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용마족의 가호 (4)
운영자?
예상치 못한 운영자의 등장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릭 왕국 때문에 그럴까요?”
“흐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지만 재중이 형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뭔가가 예상되는지 바로 말을 꺼냈다.
“운영자라면 대놓고 방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겐 하지 않는다라……. 뭔가 원하는 게 있으려나?”
“그래요?”
“원래 쫄리는 쪽이 밑지고 들어가는 거라.”
아니나 다를까.
운영자가 다시 말을 물어왔다.
“불편하지 않다면 이야기 드릴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놀라서 잘 몰랐는데 이번에도 역시 꽤 공손한 느낌이었다.
재중이 형 말이 맞네.
요즘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더니 너무 걸리는 것이 많아 운영자가 좀 껄끄러웠는데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말했다.
“들어오시죠.”
“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운영자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흐음, 전에 그 안지운이라는 운영팀장은 아니네.
목소리가 좀 달라서 혹시나 했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안지운 총괄 운영 팀장님 아래서 일하고 있는 GM 훈이라고 합니다.”
안지운 팀장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기도 하고 약간은 활기가 있어보였다.
물론 그 찌들어 있는 야근의 흔적들은 피해 갈 수 없었지만.
“반갑다고 해야 하나요?”
“하하, 일단은 반겨 주시죠.”
넉살도 있고.
운영자의 딱딱할 것 같은 그런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화면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군요. 사실 운영자가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유저를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일단은 금지입니다.”
“네, 전에 팀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팀장님은 어쩌고?”
내 물음에 GM 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뭐지?
문제가 생긴 건가?
그리고 이어진 GM 훈의 말에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아…….”
우리의 반응을 본 GM 훈이 한숨을 쉬었다.
“덕분에 일이 좀 많으셨거든요. 이전까진 어떻게 억지로 버티셨는데…….”
예전에도 눈에 가득한 다크서클과 함께 비실비실한 느낌이 있었는데 정말 병원에 실려 갈 줄이야.
게시판에서 유저들이 농담 삼아 하던 말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아, 뭐 링거를 밥처럼 드시며 그럭저럭 잘 계십니다.”
“…….”
아무리 봐도 잘 계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우리 표정을 봤는지 GM 훈이 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잘못하면 제 후임이 올 뻔했습니다만…….”
GM 훈을 바라보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이…… 안 좋으신가요?”
“음, 오늘이 며칠째더라……. 한 3일 정도 밤새 보시면…….”
“아, 미안합니다.”
요즘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잘 없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왔다.
“아닙니다. 일이니까 해야죠. 아, 그리고 주호 님 보게 되면 안지운 팀장 님이 꼭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건 왠지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 들을 수도 없지만.
“무슨 말이죠?”
내 물음에 GM 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발 사고 좀 그만 쳐 달라고. 꼭 좀 부탁한다던데요.”
“아…… 네.”
“그리고 저도 사실 같은 마음입니다.”
끙.
GM 훈의 간절한 말투에 우리 팀 모두 좌우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마 GM 훈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저렇게 아픈 사슴 같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하겠냐만은.
“휴,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요. 우리 운영팀 쪽에서도 꼭 한마디 해 달라고 해서요.”
“하하…….”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물었다.
“설마 그 말만 전하려고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레릭 왕국의 경매 때문입니까?
사실 이게 마음에 걸렸다.
GM 훈이 찾아온 타이밍에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니까.
“아, 불멸 님이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아닙니다.”
“흐음?”
“초창기에 회사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 쪽에서는 개인의 경매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레릭 왕국의 경매에 전혀 간섭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네, 정확합니다. 원하시면 녹음하셔도 됩니다만?”
“그 정도면 확답이 되었습니다.”
정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경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 버렸다.
일체의 간섭이 없다라.
좋게 생각하면 게임 내에서 무슨 짓을 하든 운영자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게 큰 이슈가 되는 일이 될지언정.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히려 이런 이벤트는 관심도가 높아져서 좋아들 하시더군요. 우리와 달리 위쪽에서는요.”
우리와 달리라…….
서로 입장 차가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물었다.
“규모가 크니까?”
“네, 뭐 그렇습니다. 서버 내에서 자잘한 사건 수백 개 일어나 봐야 요즘은 이슈도 되지 않죠. 그저 게임 공략 사이트에서 잠시 올라왔다가 사라질 뿐. 하지만 이 건은 꽤 이야기가 다릅니다. 다른 매체에서도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라. 얼마가 나올지 다들 궁금해하더군요.”
“그 금액에 따라 다시 이슈를 몰고 올 수 있겠군요.”
“네, 가급적이면 높은 금액이 나왔으면 하는 게 솔직한 윗선의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
“네, 그렇죠. 덕분에 저희 쪽은 죽어나지만요.”
한마디로 윗선에서는 내가 사고를 크게 쳐 주었으면 한다.
반대로 자신들은 그 뒤처리를 한다고 죽어난다는 그런 말이었다.
GM 훈의 말을 들어 보니 그간 있었던 일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게임 회사에서는 날 메인 모델로 까지 써가면서 밀어주려고 하는 반면에 아래서는 어떻게든 엇나간 진행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보였던 것도.
감당이 안 되니까.
그런데 정말 왜 온 거지?
경매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올 만한 이유가 없는데?
이미 지나간 일들을 따지자고 온 거면 솔직히 다 기억도 안 난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경매가 아니면 왜 오신 거죠? 요즘엔 그다지 문제될 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요.”
내 거리낌 없는 말에 GM 훈이 갑자기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변하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저러다 정말 숨넘어가겠네.
“설마, 벌써 잊으신 겁니까.”
“흐음?”
“개구리 사건요.”
“아, 그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GM 훈에게는 큰 문제인 것 같았다.
그냥 네임드 중에 하나를 빨리 잡은 것에 불과하지 않나?
혹시 토르를 얻은 방식이 문제였나.
다시 돌려주기는 싫은데.
아니, 이 경우에는 돌려달라고 해도 줄 필요도 없었고.
“하아, 사실 고대 드워프 왕은 2개월짜리 프로젝트였습니다.”
“네?”
그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GM 훈을 바라보았다.
“개발 기간이 2개월 걸렸습니다. 마족으로 변한 드워프 종족의 제국 침공 프로젝트로요.”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유저가 합심해서 막아내는 그런 거대한 메인 퀘스트였습니다.”
“그 2개월 동안 만든 프로젝트를 제가 없애 버렸다는 뜻인가요?”
“네, 정확하십니다. 왜 안 팀장님이 드러누웠는지 알겠죠?”
2개월짜리 프로젝트를 개구리로 만들어서 날려 버렸으니 안 드러누우면 이상하지.
“아, 그거 말고도 말씀드리려고 하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를 테면 예전에 마족이 숨어 있던 가르시아 제국 황제도 그렇고. 그 전에는 암흑 지대에 혼자 들어가셔서 잡지 말아야 할 네임드를 잡으셨던 적도, 왕족들을 메테오로 다 죽이려고 하셨던 때도 있고, 또 드래곤을 제국으로…….”
“하하……. 그 정도면 됐습니다.”
괜히 말했다 본전도 못 찾겠군.
아마 밤새 말을 들어도 다 못 들어 줄지도 모른다.
사고 친 게 워낙 많아서.
그런 날 보면서 피식 웃은 재중이 형이 다시 물었다.
“혹시 고대 드워프 왕의 부활은 의도하신 겁니까?”
“아, 불멸 님은 눈치채셨군요. 운영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프로젝트를 그냥 날려 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GM 훈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날아간 프로젝트가 제법 됩니다. 안 팀장님이 오래 버티셔서 그렇지 정말…….”
“네…….”
아, 미안하게 자꾸 쳐다보냐.
나와 GM 훈의 대화가 잠시 멈추자 재중이 형이 GM 훈에게 궁금한 점을 마저 물어보았다.
“부활시킬 거라면 굳이 우리를 안 찾아와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진행할 것 아니었습니까?”
“아, 그게 원안대로였다면 아스티아가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됩니다. 드워프 왕과도 만나면 안 되고요.”
음?
이건 좀 이상한데?
고대 드워프 왕이 있던 지하 무덤은 원래 아스티아가 봉인되어 있던 봉인지 위가 아니었던가?
내가 아스티아를 처음 봤던 곳도 레릭 왕국 안이었고.
“아스티아가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러 찾아갈 수 있지 않았나요?”
“네, 좋은 지적입니다. 만약 서로 마주친다면 말이죠. 하지만 지하 봉인이 풀리고 아스티아는 레릭 왕국을 떠나는 시스템이었고, 고대 드워프 왕은 한참 뒤에야 미로를 공략한 유저에 의해 오랜 잠에서 깨어날 예정이었습니다.”
“서로 등장하는 시기가 다르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가짜로 만들어진 토르는 아스티아가 아닌 다른 마족을 매개체로 저주가 완성됐을 겁니다. 이미 아스티아가 떠나고 없었을 테니까요.”
정리하면 아스티아는 봉인이 풀려 사라지고, 고대 드워프 왕은 후에 유저들에 의해 마족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에 의해 인간과 드워프 족의 전쟁이 시작되고.
거기서 승리하게 되는 유저가 진짜 토르를 얻는 과정이 이어졌을 것이다.
“레릭 왕국도 지금 나올 왕국이 아니죠?”
“네, 앞당겨 끌어온다고 정말 잠도 못 자고 철야를 했죠.”
꼬여도 한참 꼬였었구나.
그리고 궁금한 것을 하나 더 물어보았다.
사실 이게 제일 궁금했다.
“그럼 아스티아가 지금 제 옆에 머무는 것은요?”
“솔직히 그건, 저희도 정말 예측을 못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스티아의 공격을 막아 내는 유저가 존재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사실 아스티아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 해야 정상입니다. 현재 스펙에서는.”
그러면서 GM 훈이 날 감탄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해낸 사람을 보는 딱 그런 눈빛.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혼자 힘으로 역전골을 넣어 게임을 바꿔 버린 선수를 보는 딱 그런 표정이려나.
“아스티아가 좀 빠르긴 하더라고요.”
“좀 빠른 게 아닐 겁니다. 거의 움직임이 안 보일 텐데요.”
“어쩌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하아, 그렇죠. 주호 님의 그런 능력이 아스티아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일이 너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아스티아의 공격을 막아 내는 일이 전환점이었구나.
그때부터 모든 시나리오가 어긋난 셈이었다.
GM 훈은 그 어긋난 시나리오를 바로 잡으려고 내게 방문한 것이었고.
바로 잡으려다 도저히 안 되니까 도움을 요청한 건가?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 어긋난 시나리오를 너무 잘 변경해 왔었다.
그 정도 능력이 안 될 거라고는 생각이 안 되는데.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우리가 다음 말을 기다리며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GM 훈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을 꺼냈다.
“주호 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
GM이 내게 부탁을 할 만한 일이 있나?
사고를 더 치지 말라는 거면 솔직히 장담을 못 하겠는데.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봤더니 재중이 형은 그저 웃음만 보였다.
그냥 들어 보라는 거군.
“일단 뭐 들어나 보죠.”
“감사합니다. 그럼 아스티아와 고대 드워프 왕이 서로 만나지 않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정확하게는 이 시나리오가 끝나는 시점까지입니다.”
“왜 만나면 안 되나요?”
“그건…… 아스티아가 마족이 된 고대 드워프 왕을 그냥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