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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10화 (600/1,404)

#610화 용마족의 가호 (2)

레릭 왕국을 사고 싶다고?

초월 길드의 전신에게 연락이 온 것도 의외였는데 지금 이 말은 더욱 혼란을 주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와 치고받던 전신에게서 이런 제안을 들을 줄이야.

그것도 해원과 손을 잡아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얼마 전까지 우리의 적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형, 어떻게 하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냥 확 팔아 버릴까?”

“농담은 자제요.”

“알아, 알아. 잠시 내게 연결해 봐.”

“바로 화상으로 넘길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귓속말을 화상으로 바꾸자 전신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였다.

그런 전신을 본 재중이 형이 미소를 보이면서 말을 꺼냈다.

“여, 우리 얼마 전까지 치고받은 사이잖아. 너무 쉽게 연락하는 것 아냐?”

재중이 형의 농담이 섞인 나무라는 말에 전신 역시 똑같이 미소 지었다.

약간은 메마른 듯한 미소.

적대적인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묘한 미소에 눈이 갔다.

얼핏 보이는 것은 즐거움?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건가?

“웃으면서 사이좋게 싸울 순 없지 않습니까.”

“크큭, 그렇지. 하하호호 하면서 싸우긴 힘들지.”

저 전신의 말은 싸울 때는 싸우되 필요하면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건가.

대놓고 적대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무서울지도.

“전에는 한 방 먹었어. 꽤 준비를 많이 했던데?”

“오히려 물먹은 것은 이쪽이죠. 저 소년, 생각 이상이더군요.”

갑자기 전신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이 날 스쳐 지나갔다.

“아아, 이쪽은 살아있는 괴물이라서. 나도 상대하기 힘들어, 요즘은.”

“확실히.”

“그런데 영상 돌려 보니까 아예 상대도 안 해 주더만?”

“지금은 상대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긴, 지금은 좀 그런가?”

“개인 능력도 능력이지만 장비 차이가 생각 이상으로 심하더군요. 특히 그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 이쪽은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른 아이템들은 어떻게든 격차를 좁힐 수는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입고 있는 드래곤 갑옷이나 악세서리 같은 경우는 노력 여하에 따라 거의 다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물론 가르시아 제국 공작의 증표 같은 악세서리를 제외하고.

일단 자금이 받쳐 주고 마음만 먹으면 방어구 쪽으로는 내게 필적하는 수준으로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똑같이 맞출 수 없는 물품들이 존재했다.

바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 같은 유일 아이템.

이쪽은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쓰질 못한다.

“그래서 그렇게 해원까지 이용해 새 유일 아이템에 목을 맨 거냐?”

재중이 형의 말에 전신이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해원을 이용했다는 것은 맞는 모양.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해원이 전신을 이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해원은 전신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했었고.

그리고 확실히 토르라면.

쓰기에 따라서 내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을 터.

이미 겪어 봤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토르는 전신이 다른 일을 포기하고 매달릴 정도의 위력은 충분히 가졌다.

만약 전신이 우리 대신 고대 드워프 왕에게서 퀘스트를 받았다면?

이 경우에는 여러 가지 가정이 있어야겠지만 아마 고대 드워프 왕이 마족으로 변해서 몰살 루트로 끌고 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토르를 얻는 방법이 뭐였을까?

아마 원래대로라면 진짜 토르를 고대 드워프 왕이 가지고 있었을 테니 마족으로 변한 녀석이 쓰는 무기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역시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고 나서 얻는 방식이었을까?

그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데?

당연히 마족을 죽일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난 뒤에야 얻는 무기가 토르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나올 무기는 절대 아니라는 말이었고.

혹은 전 유저가 달려들어서 하는 레이드의 보상을 우리가 너무 쉽게 가로챈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고대 드워프 왕을 협박해서.

물론 전신은 이런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고 나면 상당히 황당해할지도?

“뭐 유일 템이야 그렇다 치고. 레릭 왕국은 갑자기 왜 사려는 거지?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라고?”

재중이 형이 미리 밑밥을 깔았다.

엄청나게 고가의 물건이라는.

우리야 개구리로 변한 고대 드워프 왕을 한 큐에 잡고 얻은 왕국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최초의 왕국 통치권이라는 무게를 잘 아는지 전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액수를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흐음? 딱히 네 성격에 돈으로 왕국을 사려 하진 않을 테고. 전에 그 화련의 언니였던가? 그 여자?”

전신은 역시 이번에도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살짝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봤지만, 그 여자 진짜 통도 크네.”

그런 재중이 형을 보면서 전신도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전신이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아마 주호 님도 그 목록에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몇 번 이야기하던데.”

끙.

아무래도 화련이 말한 것이 맞나 본데.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고.

“전 좀 빼 달라고 전해 주시면 안 됩니까?”

내 농담스런 말에 전신이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안 된다는 거군.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아직도 날 기억하다니.

피곤해지겠네.

그런 전신에게 재중이 형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쪽 집안 사람들 내력인가? 아무튼 우리가 레릭 왕국을 넘겨줄 리는 없잖아?”

“네, 사실 저도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죠.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생기거든요.”

“너도 참 고생이 많네.”

그 말에 전신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전신 입장에서는 일단 말은 해 봤으니까 됐다 정도인가?

무조건 왕국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아닌 듯 보였다.

가능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

“이런 것만 빼면 최고의 스폰서죠. 어지간해서는 간섭도 안 합니다. 결과만 가져오면요.”

“결과라……. 그게 제일 무서운 말이지.”

서로 사정을 잘 알기에 한동안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길드에서도 귓속말이 폭발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는 화련도 포함되어 있었고.

서버 내에서 돈 좀 있다 싶은 길드는 죄다 한 번씩은 연락이 들어왔다.

읽지 않고 놔둔 귓속말만 벌써 수십여 개.

왕국을 돈으로 살 만큼 재력이 있는 길드가 이 정도로 많았나?

유적지나 거점과 달리 지금은 너무 폭발적으로 문의를 해 오고 있어서 좀 어리둥절한 기분까지 들었다.

딱히 왕국을 사 봐야 남는 게 없을 텐데?

우리가 호락호락한 길드도 아니고.

왕국을 소유하고 있으면 NPC와의 관계, 정보, 보급, 사냥터와 관련된 모든 점에서 유리했다.

이걸 쉽게 내어 줄 이유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얻을 이득에 맞는 제안이 들어오면 또 모를까.

그리고 레릭 왕국을 억지로 뺏을 수도 없는 것이, 아직 방어전 같은 쟁탈전이 뜨지도 않았다.

아마 나중에는 뜰지 몰라도 아직은 아니지.

“왜 이렇게 레릭 왕국을 원하는 거죠?”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전신이 그 대답을 해 주었다.

“사냥터 때문입니다.”

“사냥터?”

“기존 다른 유적지나 거점과 달리 레릭 왕국은 내부에 던전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뭔가가 바로 떠올랐다.

분명히 레릭 왕국 안에 지하 무덤이 있었고, 이건 드워프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우리는 하지 않지만.

다른 유저들은 할 법한…….

“설마, 사냥터 통제를 하겠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지하 무덤은 암흑혈이 나오는 현재 유일한 사냥터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통제할 값어치는 차고 넘치죠.”

확실히 암흑혈이 들어간 아이템과 아닌 아이템 사이에는 꽤 큰 격차가 존재했다.

그건 가면 갈수록 암흑혈의 사용이 강제된다는 뜻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오는, 현재로선 유일한 사냥터를 쥘 수 있다는 것.

이보다 큰 메리트가 있을까.

“드워프 NPC들로 통제를 하면 유저들이 어쩔 수 없겠군요.”

“정확합니다.”

“그래도 유저들에게 욕먹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텐데요?”

통치권을 가지고 NPC들을 시켜 강제로 통제를 해 버리면 정말 유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들어가려면 NPC를 쳐야 하는데 그럴 경우 그때부터 드워프들과 척을 지게 되고, 그럼 레릭 왕국에서는 자동으로 추방당할 테니.

지금 우리에게서 레릭 왕국을 얻는다는 것은 사냥터를 통째로 독식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아마도 거대 연합 형태로 움직일 겁니다. 그러면 욕을 할지언정 일반 유저들은 건들지도 못하게 됩니다. 좀 규모가 있는 다른 연합들은 이용세를 좀 내거나 뭔가를 쥐어 주겠죠.”

“그런 것을 말해 줘도 괜찮은가요?”

“어차피 불멸 님이 다 알고 있습니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노른자 땅을 먹어 보겠다는 속셈이지. 근데 넌 괜찮겠냐? 그 정도로 몰리면 네 스폰서라 해도 부담일 텐데?”

“이미 다른 사냥터를 봐 뒀습니다.”

“헤에, 어디? 가까워?”

“왕국을 팔아 주시면 말씀해 드리죠.”

“정말 비싸게 군다니까. 어차피 너흰 상관없다 이거야?”

“네, 아마 거점을 설치하는 데 꽤 무리를 해야겠지만. 지하 무덤 던전에 목맬 필요는 없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어차피 안 팔고 그냥 우리가 레릭 왕국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만인 문제라 딱히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성향상 우리가 다른 연합들처럼 사냥터를 통제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그때 우리 이야기를 먼발치서 듣고 있던 아스티아가 나를 불렀다.

“주호, 이리 와 봐.”

응? 무슨 일이지?

아스티아는 가급적이면 다른 유저에게 보여 주면 안 되니까 전신과 인사를 하고 바로 화상을 꺼 버렸다.

그리고 아스티아에게 다가가서 말을 했다.

정확히는 아까 고대 드워프 왕이 죽은 바로 그 자리 위에서.

“무슨 일 있어요?”

“너희 인간들은 위기에서도 서로 열심히 싸우는구나?”

그 말에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좀 그렇죠.”

“참, 인간들은 변하지 않아. 그때나 지금이나.”

통제를 한다는 말만 들어봐도 이미 답은 나왔다.

아스티아의 눈에는 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왕국은 팔 생각이야?”

“아뇨, 딱히 그럴 생각은 없어요. 지금 상태만 해도 괜찮거든요.”

“헤에? 그래?”

“네, 굳이 레릭 왕국을 넘겨 봐야 우리도 좋은 꼴은 못 볼 테니까요.”

만약 레릭 왕국을 받은 유저가 드워프 NPC들을 시켜 우리를 치게 만들면 그건 꽤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냥터를 통제하는 방법도 있었고.

고대 드워프 왕이 죽고 사라진 장소에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아스티아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생각에 잠긴 그런 얼굴.

그러다가 아스티아가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좋아. 내가 선심 한번 쓴다.”

“네?”

“고대 드워프 왕 아직 안 죽었어.”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분명히 고대 드워프 왕이 죽었기에 퀘스트가 완료되고 보상까지 받은 것 아니었나?

“생각보다 명이 기네. 영혼의 형태로 부활을 기다리고 있어.”

부활이라는 말에 우리 모두 화들짝 놀랐다.

특히 이쁜소녀의 눈이 커졌고.

진짜 토르를 얻었기에 그만큼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히잉, 그럼 토르 다시 돌려줘야 해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현재 부활을 어떻게 할지는 전혀 모르는…….

잠깐.

부활?

그 순간 옆에 있던 재중이 형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형, 혹시 형도?”

“어, 너도냐?”

이 형,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어.

“레릭 왕국을 팔 생각이죠?”

“그렇지. 폭탄 돌리기에 누가 걸릴진 모르겠다만?”

누가 걸리든 좋아.

그게 우리만 아니면 되니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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