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화 미로 던전 (1)
쒜액!
쒜액!
쒜액!
“또 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던전 통로 안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단창이 유저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방패며 갑옷이며 그대로 관통당해 죽어버리니 유저들도 그저 단말마를 내뱉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단창에 꿰뚫린 유저 한 명이 아니라, 관통되어 그 뒤, 바로 그 뒤를 유린하고 나서야 끝이 났고.
이는 어둠 속에서 날아온 단창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크악!”
“이게 대체 뭐야!”
“피해! 피하라고!”
“젠장! 너무 빨라!”
“탱커들 뭐해! 앞으로 나가라고!”
“방금 못 봤어? 탱커도 다 뚫리잖아!”
“아! 뒤에 좀 비켜!”
“너나 나와!”
“앞으로 좀 나가!”
“어차피 곧 끝난다고!”
“무시하고 달리란 말이야!”
“앞에 뭐가 있을 줄 알고?!”
혼비백산.
날아드는 단창을 피해 다들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주변 유저들과 함께 부딪쳐 바닥에 뒹굴거나 벽에 부딪쳐 튕겨 나오는 진풍경을 선보였다.
그렇게 죽음을 부르는 단창의 포화에 유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일단, 나는 단창의 궤적이 보인다.
단창의 날을 감싼 검붉은 오러의 흔적.
어둠 속에서도 단창이 보이는 이유기도 하고.
다만 단창이 날아오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날아든다고 인식하는 순간, 이미 몸을 꿰뚫고 있었으니까.
이건 어지간한 반응 속도가 아니고선 피하지 못해.
신체의 스펙 문제를 떠나 실제 유저의 반응 속도는 평범한 편이다.
반응이 느리고, 평범하다면 장비라도 좋아야 하는데, 현재 게임 내적으로 장비 수준은 한없이 낮다.
게다가 ‘유일 아이템’을 얻기 위한 고난한 여정에 함정까지 더해져 난이도가 얼마나 올라간 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한 점 때문에 단창을 하나 쳐 낸 뒤, 곧장 뛰어들려다 바로 발을 멈추었다.
주변에 수많은 유저가 너무 소란을 피워 대서 감각을 제대로 활성화시키기가 어려웠다.
이러면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는데…….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이 있으면 믿고 달리겠지만.
무턱대고 달려들자니 혼자서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내가 단창을 쳐냄으로 겨우 살아난 미르의 여성 길드원이 내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마워요. 하마터면 한 방에…….”
“지금은 집중.”
“네!”
1차에 이어 다시 한 번 날아온 단창에 미르 길드원 중 몇 명이 당해 버렸다.
그중 몇 명은 내가 살려냈지만 딱 여기까지.
이 이상은 힘들어.
<주호> 엔느 님, 일단 미르 길드원들 다 후퇴시켜요! 정면에 있으면 다 당합니다.
<엔느> 네, 이미 하고 있어요.
이대로 피해가 늘어나면 곤란해.
그런데 그때 문제가 더 일어났다.
쿠구구궁!!
“뭐지?”
“뭐야?! 이 진동은!”
“바닥이 떨린다!”
“…발! 또 떨어지는 거 아냐?!”
“옆에 붙들어!”
“흔들린다!”
통로 전체가 흔들리면서 동시에 바닥까지 흔들리자 유저들의 표정이 바로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이미 지하 낙하를 겪어 봤으니까.
그리고 얼마 뒤, 유저들이 지나왔던 통로 뒤쪽에서 거대한 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또다른 함정?!
우리가 걸어왔던 통로 뒤편을 막아버리면 퇴로가 없어지는데…….
“아! 안 돼!”
“젠장, 빠져나가야 해?”
“난 빠진다!”
“나도 같이 가!”
“이 통로는 아니야!”
“공동으로 돌아갈래!”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유저들은 벽이 더 내려오기 전에 우리가 원래 왔던 공동을 향해 도망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유저들도 역시 따라 도망을 갔고.
차라리 하나의 길드로 뭉쳐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텐데…….
지하로 떨어지며 길드가 각각 흩어지다 보니 제대로 된 오더가 힘들었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본능에 따라 움직이니까.
길드, 라는 울타리로 뭉쳐 있다면 저들도 강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그렇게 통로 뒤가 완전히 막히자 이제는 어떻게든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악! 뒤가 막혔어!”
“이젠 도망도 못 가잖아!”
“우린 다 죽었어!”
퇴로 없이 꽉 막힌 통로에서 계속해 날아오는 단창들.
그건 유저들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대략 몇 명이 남은 거지?
얼추 보이는 숫자로 대략 이백여 명 정도가 남았나?
그 많던 유저가 도망가고 남은 것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전멸할지도 모르겠어.
다른 통로를 택해야 했나 생각했지만 이미 지난 일.
일단 무조건 통과해야 한다.
그 와중에 내게 날아오는 단창을 하나 크게 쳐내어 옆으로 튕겨내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단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단 제대로 된 무기는 아닌데…….
쐐기 형태의 단창.
우리가 쓰는 정석적인 무기 형태는 분명히 아니었다.
이걸 뭔가가 쥐고 던지고 있다는 건가?
아니, 아무리 네임드라고 해도 한 개체가 이 정도로 동시에 단창을 던지지는 못해.
팔이 수십 개가 아닌 이상.
물론, 스킬이나 마법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런 그때,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날아오는 단창의 궤적이 똑같은 거지?
방금 쳐낸 단창도 그렇고.
이전에 날아온 단창도 그랬다.
궤적의 완벽한 일치.
아무리 네임드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동일한 궤적으로 단창을 날릴 수 있나?
매번 단창을 던지려면 어떻게든 몸이 흐트러질 텐데…….
심지어 하나도 아닌 수십 개를?
다 좋은데 이 단창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거지?
네임드가 혼자 짊어지고 있다가 던진다고?
아냐. 인벤을 가진 네임드에 대해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이상해.
혹, 몬스터가 떼로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그 정도 숫자의 몬스터라면 아무리 못 해도 내 감각에 분명히 걸리게 될 터.
그런데 지금은 반대편에서 아무런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확인해 봐야겠어!
<주호> 엔느 님. 미르 길드에 저 단창을 막을만한 유저가 있어요?
<엔느> 잠시라면 가능해요. 아마 두세 발 정도? 장담은 못 해요.
<주호>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은 전사 형의 역할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엔느가 가능하다고 했으니 아마도 가능하겠지.
그때, 뒤쪽에 있던 유저 중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황룡?
황금색 갑옷을 입은 황룡과 함께 두 명의 유저가 더 달려 나와 내 옆에 서더니 황룡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잠시만 막아주면 멈출 수 있습니까?”
“네, 아마도.”
“해보죠. 어차피 못 막으면 전멸이니.”
황룡은 내가 저 단창의 포화를 막아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몬스터가 됐든. 네임드가 됐든.
바로 미르 길드원들이 뒤로 빠지고 황룡과 두 명의 남성 유저들만 남았다.
그리곤 검은색의 데스 나이트 무기들을 각자 꺼내 들었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고강이네.
황룡이 들고 있는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는 10강.
나머지 둘은 배틀 액스, 그리고 블레이드 9강.
데스 나이트 무기에 희미하게 흐르는 이펙트만 봐도 그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데스 나이트 무기지?
혹시?
“속성은 이쪽이 좋습니다. 기본 대미지가 밀리지만.”
역시 속성이었나.
드래곤 무기나 방어구가 스탯은 높아도 솔직히 옵션이 너무 용족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면 무기의 포텐을 반도 끌어내지 못하지.
아마 여기서는 데스 나이트 무기가 훨씬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깜짝 놀랄만한 일을 했다.
【 트리플 캐스팅! 】
【 다크 웨폰! 】
【 라이트닝 웨폰! 】
【 아쿠아 웨폰! 】
트리플 캐스팅?
아니, 생각해 보면 리치는 넘칠 정도로 자주 잡혔으니.
이렇게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웨폰 기술들도 시장에 가면 널려 있으니.
하는 방법만 알면 못할 것도 없긴 한데.
<엔느> 죄송해요. 좀 참고했어요.
<주호> 뭐, 제가 특허 낸 건 아니니까.
역시 엔느였나.
어차피 내 영상을 조금만 보고 나면 언젠가는 다 알게 될 일이었다.
그 언젠가가 지금일 뿐이고.
그리고 확실히 웨폰 기술을 중첩 시키면 잠시나마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내게 황룡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딱 한 번입니다.”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막으면 더 못 막는다는 말이겠지.
그렇게 우리가 달려 나가자 단창들의 방향이 모두 우리에게 집중되어 날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미르 길드원 중 두 명이 곧장 앞으로 뛰어들어 각자 하나씩 단창을 옆으로 쳐내었다.
까가강!!
카강!!
반응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좋은데?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무기를 놓쳐 버렸지만 저걸 막았다는 것만 해도 큰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렇게 벌어준 틈을 따라 황룡과 내가 연이어 달려 나갔다.
“그럼.”
황룡 역시 날아오는 단창을 쳐내었는데 이전 길드원들과 달리 무기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약해 뒤를 이어 날아오는 단창까지 쳐내 주었다.
동시에 걸려 있던 웨폰이 싹 깨지며 사라졌고.
역시 길마는 길마인가?
충격에 주저앉은 황룡을 뒤로하고 계속 달려 내게 집중되는 단창을 두 번 더 쳐내자 더 이상 날아오는 단창이 보이지 않았다.
됐어!
돌파했어.
세 명이 앞에서 충격을 확 줄여주었기에 이만큼이나 전진을 할 수 있었다.
잠시라도 막아 줄 인원이 없었다면 수십 명이 달려들어서 몸으로 때워야 했을지도.
길드 하나를 통째로 갈아 넣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상황.
그렇게 단창의 포화를 지나쳐 일정 라인을 넘어오자 마치 태풍의 눈처럼 이곳에서는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역시.
예상대로였나.
왜 그렇게 정확한 궤적으로 수십 발의 단창이 날아올 수 있었는지.
이걸 보는 순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기계 기관.
수십 개의 단창이 잔뜩 장전되어 있는 특수한 기계 장치가 내가 달려왔던 방향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붉은 색의 마법진이 잔뜩 새겨진.
그럼 설마 저 마법진이 오러를?
미약하기는 해도 분명히 오러가 실렸으니 아마도 맞을 것 같은데.
기관으로 오러를 생성해 낸다라…….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기술보다도 진보된 기술이다.
수성에서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무적의…….
대체 고대 드워프라는 건 얼마나 터무니없는 거야?
잠시 기관들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르아 카르테와 하이딩 블레이드를 들어 기관들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창 발사대를 부수자 아이템이 떨어져 내렸다.
『 오러 생성기 도면 조각(A) 』
『 오러 생성기 마법 파편. 』
이상한 그림과 문자가 잔뜩 그려져 있는 도면의 한 조각.
그리고 오러 생성기가 부서지면서 떨어진 마법 파편까지.
제작 템이려나?
그걸 줍자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 고대 드워프의 오러 생성기를 최초 발견했습니다! 》
《 고대 드워프의 오러 생성기 기술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 원정대 포인트 5000p 획득! 》
이런 식인가?
뜻밖의 포인트 획득 소식에 손을 불끈 쥐었다.
적어도.
다른 유저들은 아직은 이걸 발견 못 했다는 거니까.
확실히 한발 앞서 있어.
연이어 오러 생성기를 전부 부수자 기계 기관이 전부 서버렸다.
바로 드랍템을 주워서 품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고.
“우와! 멈췄다!”
“더 안 날아와.”
“휴,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네.”
“역시 주호! 최고다!”
“이쪽으로 따라오는 게 맞았어.”
그리고 동시에 모두에게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 드워프 지하 무덤 미로 중 한 곳을 공략하셨습니다! 》
《 원정대 포인트 500p 획득! 》
아마 이곳 무덤에서 하는 모든 행동에 포인트가 책정되는 모양이었다.
이로써 5500p인가?
다른 유저들이 500p를 받은 것에 비해 내가 얻은 포인트가 월등했다.
기관이 완전히 멈춘 것을 조심스럽게 확인한 엔느가 곧 내게로 걸어왔다.
“앞으로도 이런 곳이 많다는 거겠죠?”
“시스템만 보면 그렇겠죠.”
“정말 갈 길이 머네요. 고작 미로 하나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반 토막 났으니.”
엔느가 한숨을 쉬면서 뒤를 바라보자 이미 도망간 유저들과 죽은 유저들까지 하면 정말 반 이상이 사라져 버렸다.
“뒤에 있는 벽은 안 열리는군요.”
“우리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그런 모양이에요.”
그때 다시 한 번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다음 미로가 열립니다. 》
그리고 우리 정면으로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아까 공동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이거 참.
다 죽던지.
혹은 통과하던지.
딱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거냐?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이미 죽음의 게임은 시작되고 있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