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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73화 (563/1,404)

#573화 미로 던전 (2)

새로 생성된 미로를 나갈 수 있는 세 개의 통로.

외형상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똑같았다.

이전처럼 한 곳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구분할 방법은 전무.

공동의 첫 갈림길에서 방향을 정했던 엔느가 여기서는 내게 의견을 구했다.

“이번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직접 정하지 않고요?”

알아서 방향을 정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엔느의 생각은 나와 다른 모양이었다.

되묻는 내게 엔느가 주변을 쭉 둘러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난장판을 보고도요?”

“으음, 좀 그렇군요.”

함정이 발동하면서 할퀴고 간 상처가 결코 적지 않았다.

대충 헤아려 봐도 이백여 명 정도.

단, 몇 분 만에 이 정도로 수가 줄다니.

계속 버텼다면 전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잠시만. 아직 시간은 있죠?”

“네.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혹여나 다음 미로로 가는 길이 사라지면 정말 갇혀 버릴 테니 이쪽은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바빠요?

<불멸> 조금? 이거 생각보다 성가시네.

역시 재중이 형도 미로 중 어딘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만약 우리와 같은 상황이라면 연락하는 것조차 버거울지도…….

<불멸> 뭐 적당히 처리는 됐어.

<주호> 처리라면… 몬스터요?

<불멸> 어, 들어가자마자 드워프 악령들 나오더라. 유저들 개떼처럼 죽고.

저쪽은 몬스터인가?

평범하다면 평범하네.

아니지.

오러를 쓰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쪽의 오러 단창만큼이나 위협이 되었을 수도.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애먹긴 했는데 아주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어.

<주호> 형이 처리했어요?

재중이 형도 오러를 쓸 수 있으니까.

마지막 일격은 아마 재중이 형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불멸> 혼자 한 건 아니고. 마침 여기 헤라 길드 애들이 있어서 좀 도움을 받았지.

헤라는 화련의 길드.

그쪽 길드원들이 예전 프로 때 같은 팀이라고 했던가?

아마 손발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터.

<불멸> 아, 그리고 여기 꽤 재미난 녀석이 있더라.

<주호> 네?

<불멸> 꼭 예전에 너 보는 것 같다니까?

<주호> 혹시 전에 그 녀석이에요?

<불멸> 어, 옆에서 봤는데 신기할 정도로 닮았어.

<주호> 좋은 쪽으로요?

<불멸> 크큭, 아니. 나쁜 쪽으로. 그리고 이 녀석 제법 사나워. 눈에 독기가 있어. 너랑 다르게.

끙.

날 닮았다면서 좋은 말은 해주지 않는군.

<불멸> 재미난 장난감을 찾은 것 같아서 지금 좀 즐겁네.

<주호> 네네, 혼자 많이 즐거우시죠.

<불멸> 혹시 질투?!

<주호> 찾아가서 죽여 드릴까요? 금방 찾아갈 것 같은데. 사람이 오러에 찔리면 어떻게 되나 한번 보고 싶네요.

<불멸> 무섭게 왜 그러냐.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주호> 그럼 농담 그만하고요. 여기 미로가 꽤 이상해요.

그리고 본론으로 넘어가 내가 겪은 미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멸> 흐음, 미로가 다 다르단 말이지. 단순히 길만 찾아가는 건 아니네?

<주호> 네, 그리고 가급적 빨리 통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불멸> 포인트?

<주호> 아시네요? 전 기계 기관 부수고 아이템 얻으니까 바로 5000포인트를 주던데요.

<불멸> 어, 이쪽도 드워프 악령 죽이고 나니까 포인트 주더라. 2000p.

2000인가.

많다고 보면 많을 수도 있는데.

또 적다고 생각하면 너무 적은 느낌이 들었다.

포인트를 산정하는 기준이 대체 뭐지?

<불멸> 거기다 이런 것도 얻었고.

<불멸> 『 불완전한 오러 수정 / 어둠 속성. 』

<불멸> 『 불완전한 오러 수정 / 화염 속성. 』

그러면서 링크를 올려주었는데 이건 처음 보는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주호> 음, 수정?

<불멸> 이거 꽤 좋아, 임시방편이지만 무기에 넣으면 오러를 쓸 수 있어.

그 말에 굉장히 놀랐다.

<불멸> 그래도 우리가 쓰는 오러 스킬 수준은 아니고. 드워프 악령이 쓰는 것처럼 미약하게 오러를 유지하게 해줘. 마력 소모 없이. 수정의 내구가 있는 동안만.

<주호> 마력 소모가 없는 건 정말 큰데요?

오러의 가장 큰 문제는 엄청나게 잡아먹는 마력에 있었다.

<불멸> 뭐,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오러랑 붙으면 바로 털릴 거야.

오러 스킬을 주지만, 온전한 스킬은 아니라는 건가?

아마 제대로 된 오러 스킬은 듀라한 같은 네임드를 잡아야만 주는 것 같았다.

확실히 오러 같은 스킬이 너무 흔해도 문제다.

<주호> 그래도 이 던전에서는 꽤 도움이 되겠네요.

<불멸> 어, 저 녀석들을 잡아야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이것도 나왔다.

『 드워프 악령의 무기 조각 / 제작 재료. 』

『 드워프 악령의 갑옷 조각 / 제작 재료. 』

<주호> 제작 재료까지 드랍하네요?

<불멸> 엘리트 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파밍 장소로 상당히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는 이놈의 미로겠지. 네가 말한 대로 치면 미로가 자체가 걸리니까.

재중이 형에게서 얻은 정보는 미로 중 하나는 몬스터 밭이다.

연락을 마치고 이번엔 챠밍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거긴 괜찮아?

<챠밍> 아! 오빠, 까악!

<주호> 왜?! 무슨 일이야?!

설마 내가 연락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건가?

<챠밍> 아! 아니에요. 여기 물이 차고 있어서! 아, 차가워!

물? 대체 무슨 말이지?

<챠밍> 지금 사방에서 물이 차고 있어요!

<주호> 설마 갇힌 거야?

<챠밍> 네, 사람들하고 미로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뒤가 막히면서 천장에서 물이 막 쏟아져 내리고 있어요.

저긴 대체 무슨 미로야.

설마…….

<주호>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챠밍> 오래 못 버텨요. 물이 차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무릎까지 차는데 1분밖에 안 걸렸어요. 그리고 무슨 물인지 모르겠지만 몸에 닿으면 계속 체력이 빠져요. 지금 사람들 완전 패닉이에요. 어떻게 해요?

재중이 형과 챠밍의 말을 들어보니 미로 종류가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문제가 많은.

젠장, 이쪽에선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

전사 형이 옆에 있다고 했었지.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거기 심각한 상황이에요?

<방패전사> 어, 지금도 많이 죽고 있다. 우리야 장비가 좋아서 그나마 버티는 중인데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남은 유저들이 벽을 공격하면서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어.

<주호> 아마 그런 식으로는 못 찾을 거예요.

그렇게 쉽게 지나가라고 만든 미로는 아니야.

분명히 뭔가가 있다.

이쪽 미로와 같은 기관이 있다던가.

바로 챠밍에게 물었다.

<주호> 혹시 기관 같은 게 보여?

<챠밍> 네? 아뇨. 그냥 평평한…….

그러더니 갑자기 챠밍이 뭔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챠밍> 아! 오빠가 기관이라고 말해줘서 이상한 걸 찾았어요. 바닥 색깔이 다 미묘하게 달라요.

확실한 해답은 아니지만 뭔가를 찾긴 찾은 모양이었다.

단순하게 벽을 두드리는 건 너무 쉽지.

기관이라는 힌트를 얻었으니 전사 형과 챠밍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다.

잘 빠져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쁜소녀와 나르샤, 막내별에게도 연락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옆에서 엔느가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우리, 이동해야겠어요.”

그러면서 엔느의 시선이 뒤편의 벽으로 갔다.

그그그긍!

“벽이 밀려오네요.”

“네, 빨리 나가라는 뜻이겠죠.”

한곳에 오래 머물게 두진 않겠다는 건가?

저 벽이 쭉 밀고 들어오면 여기 남은 사람들은 죄다 죽게 될 터.

이젠 좋든 싫든 무조건 이동해야 한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연락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럼 가죠.”

“어느 쪽?”

“흐음.”

어차피 미로라면 어느 길로 가도 똑같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까와 반대편인 왼쪽을 향해 들어가려고 하는데 손에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응?

뭐지?

분명히 이 녀석…….

지금 흔들렸어?

바로 고개를 숙여 르아 카르테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드래곤 레어에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얻는 수많은 방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혹시나 해 걸음을 옮겨 중앙에 있는 입구로 움직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르아 카르테가 흔들리지 않았다.

흐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오른편에 있는 입구로 발을 옮기자 르아 카르테의 진동이 눈에 띄게 커졌다.

그리고 그걸 느끼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르아 카르테를 바로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세 입구를 번갈아 옮겨 다니며 표정을 굳히자 엔느가 수상한 듯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건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겠지.

설마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다른 유일템을 찾아내는 유일템이라니.

탐식이라는 고유 특성.

그게 지금 내 선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린 오른쪽으로 가죠.”

“똑같이 오른쪽요?”

“흔히 길을 잃으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잖아요.”

“그거 왼쪽 아닌가요?”

왼쪽이었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오른쪽으로 갔으니 한 번 더 가보자는 거죠. 아마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네, 어차피 모르니까. 이번엔 좀 쉽기를 기도해야죠.”

엔느가 황룡을 바라보자 황룡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룡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백여 명의 유저에게 물었다.

“먼저 넘어갈 사람?”

그러자 다들 황룡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절대 먼저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모습에 황룡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 겁은 많아가지고.”

황룡은 그런 유저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신호를 하자 미르 길드원 중 일부가 먼저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유저들을 별로 신뢰하진 않는군.

하긴, 저런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그렇게 미르 길드원이 오른쪽 통로로 발을 들이는 순간.

나머지 두 개의 통로는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단 선택하면 다른 곳은 못 간다는 건가?

이젠 좋든 싫든 무조건 오른쪽 미로로 가야 했다.

그런데 넘어갔던 미르 길드원이 곧장 되돌아왔다.

어?

왜 돌아왔지?

아니, 그보다 되돌아올 수 있는 거였나?

황룡이 결과를 물어보려고 하는데 들어갔던 미르 길드원이 오히려 기가 찬 표정으로 황룡에게 말했다.

“반대로 움직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나오려고 나온 게 아니라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로 움직여서… 앞으로 가려고 했는데 계속 뒤로 움직입니다.”

반대로 움직여?

그 말에 엔느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장 오른쪽 입구를 통해 반대편으로 넘어가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각으로는 앞으로 가야지 하고 움직이는데 정작 몸은 뒤로 움직였다.

심지어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몸은 왼쪽으로 움직였고.

미친.

이런 게 정말 가능한 거야?

옆을 보자 엔느는 아예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더니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생각과 정반대로 움직이는데 한 번에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나 역시 순간 자세를 잃어버렸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뒤이어 들어오던 황룡 역시 무릎을 휘청거리며 쓰러지고는 바로 인상을 썼다.

“뭐 이런 씨…….”

확실히 욕이 안 나오면 이상하겠는데.

셋 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어 정면의 미로 형태를 보고는 표정을 싹 굳혀버렸다.

그리고 엔느가 바닥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선택을 잘못한 것 같은데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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