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화 용마족의 가호 (3)
만에 하나의 확률.
고대 드워프 왕에게 밀려서 레릭 왕국을 뺏겼을 경우.
이때는 레릭 왕국에서 나오는 이득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한 채로 날려 먹게 된다.
아무리 레릭 왕국을 공짜로 얻었다지만 그냥 날려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고대 드워프 왕이 아스티아보다는 약하다고 하지만 엄연히 마족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지킬 확률보다 못 지킬 확률이 더 높아.
드워프들이 제대로 싸워줄지도 의문에다가 고대 드워프 왕을 상대하려면 대전사 칼룬 이상이 아니면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만한 NPC들을 쓰려면 들어가는 자금 역시 상상을 초월할지도.
곧장 레릭 왕국의 내정 시스템으로 들어가 NPC에 관련된 시스템을 확인했다.
《 고급 NPC들의 고용은 카르바할이 담당합니다. 》
《 카르바할과의 우호도에 따라 고용할 수 있는 NPC들이 달라집니다. 》
역시.
고급 NPC로 분류되어 있는 NPC들은 빨간 물음표로 막혀 있었고 이건 카르바할에게서 따로 고용이 가능했다.
곧장 드워프 왕인 카르바할에게 물었다.
“혹시 대전사 칼룬 수준의 드워프를 쓰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죠?”
그러자 카르바할이 답변을 해 주었다.
『 칼룬 수준의 대전사들의 고용 금액은 ……이네. 』
옆에서 듣고 있던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가 그 금액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미쳤…….”
“배보다 배꼽이 크잖아?”
그동안 공짜로 가져다 쓰던 대전사 칼룬이 이렇게 비쌀 줄은…….
밖에 나가서 어지간한 스포츠카 한 대 끌고 다니는 금액과 맞먹었다.
그것도 장기 고용도 아닌 단기 고용으로.
『 주호 공작, 자네라면 특별히 싸게 해 주겠네. 우리의 동맹 아니던가. 놀고 있는 애들 좀 가져다 쓰게나. 』
《 카르바할과의 우호도, 레릭 왕국과의 동맹으로 고급 NPC 고용 금액에서 20%가 줄어듭니다. 》
아, 진짜.
그래도 비싸다고.
요즘 아무리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건 화련 정도가 아니면 고려할 금액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라면 생각이라도 해 보겠지만.
레릭 왕국의 NPC들과 함께 막는 플랜 A 바로 삭제.
그다음으로 생각한 플랜 B.
혹시나 해서 아스티아에게 물어봤다.
“혹시 고대 드워프 왕이 부활하면 막아 주실 건가요?”
이건 확인이 필요해.
아스티아의 행동 여하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완전히 달라진다.
만약 아스티아가 고대 드워프 왕이 부활하자마자 눌러 버린다면 굳이 레릭 왕국을 팔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문제가 좀 많이 생기겠지.
내 질문에 아스티아가 별 이상한 말을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스티아는 고대 드워프 왕이 무슨 짓을 하든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막지 못하도록 뭔가의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고.
그것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아스티아는 고대 드워프 왕을 막지 않을 것이다.
“혹시 제가 죽을 위기면요?”
“흐음?”
아스티아가 이 말에는 약간 고민이 되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너만 살려 줄게.”
“저만요?”
“응, 쓸데없는 데 힘쓰기 싫어.”
“하하…….”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그리고 얼마나 고대 드워프 왕을 아래로 보는지 잘 확인할 수 있었다.
나 하나는 마음대로 빼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일단 죽지는 않겠는데?
그렇게 아스티아의 대답을 듣자마자 앞으로의 일이 결정되어 버렸다.
“레릭 왕국 팔죠.”
마족인 된 고대 드워프 왕이 부활하면 바로 레릭 왕국부터 되찾으려고 할 텐데 굳이 힘들게 투닥거릴 필요가 있나.
아니, 지키려고 싸우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좋은 길을 두고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지.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자?”
“네, 지킬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 레릭 왕국을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레릭 왕국의 소유권을.
그리고 그 폭탄은 누군가에게 넘겨주면 되고.
“크큭, 그래 그럼 한번 제대로 땡겨 보자고.”
* * * * *
《 레릭 왕국 운영권 경매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소수로 진행된 예전의 경매와 달리 이번엔 아예 대놓고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솔직히 우리에게 연락이 온 유저들로만 경매를 해도 괜찮겠지만.
“이왕 뽑아먹을 것 확실하게 뽑아먹자.”
라는 전사 형의 조언에 따라.
이 경매는 전 서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게시판과 미디어, 공략 사이트 등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 세상에, 진짜 레릭 왕국을 팔아?
- 어우야, 통도 크네.
- 역시 주호 클라스. 차원이 다르구만.
- 엄청 비쌀 듯.
- 저거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함?
- 어지간한 유저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 ㄴㄴ. 아님. 지금 연합들 몇 개 합쳐서 돈 모은다고 함.
- 연합들끼리 합친다고?
- 일단 돈으로 먹기만 하면 장땡이잖아. 돈 많은 애들끼리 뭉치는 거지.
- 그렇게 사면 손해 아님?
- 에이, 이 사람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레릭 왕국에 뭐가 있냐?
- 뭐가 있긴. 드워프밖에 더 있냐.
- 아놔, 머리 나쁘네. 지하 무덤 던전 있잖아.
- 오우, 설마?
- 그래, 거기 통째로 먹는다고.
- 미친, 그게 가능해?
- 아니면 저렇게 사람들 몰리지도 않지. 게시판 밑에 봐라. 방패전사가 친절히 설명도 해놨음.
《 레릭 왕국 소유권 가지면 지하 무덤도 덤으로 딸려옵니다. 드워프 NPC들 운영 가능. 이번 기회에 나만의 던전을 가져 보세요. 》
- 진짜 미쳤다.
- 정말 가능?
- 이건 안 먹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냐?
- 돈만 있으면 무조건이지.
- 그래, 돈만 있으면. 그래서 지금 이 난리잖아. 댓글 수 봐라. 수만 개가 넘었음.
- 와, 진짜 안에서 나오는 암흑혈만 독점해도 어디냐.
- 본전 뽑아먹고도 남는 장사임.
- 그런데 주호는 왜 파는 거지? 자기들끼리 독점해도 되지 않음?
- 에이, 신화 길드가 사냥터 통제하는 거 본 적 있음?
- 아, 그러네. 걔들 통제 안 하기로 유명하지.
- ㅇㅇ, 그냥 던전 오픈해서 우르르 사냥하는 것보다는 팔아먹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놓는 거 아닐까?
- 좀 그렇긴 한데……. 돈이 한두 푼도 아니고.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
- 아마 나도 팔았을 듯.
- 어떻게 한번 해봐?
게시판을 닫으면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예상 이상으로 뜨겁네요.”
“전사가 불을 질러 놨으니까.”
확실히 그냥 아는 사람들 위주로 경매를 했으면 이 정도까지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워낙 많은 유저들이 연락이 와서 현재 귓속말은 완전히 꺼둔 상태.
그때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더니 내게 바깥을 보라는 표시를 했다.
“와, 사람들 엄청 많아요.”
“응?”
이쁜소녀를 따라 3층 집무실에서 바깥을 내려다봤는데 정말 길드 건물을 쭉 둘러싸고 유저들이 개떼처럼 몰려 있었다.
뭐지, 이 인파는.
아직 경매를 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정말 길드 주변 건물이 유저들로 빡빡하게 차서 발 디딜 곳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 유저들이 몰린 적이 또 언제였더라.
아마 예전에 네임드 무기를 경매할 때 이런 식으로 모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많은 유저가 모였다.
다들 구경하려고 들어온 건지.
정말 그만큼 돈을 준비해 온 건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하늘에 방송을 하는 유저들도 상당수 날아다녔다.
자세히 보니 방송용 탈 것이었고.
미디어에서도 다 온 건가.
그만큼 전 서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소리.
거기다 경매 시간에 맞춰 접속하려고 다들 접속을 끊었다가 이제 들어오려는 바람에 현재 서버에 대기열이 생겼다고 한다.
이 상황을 본 재중이 형이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웃었다.
“자자, 슬슬 준비해 보자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잖아.”
그때 화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련> 에이씨, 처음부터 그냥 나한테 말했으면 됐잖아. 왜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 돈이 부족해?
<주호> 경매에 참가하시려고요?
<화련> 당연하지. 언니한테 질 순 없잖아. 안 그래도 노리고 있던데.
<주호> 흐음. 역시 그런가요.
대체 저 집안이 뭐 하는 집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려고 하면 살 수도 있을 터.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화련한테 뽑아 먹기는 좀 그렇긴 하네.
어느 정도 대가를 주고받는 경매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그야말로 늪이다.
빠지면 죽는.
건져내 주기도 어렵다.
정보를 주는 건 좀 그렇지만…….
이번에 화련은 빼주기로 할까?
확실한 대가만 쥐어준다면 화련만 한 고객이 또 없으니까.
돈으로 묶인 의리(?)도 있었고.
그렇다고 대놓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음, 어떻게 한다?
화련을 빠지게는 하는데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이야기가…….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주호> 나중에 더 좋은 물건이 나갈 건데 여기서는 너무 힘 빼지 마시죠?
<화련> 뭐? 더 좋은 게 있어?
<주호> 일단 그렇다고 해 두죠.
<화련> 확실해?
<주호> 아마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화련> 이씨,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급하게 자금 끌어모은다고 고생했단 말이야. 언니 이기려고 잔뜩 모아 놨는데.
<주호> 서로 사이가 꽤 안 좋아 보입니다?
<화련> 됐고. 그런 거면 이번은 빠질게. 대신 다음에 확실히 나한테 넘겨주는 거다?
<주호> 장담은 못 하지만 최대한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뭐, 물건이야 나중에 만들어 내면 되는 거고.
아니라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냥 못 구했다고 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라.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화련은 빼 주려고?”
“그동안 받아먹은 것도 있으니까요.”
“하긴.”
재중이 형도 딱히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생각해 냈는지 말을 이었다.
“화련한테 바람잡이 좀 해달라고 해.”
“네?”
“어차피 과열돼서 올라가겠지만 화련이 빠지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으음, 그런가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해 줄까요?”
“해 줄걸?
뭐지?
재중이 형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궁금해하던 나에게 형이 한 가지를 알려 주자, 나도 바로 납득을 했다.
이건 충분히 가능할지도.
<주호> 혹시 참가하는 척만 해 줄 수 있어요?
<화련> 귀찮게 그걸 왜?
<주호> 언니라는 분. 돈 많으시죠?
그 말을 듣자마자 화련이 바로 이해를 한 듯 크게 웃었다.
화련도 머리가 좋단 말이야.
<화련> 너, 진짜 똑똑하잖아?
<주호> 그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사례는 부족하지 않게 해드리죠.
<화련> 나쁘지 않네. 마음에 들었어.
화련이 굉장히 흡족해하면서 연락을 끊었다.
“거 봐, 좋아하잖아.”
“이게 정말 될 줄은 몰랐네요.”
이 형, 사람 마음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정말 예술이네.
그렇게 경매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서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
“누구 올 사람 있었어요?”
아니, 그보다는 길드 건물에 아무나 못 들어오게 만들어 두었는데?
현재 경매 때문에 길드 건물 주변으로 유저들이 많아 아예 출입을 금지시켜 놓았다.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사장님밖에 없는데, 사장님은 노크를 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아스티아는 절대 노크를 하지 않는다.
그냥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들어오지.
재중이 형도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문을 노려보았다.
혹시 모를 위험에 전사 형이 앞장서 문 쪽으로 우릴 막고 섰다.
그런데 정말 의외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저 운영자인데 잠시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