히 딜을 성사시킨 다음에 아스티아가 총총거리면서 내게 뛰어왔다.

“나 잘했어?”

응?

방금 이건 뭐지?

“아, 최곱니다. 원하는 것 이상이에요.”

“좋아. 좋아. 그럼, 이제 뭘 할 생각이야?”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너무 걱정했나.

어쩌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를지도.

“그럼, 다녀올 곳이 있어요.”

이 거대한 무대를 완성시켜 줄 또 하나의 퍼즐.

반대쪽의 퍼즐을 맞춰 줘야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올 것이다.

* * * * *

그렇게 오랜만에 찾은 가르시아 제국의 중앙성.

왕실 비공정이 있기에 먼 거리를 단체로 이동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정말 왕실 비공정을 얻어 두길 잘했어.

그런데 가르시아 제국성을 보는 아스티아의 표정을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헤에, 왜 이렇게 초라해?”

“초라해요?”

“응, 예전에 그런 화려함이 없는걸.”

아마 이전 시대의 제국을 떠올리는 거려나.

“제가 여기 한 번 박살 냈거든요.”

“헤에? 그래?”

“다시 만들어서 좀 부실하긴 해요.”

사소한 감상은 거기서 끝.

딱히 더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우리 팀과 아스티아와 함께 제국성에 들어서자 앞에서부터 경비병이 경계를 올렸다.

『 주호 공작님! 어서 오십시오! 』

역시 작위빨.

지나가는 모든 NPC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공작이긴 하네?”

“하하…….”

그렇게 쭉 제국성을 가로질러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알현을 신청하자 곧 받아들여져 얼마 뒤 공원에 나가 있는 마리아 가르시아를 만날 수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 어머, 저한테는 안 그러셔도 된답니다. 』

그리고 내게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옆에 있는 아스티나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오늘 좀 다들 반응이 이상한데.

처음 봐서 그런가?

아스티아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고.

용마족이 딱히 황제에게 예를 취할 필요는 없으니까.

솔직히 인사를 받아 내려다가 제국성이 날아가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어서 대충 둘러댔는데 다행히 마리아 가르시아는 그대로 넘어가 주었다.

우호도가 이래서 좋네.

그리고 공원의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경계 너머로 나가는 귀족들 리스트.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 그건 왜 필요하죠? 』

“제가 전쟁을 좀 일으킬 생각이거든요.”

죽이긴 죽인다.

다만 좀 골라 죽일 뿐이지.

그 와중에 유저들도 좀 죽어주면 고맙고.

양쪽의 패를 모두 쥐고 전쟁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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